이집트에서는 처칠이 오킨렉의 후임으로 임명한 버너드 로 몽고메리 장군이 몇 주일 동안 준비작업을 거친 뒤, 1942년 10월 23~24일 밤에 엘라메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엘알라메인 전투). 10월 중순까지 제8군은 23만 명의 병력과 대포를 장착한 탱크 1,230대가 작전 태세를 갖추고 있었던 반면, 독일과 이탈리아의 병력은 8만 명에 불과했고 비교적 상태가 좋은 탱크는 210대뿐이었다.
공중 지원에서도 항공기 1,500대를 보유한 영국군은 350대밖에 보유하지 못한 적군에 비해 우위를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연합군이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추축국의 보급로를 항공기와 잠수함으로 공격했기 때문에, 롬멜의 군대는 연료와 탄약 및 식량을 충분히 보급받지 못했다. 그리고 롬멜 자신은 오스트리아에서 요양하고 있었다.
롬멜이 아프리카로 돌아가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고 10월 25일 저녁 전선에 도착했을 때, 수비군이 사용할 수 있는 장갑차량은 이미 절반이 파괴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튿날 독일군은 서쪽으로 깊숙이 침투하려는 영국군 기갑부대를 대전차포로 공격하여 맹공을 저지했다. 그러나 1주일 뒤, 롬멜은 더이상 몽고메리에게 저항할 힘을 잃고 영국군의 공격을 받으며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군은 튀니지로 서서히 쫓겨 들어갔고, 1943년 5월 마침내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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