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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투서 쓰는법

chocohuh 2013. 1. 21. 09:01

소설가가 되기 전 한 7년 정도 술집을 경영하였다. 그래서 잡지에 흔히 실리는 '음식점 혹평' 같은 기사를 읽으면,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아 눈물겨워 질 때가 많다.

 

나는 소설가로서 문예비평란 같은 지면을 통해 비판을 당하는 일도 있는데, 직업적인 필자이니 만약 상대방한테 반론을 제기하고 싶으면 반론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 나 자신은 비평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일일이 반론하지 않지만, 그래도 '구태여 반론하지 않음'으로 하여 나 나름의 자세를 시사 하다할 수는 있다.

 

그런데 평범한 라면집 아저씨는 설령 하고 싶어도 반론할 기회가 없다. 잡지나 책에 납득하기 어려운 글이 실려 있어도 대부분의 경우, 그저 일방적으로 당할 뿐이다. 이런 경우는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안됐기도 하다. 물론 세상에는 '이렇게 맛없는 것을 내주고도 잘도 돈을 받는다.' 든 가, '비싼 돈 내면서 왜 이런 혹독한 대접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하고 고함을 지르고 싶어지는 한심한 가게도 있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 가게에 가면 당연한 일이지만 화가 치민다. 하지만 앞서 쓴 이유로 나는 그런 일은 문장에 쓰고 싶지도 않고, 또 실제로도 쓰지 않는다. 개인적인 감각으로 하자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정한 행위가 아니므로,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감각이 어떤지에 대해서까지 이러니저러니 주제넘게 말하고 싶지도 않다.

 

화가 나면 어떻게 하는가 하면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는데- 우선 주위 사람이나 친구한테 닥치는 대로 그 가게의 험담을 늘어놓는다. 어디 어디에 있는 가게에서 '이렇게 맛없는 것을 먹었다'든가, '이렇게 무례한 대접을 받았다'든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모두들 내가 흥분하여 떠들어대는 말을 듣고도 하하 큰 소리로 웃기만 할 뿐(물론 재미있게 말하는 쪽에도 문제는 있지만) 조금도 동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험담을 늘어놓는 것도 나의 정신적 안정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레스토랑 앞으로 투서를 쓰기도 한다. 나는 글쓰기에 인색한 사람이지만, 그런 유의 투서만큼은 열심히 신속하게 쓴다. 그리고 곧장 우편함에 집어넣는 일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보내지 않는다. 몇 시간이나 머리를 짜내어 투서를 쓰는 것으로, 내가 느꼈던 불만과 분노가 일단은 해소되기 때문이다. 특히 쓴 다음 2,3일 날짜가 지나면 성가시고 귀찮아져서 결국은 보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서랍에는 보내지 않은 투서가 몇 통이나 쌓여 있다. 모두 열심히 쓴 것이라 가능하면 이 자리에서 소개하고 싶은데, 유감스럽게도 지면이 모자란다.

 

가장 최근에 쓴 투서는, 도내에 있는 유명한 모 프랑스 요리점 앞으로 쓴 것이다. 이 레스토랑은 음식 값이 비싸서, 나는 기껏해야 1년에 한 번 정도밖에 가지 않는다. 아주 중요한 사람을 번듯하게 대접하고 싶을 때 데리고 간다. 음식 맛도, 포도주의 선택도, 서비스도 나무랄 데가 없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었다. 나무랄 데 없는 수준을 넘어서, 손님으로 하여금 맛있고 즐겁게 음식을 먹도록 하고자 하는 '친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곳이다. 데리고 간 손님도 늘 대만족이었다. 그래서 음식 값은 비싸지만 그만한 값어치는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맛은 차치하더라도 서비스가 최악이었다. 데리고 간 손님도(이스라엘에서 온 사람, 그날이 생일이었다. 그 전에 데리고 갔을 때는 아주 만족스러워하였다) 울그락 불그락 화를 내었다. 나도 상당히 불쾌했다. 말투도 시큰둥하고 요리를 서브하는 순서도 엉망진창, 태도는 오만불손. 나나 그녀나 식도락가는 아니지만 좋은 레스토랑이 어떤 것인지는 대강 알고 있다. 화가 나서 그 레스토랑을 나온 뒤에 1시간 정도 다른 곳에서 마셨다.

 

다음날, 화가 삭지 않아 투서를 썼다. 설득력 있는 투서를 쓰려면 그 나름의 요령이 필요하다. 요령의 첫째는, 7할 정도는 칭찬하고 3할 정도 비난하는 것이다. 비난만 하면 이쪽의 진의가 상대방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당신네 음식점에는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데, 이런 점은 아쉽다'는 내용의 메시지로 할 것. 요령 그 두 번째는, 세부적인 것을 시시콜콜 쓰지 않는 것이다.

 

'누가 어쨌다느니, 그래서 이랬다느니' 시어머니의 잔소리 같은 디테일은 불필요하다. 가장 하고 싶은 말 -즉 투서의 에센스-을 가능한 한 간결하게 쓴다. 그런 원칙하에 오전 중에 2시간을 들여 투서를 완성하였다. 하지만 결국 이 편지도 보내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하고 싶은 말을 다 쓰고 나니 보내나마나 상관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두 번 다시 그 레스토랑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요리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은 레스토랑이었는데 정말 유감스럽다. 그 레스토랑의 이름은… 하고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는 점 아타깝군요.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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