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신문이나 잡지를 읽다 보면 이런 저런 것이 발견되거나 발명됐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개중에는 '와아' 하고 감탄하게 되는 것도 있고, 대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도쿄 대학 이학부의 XX 박사는 일본 원숭이의 뇌하수체를 전기적 처리에 의해 계층화 하는 데 성공했다"라는 소리를 들어도 이것은 물론 엉터리로 지어 낸 얘기지만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설령 '와아' 하고 감탄하게 되는 유의 일이라도 그게 어떤 원리에 입각하여 어떠한 단계를 거쳐 성립되었는가에 이르면, 나로선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옛날부터 화학이나 물리에는 굉장히 약했던 것이다.
이런 발명 및 발견은,
(1) 어떠한 필요에 의해서
(2)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필연적인 이론적 고찰 및 시행착오가 있은 후에
(3) 발명 및 발견에 이른다.
라는 과정을 거치지만, (1)과 (3)은 대충 이해할 수 있어도 (2)의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어려워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1) 이러저러한 필요가 있어서 (2) 얼렁뚱땅 (3) 이러한 것이 생겨났다. 라는 정도의 인식으로 모든 게 끝나 버린다. 요컨대 비디오를 예로 들면,
(1) 영상을 테이프에 간단히 녹화할 수 있으면 편리하다.
(2) 얼렁뚱땅
(3) 비디오가 생겨났다.
라는 식이다.
비디오가 어떤 원리로 성립되어 있는지 나로선 전혀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나는 비디오를 별다른 지장 없이 사용하고 있고, 제법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 와트의 증기 기관이나 마르코니의 전신 장치라든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정도라면 나도 어떻게든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데, 얘기가 그 이후의 테크놀러지에 이르면 내게 있어서는 거의가 어둠 속 저편에 묻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 놓여 있는 건 -결코 안이하게 동료 의식을 구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나 한사람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가령 모두들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2,000~3,000엔만 내면 손쉽게 살 수 있는 포켓형 계산기만 해도, 어떻게 그렇게 작은 물건이 루트13 곱하기 루트272 를 계산할 수 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분명히 나처럼 "이건 원래 이런 거니까" 하고, 계산기를 사용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테크놀러지에 관한 한 이른바 절대 군주제 같은 체제하에 놓여져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칙명' 같은 새로운 발명 내지는 새로운 발견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모두들 "이게 무슨 일일까?"라든가 "잘 모르겠는데" 하며 와글와글 떠들다가, 그래도 어쨌거나 "임금님 어명이시니까 틀림없을 거야"라는 말에 길들여져 버리는 것이다. 적어도 기술에 관해서는 민주주의라는 것도 완전히 무너지고 마는 것 같다.
나는 현재 집에 두 대의 레코드플레이어와 세 대의 카세트 테이프 리코더, 한 대의 FM 튜너와 두 대의 VTR, 한 대의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를 두고 사용하고 있는데, 마치 지옥과 같은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우선 세 대의 카세트 테이프 리코더를 테이프 셀렉터에 연결하고, VTR과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를 비디오 셀렉터에 연결한다. 그리고 비디오 셀렉터에 FM 튜너의 출력 선을 꼽아 하이파이 녹음을 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을 오디오 테이프에 더빙할 수 있도록 비디오 셀렉터의 출력 선을 테이프 셀렉터에 꼽는다. 그러고 나서 FM 튜너의 전원을 오디오 타이머에 꼽아서... 하고 생각하다 보면 도중에 뭐가 뭔지 모르게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예를 들어 "레코드를 들으면서 FM 방송을 비디오 데크에 녹음하고, 그것을 동시에 카세트에 더빙하는 게 가능한가?" 따위의 질문을 받으면 잠시 생각하지 않고는 결론을 내릴 수 없을 뿐더러, 내려진 결론도 대개는 틀리기 일쑤다. 배선을 메모한 종이를 뚫어져라 들여다봤자 머리만 혼란스러워질 뿐이다. 집사람은 처음부터 그런 노력은 아예 포기한 터라 오디오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가장 곤란한 건 이사를 할 때다. 기계를 늘어놓고 배선을 다시 하는 데만 하루가 꼬박 걸린다. "어어, 그러니까 이 출력 선이 이쪽 입력 선으로 가고..." 라며 낑낑거리다 보면, 점점 '어째서 내가 이런 짓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하는 절망적인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고교 시절에 처음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었을 무렵에는 세계가 훨씬 단순했다. 플레이어와 스피커를 통합 앰프(그런 게 있었다)에 연결하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나고, 그 다음은 느긋하게 음악을 듣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스파게티 5인분을 바닥에 퍼질러 놓은 것 같은 코드 더미에 쭈그리고 앉아 악전고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민주주의의 죽음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대체 뭐라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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