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부엌에 서서 스파게티를 삶고 있는 중이었다. 스파게티는 삶아지기 직전이었고, 나는 FM라디오에 맞춰 로시니의 <도둑까치>의 서곡을 휘파람으로 불고 있었다. 스파게티를 삶기에는 아마 최적의 음악이었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그대로 못 들은 척하고 스파게티를 계속 삶으려고 까지 생각했다. 스파게티는 거의 삶아졌고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런던 교향악단을 그 음악적 피크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스 불을 약하게 하고 젓가락을 오른손에 낀 채 거실로 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새 업무로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다.
"십 분간 시간을 갖고 싶어요."하고 당돌하게 여자가 말했다.
"실례지만."나는 놀라서 재차 물었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십 분만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어요."라고 여자는 반복했다.
그 여자의 목소리를 나는 전혀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나는 사람의 음색을 기억하는데 관해선 거의 절대적이라 할 만큼 자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는 우선 실수할 리가 없는 터였다.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낮고 부드럽고 그리고 막연한 목소리였다.
"실례지만 어디에 거셨습니까?"하고 나는 어디까지나 예의바르게 물어 보았다.
"그런 건 상관없어요. 아무튼 십 분만 시간을 갖고 싶어요. 그러면 서로 더 잘 알 수 있게 될 거예요."라고 여자는 빠른 어조로 말했다.
"서로 알 수 있게 된다고요?"
"기분 말이에요."라고 여자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나는 열려진 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부엌을 들여다보았다. 스파게티 냄비에서는 기분 좋은 흰 김이 솟아오르고, 아바도는 <도둑 까치>의 지휘를 계속하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지금 마침 스파게티를 삶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제 슬슬 삶아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제 슬슬 삶아지고 있는 중이어서 당신과 십 분이나 얘기하다간 스파게티가 쓸모없게 되어 버리거든요. 끊어도 되겠습니까?"
"스파게티?"하고 여자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오전 10시 반이에요. 어째서 오전 10시 반에 스파게티 같은 걸 삶나요? 그건 이상하지 않나요?"
"이상하건, 이상하지 않건 당신과는 관계없잖소."라고 나는 말했다.
"아침식사를 하나도 하지 않아서 지금 배가 몹시 고파요. 내가 직접 만들어 먹는데 몇 시에 뭘 먹든 그건 나 좋을 대로지 않습니까?'
"아 알겠어요. 그럼, 끊을게요."하고 여자는 기름이 흐르는 것 같은 밋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한 목소리였다. 대수롭잖은 감정의 변화로, 마치 스위치로 주파수를 바꾼 것같이 목소리의 톤이 싹 바뀐 것이다.
"나중에 다시 한 번 걸죠."
"잠깐 기다려요."하고 나는 서둘러 말했다.
"만약 이것이 무슨 세일즈 수단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전화를 걸어온다 해도 소용없어요. 나는 지금 실직 중이어 서 뭘 사들일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없으니까요."
"그런 건 알고 있으니 괜찮아요."라고 여자는 말했다.
"알고 있다고요? 알고 있다니 뭘 말인가요?"
"그러니까 당신 실직 중인 거죠.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빨리 스파게티를 삶으시면?"
"아니, 당신은 도대체-"하고 내가 말하자,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너무나도 당돌한 방법이었다. 수화기를 놓으면서 놓은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스위치 버튼을 눌러서 전화를 끊은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 손에 들고 있던 수화기를 잠시 망연하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곧 스파게티를 생각해내곤 그것을 제자리에 놓고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가스 불을 끄고 스파게티를 소쿠리에 쏟고 작은 냄비에 데워 둔 토마토소스를 얹어서 먹었다. 스파게티는 원인 모를 전화 탓으로 지나치게 부들부들해져 있었지만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었고, 게다가 나는 스파게티의 삶아진 상태를 운운하기에는 너무나도 배가 고팠다.
나는 라디오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 250그램 분의 면을 한 가닥도 남기지 않고 천천히 위 속에 집어넣었다.
접시와 냄비를 설거지통에서 씻고, 그 동안 주전자에 물을 끓여 티백으로 포장된 홍차를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시면서 좀 전의 전화에 대해 생각했다.
서로 잘 알 수 있게 된다?
도대체 그 여자는 무엇을 원해서 내게 전화를 걸어 온 걸까? 그리고 그 여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모든 것은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었다. 알 수 없는 여자로부터 익명의 전화가 걸려온 기억도 없었고,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에 관해서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어쨌든-하고 나는 생각했다-어디 사는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여인과 서로 기분을 나누고 싶진 않다. 그렇게 한다 해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우선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나 나름대로의 새로운 생활 사이클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거실 소파로 돌아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렌 데이튼 소설을 읽으면서 전화기를 이따금씩 바라보게 되자, 나는 점점 그 여자가 말한 <십 분간으로 서로 잘 알 수 있게 되는 뭔가>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십 분이면 뭔가 서로 알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보니 여자는 애초부터 정확히 십 분이라고 시간을 정해 놓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 한정된 시간 설정에 대해서 꽤 확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느껴졌다. 그것은 9분은 너무 짧고 11분은 너무 긴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스파게티처럼.......
그런 걸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더니 소설 줄거리를 제대로 알 수 없게 돼서, 나는 가벼운 체조를 하고 나서 셔츠에 다림질을 하기로 했다. 나는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면 셔츠에 다림질을 하곤 했다. 옛날부터 죽 그래왔던 것이다.
내가 셔츠에 다림질을 하는 고정은 전부 12단계이다.
그것은 (1)옷깃(바깥)으로 시작해서 (12)왼쪽 소매 커프스로 끝이 난다. 그 순서가 뒤바뀐 적은 거의 없다. 나는 하나하나 번호를 매기면서 순서대로 다림질을 해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림질이 잘 되지 않는다.
나는 스팀다리미의 증기 소리와 코튼에 열이 가해지는 독특한 냄새를 즐기면서 석 장의 셔츠에 다림질을 하고, 주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옷장 옷걸이에 걸어 놓았다. 다리미의 스위치를 끄고 다림판과 함께 벽장 속에 넣어 두자, 내 머리는 어느 정도 상쾌해진 것 같았다.
물이 마시고 싶어 부엌에 가려고 했을 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맙소사,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대로 부엌에 갈까, 거실로 돌아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역시 거실로 돌아가서 수화기를 들기로 했다. 그 여자가 다시 걸어온 것이라면 지금 다림질을 하고 있기 때문에, 라고 둘러대고 끊어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화를 걸어온 것은 아내였다. TV 위의 탁상시계를 보니, 바늘은 11시 반을 가르치고 있었다.
"잘 있었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잘 있었어." 나는 후유 하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하고 있었어요?"
"다림질 했어."
"무슨 일 있었어요?"하고 아내는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뭔가 긴장하는 빛이 섞여 있었다. 내가 혼란스러워질 때면, 다림질을 한다는 것을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 일도 없어. 단지 셔츠에 다림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뿐이야. 별 일 아니야."라고 나는 말하고 의자에 앉아 왼손에 들고 있던 수화기를 오른손으로 옮겼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저어, 일 관계예요. 괜찮은 일이 하나 있는 것 같아서요."
"음."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 시 쓸 줄 알죠?"
"시?"하고 나는 놀라서 반문했다. 시? 시라니 무슨 말이야, 도대체?
"아는 잡지사에서 젊은 여성 취향의 소설 지를 내고 있는데, 거기에서 시의 투고 선택과 첨삭할 사람을 찾고 있어요. 그리고 권두시를 매월 한 편씩 써 주었으면 하는 거예요. 간단한 일인 데 비해 개런티는 나쁘지 않아요. 물론 아르바이트 정도지만, 그것이 잘 되면 편집 일을 맡게 될 수도 있고-."
"간단하다구?"하고 나는 말했다. "이것 보라고, 내가 찾고 있는 건 법률사무소의 일 같은 거라고. 대체 어째서 시의 첨삭 따위의 말이 나오는 거지?"
"그래도 당신 고교 시절에 뭔가 썼다고 하지 않았나요."
"신문이야. 고교신문. 축구대회에서 어느 학급이 우승했다든가, 물리 교사가 계단에서 굴러 입원했다든가 그런 시시한 기사를 썼던 것뿐이야. 시는 아냐, 시 같은 건 못 쓴다고."
"하지만, 시라고는 해도 여고생들이 읽을 만한 시예요. 대단한 건 아니어도 좋아요. 그러니까, 알렌 긴즈버그 같은 시를 쓸 필요는 없어요. 적당히 쓰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적당히고 뭐고, 시 같은 건 쓸 수 없어."하고 나는 잘라 말했다. 쓸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흐음."하고 유감스러운 듯이 아내는 말했다.
"하지만, 법률관계 일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지금 몇 군데 얘기를 해 놓았어. 이번 주쯤에는 반응이 올 거야. 만약 그게 잘 안 된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는 거지 뭐."
"그래요? 뭐, 그건 그것으로 됐어요. 그런데 오늘 무슨 요일이죠?"
"화요일." 하고 나는 조금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그럼 은행에 가서 가스요금과 전화요금을 내 주시겠어요?"
"좋아. 슬슬 저녁거리 때문에 시장에도 가볼 참이었으니 그 참에 들르지."
"저녁은 뭐로 할 거죠?"
"글쎄, 모르겠군."하고 나는 말했다. "아직 정하지 않았어. 시장에 가서 생각 해 봐야겠어."
"저어."하고 바뀐 어조로 아내는 말했다.
"나 생각해 봤는데 말예요, 당신 그 다지 일을 찾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요."
"어째서?"하고 나는 다시 놀라며 말했다. 온 세상 여자가 나를 놀라게 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오는 것 같았다.
"어째서 일을 찾지 않아도 좋다는 거야? 3개월 후에 실업보험도 끊어져 버릴 텐데. 빈둥 빈둥대고 있을 순 없잖아."
"내 월급도 올랐고, 부업 쪽도 순조롭고, 저축한 것도 어느 정도 있고, 사치스럽다고는 할 수 없더라도 충분히 먹고 살아갈 정도는 되잖아요?"
"그리고 내가 집안일을 하는 건?"
"싫으세요?"
"모르겠어."하고 나는 솔직히 말했다. 알 수가 없다.
"생각해 보지."
"생각해 봐요."하고 아내는 말했다.
"그런데 고양이는 돌아왔나요?"
"고양이?"라고 반문하고 나서, 나는 아침부터 고양이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니, 돌아오지 않은 것 같은데."
"근처에서 좀 찾아봐 주지 않을래요? 없어진 지 벌써 나흘째예요."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나서 수화기를 또 왼손으로 옮겼다.
"아마 <골목>안의 빈 집 정원에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새의 석상이 있는 정원 말예요. 거기에서 몇 번 발견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거기 알고 있나요?"
"몰라."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언제 혼자서 <골목>따위엘 갔던 거야. 그런 얘기는 이제까지 한 번도-"
"저어, 죄송하지만, 이제 전화 끊어야겠어요. 슬슬 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고양이 문제 부탁해요."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나는 또 잠시 수화기를 바라보고 나서, 그것을 내려놓았다.
어째서 마누라가 <골목>같은 데를 알고 있는 거지, 하고 나는 이상하게 생각 했다. <골목>에 들어가려면 정원에서 꽤 높은 벽돌담을 뛰어 넘지 않으면 안 되고, 게다가 그렇게까지 해서 일부러 <골목>에 들어갈 이유 따윈 아무데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물을 마시고 FM라디오의 스위치를 넣고 손톱을 잘랐다.
라디오는 로버트 플랜트의 새로운 LP를 특집으로 꾸미고 있었지만, 두 곡쯤 들었을 때 귀가 아파 스위치를 껐다. 그리고 툇마루로 나가 고양이 밥그릇을 조사해 봤지만, 접시 안의 찐 멸치는 어젯밤 내가 넣어둔 채로 한 마디도 줄어들지 않았다. 역시 고양이는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나는 툇마루에 선 채로 밝은 초여름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좁은 정원을 바라보았다. 바라본다고 해서, 마음이 온화해질 것 같은 정원은 아니다. 하루 종일 거의 조금밖에 해가 비치지 않기 때문에 흙은 항상 검게 습기 차 있고, 나무라고 해도 구석에 두세 그루의 자양화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나는 자양 화라는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근처 나무숲에서 마치 태엽이라도 감는 듯 한 끼이이잇 하는 규칙적인 새소리가 들렸다. 우리들은 그 새를 <태엽 감는 새>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내가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본래의 이름은 모른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에 상관없이 태엽 감는 새는 매일 그 근처의 숲으로 날아와서 우리가 속한 조용한 세계의 태엽을 감았다.
도대체 왜 내가 일부러 고양이를 찾으러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하고 나는 태엽 감는 새의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게다가 만약 고양이가 발견된다면, 그러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집으로 돌아오도록 고양이를 설득해야 되는 건가? 이봐, 모두가 걱정하고 있으니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래, 하고 부탁해야 되는 걸까?
맙소사,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정말 맙소사 이다. 고양이 따윈 저 좋아하는 곳에 가서 잘 살면 되는 거 아닌가. 도대체 난 서른이나 되어서 이런 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세탁을 하고, 저녁 식단을 생각하고, 그리고 고양이를 찾는다.
예전엔-하고 나는 생각했다-나도 희망에 불타는 성실한 인간이었다. 고교시절에는 클라렌스 달로우의 전기를 읽고 변호사가 되려고 생각했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고교 3학년 때는 <가장 큰 인물이 될 것 같은 사람>투표에서 반에서 2위로 오른 일도 있다. 그리고 비교적 괜찮은 대학 법학부에도 들어갔다. 그것이 어딘가 에서부터 빗나가 버린 것이다.
나는 부엌의 테이블에 턱을 괴고 거기에 관해서-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내 인생의 지침이 어긋나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난 알 수 없었다. 특별히 뭔가 짚이는 데가 있는 건 아니다. 정치운동으로 좌절한 것도 아니고, 대학에 실망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여자에 빠졌던 것도 아니다. 나는 나로서 극히 보통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 나는 어느 날 돌연 자신이 이전의 내가 아닌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분명 그 어긋남은 처음에는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것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어긋남은 점점 커져서, 드디어는 애초에 있었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는 지경에까지 나를 이끌고 가버린 것이다. 태양계를 예로 들면 아마 나는 지금 토성과 천왕성의 중간 지점에 있을 것이다. 좀 더 나가면 명왕성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하고 나는 생각했다-그 앞에는 도대체 뭐가 있는 걸까?
2월초에 나는 줄곧 근무하고 있던 법률사무소를 그만두었지만,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의 내용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특별히 마음 설레게 하는 내용의 일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급료도 나쁘지 않았고 직장의 분위기도 우호적이었다. 그 법률사무소에 대한 나의 역할은 한 마디로 말하면 전문 심부름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나름대로 잘 했다고 생각한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게 우스울 진 몰라도 나는 그러한 실제적인 직무 수행에 관한 한 꽤 유능한 사람이다. 이해가 빠르고, 행동은 알아서 척척 해내는 편이고,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내가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얘기를 꺼냈을 때, 노(老)선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무소의 소유자인 부자(父子)변호사 중 아버지 쪽이다-은 급료를 올려도 좋으니까 어떻게든 남아 주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결국 그 사무실을 그만두었다. 어째서 그만두었는지, 그 이유는 나도 잘 알 수가 없다. 그만두고 무엇을 하겠다는 확실한 희망도 전망도 없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집에 틀어박혀서 사법시험 공부를 할까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키지 않았고, 게다가 무엇보다도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내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아내에게 "일을 그만두려고 하는데."하고 말을 꺼냈을 때, 그녀는 "그래요."하고 말했다. 그 "그래요."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그러고 나서 그녀는 한동안 묵묵히 있었다.
나도 묵묵히 있자니,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면 되잖아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당신의 인생인데 자신이 좋을 대로 하면 되는 거죠 뭐."그리고 그 말만 하고선, 생선뼈를 젓가락으로 접시 한쪽에 발라내기 시작했다.
아내는 디자인 스쿨에서 사무 일을 보며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급료를 받고 있었고, 친구인 편집자로부터 괜찮은 일러스트레이션의 일을 의뢰받고 있어서, 그 수입도 무시할만한 건 아니었다. 내 쪽도 반년간은 실업보험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집에 있어서 매일 깔끔하게 집안일을 돌보면, 외식비나 세탁 비라는 여분의 지출을 절약할 수도 있어서 살림살이는 내가 일해서 급료를 받을 때와 큰 차이는 없는 터였다.
그런 식으로 해서 나는 일을 그만두었던 것이다.
12시 반에 나는 언제나와 같이 큰 캔버스 천의 백을 어깨에 늘어뜨리고 물건을 사러 나갔다. 우선 은행에 들러 가스요금과 전화요금을 내고, 슈퍼마켓에서 저녁 찬거리를 사고, 맥도널드에서 치즈버거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집에 돌아와서 냉장고에 식료품을 넣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 벨은 내게는 굉장히 초조하게 울리는 듯이 느껴졌다. 나는 플라스틱 팩을 반 정도 떼어 낸 두부를 테이블 위에 놓고 거실로 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스파게티는 이제 끝난 건가요?"하고 예의 그 여자가 말했다.
"끝났소."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고양이를 찾으러 가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럼 십 분 정도는 괜찮겠네요? 고양이를 찾으러 가는 거니까."
"글쎄, 십 분 정도라면 야."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나는 도대체, 하고 나는 생각했다. 어째서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여자와 10분 동안 지껄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그렇게 하면 우린 서로를 알 수 있게 되겠죠?"하고 여자는 조용히 말했다.
여자가-어떤 여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전화 저편에서 의자에 느긋하게 고쳐 앉아 다리를 꼬는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글쎄, 그럴까요?"하고 나는 말했다.
"십 년을 같이 살아도 서로 모르는 게 있는 건데."
"시험해 보면 어때요?"하고 여자는 말했다.
나는 손목시계를 벗어 스톱워치 형식으로 바꾸고 스위치를 눌렀다. 디지털 숫자가 1부터 10까지를 새겼다. 이것으로 10초이다.
"어째서 나인 거요?"하고 나는 물었다.
"어째서 다른 누군가가 아니고, 하필 이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거요?"
"이유는 있어요."라고 여자는 음식을 천천히 씹을 때와 같이 정중하게 잘라서 말했다.
"당신을 알고 있으니까요."
"언젠가, 어딘가 에서요."하고 여자는 말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지금이에요. 그렇죠? 게다가 그런 걸 얘기하다 보면 금방 시간이 없어져 버리잖아요. 나라고 서두르지 않을 리는 없는 거예요."
"증거를 보여 줘요. 당신이 나를 알고 있다는 증거를."
"예를 들면?"
"내 나이는?"
"삼십 세."하고 여자는 곧바로 답했다.
"삼십 하고도 2개월, 그 걸로 됐나요?"
나는 잠자코 있었다. 확실히 이 여자는 나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이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었다. 내가 사람의 목소리를 잊는다거나, 잘못 듣는 따위의 일은 우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가령 얼굴이나 이름은 잊어도 목소리만은 확실히 기억해 낸다.
"자, 이번엔 당신이 날 상상해 봐요."하고 여자는 유혹하듯이 말했다.
"목소리로 상상하는 거예요. 내가 어떤 여자인가 말예요. 할 수 있겠죠? 당신은 그런 데는 자신 있을 텐데요?"
"모르겠소."하고 나는 말했다.
"시험해 보세요."하고 여자는 말했다.
나는 시계에 눈길을 주었다. 아직 1분 5초밖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체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응대해 버렸던 것이다. 한 번 응대해 버리면 끝까지 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옛날에 자주 했던 것같이-확실히 그녀가 말한 것처럼 그것은 예전 나의 특기였던 것이다-신경을 상대의 목소리에 집중시켰다.
"20대 후반, 대학 졸, 도쿄 태생, 어릴 적 가정환경은 중상."하고 나는 말했다.
"놀랍네요."하고 여자는 말하고 수화기 옆에서 라이터를 켜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계속 해 봐요."
"상당한 미인.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그런데 콤플렉스는 있어요. 키가 작다든가 가슴이 작다든가, 하는 그런 정도."
"상당히 접근했어요." 하고 여자는 킥킥거리고 웃으며 말했다.
"결혼했소. 그런데 원만하지는 않아요. 문제가 있소. 문제가 없는 여자라면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고 남자에게 전화를 걸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이오. 그렇지만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해요. 적어도 함께 얘기를 나눴던 적은 없어요. 이 만큼 상상했는데도 당신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으니까 말이오."
"그럴까요."하고 여자는 내 머리에 부드러운 쐐기를 박듯이 조용한 어조로 말 했다.
"당신은 그만큼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이 있는가 보죠? 당신의 머릿속 어딘가에 치명적인 사각(死角)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나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지금쯤 좀 더 성실한 인간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나요? 당신만큼 머리가 좋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예요."
"당신은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소."라고 나는 말했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런 훌륭한 인간이 못 되오. 나에게는 뭔가를 끝까지 해내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어요. 그래서 자꾸 옆길로 빠져 버리는 거요."
"그렇지만 난, 당신을 좋아했어요. 옛날 얘기지만."
"그래요, 그건 옛날 얘기일 테죠."하고 나는 말했다.
2분 53초.
"그다지 옛날 얘기는 아니에요. 우리가 지금 역사 얘기를 하고 있을 이유는 없잖아요."
"역사 이야기라."하고 나는 말했다.
사각(死角), 하고 나는 생각했다. 확실히 이 여자가 말하는 대로인 지도 모른다. 내 머리의, 몸의 그리고 존재 그 자체의 어딘가에는 잃어버린 지하세계와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이 내 생활방식을 미묘하게 어긋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미묘하게 가 아니다. 대폭적으로다. 수습 불가능할 정도로.
"나는 지금 침대 속에 있어요."하고 여자는 말했다.
"좀 전에 바로 샤워를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어요."
맙소사,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포르노 테이프가 아닌가.
"뭔가 속옷을 입는 쪽이 좋아요? 아니면 스타킹이 좋아요? 그러는 쪽이 낫겠어요?"
"뭐라도 상관없어요. 좋을 대로 하면 되잖소."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전화로 그런 얘길 하는 취미는 없소만."
"십 분이면 돼요. 딱 십 분이에요. 십 분간 얘기한다고 해서 그다지 치명적인 손실을 입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이상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인연이라는 게 있죠? 아무튼 질문에 답하세요. 벌거벗은 채가 좋아요? 아니면 뭔가 걸치는 쪽이 좋아요? 나, 여러 가지를 갖고 있어요. 가터벨트라든가......."
가터벨트? 하고 나는 생각했다.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았다. 요즘 세상에 가터벨트를 하는 여자라면 <펜트하우스>의 모델쯤은 아닐까.
"벌거벗은 채가 좋겠소."하고 나는 말했다.
이것으로 4분이다.
"음모가 아직 젖어 있어요."하고 여자는 말했다.
"타월로 닦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아직 젖어 있어요. 따뜻하고 촉촉이 젖어 있어요. 굉장히 부드러운 음모예요. 새까맣고 부드러워요. 어루만져 줘요."
"저어, 미안하지만-"
"그 아래쪽도 몹시 따뜻해요. 마치 녹은 버터크림 같아요. 굉장히 따뜻해요. 정말이에요. 나 지금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왼쪽 다리를 옆으로 벌리고 있어요. 시계 바늘로 말하면 10시 5분 정도." 목소리의 상태로 봐서,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녀는 정말로 양 다리를 10시 5분의 각도로 벌리고, 그곳을 따뜻하게 적시고 있는 것이다.
"입술을 어루만져 줘요. 그리고 열어요. 천천히 가운뎃손가락으로 천천히 어루만져요. 그래요, 아주 천천히요. 그리고 또 한쪽 손으로 왼쪽 유방을 만져줘요. 아래에서 부드럽게 어루만져 올리고 유두를 살짝 잡아당겨 줘요.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 줘요. 내가 절정에 달할 때까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 담배를 한 개비 피웠다. 스톱워치는 5분 23초에 머물러 있었다.
눈을 감자 갖가지 색조의 그림물감을 엉터리로 겹쳐 칠한 것 같은 어둠이 내 위에 떨어져 내렸다.
어째서 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어째서 나를 모두 가만 놔두지 않는 걸까?
10분쯤 후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지만, 이번에는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전화벨은 15회 울렸고, 그리고 끊겼다. 벨이 멈춰 버리자, 마치 중력이 균형을 잃어버린 것 같은 깊은 침묵이 주위에 가득 찼다. 빙하에 감금당해 버린 5만 년 전의 돌과 같은 깊고 차가운 침묵이었다. 15회의 전화벨이 내 주위 공기의 질을 완전히 바꿔 버린 것이다.
2시 조금 전에 나는 뜰의 벽돌담을 타고 넘어 <골목>으로 내려갔다. <골목> 이라고는 해도, 그것은 본래 의미로의 골목이란 뜻이 아니다. 솔직히 그것은 뭐라고도 부를 수 없는 곳이다. 정확히 말하면 길조차도 아니다. 길이라는 것은 입구와 출구가 있어서 그곳을 걸어가면 마땅한 장소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든 통로인 것이다.
그러나 <골목>에는 입구도 출구도 없고, 더듬어 가보면 벽돌담이나 철조망에 부닥치게 될 뿐이다. 그것은 막다른 골목조차도 아니다. 적어도 막다른 골목에는 입구라는 것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근처 사람들은 그 좁은 길을 단지 편의적으로 <골목>이라고 부르고 있을 따름이다.
<골목>은 집집의 뒤뜰 사이를 봉한 것같이 약 2백 미터쯤 계속되고 있었다. 길 폭은 1미터보다 조금 더 되길 했지만, 울타리가 밀려나와 있거나 여러 가지 것들이 길 위에 놓여 있는 탓으로, 몸을 비틀지 않고서는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이야기에 의하면-그 이야기를 해 준 이는 우리에게 몹시 싼 집세로 그 집을 빌려 주고 있는 내 친절한 숙부였다-<골목>에도 예전에는 입구와 출구가 있었고, 거리와 거리를 연결하는 지름길 같은 기능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고도 성장기가 되어 예전의 공터였던 곳에 집이 새롭게 죽 들어선 후엔, 거기에 밀려진 모양으로 길 폭도 한층 좁아지게 되었고, 집주인들도 자기 집의 처마 끝이나 뒤뜰에 사람이 왕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어서 그 좁은 길에 슬며시 입구를 막게 되었다. 처음에 그것은 차분한 울타리 같은 것으로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한 것뿐이었지만, 한 주민이 정원을 확장시켜 벽돌담으로 한쪽 입구를 완전히 막아 버리자, 거기에 호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또 한쪽 입구도 개도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철조망으로 막게 되었다. 주민들은 본래 그 길을 거의 통로로 이용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양쪽 입구를 막은 것에 대해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고, 방범을 위해서도 그러는 쪽이 나았다. 따라서 지금 그 길은 마치 방치된 운하처럼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내버려졌고, 이용되는 일도 없이 집과 집을 구분하는 완충지대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었다. 지면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도처에 거미가 끈적끈적한 거미줄을 쳐놓고 벌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왜 그런 곳에 몇 번이나 출입했는지, 나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나로서도 이제까지 그 <골목>을 걸었던 적이 한 번 밖에 없었고, 그녀는 그렇지 않아도 거미를 싫어했던 것이다.
그러나 뭔가 생각하려고 하자, 나의 머리는 굳게 긴장된 가스 상태로 가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양쪽 관자놀이가 굉장히 나른하게 느껴졌다. 어젯밤 숙면을 취하지 못했던 것과 5월초로는 너무 더운 날씨, 그리고 그 기묘한 전화 탓이다.
뭐 아무려면 어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튼 고양이를 찾자. 그 뒤의 일은 또 그 뒤에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집에 가만히 앉아 전화벨을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바깥에서 걷는 쪽이 훨씬 낫다. 적어도 뭔가 목적이 있는 일을 하는 거니까.
지독히도 선명한 초여름의 햇살이 머리 위로 내뻗은 나뭇가지의 그림자를 골목의 지면에 얼룩지게 흩뿌리고 있었다. 바람이 없는 탓으로 그 그림자는 영원히 지표와 떨어지지 않고 고착된 숙명적인 얼룩처럼 보였다. 지구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얼룩을 품에 안은 채 서력(西曆)이 다섯 자리 숫자로 될 때까지 태양 둘레를 계속해서 도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뭇가지 밑을 빠져나가자, 그 아물아물한 그림자는 나의 회색 티셔츠 위를 재빠르게 지나가고, 그러고 나서 또 원래의 지표로 돌아갔다.
주위는 너무나 조용해서 풀잎이 햇살을 받아 호흡하는 소리까지 들려올 것 같았다. 하늘에는 몇 개의 작은 구름이 떠 있었는데, 그것들은 마치 중세 동판화의 배경에 묘사된 구름처럼 선명하고 간결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선명한 탓에 나 자신은 아무래도 종잡을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굉장히 덥다. 나는 티셔츠와 얇은 면바지에 테니스 슈즈를 신은 차림이었지만, 그래도 양지를 오래 걷고 있자니, 겨드랑이 밑이나 가슴 언저리에 흥건히 땀이 배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티셔츠도 바지도 그날 아침에 여름옷을 넣어 두었던 상자에서 바로 꺼내온 것인지라 크게 숨을 쉬니, 방충제의 톡 쏘는 냄새가 마치 뾰족한 모양을 한 미세한 곤충처럼 내 콧속에 들어왔다.
나는 양쪽으로 주의 깊게 두루 살펴보면서 천천히 일정한 보조로 골목을 걸었다. 그리고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작은 소리로 고양이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골목을 끼고 서있는 집들은 마치 비중이 다른 액체를 섞어 놓은 것처럼 확실한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하나는 넉넉한 넓은 뒤뜰을 가진 옛날 집들이고, 또 하나는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아담한 집들이었다. 새로운 쪽의 집에는 대체로 뒤뜰이라고 부를 정도의 넓은 공간은 없었고, 개중에는 정원이라는 것을 전혀 갖지 않은 집도 있었다. 그런 집에서는 처마 끝과 골목사이에 빨랫대가 겨우 두 대 들어갈 정도의 공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때로는 빨랫대가 골목위에까지 튀어나와 있는 집도 있어서, 나는 아직도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는 타월이나 셔츠와 시트의 행렬을 빠져나가듯이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처마 끝에서 TV소리나, 수세식 화장실의 물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오는 일도 있고 카레를 끓이는 냄새가 풍겨오는 일도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옛날 집 쪽에서는 생활의 냄새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울타리에는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갖가지 종류의 관목 따위가 효과적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 틈새로 손질이 구석구석까지 미친 정원이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안채의 건축 스타일은 다양했다. 긴 복도가 있는 일본풍의 집이 있고, 낡은 구리 지붕의 양옥집이 있고, 바로 최근 개축된 것 같은 모던한 방식의 것도 있었지만, 그 어느 것에나 공통된 것은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어떤 냄새도 나지 않았다. 세탁물조차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렇게 천천히 주변을 관찰하면서 골목을 걷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나의 눈에는 주변 풍경이 매우 신선하게 비쳐졌다. 한 집의 뒤뜰 모퉁이에는 갈색의 시들어 버린 크리스마스트리가 뚝 떨어져서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 어떤 집 뜰에는 마치 몇 사람의 소년기의 흔적을 털어 모은 것 같은 아이들의 온갖 놀이기구가 가득했다. 세발자전거, 고리 던지기, 플라스틱 칼, 고무공, 거북이 모양의 인형, 작은 야구방망이, 목재 트럭 따위였다. 농구 골대가 설치된 정원도 있었고 훌륭한 정원 의자와 도제테이블이 놓여 있는 정원도 있었다. 하얀 정원 의자는 벌써 몇 개월이나(혹은 몇 년이나)사용하지 않은 듯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보라색의 목련꽃잎이 비에 떨어져 달라붙어 있었다.
어떤 집은 알루미늄 새시를 한 큰 유리문을 통해 거실의 내부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간장색 같은 가죽을 씌운 소파 세트가 있고, 대형 TV세트가 있고, 장식장이 있고(그 위에는 열대어 어항과 무슨 트로피인지 두 개가 올려져 있다), 장식용 플로어스탠드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TV 드라마의 세트같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둘레에 철망을 두르고 큰 개를 위한 개집이 있는 정원도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개의 모습은 없었고, 문은 열려진 채였다. 철망은 마치 누군가가 몇 개월이나 안쪽에서 기댄 채 있었던 것처럼 불룩하니 밖으로 내밀어져 있었다. 아내가 가르쳐준 빈 집은 그 개집이 있는 집의 조금 앞에 있었다. 그것이 빈 집이라는 것은 나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것도 2개월이나 3개월 비어 있었다고 말할 만한 것도 아닌 것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비교적 새로운 모양새의 이층집이었지만, 굳게 닫혀 있는 나무 덧문이 몹시도 낡았고, 이층 창에 붙은 난간에는 지금이라도 막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붉은 녹이 슬어 있었다. 아담한 정원에는 날개를 펼친 새를 본뜬, 사람의 가슴 정도 높이의 대좌가 붙은 석상이 놓여 있었지만, 그 주변에는 무정하게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새는-그것이 어떤 종류의 새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지만-그런 상황에 애가 타서 날개를 펼치고 지금이라도 날아오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석상 외에는, 정원에는 장식다운 장식은 없었다. 낡아서 더러워진 플라스틱 정원 의자 두 개가 처마 밑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철쭉이 묘하게 현실감 없는 선명한 색조의 빨간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밖에 내 눈에 띄는 것이라곤 잡초뿐이었다.
나는 가슴 높이의 철조망 가에 서서 한동안 그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양이가 좋아할 것 같은 정원이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거기에는 고양이 모습 같은 것은 볼 수가 없었다. 지붕 위에 세워진 TV안테나 앞에 비둘기가 한 마리 멈춰 서서 그 단조로운 소리를 주변에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석상의 새 그림자는 무성한 잡초 위에 떨어져서 뿔뿔이 분산되고 있었다.
나는 포켓에서 담배를 꺼내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철망에 기대선 채 그것을 한 개비 피웠다. 그러는 동안 비둘기는 TV안테나 위로 올라가서 줄곧 같은 모양으로 울고 있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땅바닥에 밟아 끄고 난 후에도, 나는 몹시 오랫동안 거기에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된다. 얼마만큼 그 철망에 기대서서 있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지독히 졸려서 머리가 멍해져 있었고 거의 아무 생각 없이 석상의 새 그림자 주위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은 나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 치더라도 그 작업은 내 의식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난 장소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현상적으로 나는 풀잎 위에 떨어진 새의 그림자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새 그림자 속에 누군가의 소리 같은 것이 잠입하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누구의 소리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여자의 소리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맞은 편 집 뒤뜰에 15세나 16세가량의 소녀가 서있는 게 보였다. 작은 체구로 머리카락은 곧고 짧다. 적갈색 테의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어깨에서 가위로 양 소매를 잘라낸 엷고 푸른 아디다스 티셔츠를 입고 있다. 거기에서 뻗어 내린 가는 양 팔은 아직 5월인데 비해 잘 그을려 있었다. 그녀는 한쪽 손은 쇼트 팬츠의 포켓에 찔러 넣고 다른 한쪽 손은 허리 높이의 대나무로 만든 문 위에 놓은 채 불안정하게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덥죠?"하고 소녀가 내게 말했다.
"덥군."하고 나도 말했다.
맙소사, 하고 또 나는 생각했다. 오늘 하루 종일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여자들뿐이구나.
"저어, 담배 갖고 있으세요?"하고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쇼트호프 담뱃갑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쇼트 팬츠의 포켓에서 손을 빼고 담배를 한 개비 꺼내더니 잠시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나서 입에 물었다. 입은 작고 윗입술이 아주 조금 위로 말려 올라가 있었다. 나는 종이 성냥을 켜서 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소녀가 머리를 숙이자 귀의 모양이 또렷이 보였다. 이제 갓 만들어낸 느낌이 드는 매끈매끈하고 예쁜 귀였다. 그 가는 윤곽을 따라 짧은 솜털이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익숙한 모양으로 입술 가운데로부터 만족스러운 듯이 연기를 내뿜고, 그러고 나서 마치 불쑥 생각이 났다는 듯이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선글라스의 두 개의 렌즈 위로 나의 얼굴이 둘로 나누어져 비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렌즈의 색이 굉장히 짙고, 게다가 빛을 반사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나는 그 안에 있는 그녀의 눈을 볼 수 없었다.
"근처 분이세요?"하고 소녀는 물었다.
"그래."하고 나는 답하고, 우리 집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려고 했지만, 도대체 그것이 정확히 어느 방향에 위치하고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기묘한 각도로 구부러진 길모퉁이를 몇 개나 빠져나온 탓이었다. 그래서 나는 적당한 방향을 가리키며 얼버무려 버리고 말았다. 어느 쪽이라 해도 큰 차이는 없는 것이다.
"줄곧 거기서 뭐하고 계셨어요?"
"고양이를 찾고 있었어. 삼사 일 전부터 없어져 버렸거든."하고 나는 땀이 밴 손바닥을 바지에 비비면서 답했다.
"이 주변에서 우리 고양이를 발견한 사람이 있을 테지."
"어떤 고양인데요?"
"몸집이 큰 수고양이. 갈색 줄무늬에 꼬리 끝이 조금 구부러져 있어."
"이름은요?"
"이름이라고?"
"고양이 이름 말예요. 이름은 있을 테죠?" 그녀는 선글라스 안에서 지그시 나의 눈을 들여다보면서-아마도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말했다.
"노보루."하고 나는 대답했다.
"와타나베 노보루."
"고양이치곤 꽤 멋진 이름이네요."
"마누라의 선배 이름이야. 느낌이 닮아서 농담으로 붙인 거지."
"어떤 점이 닮았나요?"
"동작이 닮았어. 걸음걸이라든가, 졸릴 때의 눈매라든가, 그건게 말이야."
소녀는 처음으로 생긋 웃었다. 표정이 흐트러지자, 그녀는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훨씬 어리게 보였다. 조금 말려 올라간 윗입술이 이상한 각도로 밖으로 내밀어져 있었다.
어루만져 줘요, 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 전화의 여자 목소리였다. 이 소녀의 목소리는 아니다. 나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갈색 줄무늬의 고양이로 꼬리 끝이 조금 구부러져 있는 것."하고 그녀는 확인 하듯이 되풀이했다.
"목걸이라든가, 그런 것은요?"
"벼룩 잡이용 검은 게 달려있어."하고 나는 말했다.
소녀는 한쪽 손을 나무문 위에 올려놓은 채 10초나 15초 정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짧아진 담배를 내 발밑으로 살짝 떨어뜨렸다.
"그것 좀 밟아서 꺼 주실래요? 난 맨발이라 서요."
나는 테니스 슈즈 바닥으로 담배를 조심스레 밟아 껐다.
"그 고양이라면 이미 제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하고 그녀는 천천히 문절을 구분하듯이 말했다.
"꼬리 끝은 주의해서 보지 못했지만, 갈색의 얼룩고양이고, 크고, 아마 목걸이를 달고 있었던 것 같았어요."
"그 녀석을 본 게 언제쯤이지?"
"글쎄 언제쯤이더라? 하지만 몇 번인가는 봤어요. 저는 이곳 정원에서 줄곧 일광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가 언제인지 잘 구별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요 삼사 일간이었어요. 우리 정원은 근처 고양이들이 드나드는 통로라서 여러 고양이가 지나다녀요. 모두 스즈키씨 집 울타리에서 빠져나와서 우리 집 정원을 가로질러 미야와키씨 정원으로 들어가죠."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맞은편의 빈 집을 가리켰다. 빈 집 정원에서는 여전히 돌로 된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었고, 널빤지 같은 것이 거품이 일 듯 초여름 햇살을 받고 있었고, TV안테나 위에서는 비둘기가 단조로운 울음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가르쳐 줘서 고마워."하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저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우리 정원에서 기다려 보면 말예요? 아무튼 고양이는 모두 여길 통해 저쪽으로 갈 거고, 게다가 이 주변을 어정거리다간 도둑으로 몰려 경찰에 신고를 당해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죠."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정원에 들어가 고양이를 기다릴 수는 없어."
"괜찮아요, 그런 건 염려하지 마세요. 집에는 나밖에 없고, 게다가 난 얘기 상대가 없어서 굉장히 심심했거든요. 둘이서 정원에서 일광욕을 하면서 고양이가 지나가길 기다리면 좋잖아요. 난 눈이 좋기 때문에 쓸모 있을 거예요."
"그럼 3시까지 그렇게 해 보지."하고 나는 상황을 아직 잘 파악하지 못한 채 말했다.
나무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서 소녀의 뒤를 따라 잔디 위를 걸어가면서 보니, 그녀는 오른쪽 다리를 가볍게 절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어깨는 기계의 크랭크처럼 오른쪽으로 기울며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몇 걸음인가 걷다가 멈춰 서서 내게 자기와 나란히 걷도록 지시했다.
"지난달에 사고가 났었어요."하고 그녀는 간단히 말했다.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있었는데 내팽개쳐져 버렸어요. 재수가 없었죠."
잔디가 있는 정원 한가운데 캔버스 천의 덱 체어가 두 개 놓여 있었다. 한쪽 등받이에는 푸른색의 커다란 타월이 걸려 있고, 또 하나의 덱 체어 위에는 말보로의 붉은 담뱃갑과 재떨이와 라이터와 대형 라디오 겸용 카세트와 잡지가 어수선하게 놓여 있었다. 라디오 겸용 카세트는 켜진 채 놓여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하드록이 작은 소리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녀는 덱 체어 위에 흩어져 있는 것을 잔디에 내리고 거기에 나를 앉히고, 라디오 겸용 카세트의 스위치를 꺼서 음악을 멈췄다. 의자에 앉자 수목들 사이로 골목과 골목을 사이에 둔 빈 집을 건너다 볼 수 있다. 하얀 새의 석상도 철망의 울타리도 보였다. 아마 그녀는 여기에 앉아 나의 모습을 줄곧 관찰하고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상상했다.
넓고 심플한 정원이었다. 잔디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펼쳐져 있었고, 곳곳에 나무숲이 배치되어 있었다. 덱 체어 왼편에는 콘크리트로 된 큰 연못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사용되고 있지 않은 듯, 물이 빠져서 마치 뒤집어진 수생동물 같이 엷은 녹색으로 변색된 바닥을 태양에 드러내고 있었다. 배후의 나무숲 뒤편에 우아하게 모서리를 깍은 옛 서양풍의 안채가 보였지만, 집 자체가 그리 큰 것은 아니었고 사치스런 모양새도 볼 수 없었다. 단지 정원만이 넓고, 그것도 실로 조심스럽게 손질되어 있었던 것이다.
"옛날, 잔디 깎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말이야."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요?"하고 그다지 흥미 없는 투로 소녀는 말했다.
"이 정도로 넓은 정원을 손질하는 것은 대단한 거야."하고 나는 둘레를 둘러보며 말했다.
"댁에는 정원이 없나요?"
"작은 정원밖에 없어. 자양화가 두세 그루가 있을 뿐이지."하고 나는 말했다.
"언제나 너 혼자 있니?"
"네, 그래요. 낮에는 늘 나 혼자 여기 있어요. 오전과 저녁 무렵엔 파출부 아줌마가 오지만, 그 외에는 언제나 나 혼자예요. 저어, 뭔가 차가운 거라도 마시지 않을래요? 맥주도 있어요."
"아니, 필요 없어."
"정말요? 어려워할 것 없어요."
"목이 마르지 않아서 그래."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넌 학교에는 안 가니?"
"당신은 일하러 안 가나요?"
"가려 해도 일이 없어."하고 나는 말했다.
"실직?"
"그래, 자의로 그만두었지."
"지금까지 어떤 일을 했었나요?"
"변호사의 심부름꾼 같은 일이야."하고 나는 말하고, 이야기의 재빠른 흐름을 끊기 위해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관공서 등에 가서 여러 가지 서류를 모으기도 하고, 자료를 정리하기도 하고, 판례를 체크하기도 하고, 재판소의 사무 절차를 밟기도 하고, 뭐 그런 일이야."
"그런데, 그만 뒀다고요?"
"그래."
"부인은 직장에 다니시나요?"
"다니고 있어."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고 성냥을 켜서 불을 붙였다. 근처 나무위에서 태엽 감는 새가 울고 있었다. 태엽 감는 새는 12회나 13회 태엽을 감고 나서 어딘가 다른 나무로 옮겨갔다.
"고양이는 언제나 이 주변을 지나가요."하고 여자는 말하고, 앞쪽의 잔디가 깎인 곳 주변을 가리켰다.
"저 스즈키 씨 집 울타리 뒤에 소각로가 보이죠? 그 옆으로 나와서 잔디밭을 가로질러 나무문 밑을 빠져나가 맞은 편집 정원으로 가죠. 언제나 똑같은 코스예요.―아, 스즈키 씨 남편 말인데요, 대학 교수이고 자주 TV에 나와요. 알고 계세요?"
"스즈키 씨?"
그녀는 내게 스즈키 씨에 관해 설명을 해 주었지만,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했다.
"TV라고는 거의 보지 않아서 말이야."하고 나는 말했다.
"기분 나쁜 사람들이에요."하고 소녀는 말했다. "유명인인 체하는 거죠. TV 에 나오는 사람들이란 모두 협잡꾼들이에요."
"그런가?"
그녀는 말보로 담뱃갑을 집어 한 개비 빼내고선 불을 켜지 않은 채, 잠시 손안에서 굴리고 있었다.
"뭐, 그 중엔 훌륭한 사람도 몇 명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미야와키 씨는 착실한 사람이었어요. 부인도 좋은 사람이었고, 남편은 패밀리 레스토랑을 두 갠가 세 개 경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빈 집이지?"
"모르겠어요."하고 그녀는 담배 끝을 손톱으로 튕기면서 말했다.
"빚을 졌든가 뭐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덜커덕 사라져 버렸어요. 사라진지 벌써 2년쯤 된 것 같군요. 집은 내버려진 채고, 고양이는 불어나고, 주위는 어수선하고, 어머닌 언제나 불평을 늘어놓고 있죠."
"그렇게 많은 고양이가 있나?"
그녀는 그제야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가지 고양이가 있어요. 털이 벗겨진 것도 있고, 외눈박이 고양이도 있는데…….눈이 빠지고, 거기가 살덩어리로 뭉쳐져 있는 거죠. 지독하죠."
"지독하군."하고 나는 말했다.
"내 친척 중에 육손인 사람이 있어요.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여자애지만, 새끼손가락 옆에 또 하나 아기 손가락 같은 작은 것이 붙어 있어요. 하지만 언제나 재주껏 감추고 있으니까 얼핏 봐선 알 수 없어요. 예쁜 애죠."
"흠."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 것은 유전한다고 생각하세요? 뭐랄까…….혈통적으로 말예요."
"모르겠어."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그러고 나서 잠시 동안 가만히 있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면서 고양이의 통로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고양이는 한 마리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저어, 정말로 뭔가 마시고 싶지 않으세요? 나는 콜라를 마실 건데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필요 없어." 하고 나는 답했다.
그녀가 덱 체어에서 일어나 한쪽 다리를 절며 나무숲 그늘로 사라져 버리자, 나는 발밑의 잡지를 집어 훌훌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그것은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달리 남성용 월간 잡지였다. 가운데의 그라비어에는 성기의 모양과 음모가 비쳐 보이는 얇은 속옷을 입은 여자가 작은 의자위에 앉아서 부자유스런 자세로 양 다리를 크게 벌리고 있었다. 맙소사,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잡지를 원래의 위치에 돌려놓고 가슴위로 팔짱을 낀 채 다시 고양이의 통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상당히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 콜라 잔을 들고 소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아디다스 티셔츠를 벗고 쇼트 팬츠와 비키니 수영복의 브래지어를 한 차림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유방의 모양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브라이고, 뒤는 끈으로 묶어 고정시킨 것같이 되어 있었다.
확실히 더운 오후였다. 덱 체어 위에서 태양에 몸을 맡기고 계속 그대로 있으니, 회색 티셔츠의 곳곳에 땀이 검게 배어오는 것이 보였다.
"저어, 만약 당신이 좋아하게 된 여자에게 손가락이 여섯 개 있다는 걸 알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거죠?" 하고 여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커스단에 팔지." 하고 나는 말했다.
"정말?"
"농담이야." 하고 나는 놀라서 말했다.
"아마 마음에 두지 않을 것 같아."
"아이에게 유전될 가능성이 있는 데도요?" 나는 거기에 관해서 조금 생각해 보았다.
"걱정할 것 없다고 생각해. 손가락이 한 개 더 있다고 해서 큰 지장은 없잖아."
"유방이 네 개 있다면?"
나는 거기에 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았다.
"모르겠는데."하고 나는 말했다.
유방이 네 개? 이야기에 끝이 없을 것 같아서 나는 화제를 돌려 보기로 했다.
"그런데, 너는 몇 살이지?"
"열여섯."하고 소녀는 말했다.
"이제 막 열여섯이 되었어요. 고교 1년생이죠."
"학교는 쉬고 있는 건가?"
"오래 걸으면 아직도 다리가 아파요. 눈 옆에 상처도 생겼고요. 제법 시끄러운 학교예요.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부상당한 것을 알면 어떤 눈으로 볼는지도 알 수 없고요…….그래서 병결한 것으로 해 놨어요. 1년 휴학하는 것도 나쁘진 않죠. 서둘러 고교 2년생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니까요."
"흠."하고 나는 끄덕였다.
"그런데, 아까 했던 얘기지만, 당신은 손가락이 여섯 개인 여자라면 결혼해도 괜찮은데, 유방이 네 개인 여자는 싫다고 했어요."
"싫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모르겠다고 말했지."
"어째서 모른다는 거죠?"
"잘 상상이 가지 않으니까."
"손가락이 여섯 개인 것은 상상할 수 있고요?"
"글쎄."
"어디에 차이가 있을까요? 여섯 개의 손가락과 네 개의 유방에?"
나는 거기에 관해서 또 잠시 생각해 봤지만, 적당한 설명은 이끌어낼 수 없었다.
"저어, 내가 너무 지나친 질문을 했나요?"하고 그녀는 말하며 선글라스를 통해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니?"하고 나는 물었다.
"때때로요."
"질문하는 게 나쁜 것은 아냐. 질문을 받게 되면 상대도 뭔가를 생각하게 되고 말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요."하고 그녀는 발끝을 보면서 말했다.
"모두 적당히 반응할 뿐이에요."
나는 애매하게 머리를 흔들고 나서 고양이의 통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도대체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고양이 따윈 아직 한 마리도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잖은가.
나는 가슴 위에서 손을 깍지 낀 채로 20초인가 30초가량 눈을 감았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자니, 몸의 여러 부분에 땀이 배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마나 코 밑, 목 언저리에 마치 젖은 깃털이나 뭔가를 올려놓은 것 같은 미미한 위화감이 느껴졌고, 티셔츠는 바람 없는 날의 깃발과 같이 축 쳐져 나의 가슴에 눌어붙어 있었다. 햇살은 기묘한 무게감으로 나의 몸에 쏟아지고 있었다. 그녀가 콜라 잔을 흔들자, 얼음이 마치 카우 벨(암소 목에 다는 방울)같은 소리를 냈다.
"졸리면 자도 괜찮아요. 고양이가 나타나면 깨워 드릴 테니까요." 하고 그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끄덕였다.
잠시 동안 주위에는 벌레소리 하나 들리지 않게 되었다. 비둘기도 태엽 감는 새도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바람도 없고 차의 배기음 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줄곧 전화속의 여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그 여자를 알고 있을까?
그런데 나는 그 여자를 생각해낼 수 없었다. 마치 키리코의 그림 속 정경같이 여자의 그림자만이 길 위를 가로질러 길게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실체는 내 의식의 영역에서 아득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의 귓전에서는 언제까지나 벨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저어, 자요?"하고 여자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를 시험하는 듯 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안 자."하고 나는 대답했다.
"조금 가까이로 다가가도 괜찮아요? 작은 소리로 얘기하는 편이 좋아서 그래요."
"상관없어."하고 나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소녀는 자신의 덱 체어를 옆으로 밀어서 내가 앉은 덱 체어에 꼭 붙이는 모양이었다. 나무 테두리들이 서로 부딪히는 덜거덕 하는 건조한 소리가 났다.
이상하다, 고 나는 생각했다. 눈을 뜨고 듣고 있을 때의 그녀의 목소리와 눈을 감고 있을 때의 그녀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게 들리는 것이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좀 얘기해도 괜찮아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아주 작은 소리로 얘기하겠어요. 대답은 없어도 좋고, 도중에 그대로 잠들어 버려도 괜찮아요."
"좋아."하고 나는 말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근사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어째 서지?"하고 나는 물었다.
그녀는 마치 입을 봉하듯이 나의 입술 위에 손가락 하나를 갖다 댔다.
"질문은 하지 마세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지금은 질문을 받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눈도 뜨지 말구요. 알았죠?"
나는 그녀의 목소리처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나의 입술에서 손가락을 떼고, 그 손가락을 이번엔 나의 손목 위에 놓았다.
"그런 것을 메스로 잘라서 열어 보고 싶은 기분이 들어요. 사체가 아니고요. 그 죽음의 덩어리 같은 것을 말예요. 그런 게 어딘가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소프트볼 같이 둔하고, 부드럽고, 신경이 마비되어 있는 것. 그것을 죽은 사람 속에서 꺼내 잘라서 열어보고 싶어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속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마치 치약의 튜브 속에서 굳어진 것처럼, 안에서 뭔가가 굳어진 모양으로 되어 있진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아니, 괜찮아요, 대답하지 않아도요. 둘레가 탄력이 없어져가고, 그것이 내부로 향하는 동안 점점 딱딱해져 가는 거죠. 따라서 나는 우선 외피를 잘라서 열고 그 안의 흐늘흐늘한 것을 꺼내, 메스와 주걱 같은 것을 사용해서 그걸 가르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안에서 점점 그 흐늘흐늘한 것이 굳어져가고 작은 심(芯)처럼 되는 거예요. 볼 베어링의 볼처럼 작고 굉장히 딱딱해지게 되는 거죠. 그렇게 생각되지 않나요?"
그녀는 두세 번 작은 기침을 했다.
"최근 들어 언제나 그걸 생각해요. 아마도 매일 한가한 탓일 거예요. 정말로 그럴 거예요. 한가하니까, 생각이 점점 멀리까지 뻗어가 버려요. 생각이 너무 멀리까지 가게 되니까, 제대로 그 뒤를 더듬을 수 없게 되고 말아요." 그리고 그녀는 내 손목에 놓았던 손가락을 떼고, 글라스를 집어 들어 남은 콜라를 마셨다. 얼음 소리로 글라스가 비게 된 걸 알 수 있었다.
"괜찮아요, 빈틈없이 고양이는 지키고 있으니까요. 염려 마세요. 와타나베 노보루의 모습이 보이면 그 즉시 가르쳐 드릴게요. 그러니 그대로 지그시 눈을 감고 계세요. 와타나베 노보루는 지금쯤 반드시 이 근처를 걷고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고양이란 모두 똑같은 곳을 걸어 다니거든요. 반드시 나타나요. 상상하면서 기다리세요. 와타나베 노보루는 지금 이리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이에요. 잡초 사이를 통해서 울타리 밑을 빠져나와 어딘가에 멈춰 서서 꽃냄새를 맡기도 하면서, 그는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거예요. 그런 모습을 떠올리세요."
나는 들은 대로 고양이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려고 했지만, 실제로 내가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역광을 받은 사진처럼 굉장히 막연한 고양이의 상에 지나지 않았다. 강한 햇살이 눈꺼풀을 빠져나가 나의 어둠을 불안정하게 확산시키고 있었고, 게다가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고양이의 모습을 정확히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떠올릴 수 있었던 와타나베 노보루의 모습은 마치 실패한 초상화처럼, 어디랄 것도 없이, 비뚤어지고 부자연스러웠다. 특징만은 닮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쏙 빠져 있었다. 그가 어떤 방식의 걸음걸이를 취했던 가조차, 나는 이미 떠올릴 수 없었다.
그녀는 나의 손목에 다시 한 번 손가락을 놓더니, 이번에는 그 위에 모양 같은 것을 그렸다.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은 기묘한 도형이었다. 그녀가 나의 손목에 그 도형을 그리자, 마치 거기에 호응이나 하듯이 이제까지 있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어둠이 나의 의식 속에 잠입하려 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나는 잠이 들려고 하는 걸 거야, 하고 나는 생각했다. 잠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미 무엇으로도 그것을 억누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난 알았다. 원만한 커브를 그리는 캔버스천의 덱 체어 위에서 나의 몸은 기묘할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 어둠 속에서 나는 와타나베 노보루의 네 개의 다리만을 떠올렸다. 발바닥에 고무 같은 부드러운 부풀림이 있는 그런 발이 소리도 없이 어딘가의 지면 (地面)을 내딛고 있었다.
어디의 지면?
하지만 그것을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당신의 머릿속 어딘가에 치명적인 사각(死角)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나요?하고 여자는 조용히 말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혼자였다. 옆에 바싹 들이댄 덱 체어 위에 소녀의 모습은 없었다. 타월과 담배와 잡지는 그대로였지만 콜라잔과 라디오 겸용 카세트는 없어졌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소나무 가지의 그림자가 복사뼈 근처까지 나의 몸을 푹 싸안고 있었다. 시계 바늘은 3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빈 깡통을 흔드는 것 같은 느낌으로 몇 번인가 머리를 흔들고, 의자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의 풍경은 처음에 봤을 때와 아주 똑같았다. 넓은 잔디밭, 바싹 마른 연못, 울타리, 석상의 새, TV안테나. 고양이의 모습은 없다. 그리고 소녀의 모습도. 나는 잔디밭의 응달진 부분에 앉아 손바닥으로 녹색의 잔디를 어루만지면서, 고양이의 통로에 시선을 주고서, 소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십 분이 지나도록, 고양이도 소녀도 나타나지 않았다. 주변에는 움직이는 것조차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는 잘 판단할 수가 없었다. 자고 있는 사이에 뭔가 엄청난 세월을 보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일어서서 안채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도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밖으로 내밀어진 창의 유리가 서쪽에서 뻗치는 햇살을 받고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잔디밭을 가로질러서 골목으로 나와, 집으로 되돌아갔다. 결국 고양이는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나는 할 만큼은 한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마른 세탁물을 걷고 간단한 식사준비를 했다. 그러고 나서 거실의 마루에 앉아 벽에 기댄 채, 석간을 읽었다. 5시 반에 전화벨이 12회 울렸지만, 나는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벨이 멈춘 후에도 그 여음은 방 안의 엷은 어스름 속에서 먼지처럼 떠돌고 있었다. 탁상시계가 그 딱딱한 손톱 끝으로 공간에 떠 있는 투명한 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마치 기계장치의 세계인 것 같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루에 한 번 태엽 감는 새가 날아와서 세상의 태엽을 감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 혼자서 그런 세상에서 나이를 먹고 하얀 소프트볼 같은 죽음을 부풀려가는 것이다. 토성과 천왕성 사이에서 내가 푹 자고 있는 동안에도 태엽 감는 새들은 어김없이 그 직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태엽 감는 새에 관해서 시를 써 보면 어떨까하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첫 구절이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우선 여고생들이 태엽 감는 새에 관한 시를 읽고 즐거워해 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태엽 감는 새 그 자체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내가 돌아온 것은 7시 반이었다.
"미안해요. 잔업이 있어서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아무리 찾아도 학생 한 명의 수업료 납입 서류가 발견되지 않아서요. 아르바이트 여자애가 제멋대로였던 탓이지만 어쨌든 내 담당이었으니까요."
"괜찮아."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부엌에 서서 생선 버터구이와 샐러드와 된장국을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아내는 부엌의 테이블에서 석간을 읽고 있었다.
"저어, 5시 반쯤 당신 집에 없었어요?"하고 그녀가 물었다.
"조금 늦는다고 말하려고 집에 전화를 했었는데."
"버터가 떨어져서 사러 나갔었어."하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은행엔 갔다 왔어요?"
"물론."하고 나는 대답했다.
"고양이는요?"
"못 찾았어."
"그렇군요."하고 아내는 말했다.
식사 후에 목욕탕에서 나오니, 아내는 전등을 끈 거실의 어둠 속에 혼자서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회색의 셔츠를 입고 어둠 속에 꼼짝 않고 웅크리고 있는, 그녀는 마치 방치된 무슨 짐짝 같아 보였다. 나는 그녀가 몹시도 안쓰럽게 여겨졌다. 그녀는 잘못된 장소에 내버려진 것이다. 좀 더 다른 장소에 있었으면, 어쩌면 더욱 행복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바스 타월로 머리를 닦고 그녀의 맞은 편 소파에 앉았다.
"왜 그러지?"하고 나는 물었다.
"아마 고양이는 벌써 죽었을 거예요."하고 아내는 말했다.
"설마."하고 나는 말했다.
"어딘가에서 놀고 있겠지.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돌아올 거야. 전에도 한 번 그런 일이 있었잖아. 코우엔지(高圓寺)에 살았을 쯤에도 역시-"
"이번에는 달라요. 나는 알 수 있어요. 고양이는 죽어 버렸고, 어딘가의 풀숲에서 썩고 있을 거예요. 빈 집 정원의 풀숲을 좀 찾아봐 주겠어요?"
"이봐, 그만둬. 아무리 빈 집이라도 남의 집이야. 그렇게 맘대로 들어갈 수는 없잖아."
"당신이 죽인 거예요."하고 아내는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다시 한 번 바스 타월로 머리를 닦았다.
"당신이 고양이를 죽게 내버려 둔 거예요."하고 어둠 속에서 그녀는 반복해서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하고 나는 말했다.
"고양이는 스스로 없어진 거야. 내 탓이 아니야. 그 정도는 당신도 알 수 있잖아?"
"당신, 고양이 따윈 별로 좋아하지 않았잖아요?"
"그건 그런지도 모르지."하고 나는 시인했다.
"적어도 당신만큼은 그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나는 그 고양이를 구박한 적도 없고, 매일 정확히 밥을 줘 왔어. 내가 밥을 줘 왔다고. 특별히 좋아한 게 아니라고 해서, 내가 고양이를 죽였다는 건 말도 안 돼. 그런 식으로 얘기한다면 세상사람 대부분을 내가 죽인 게 된다고."
"당신은 그런 사람이에요."하고 아내는 말했다.
"언제나 늘 그래요. 스스로는 손을 대지 않고 여러 가지 것들을 죽여 가는 거죠."
나는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만두었다. 그리고 목욕탕의 세탁 바구니에 바스 타월을 던져 넣고,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셨다. 어처구니없는 하루였다.
와타나베 노보루, 너는 어디에 있는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태엽 감는 새는 너의 태엽을 감지 않았던가? 마치 싯구절이다.
와타나베 노보루
너는 어디에 있는가?
태엽 감는 새는 너의 태엽을
감지 않았던가?
맥주를 반쯤 마셨을 때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받아 봐."하고 나는 거실의 어둠을 향해 고함쳤다.
"싫어요, 당신이 받아요." 하고 아내가 말했다.
"받고 싶지 않아."하고 나는 말했다.
반응되지 않은 채로 전화벨은 계속 울어댔다. 벨은 어둠 속에 떠다니는 먼지를 둔하게 휘젓고 있었다. 나도 아내도, 그러는 동안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맥주를 마셨고, 아내는 소리를 죽이고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나는 20회까지 벨소리를 헤아렸지만, 그런 뒤에는 단념하고 그냥 울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언제까지나 그런 것을 계속해서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