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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하이네켄 맥주의 빈깡통을 밟는 코끼리에 대한 단문

chocohuh 2012. 12. 6. 11:32

동물원이 폐쇠되었을때 마을 사람들은 서로 돈을 내 코끼리를 손에 넣었다.

동물원은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너절한 동물원이었고 코끼리는 늙고 진이 빠져 있었다. 너무나도 늙고 진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느 동물원에서도 그 코끼리를 인수하려고 하지 않았다.


코끼리는 그렇게 오래 살면서도 선택될 것 같지는 않아 보였고 그런 관에 한쪽 다리를 처넣은 것 같은 코끼리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인수하려고 할 만큼 유별난 것을 좋아하는 동물원도 없었다.

동물 거래업자도 그 코끼리를 처치 곤란해하며 거저라도 좋으니까 코끼리를 인수해 주지 않겠느냐고 마을에 말을 꺼냈다.

 

"나이를 먹어서 먹이도 그렇게 많이 먹지 않습니다. 난폭하게 굴지도 않습니다. 그저 장소만 있으면 됩니다. 싸게 잘 사시는 겁니다. 여하튼 거저라니까요."라고 업자는 말했다.


마을 회의에서 한 달 정도 옥신각진한 끝에 마을은 결국 코끼리를 맡게 되었다.

온 세계를 둘러보아도 코끼리를 갖고 있는 마을 따위는 좀처럼 없을 것이다. 물론 인도나 아프리카에는 그런 마을도 몇 개인가 있겠지만 적어도 북반구에는 그다지 있을 리가 없다.


산림을 소유하고 있는 농가가 코끼리가 살 곳을 제공하고 노화되어 부수기 직전의 국민학교 체육관이 코끼리 오두막으로 이축되었다. 사료는 학교 급식의 찌꺼지로 충분했다.

 

퇴직한 마을 사무소의 직원이 코끼리 사육사로서 코끼리를 보살펴 주었다. 마을의 재정은 꽤 넉넉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예산이라면 쉽게 짤 수가 있었다. 게다가 코끼리라고 해도 전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건 아니다.

마을이 코끼리에게 준 일은 빈 깡통 밟기였다.

우선 코끼리의 발 모양에 맞춰 콘크리트 파이프가 만들어지고, 피리 소리가 나면 코끼리가 발을 그곳에 처박도록 훈련을 시켰다. 매주 금요일에 마을의 빈 깡통이 수거되어 트럭으로 코끼리 오두막으로 운반되었다.

맥주 깡통과 수프 깡통과 김깡통 그런 모든 깡통이 코끼리의 오두막 앞에 쌓여갔다.

 

코끼리 사육사는 콘크리트 파이프 안에 세 양동이분씩 빈 깡통을 던져 좋고 피리를 분다. 피리 소리가 나면 코끼리는 그곳에 한 발을 처박고 빈 깡통을 와지끈 밟아 부수어 한 장의 평평한 금속 조각으로 변하게 했다.

마을이 왜 그런 귀찮은 빈 깡통 처리 방법을 생각해낸 것인지 나로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컴프레서(압축기)로 해치워 버리면 그런 건 눈 깜작할 사이에 끝나 버린다. 굳이 코끼리를 쓸 정도의 일도 아니다.
결국, 마을은 어떤 형태로든 코끼리의 존재 가치를 확립시키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은 일부러 코끼리를 위해서 그런, 그다지 효과가 있다고도 생각 할 수 없는 일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깡통을 밟고 있을 때의 코끼리와 사육사는 굉장히 행복한 듯이 보였다. 코끼리 사육사가 피리를 불면 코끼리는 즉각 파이프 안에 발을 처넣고 깡통을 납작하게 했다.

 

나는 종종 금요일에 빈 깡통을 잊고 버리지 않은 적이 있었고 그런 때는 늘 스스로 빈 깡통을 오두막까지 가지고 갔다. 월요일이나 화요일은 코끼리도 코끼리 사육사도 한가했기 때문에 그들은 나 한사람의 빈 깡통 때문이라도 특별히 깡통 밟기를 해 주었다.

 

나는 한 번 하이네캔 맥주의 빈 깡통을 한 다스 모아서 코끼리에게 밟게 했던 적이 있다. 코끼리 사육사의 피리소리와 함께 12개의 하이네캔 깡통은 멋진 한 장의 초록빛 판이 되었다.


그 초록빛 판은 5월의 태양 아래 하늘에서 본 아프리카 평원같이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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