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왠지 이상한 하루

chocohuh 2012. 12. 6. 11:27

며칠전 갑지기 딕킨스의〈데이비드 커퍼필드〉가 읽고 싶어져서 모 대형서점에 가서 찾아 보았는데 이게 도대체 눈에 띄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안내데스크에 있는 젊은 여점원에게 "미안합니다만 딕킨스의〈데이비드 커퍼필드〉를 찾고 있는데요" 라고 했더니 "그게 어떤 분야의 책인데요?" 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엣?" 라고 했더니 상대방도 역시

"엣?" 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딕킨스의〈데이비드 커퍼필드〉인데요"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어떤 종류의 책이냐니까요?"

"에, 그러니까 소설인데요"

 

이런 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 결국 그것에 관해서는 소설 카운터에다 문의해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소위 서점의 안내라면서 딕킨스를 모른다니"라며 아연했지만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딕킨스 같은 건 우선 읽기 조차 않으니까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세상이란 곳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아주 대담한 변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나로서는 그 여점원에게 차라도 한잔하자고 데리고 나와 "에-, 또 샤롯드 브론테 알고 있어요? 푸시킨은? 스타인 백은 알고 있나요?" 라고 꼬치꼬치 따져보고 싶었지만 상대방도 바쁜 것 같고 나도 결코 한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그러는 것은 단념하였다.

 

서점을 나와서 용무를 마치고 나니 배가 고파져서 문득 눈에 띄는 깔끔한 양식당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며 때 이른 저녁을 하기로 했다.

나는 대개 매일 5시 정도에 저녁을 먹는 것으로 해둔 덕에 언제나 붐비지 않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수 있어 아주 기분이 좋다. 소란스럽지도 않고 천천히 메뉴를 고를 수도 있다.

메뉴에는〈양식(洋食) 도시락〉2500엔이란 것이 있어. "저, 이것에는 어떤 것이 들어 있습니까?" 라고 웨이트리스에게 물었다.

 

"이것 저것이요" 라고 단호한 어조를 그녀가 말했다.

"저어, 그거야 도시락이라고 말할 정도니까 이것저것 들어있을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예를 들어 어떤 것이 들어 있나요?"

"그러니까-, 양식 종류로 이런 저런 것이 들어 있다니까요" 라고 말하는 통에 이거야〈야끼씨의 우편(山羊さんの郵便)〉풍의 미로를 헤매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서양식 도시락을 단념하고 다른 단품요리를 주문하였다. 특별히 그 여자에 대해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도시락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하나 둘쯤 알려줘도 괜찮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나도 그걸 트집잡아 억지를 부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식사 후 어슬렁 어슬렁 거리를 걷다 우연히 백화점 앞을 지나가게 되어 들어가서 트위드(올이 굵은 모직물) 상의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얼마 전에 담당 편집자인 기시따 요오꼬(木下陽子)씨로부터 "무라까미씨는 항상 청바지에 운동화만 신고 다니는데 도대체 돈은 어디에 써요?" 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맘에 드는 윗도리가 있어 "조금 사이즈가 작지 않나" 하면서도 시험삼아 소매를 끼워보려 했더니 여점원이 바람처럼 달려와 "손님 그건 사이즈가 너무 작아요. 아무래도 그것은 안되겠어요" 라면 내뱉듯이 말했다.

그래서 내가 "음, 그런 것 같군요. 조금 큰 게 있으면··· "라고 말하려 했더니 그때 이미 거기엔 그 여자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나는 그 여자가 되돌아오길 한참동안 그대로 거기 서서 기다렸지만 돌아올 기색이 전혀 보이질 않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왠지 모르겠지만 일진이 나쁜 하루였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취급을 받을 것 같기도 하고 거꾸로 내 쪽에서 다른 사람들을 부당하게 취급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정말로 어느 쪽인가는 판단이 서질 않는다.

 

서점의 여자는 어쩜 집에 돌아가 식탁에서 "저- 있잖아 엄마, 오늘 기분 나쁜 손님이 와서는 얼토당토 않은 책이름을 대기에 내가 그걸 모르겠다고 했더니 노골적으로 나를 바보 취급하는 거야. 부아가 확 치미는 거 있지" 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는 "아니〈양식 도시락〉이라고 메뉴에 있으면 그냥 잠자코 시켜 먹으면 되는 거 아냐" 라며 주방장에게 심하게 불평을 늘어놓았을 지도 모르겠다.

백화점의 여점원은 "자기 옷 사이즈도 제대로 모르며 옷를 입어 보려하는 얼간이를 상대하고 있을 틈이 어딨어" 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상대가 말하는 만큼 각각 일리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혹은 나의 생활방식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렸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세상이라는 것은 꽤나 어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