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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사전 이야기

chocohuh 2022. 6. 3. 16:58

사전에는 대개 삽화가 들어가 있다.

 

나는 그 삽화를 무척 좋아한다. 삽화라고는 해도, 그것은 별로 독자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어구의 의미를 독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겐큐샤의 사전으로 말하자면, 퍼골라(Pergola)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시렁 지붕이 있는 정자'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미지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 옆에 실제로 퍼골라(Pergola)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담쟁이 덩굴이 감겨 올라간 기둥과 지붕이 있고 덩굴 밑 벤치에는 젊은 남녀가 걸터앉아 양손을 맞잡고 있다. 남자쪽이 좀 더 적극적이지만, 여자쪽도 별로 싫지는 않은지, 은근한 눈으로 대답하고 있다.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함께 드러눕지 않겠어?' 하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가 퍼골라(Pergola) 고유의 것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땠든 사전의 그림이라는 것은 재미있다. 그렇다면, 아예 사전을 전부 그림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 옥스퍼드 두덴(Oxford Duden)의 도해 영일 사전인데, 나도 며칠 전에 새로 사 왔다. 이 사전은 아무 페이지나 들쳐보아도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다.

 

부분적으로는 꽤 현대적인 구석도 있어서, 디스코 도해, 누디스트 클럽 도해 같은 것까지 빠짐없이 실려 있다. 굉장하다! 좀 더 굉장한 것은 318페이지의 '나이트 클럽' 편으로, 이 삽화는 아무리 보아도 유무라 데루히코 풍이다. 그리고 지금 브래지어를 막 벗은 스트리퍼를 뚫어질 듯이 바라보고 있는 호색스러운 얼굴의 손님은 아무리 보아도 이토이 시게사토(불륜사건으로 유명한 소설가)이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서점에 가서 들쳐보고 확인해보기 바란다. 덧붙여 말하면, 삽화가는 요헨 슈미트(Jochen Schmidt)라는 어엿한 외국인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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