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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분쿄쿠 센고쿠와 고양이 피터

chocohuh 2022. 5. 24. 16:23

미타카의 아파트에서 2년쯤 살고 나서 분쿄쿠의 센고쿠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고이시카와 식물원 근처이다. 어째서 교외에서 다시 단숨에 도심으로 되돌아왔느냐 하면,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스물두 살이었고 아직 학생이었기 때문에 아내의 친정에서 더부살이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아내의 친정집은 침구 상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트럭을 빌려 이사를 했다. 이사라고 해도 짐이라고는 책과 옷, 고양이 정도밖에 없었다.

 

고양이는 '피터'라는 이름이었는데, 페르시아종과 얼룩 고양이의 혼혈로 개만큼 커다란 수고양이였다. 사실은 침구 상점에서 고양이를 키울 수 없으니까 데려오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버리고 갈 수가 없어서 결국 데려가고 말았다. 아내의 아버지는 한동안 투덜거렸지만, 얼마쯤 지나자-나에게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단념해 주셨다. 어쨌든 모든 것을 금세 단념하는 분이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굉장히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고양이 피터는 끝내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가장 곤란했던 것은 근처의 상점에서 쉴 새 없이 물건을 훔쳐오는 것이었다. 물론 본인에게는 죄의식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그 녀석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미타카의 숲 속에서 두더지를 잡거나 새를 쫓아다니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일이라도, 나로서는 입장이 굉장히 곤란했다. 그러는 사이에 고양이도 점점 가치관의 혼란을 겪게 된 모양으로, 만성 신경성 설사를 하게 되었다. 결국 피터는 시골의 친지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그 후 그 녀석하고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전해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근처의 숲 속으로 들어간 채, 집에는 거의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살아 있으면 열세 살이나 열네 살쯤 된다.

 

 

 

분쿄쿠 센고쿠에서 있었던 일 또 한 가지

 

내가 더부살이를 하고 있던 아내의 친정집은 옛날 도쿠가와 가 저택의 한쪽 구석에 있었다. 한쪽 구석이라고 해도 정원의 외따로 떨어진 구석 쪽이어서 특별히 유서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난처한 것은-난처하다고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사실 이 집은 옛날의 지하 감방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처갓집 밑에는 그 옛날의 감방자리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물론 유령이 나온다. 처음에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왠지 이상하게 축축하고 어둡구나 하는 것밖에 느끼지 못했다. 또 밤중에 변소에 가거나 하면 묘하게 기분 나쁜 분위기가 느껴지곤 했다.

 

아내는 이따금 유령을 본단다. 유령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모습을 닮은 건 아니고 흰 덩어리 같은 것으로, 그게 한참동안 집안을 둥실둥실 떠돌아다니고 나서 벽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것이다. 나는 본 적이 없으니까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충 그런 느낌의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시종일관 유령이라든가 UFO 같은 걸 본 적이 없다. 나에게는 아무래도 영감을 감지하는 능력이 거의 결여되어 있는 모양이다. 특별히 유령 같은 것을 보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런 능력이 없어도 별 상관이 없지만, 그러한 것은 왠지 예술가답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화가 중에는 1년 내내 유령을 보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풍채나 화풍 등 여기저기에 요기가 감돌고 있어서, 누가 보아도 정말 예술가 같은 느낌이 든다. 나 같은 사람은 유령이 나오는 집에 1년씩이나 살았으면서도, 한 번도 유령을 보지 못한 인간이라 그런 사람 앞에 나서면 굉장히 주눅이 든다. 안자이 미즈마루 씨도 화풍으로 추측해볼 때, 유령 같은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무척 기쁘겠는데, 사실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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