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히 불가사의한 체험이다. 이를 경험하는 것과 경험하지 않는 것과는 인생 그 자체의 색깔도 조금은 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종교적인 체험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거기에는 뭔가 인간 존재에 깊숙이 와 닿는 것이 있다.
42킬로미터를 실제로 달리고 있을 때는, '도대체 내가 왜 일부러 이런 지독한 꼴을 자처하는 거지? 이래 봤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몸에 해로울 뿐이지(발톱이 벗겨지고, 물집도 생긴다. 그 다음날에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힘이 든다)' 하고 상당히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캐묻는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결승점에 뛰어 들어가 한숨 돌린 다음 건네어진 차가운 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뜨거운 욕조에 잠긴 채로 바늘 끝으로 발바닥에 부풀어 오른 물집을 따낼 무렵에는, '자아, 이젠 다음 레이스에서는 더 분발해야지' 하고 다시 마라톤에 대한 의욕으로 불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건 도대체 어떤 심리 작용일까? 인간에게는 이따금 자신을 알 수 없는 극한 상황까지 몰고 가보려는 내재된 욕망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나로서는 그런 감정의 발생 이유까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런 감흥은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것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가령 마라톤 하프 코스를 달렸을 때에는 그런 흥분을 느낄 수 없다. 그저 '21킬로미터를 마음껏 달린다.'는 것뿐인데 왜 그런 차이가 날까.
물론 마라톤 하프 코스도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건 달리기가 끝나면 곧장 해소되어 버리는 그런 종류의 괴로움이다. 하지만 마라톤 풀코스를 끝까지 달리고 나면, 인간이(적어도 나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신경에 거슬리는 자잘한 마음의 '앙금'같은 것이 뱃속에 가득히 남게 된다.
제대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이 바로 조금 전까지 극한 상황에서 맛보았던 그 '괴로움 같은 것'과 조만간 다시 한 번 대면해서, 그 나름대로 어떤 매듭이 지어지는 걸 봐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다시 한 번 되풀이해야만 한다. 그것도 좀 더 잘할 수 있게 되풀이할 필요가 있다' 는 식으로.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나는 지칠 대로 지치고 파김치가 되면서까지 포기하는 일 없이 그럭저럭 12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마라톤 전 코스를 계속 달리는 것이리라. 물론 뭔가 해결을 볼 수 있을 만한 것은 전혀 찾지 못했지만 말이다.
'마조히즘'적이라고 사람들은 말할지도 모르지만,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호기심과 비슷한 종류의 것 일게다. 계속해서 횟수를 늘여가고 한계를 조금씩 올려감으로써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자기가 아직 모르는 것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고,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끌어내 보고 싶다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까, 이 생각은 평소 내가 장편 소설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과 거의 비슷하다. 어느 날 갑자기, '자아, 이제부터 장편 소설을 쓰자'고 생각한다.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몇 개월이나 몇 년 동안 숨 막히게, 신경을 극단적인 한계로까지 집중시켜 가면서 장편 소설을 하나 써낸다.
그때마다 걸레를 쥐어짠 것처럼 기진맥진하여, '아아, 너무 힘들었어. 이제 당분간은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거야.'하고 뼈저리게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아냐, 이번에야말로'하고 생각하고 다시 싫증도 나지 않는 듯 책상 앞에 앉아서, 또 다시 장편 소설을 쓰기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써도, 아무리 많이 써도 역시 마음의 '앙금'이 뱃속에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에 비하면 단편 소설이라는 건 10킬로미터 레이스나, 길어 보았자 겨우 하프 마라톤 정도의 것이다. 물론 단편 소설에는 단편 소설만의 독자적인 역할이 있고,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나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단편 소설은 인간의 존재 자체에 깊이 의존해 오는 압도적인 것, 죽음에 이를 만큼 치명적인 것은 -물론 어디까지나 나에게 그렇다는 얘기지만- 없다. 그만큼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반반을' 차지하는 면도 장편 소설에 비하면 훨씬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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