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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챈들러식 소설 쓰는 법

chocohuh 2021. 3. 8. 08:34

오래전에 어떤 책에서 레이먼드 챈들러가 소설을 쓰는 요령에 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내용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으나 이제 세월이 흘러서 거의 잊어버렸다. 꽤 재미있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출전이 어디였는지조차 전혀 기억이 있는데 어떻게 좋았는지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글 가운데서 딱 하나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내가 이렇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지, 세밀한 부분까지 딱 이랬었다고 단언할 자신은 없다. 만약 틀렸으면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기억하고 있고, 이렇게 기억하는 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기억 역시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도 든다.

 

그건 어쨌든 간에, 나는 그것을 '챈들러 방식'이라 부르고 있다.

 

먼저 데스크를 딱 정하라, 고 챈들러는 말한다. 자신이 글을 쓰기에 적합한 데스크를 하나 정한다. 그리고 거기에 원고용지나, 만년필이나 자료 등을 잘 갖춰 둔다. 단정하게 정돈해 둘 필요는 없지만, 언제라도 일을 시작할 수 있는 태세로 갖춰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매일 일정한 시간을-가령 두 시간이면 두 시간 동안-그 데스크 앞에 앉아 있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두 시간 안에 글을 술술 써 나갈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써지진 않는 것이 글이기 때문에, 전혀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 날도 있을 수 있다. 쓰고는 싶은데 아무리해도 잘 써지지가 않아 끝내 싫증이 나서 팽개쳐버리는 일도 있을 것이고, 도대체가 글 따위는 전혀 쓰고 싶지 않은 심정이 될 직관이 가르쳐 주는 날도 있다. 그런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비록 한 줄도 써지지 않더라도 어쨌든 일단 앉으시오, 그 데스크 앞에 앉으시오, 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아무튼 그 데스크 앞에서 두 시간 동안 버티고 앉아 있으시오,라고., 라고.

 

그사이에 펜을 쥐고 뭐든 글을 써보려고 노력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 대신 다른 아무 일도 해선 안 된다. 책을 읽기나 잡지를 넘기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고양이와 함께 놀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거나 해선 안 된다.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오로지 딱 버티고 앉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아무것도 쓰지 않더라도, 쓰는 것과 똑같은 집중적인 태도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비록 그때에는 한 줄도 못 쓴다 하더라도 반드시 언젠가 다시 글이 써지는 사이클이 돌아온다. 초조해하며 쓸데없는 짓을 해봤자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라고, 하는 것이 챈들러 방식이다.

 

나는 이런 사고방식을 대체로 좋아한다. 그 자세가 건전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물론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전쟁이 터질 적마다 외국으로 날아 올린다거나 해서 그것을 소설의 제재로 삼는 방식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텔레비전의 "무슨 무슨 스페셜' 프로와 근본적으로 같은 발상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글을 쓰고 있노라면 점점 더 심해져 부자연스럽게 제재를 찾아 헤매게 된다. 그런 방식에 비하면 "그냥 두 시간 동안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으시오. 그러고 있노라면 어떻게든 될 수 있을 테니까'라는 것은 사상으로서 진지하고 건전하다. 돈도 들지 않고, 남에게 폐도 끼치지 않으며, 품도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외적 요인에 의뢰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는 것이 깨끗해서 좋다.

 

나는 원래부터 멍하니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소설을 쓸 때에는 대개 이 챈들러 방식을 택한다. 아무튼 날마다 책상 앞에 앉는다. 글이 써지든 써지지 않든, 책상 앞에서 두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간단하다면 간단하겠지만, 어렵다면 그야말로 어려운 노릇이다. 확실히 어떤 종류의 비결은 필요하다.

 

'하품 날 지침서'일지 모르지만, 내가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방식을 일단 적어보기로 한다. 우선 두 손으로 턱을 괸다. 양쪽 손의 엄지손가락으로 턱밑을 받치고 새끼손가락으로 눈언저리를 누른다. 그러고 나서 목의 힘을 빼고 두 눈의 초점을 미묘하게 비켜 놓는다. 나의 경우 다행히도 오른쪽 눈의 시력이 0.08, 왼쪽의 시력이 0.5이기 때문에 별 힘들이지 않고도 목의 힘을 쭉 빼버리면 눈의 초점은 저절로 비켜져서 시계는 흐려져 버린다.

 

이따금씩, 문득 생각난 듯이 조금씩 자세를 바꾸면서 대체로 이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시간을 보낸다. 나의 책상 앞에는 창문이 있고, 창문 너머에는 1천 평 가량 되는 널찍한 빈터가 있다. 병원을 지을 곳으로 확보된 땅인데,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아서 그대로 내팽개쳐진 넓은 땅이다. 거기서는 억새풀과 키가 큰 잡초가 뒤엉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 멍한 시선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풀과 그 키 큰 잡초를 바라보고 있다.

 

계속 이렇게 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뇌수가 케이크의 효모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착각에 사로잡힌다. 잘 휘젓지 않았기 때문에 군데군데 '공기 방울'이 생긴 효모다. 머리를 뒤로 젖히면 뚝뚝하는 소리가 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 공기 방울이 생긴 뇌수가 뒤쪽으로 이동하고, 앞쪽으로 기울이면 똑같이 꾸역꾸역 앞쪽으로 이동한다. 재미가 있어서 그런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해본다.

 

창밖에는 억새풀이 바람에 계속 나부끼고 있다. 개가 한 마리 나타났다가 가버린다. 비행기가 난다. 지금은 1983년 봄이고 나는 서른네 살이다. 나는 책상 앞에서 언제까지고 멍하니 앉아 있다. 진짜 이렇게 하고 있는 사이에 뭔가가 써질까, 하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쓰기 싫다. 왜 그런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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