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책 한권 갖고 무인도에 간다면 무슨 책을?

chocohuh 2021. 3. 10. 08:46

책을 한 권만 갖고 무인도에 간다면 무슨 책을 갖고 갈 것인가, 하는 앙케트가 흔히 나온다. 어째서 일부러 무인도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 언저리의 사정과 경위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쫓겨나서 가는 것일까, 아니면 자진해서 가는 것일까? 누가 자진해서 무인도에까지 가겠는가) 별로 앙케트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어쨌든 잔소리를 늘어놓아 봤자 소용없다. 무인도에 어떤 책을 갖고 갈 것인가?

 

나는 내가 쓴 소설책을 갖고 가겠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그것을 읽고 ', 이 대목은 안 좋아'라든가 '이 대목은 이렇게 고쳐야겠어'라든가' 하며 열심히 볼펜으로 써넣을 것이다. 아마 이런 일을 하다 보면 한 달쯤 후에는 완전히 딴 소설로 탈바꿈해버릴 것 갖고 가지 않더라도 내가 자꾸 소설을 써나가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결론에 다다라버린다.

 

이런 점에서 소설가란 편리하다. 적당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나가다 진력이 나면 그걸 풀 겸, '아키히코는 메구미의 하얀 복부를 손톱 끝으로 살짝 문질렀다' 뭐 대충 이런 문장을 원숭이에게 읽어 들려주든가 하면서.

 

하지만 나를 무인도로 추방하려고 하는 그런 인간이 나에게 볼펜과 종이를 휴대하도록 허락해줄 정도로 친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 잠깐 잠깐, 안 돼요, 당신. 그런 걸 가져가면 곤란해요. 산 위에 지은 호텔에 휴양하러 가는 게 아니라 무인도에 가는 거예요. 그 차이를 똑똑히 알고 있어야죠."라고 말하면서 볼펜이고 종이고 모조리 압수당해버릴 것만 같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외국어 사전을 한 권 택하려고 생각한다. 프랑스어든 영어든 중국어든 그리스어든 아무것이라도 상관없지만 꽤 두껍고 튼튼하게 제본된 사전을 한 권 택해서 그걸 가져가겠다. 그리하여 몇 달 몇 년이 걸리든 그 외국어를 완전히 마스터하려고 노력하겠다. 그리고 진력났을 때 그걸 풀기 위하여 '아카치코는 메구미의 하얀 복부를 손톱 끝으로 살짝 문질렀다'라는 문장을 프랑스어로 원숭이에게 읽어 들려주기도 하면서.

 

하지만 무인도 운운하는 것과는 별도로, 나는 사전이란 걸 비교적 좋아하여, 틈은 나는데 읽을거리가 없을 때에는 모로 드러누워 뒹굴면서 영일 사전을 읽거나 할 때가 흔히 있다.

 

사전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고 인정미 있는 것이다. 공부나 작업을 하기 위해 사용할 때에는 '나는 사전이다'하고 턱 버티고 있는 것 같아 가까이하기가 퍽 어렵지만, 일단 책상을 떠나 복도에서 고양이와 함께 뒹굴면서 유유히 책장 페이지를 넘기거나 하고 있노라면 상대방도 릴랙스 해져서, '그럼 우리끼리 이야긴데 말이야…….' 하는…….'하는 측면을 나타내 보이기 시작한다.

 

가령 예문 한 두 개만 놓고 보더라도 매우 함축성이 많은 것이 있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수가 있다. 나의 인생관의 꽤 많은 부분은 영일 사전의 예문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리더스 영일 사전]Little항에 나와 있는 "Little things please little minds'라는 예문 같은 것은 "그래, 과연 그 말이 맞아"하고 열 번도 더 혼자서 수긍해 버리게 된다. 우리말로 이 뜻을 번역하면 '소인은 작은 일을 좋아한다.'가 되지만 좀 더 알기 쉽게 풀이하면 '하찮은 인간은 하찮은 일에 신이 난다'는 식이 된다.

 

하지만 나의 의견을 덧붙인다면, 보잘것없는 사람이란 하찮은 일을 가지고 기뻐함과 동시에 하찮은 일을 가지고 화를 내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나는 원칙적으로 묘한 일로 기뻐하거나 감격해하는 사람을 그다지 신용하지 않는다.

 

가령 나를 열심히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그가 나를 헐뜯으면 "아마 약간의 견해 차이일 거야"하고 나를 감싸준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이런 타입의 사람이다. 나를 칭찬해주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얼마 안 가서 이런 사람은 반드시 또 영문도 모를 일을 가지고 나에 대해서 화를 내기 시작한다. 이쪽으로서는 완전한 소모전이다.

 

상대방이 Little mind인지 어떤지는 제쳐놓고, Little things를 가지고 기뻐하는 사람과는 가능한 한 상종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 이것이 내 인생의 철칙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이 Little things를 가지고 좋아한다면 그것 역시 곤란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이것은 어느 소설 가운데서 이미 써먹은 거라고 생각되지만-'어떤 면도질에도 그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다'는 말 역시 내가 매우 좋아하는 격언에 해당하는 예문 중의 하나다. 고등학교 시절에 읽고 그때 "과연 그래"하고 수긍하고 나서 그 이후로 늘 내 머릿속에 박혀 있는 말이데, 유감스럽게도 정확한 영문을 잊어버렸다. 요컨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날마다 계속하고 있노라면 거기에 저절로 철학이 생겨난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풀이를 해주면 '뭐 별것도 아니구먼.'하고 생각해버리지만, "어떤 면도질에도 그 나름의 철학이 있다"라고" 말하면 묘하게도 ", 그래"하고 설득당해 버리는 것이다.

 

결국'면도질'이라고 하는 일상적인 행위와 '철학'과를 연계시킨 것이 핵심인 셈이다. 나도 매일 아침 수염을 깎으면서 어느새 거기에 내포된 철학의 질에 관해 고찰해버리게 된다.

 

나는 언제나 귀밑털부터 먼저 밀고 그리고 난 다음에 턱을, 마지막으로 코밑수염이라는 순번으로 면도를 한다. 그런 순번에도 철학은 싹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면 꼼므 데 갸르송의 양복 가운데서 철학을 발견하는 사상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아무런 이상할 것도 없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내가 알고 있는 남자 중에 "날마다 수염 깎는 게 귀찮아 죽겠어. 여자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걸. 면도를 하느니 차라리 생리를 하는 게 낫겠다니까"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어떤 여자아이에게 했더니, 그녀는 생리를 매우 힘들게 하는 여자인데, "나는 생리만 안 할 수 있다면 매일 면도를 해도 좋아요"라고 했다. 그런 것에 의견의 일치를 해 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다. 사람이란 각자 자기가 떠맡은 짐을 지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어떤 생리에도 철학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철학 일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Candle을 찾아보면, 'You can not burn the candle at both ends'라는 예문이 있다.

 

이것은 '양초의 두 끝에 불을 붙일 수는 없다', 곧 상반되는 행위를 동시에 할 수는 없다는 뜻인데, 두려운 줄을 모르는 격언 파괴자인 하퍼 마르크스는 어떤 영화 가운데서 양초의 양쪽 끝에 실제로 불을 붙여 보이겠다는 대담한 실험을 해 보였다.. 그루 초가 하퍼의 엉터리 같은 수작을 비판하면서 "넌 바보로구나. 양초의 두 끝에 불을 붙일 수가 없잖아"라고 말하자 하퍼는 그가 늘 입고 다니는 그 슈퍼 망토에서 미리 준비해온 양쪽에 심이 달린 양초를 꺼내서 거기에 불을 붙였다. 이런 개그는 자막만 봐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이 격언을 모르고서는 하나도 재미가 없다. 하퍼는 기회만 있으면 반드시 이 같은 틀에 박힌 문구를 때려눕혀 버린다.

 

이런 식으로 갖가지 일들을 생각해가면서 천천히 사전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마루에 앉아서 허브 차를 마시면서 이렇게 해보면 기분은 벌써 노후나 다름없다.

 

Plod에서 Plummy까지 읽고 문득 눈을 뜨니 하늘에는 빗으로 빗은 듯한 가을의 구름이……. 란…….란 식이다. 하지만 전철 안에서 꼼짝 않고 사전을 탐독하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고 하면 이건 좀 무서울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무라카미하루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취미는 음악 감상입니다  (0) 2021.03.22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0) 2021.03.15
독서용 비행기  (0) 2021.03.10
챈들러식 소설 쓰는 법  (0) 2021.03.08
나의 독서 이력서  (0) 2021.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