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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나의 독서 이력서

chocohuh 2021. 3. 5. 08:52

요즘에는 옛날에 비하면 서점을 찾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 같다.

 

왜 서점에 가지 않게 되었는가 하면, 그 이유는 스스로 글을 쓰게 된 데 있다. 서점에 내 책이 나열돼 있는 게 왠지 모르게 쑥스럽기도 하고-나열돼 있지 않으면 이것 역시 곤란한 일이긴 하지만-해서 서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뜸해지고 말았다.

 

집 안에 책이 너무 많이 쌓여 있는 탓도 있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몇 백 권이나 되는데, 그 위에다 쌓고 또 쌓는 것이 어쩐지 어리석게 느껴진다. 지금 쌓여 있는 책 더미를 완전히 정리하고 나면 서점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을 사 모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웬일인지 이게 전혀 줄지를 않고 오히려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형편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아니지만, 정말이지 나도 '독서용 복제 인간' 같은 게 갖고 싶다. 복제 인간이 부지런히 책을 읽고 "주인님, 이건 좋습니다. 읽으셔야 만 합니다."라든가, "이건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 요약해서 가르쳐 주면 나도 무척 편하겠다. 딱히 복제 인간이 아니더라도 활력이 넘치고 한가한 데다 책에 대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지만, 좀처럼 그렇게도 되지 않는다.

 

서점에 별로 가지 않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외국소설을 번역한 신간이 눈에 띄게 줄어든 데도 있다. SF라든가 추리물이라든가 모험소설 같은 건 꽤 많이 번역되지만, 이런 번역물들은 읽을 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뒤섞여 있어서 어지간한 나도(한 때는 무턱대고 읽어 댔었지만) 요즘에는 별로 읽지 않게 되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순수 문학을 번역하여 발행한 수는 극히 적다. "순수 문학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팔리지 않습니다."라고 출판사 사람들은 구실을 갖다 대지만, 어쨌거나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독서 시간이 대폭 짧아진 데도 원인이 있다. 최근 출판사 사람들과 만나면 한결같이 입을 모아 "요즘 젊은이들은 느긋이 앉아서 책을 읽을 줄 몰라요"라며 투덜거리고, 나 역시 맞장구를 치며 "그래요, 참 큰일이군요." 하고 말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자신도 별로 책을 읽지 않게 된 것이다.

 

10대 시절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장 크리스토프>, <전쟁과 평화><고요한 돈강>을 세 번씩이나 읽은 것을 돌이켜 보면 아주 먼 옛날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당시에는 좌우지간 책이란 건 양만 많으면 그저 기뻤고, <죄와 벌> 같은 건 페이지가 적어서 불만이었을 정도다. 그 당시에 비하면-한 권의 책을 꼼꼼하게 읽게 되기는 했어도-독서량은 5분의 1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

 

왜 이렇게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가 하면, 그것은 오로지 독서에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독서 이외의 활동에 많은 시간을 빼앗겨, 그 악영향으로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고 만 것이다. 가령 조깅에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음악을 듣는 데 두 시간, 비디오를 보는 데 두 시간, 산책을 한 시간...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가만히 엉덩이를 붙이고 책을 읽을 시간 따위는 거의 없는 것이다. 이건 진짜다. 뭐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어야 할 때는 한 달에 몇 권이나 눈을 부릅뜨고 읽지만,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라면 솔직히 말해서 요즘에는 도무지 읽지 않는 형편이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하기야 이런 상황 내지는 경향에 빠져 버린 사람이 결코 나 하나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다지 책을 읽지 않게 된 것도 역시 독서 이외의 다양한 활동에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대폭 할애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나는 추측한다. 내가 젊었을 때는-라고 말하니 갑자기 너무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들지만-전체적으로 꽤 시간이 남아돌아, '할 수 없군, 책이나 읽을까' 하는 기분이 지금보다는 비교적 쉽게 들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비디오도 없었고, 레코드도 상대적으로 비싸서 그렇게 많이 살 수 없었으며, 스포츠도 오늘날만큼 유행하지 않았다. 당시의 분위기도 매우 이론적이어서 어떤 유의 책을 일정량 이상 읽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풍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뭔데요? 그런 거 읽지 않았어요. 난 몰라요"라며 자연스럽게 대답한다. 그 외에 할 일도 잔뜩 있는 데다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장소와 방법, 매체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결국 독서라는 것이 두드러진 신화적 매체였던 시대는 급속하게 종식되고 만 것이다. 오늘날 독서란 수많은 각종 매체 중의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경향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것은 대부분의 사회 현상이 그렇듯,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교양주의적, 권위주의적 풍조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걸-정말로 사라져 가고 있는 거겠죠?-기쁘게 생각하지만, 한 사람의 글쟁이로서는 책이 별로 읽히지 않게 된 것을 섭섭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섭섭한 한편, 우리(출판업에 관여하는 다양한 사람들)가 그 의식과 체질을 전환하여, 새로운 지평에서 새로운 종류의 우수한 독자들을 발굴해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한숨만 쉰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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