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대표적인 복합 예술 센터인 바비칸 갤러리(Barbican Gallery)에서 디지털 레볼루션(Digital Revolution)이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는 크게 7가지 주제로 나누어 디지털 기술이 미술, 영화, 음악, 패션을 포함한 전반적인 예술 분야에 가져온 변화와 그 가능성을 소개한다.
인터넷을 포함한 디지털 기술의 발달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그 발전 속도에 경탄하면서도 그 반면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영향에 더 초점을 맞추었던 것 같다. 음악과 영화의 불법 다운로드, 컴퓨터 게임 중독, 인터넷 악성 댓글 등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사회적인 문제가 큰 화두로 떠오르는 지금, 디지털 예술의 역할과 그것이 우리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1. 디지털 아키알로지(Digital Archaeology)
아키알로지는 고고학을 뜻하며, 전시 입구를 지나면 1970년대에 등장한 초기 PC와 애플의 컴퓨터, 팩맨과 슈퍼마리오와 같은 추억의 비디오 게임과 영상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시된 일종의 유물들을 보며 과거와 현재의 기술과 생활상의 간극이 크게 느껴진다.
2. 위 크리에이트(We Create)
크리스 밀크(Chris Milk)의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The Wilderness Downtown
아케이드 파이어와 크리스 밀크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인 The Wilderness Downtown은 HTML5 환경에서 재생되는 인터렉티브 뮤직비디오이다. 웹사이트에 어릴 적 살았던 주소를 입력하면 구글 맵과 연동하여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된다. 음악에 따라 여러 개의 작은 팝업창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나에게 익숙한 고향 동네 곳곳을 주인공이 누빈다. 2011년 칸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작품으로 구글 크롬을 통해 사이트에 접속하면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다.
앤서니 고(Anthony Goh) & 닐 멘도사(Neil Mendoza)의 이스케이프(Escape)
지하철에서 들려오는 휴대폰 벨소리와 옆에서 정신없이 뿅뿅거리는 게임소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영국의 아티스트 앤서니 고와 닐 멘도사는 폐휴대폰과 벨소리를 하나의 미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스케이프는 폐휴대폰을 조합하여 만든 새 시리즈이다. 전시품 옆에 전화기가 비치되어 있어 각각의 새에 할당된 번호에 전화를 걸면 새가 전자음을 내며 지저귄다.
3. 크리에이티브 스페이스(Creative Spaces)
영화 인셉션(Inception)에 복잡하게 얽혀있어 도저히 구분하기 힘들었던 꿈과 현실처럼 영화 속 CG와 실제 공간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 없게 되었다. 이전에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것들이 디지털의 힘을 빌어 예술적 가능성을 무한의 영역으로 개척해가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스페이스 섹션에서는 영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에서의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소개한다.
펜을 모니터에 갖다 대어 직관적으로 애니메이팅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아폴로(Apollo)
휴렛 팩커드(Hewlett Packard)에서 기술 제공하고 인텔(Intel)과 5년에 걸쳐 공동 개발한 드림웍스(Dreamworks)의 혁신적인 프로그램으로 최근 개봉한 드래곤 길들이기 2를 제작하는데 사용되었다. 마치 실제 퍼펫 인형을 손으로 매만지듯이 직관적으로 캐릭터의 움직임을 수정하고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한 컷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와 라이팅 등을 한 번에 수정할 수 있다. 기존의 프로그램은 한번에 한 캐릭터만 조종하고 움직일 수 있었으며 한 동작을 수정할 때마다 짧게는 15초에서 길게는 20분까지 걸렸던 불편함이 상당 부분 개선된 결과로 앞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금액이 절약될 것이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의 제작 비하인드 영상 시청관
기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상상력만이 한계를 정한다. I"m not Limited by the Technology but I"m Limited by My Own Imagination 라는 드림웍스 애니메이터의 표현이 인상 깊다.
4. 사운드 앤 비젼(Sound & Vision)
유리 스즈키(Yuri Suzuki)의 피라미드(Pyramid)
사운드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 유리 스즈키의 작업으로 3개의 유리관 속의 로봇 악기가 Will I Am의 음악을 연주한다. 3개의 로봇 악기는 드럼, 피아노, 기타를 분해하여 재조합한 악기로 함께 연주하는 밴드와 같다. 위에는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연상시키는 윌아이엠의 두상이 3D 맵핑 프로젝션 되었다. 우리가 음악을 향유하는 방식이 레코드에서 CD 그리고 MP3로 변해왔듯 로봇 밴드의 라이브 연주는 앞으로 우리가 음악을 청취하는 방식이 또 한 번 변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5.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State of Play)
마이크로소프트 키넥트와 같은 실시간 데이타 맵핑을 사용하여 작업한 인터랙티브 디지털 프로젝트들을 볼 수 있다. 기존의 컴퓨터가 단지 사람의 도구였다면 이제는 사람이 컴퓨터의 관찰 대상이 된다. 전시장의 디지털 작업과 관객은 서로를 재매개하며 쌍방향적 놀이를 한다.
크리스 밀크(Chris Milk)의 The Treachery of Sanctuary
앞서 소개했던 The Wilderness Downtown을 제작한 아티스트 크리스 밀크(Chris Milk)의 작업으로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크리에이터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에서도 전시한 바 있다. 2m 70cm 높이의 세 개의 스크린 앞에 사람들이 서고 자신의 그림자가 스크린에 비친다. 첫 번째 스크린은 Birth. 사람의 몸이 새 떼로 변해 날아간다. 이는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순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두 번째 스크린은 Death. 세 때가 사람의 몸에 달려들어 쪼아 먹는다. 대중의 비판적인 논평에 의해 아이디어가 위협받는 순간이라고 아티스트는 해석한다. 세 번째 스크린은 Transformation. 양 팔을 뻗으면 팔 아래로 날개가 솟아나 하늘로 날 수 있다. 사람 혹은 아이디어가 죽음을 넘어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키넥트 콘트롤러와 적외선 센서를 통해 포착된 그림자를 3개의 프로젝터를 통해 다시 투사하는 방식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사람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관절을 트랙킹하는 툴인 Microsoft SDK – Skeleton Tracking을 사용하였다.
그림자와 새, 날개가 솟아오르는 표현이 굉장히 세밀하며 사운드 효과가 뛰어나 실제 작품 앞에 서면 실제와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새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은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상상했던 것을 현실에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크리스 밀크의 작업은 디지털 아트의 가능성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게끔 한다.
6. 데바트(Devart)
데바트는 컴퓨터 코드을 이용해 만든 예술 작품과 프로세스를 공개하는 플랫폼으로 데바트에서 선정한 혁신적이고 관객 참여적인 미술 작품이 전시를 통해 공개되었다.
제커 리버만(Zach Lieberman)의 플레이 더 월드(Play The World)
전광판으로 둘러쌓인 스테이지 가운데에 키보드가 있다. 키보드의 C 음계를 누르면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라디오 방송 중에 C음을 내보내는 채널을 찾아 음악을 들려준다. 동시에 전광판에선 라디오 스테이션의 국가와 도시 이름이 비춰진다. 아티스트 제커 리버만은 오픈 소스 라이브러리인 오픈 프레임워크(Open Frameworks)의 창시자로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자동차의 움직임으로 만든 폰트인 아이큐 폰트(IQ Font)와 몸이 마비된 환자도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인 아이 라이터(Eye Writer)가 있다.
제커 리버만이 커스텀 제작한 소프트웨어는 수 백 개의 인터넷 라디오 스트림을 모니터하고 음의 높이와 옥타브에 따라 실시간으로 분류한다. 이 소프트웨어가 키보드에 연결되어 있어 키를 누를 때마다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나오는 원리이다. 키보드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설치된 스피커는 음악이 방송되는 지역의 위치에 따라 선택적으로 소리를 내보낸다. 키보드를 눌러가며 세계 곳곳의 음악을 듣다보면 지금 서있는 런던을 중심으로 세계에 둘러싸인 느낌이 든다.
7. 더 아워 디지털 퓨쳐(The Our Digital Futures)
입을 수 있는, 착용가능 한 디지털 기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케이티 베가(Katie Vega)의 키니쉬(Kinish)
키니쉬는 FX E Makeup과 전자센서를 이용한 프로젝트이다. 미소를 짓거나 윙크를 하거나 눈썹을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은 특정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피부에 붙은 LED의 라이트가 다양한 패턴으로 켜진다. 센서를 통해 수집된 디지털 신호가 마이크로 콘트롤러로 보내지는 원리이다.
7가지의 광범위한 섹션에 걸친 전시를 통해 디지털 초기 시대와 현재를 돌아보았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한 손으로는 사진을 찍어 소셜 플랫폼에 공유하고 댓글을 올리는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디지털은 곧 삶이다. 편리함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우리는 디지털 기술을 받아들이고 향유한다. 실제와 가상의 구분, 상상과 현실의 구분, 너와 나의 구분이 점차 사라지는 가운데 미래의 예술과 삶의 모습은 또 어떻게 변화할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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