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나온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북유럽 디자인의 특징을 보면 무엇보다도 주생활과 관련된 디자인이 발달된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집이라는 의미가 어둡고 추운 겨울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특징적인 팔룬(Falun) 레드 색채를 사용한 스웨덴의 농가 주택
물론 북유럽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북유럽”스타일로 사는 것은 아니다. 또 북유럽이라고 크게 불리기는 하지만 나라마다 또는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북유럽 스타일의 집이 어떤 집이냐고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체적으로 다른 문화권과 다른 특징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북유럽 집들 중에는 오래된 전통적인 가옥들도 볼 수가 있는데, 무엇보다도 예전 바이킹 시대에 지어진 바이킹들의 집을 예로 들 수가 있다. 이들 바이킹들의 집은 물론 현대의 북유럽 집들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바이킹의 전통은 북유럽 사람들의 문화와 정신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고 디자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바이킹 시대 집들 중 원형이 남아 있는 것은 많지 않은데, 사료에 의해 복원된 집들을 보면 긴 배 모양의 형태를 하고 있는 집들을 찾아 볼 수가 있다. 이들 바이킹 주거 공간은 방이나 내벽이 없는 목조 가옥에 온 마을 사람들과 말, 소, 돼지가 같이 사는 집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긴 겨울 동안 난방 문제 때문에 개별 주택보다는 이렇게 공동의 공간에서 모두가 같이 사는 형태를 선호하였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이런 형태의 공동 주거 공간은 요즘에도 흔적이 남아 있는데 북유럽에는 환경이라든지 생태적 이념에 따라 공동의 생활 공동체를 만들고 사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런 공동체가 북유럽에서도 일반적인 주거 방식은 아니지만 사회적 다양성을 늘리는데 기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복원한 바이킹 시대의 공동 주거 공간. 바이킹 시대로부터 이어져온 공동체 정신은 북유럽 문화와 디자인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북유럽에는 중세시대의 성들도 많이 남아 있다. 프랑스 스타일의 우아한 성과 다르게 저항과 반란이 많았던 역사적 이유 때문에 많은 성들은 요새화된 성이었는데, 지역적 특색에 따라 돌이 풍부한 스웨덴 등지에서는 돌로 성이 지어졌고 덴마크에서는 주로 벽돌이 사용되었다. 이런 중세 성중 일부는 개인용도로 사용되고도 있지만 많은 경우 세금문제 때문에 공공에 공개되어 박물관, 호텔, 식당, 결혼식 장소 등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성은 일반적인 덴마크 사람들의 삶과 의외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세시대의 덴마크 성들의 모티브는 레고에서 많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덴마크 퓐(Fyn) 섬에 위치한 이게스코우 성으로 14세기에 지어진 벽돌로 지어진 요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유럽 집들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스타일은 스웨덴 시골마을의 붉은 색 목조가옥일 것이다. 이 집들은 산화철 성분이 들어간 팔룬 레드라고 불리는 특징적인 색으로 칠해진 집들이다. 팔룬(Falun)은 스웨덴 중부의 지역으로 페인트가 팔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팔룬에서 생산되는 산화철과 아연 등 금속 성분이 포함된 페인트는 목재의 부식을 방지하고 벌레가 생기는 것을 막는 기능이 있고, 햇빛과 비바람에도 색이 변하지 않아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기 때문에 색을 매년 덧칠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로 현대적인 페인트가 보급되기 전 스웨덴에서 가장 일반적인 도료로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스웨덴 시골마을의 집들을 보면 각 집들의 구조는 사실 단순한 편이고 개성이 넘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렇게 팔룬 레드로 칠해진 집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보면 이것이 스웨덴이라고 할 수 있는 색감 있는 개성을 만들어 낸다. 특히 이 팔룬 레드 색이 오묘한 것이 한 여름 녹색으로 뒤 덥힌 북유럽의 숲에서도 한겨울 흰 눈으로 뒤덥힌 배경에서도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내는 색이다.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로 어쩌면 우연에 의해 선택된 색치고는 디자이너에 의해 잘 선택된 색처럼 혹은 그보다도 더 인상적인 색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요즘에는 페인트 기술의 발달로 꼭 팔룬 레드로 외벽을 칠해야 할 실용적 필요는 없어졌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색이라는 것과 전통을 이어간다는 의미에서 아직도 많은 목조 가옥에 사용되고 있다.
팔룬 레드가 사용된 사우나 건물로 색채라는 관점에서 자연과 이토록 잘 어울리는 색채를 찾기도 힘들듯 하다.
노르웨이의 어민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갈 때 임시로 머물던 바닷가 건물들. 소금기가 포함된 강한 바닷바람에서도 오랜 시간 유지가 되는 팔룬 레드 페인트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어느 자연환경에도 녹아드는 색채이다.
도시로 가면 스웨덴 같은 경우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가 선호되는 편인데, 난방이라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다. 반면에 겨울이 비교적 온화한 덴마크 같은 경우에는 도시에도 중심부를 제외하고는 단독 주택이 선호된다는 특징이 있다. 덴마크의 단독주택은 보통 500~1000 제곱미터의 정원에 단층 혹은 2층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고 지어진 시대는 20세기 초반부터 최근까지 다양하다. 의외로 덴마크에는 수백 년 된 집들은 중세시대의 성이나 일부 잘 보존된 역사지구 혹은 코펜하겐 중심부의 몇몇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집들이 가장 많이 지어진 시기는 1950년~1960년대로 2차 세계대전 후 베이비 붐 시대에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지어진 양식의 집으로는 한 가족 단층주택 집이라는 양식으로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가진 집들인데 마치 어린이들에게 집을 그려보라고 하면 그리는 것과 같은 구조를 지닌 집들이다. 외관상의 미는 많이 부족하지만 구조가 단순해서 대량으로 짓기에 편리했기 때문에 많이 지어졌고 덴마크에는 이렇게 집처럼 생긴 주택들이 많다. 주재료는 벽돌을 사용했는데 일관된 벽의 색이나 지붕의 색들을 사용하지는 않았고 조금은 제멋대로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시골의 집들은 흰색으로 벽돌위에 칠을 해서 나름대로 멋진 모양을 내기도 한다. 덴마크 집들 역시, 일부 새로 디자인을 하는 집들도 있지만 많은 집들은 새로 디자인을 하기보다는 표준적인 설계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집들이 비슷비슷해지는 문제점도 있다.
덴마크의 농가 주택들. 벽돌집으로 단순한 구조가 특징적이다.
존 포슨(John Pawson)이 디자인한 빌라 바론이다. 전통적인 양식을 사용해 디자인 되었으며 2007년 포룸 에이드 디자인상을 수상하였다. 도시가 아닌 자연 속에서라면 현란한 외부 디자인 보다는 이렇게 실용적이면서도 단순한 디자인이 주변 환경과 더 잘 어울린다.
조금 더 전통적인 양식의 주택으로는 초가집을 볼 수가 있다. 초가집은 말 그대로 지붕을 밀짚으로 덮은 것으로 초가지붕이 썩어가기 때문에 지붕을 정기적으로 갈아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전통과 운치 때문에 아직도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집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이러한 집들의 내부는 리노베이션을 통해 현대 생활에 편리하도록 고쳤기 때문에 내부 구조는 여타 다른 현대적인 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들의 경우 덴마크는 비교적 겨울이 짧고 눈이 적게 오기 때문에 외관에도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지만 북쪽으로 가면 외관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중요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긴 겨울동안 눈으로 뒤덮히고 눈이 녹기 시작하면 5월이 되기 전까지 흙먼지로 뒤덮힌 상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같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위해서는 외관보다는 내부 인테리어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 같은 경우 자동차를 사게 되면 세금이 205%까지 부과된다. 이 덕분에 비싼 차를 사게 되면 대부분의 비용을 세금으로 내는 상황이 되고 비싼 값에 비해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돈이 가장 많이 나가는 분야가 집이고 그 다음이 자동차다. 그런데 자동차에 대해 돈을 쓰는 것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덴마크 사람들은 그 돈을 집에다 쓰고 다른 나라에서라면 차를 꾸미고 개조하는데 쏟을 열정을 집을 꾸미고 개조하는데 쓰게 된다. 이러한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특히 북유럽 사람들은 집안을 꾸미는데 시간과 돈을 사용하게 되었고 북유럽에서 가구 디자인이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집을 고치고 가꾸는 일은 북유럽 사람들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에 따라 직접 집을 고치는 것에 관계된 시장과 관련 디자인 분야도 발달되어 있다.
북유럽 주거 문화에서 또 다른 특징적인 점은 여름 별장문화이다. 많은 사람들이 본래 사는 집 외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호숫가나 바닷가에 소박한 캐빈(Cabin) 형식의 작은 별장으로 말이다. 보통 주말이나 여름 휴가기간 동안 이러한 별장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이때 역시 별장을 고치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별장의 경우 보통 자연과 인접한 휴가 시설이기 때문에 별장 자체 시설의 화려함보다는 자연과 얼마나 더 밀접하게 접할 수 있는가가 별장의 가치를 결정한다. 이러한 문화는 사회 전반적 문화에 영향을 주는데, 북유럽에서 환경주의와 자연과 교감하는 디자인이 발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자연과 함께하는 소박한 별장은 북유럽 사람들의 삶과 문화 디자인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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