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에른의 남부 지역 오스트리아와 인접한 알프스 산자락의 아샤우(Aschau)에서 이루어진 닐스 홀거 무어만의 건축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마치 아샤우 전체가 그의 작은 성인 것처럼, 그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 것처럼 무어만은 아샤우를 그리고 아샤우를 둘러싸고 있는 알프스의 자연을 사랑한다. 그의 일상을 살펴보면 어딘지 모르게 아주 평화롭다. 대부분의 디자인 산업이,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대도시를 무대로 바쁘게 돌아가며 이뤄지는 것과는 조금 대조적이다.
그가 일상적으로 맞이하는 매일의 휴식 같은 삶을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공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베르게가 그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가장 간단히 소개하면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인데 무어만은 이 숙박시설의 이름을 베르게라고 지었다. 그는 대부분 영감을 문학에서 얻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머무는 공간에는 수많은 책이 수납되어있다. 또한, 특이한 점은 NHM 내부의 계단과 벽에는 많은 명언이나 좋은 글귀들이 적혀있는데 실제로 그는 이러한 글귀들을 가까이하기를 좋아하고, 작품의 제목 역시 글귀에서 영감을 받은 문장이나 혹은 추상적인 단어들로 짓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독일어 베르게(Berge)는 산(Mountain)의 복수형이고 헤르베르게(Herberge)는 호스텔(Hostel)과 같은 말인데 이런 중의적인 뜻을 담은 호스텔 베르게에서도 그의 특이한 작명법을 발견할 수 있다.
닐스 홀거 무어만의 베르게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기 전 건물은 오랜 시간을 숙박시설로 사용되다가 폐허로 방치되고 있었다. 닐스 홀거 무어만의 건축 스튜디오 NHM 가구들을 위한 배송 창고로 사용하려 사들인 이 건물은 심사숙고 끝에 원래의 계획에서 선회하여 새로운 숙박시설로 거듭나게 된다.
새롭게 태어난 베르게의 외관. 본래 설계, 시공된 기본 틀을 최대한 헤치지 않는 선에서 무어만의 색채로 재해석 되었다. 넓은 앞마당을 향해 탁 트인 창을 내었고, 지붕 층의 발코니에서는 알프스에 둘러싸인 아샤우의 멋진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베르게 공동식당: 지상 층에 자리 잡은 넓은 공동식당. 베르게에 있는 대부분 방이 따로 주방을 함께 가지고 있지만, 여행을 통해 낯선 사람들을 만나보라는 의미로 이렇게 큰 공간을 식당에 투자했다. 하얀 벽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공간에는 대규모의 인원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을 많은 식탁과 의자들이 그 반대편에는 넓은 조리대와 작은 아궁이와 같은 벽난로가 있다. 원목과 무쇠의 조합으로 가공되지 않은 스타일을 추구하는 무어만의 디자인 철학과 맞닿아있는 조용하고 따뜻한 산장의 느낌이다.
베르게 Apartment 1: 공동식당과 비슷한 느낌의 방이다. 복층의 형태로 지붕 층에는 침실이, 연결된 아래층에는 주방과 거실이 있다.
베르게 Apartment 2: 예전의 바닥을 그대로 유지하고 방을 둘러싸고 있는 외벽에 가공처리 하지 않은 나무를 이용한 붙박이 가구 스타일의 침대와 수납장으로 이루어진 방
베르게 Apartment 3: 리모델링하기 전의 건물이 가지고 있던 본래의 구조물들을 그대로 살려낸 다양한 방들. 거친 원목의 느낌과 어두운 가구의 조화가 역시 무어만이 추구하는 그대로의 느낌이다. 지붕에 난 창을 통해 들어오는 알프스의 태양 빛이 공간의 입체감을 완성해준다.
베르게 Apartment 4: 책을 좋아하는 무어만의 취향이 그대로 녹아있는 서재 스타일의 방. 총 16개의 방을 가지고 있는 베르게의 모든 객실에는 곳곳마다 책이 꽂혀있는데, 인터뷰를 통해 무어만이 하는 말은 이 놀라운 공간에 방점을 찍는다. 놀랍게도 베르게에는 인터넷이 없다. 산속이라 휴대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예약과정에서 많은 투숙객에게 항의를 받기도 하지만, 무어만은 베르게를 계획하던 당시의 원칙을 바꿀 의지가 없다고 한다. 무어만은 베르게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정말 편안히 쉬다가 돌아가기를 권하고 있다. 끊기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들에 오히려 중독되어 꺼버리기를 주저하는 현대인들에게 그 흔하고 편한 전화도 인터넷도 제공하지 않고 반강제로 자연을 바라보고 책을 읽다가 가라고 말한다. 숙박시설을 통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베르게를 찾아 단절된 휴식을 통해 인터넷에서보다 더 값지고 많은 것들을 얻어 돌아갈 것이라는 확신에 찬 바람을 가지고 있다. 많은 수식어를 떠올리다 결국 선택한 것은 그냥 이 사람, 멋지다.
베르게 Apartment 5: Berge의 곳곳에 있는 작지만 센스 넘치는 섬세함이다. 배관을 그대로 노출한 상태에서 액자에 유리를 달아 걸어 놓은 것이 재미있다. 많은 벽이 가공되지 않은 그대로의 상태로 노출되어있다.
베르게 사우나(Sauna): 베르게의 숙소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자리 잡고 있는 사우나. 책과 자연과 사우나
베르게 소품들: 모든 객실과 주방, 욕실에 갖춰져 있는 각종 소품 역시 그릇과 컵부터 이불과 수건까지 모두 무어만과 NHM이 디자인한 것들이다. 판매도 하고 있어서 사용 후에 마음에 들면 실제로 구매할 수 있다.
무어만과 NHM의 베르게는 휴식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지와 숙소가 아닌가 한다. 환하게 웃는 무어만의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닮아 편안하고 알프스의 작은 독일 마을 아샤우를 닮아 평화롭다. 이 편안하고 평화로운 베르게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때에는 그동안 내가 속해있던 곳에서의 일상을 잠시 꺼두고 온전히 휴식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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