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무언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역사, 문화 등을 아우르는 인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요즈음 방송이나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 자주 들을 수 있는 국민이라는 표현을 들으면서 대다수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대변해주는 이러한 수식어를 호칭으로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영광일까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국민 가방 브리를 소개해 본다.
브리의 대표적인 가죽 재질 가방 맥스와 브리 로고타이프
설립자 볼프 페터 브리(Wolf Peter Bree)와 그의 아내 레그나테 브리기테(Renate Brigitte)는 1970년에 그들이 꿈꿔오던 브랜드 브리(Bree)를 세상에 선보인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였던 페터 브리의 경험을 살려 직접 디자인하고 브랜드 전략과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 힘을 쏟아 새로운 가방을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이후 브리는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독일인들의 생활 깊숙이 녹아들었다. 오랜 시간동안 독일인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40년 전 최초 브리가 세상에 이름을 알릴 당시부터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공의 키워드는 최상의 품질(Top Quality)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때문이다.
1970년대, 전쟁을 겪은 이들과 전후 세대들이 공존하며 격변의 시기로 분류되던 당시의 독일은 현재의 우리나라처럼 분단국가이기에 여전히 이념이 대립하고 있었고, 전통적인 가치관과 전후 세대들의 새로운 이념이 뒤섞여 있었다. 때마침 불어닥친 석유파동(Oil Shock: 1973년과 1979년 중동전쟁, 이슬람 혁명을 계기로 석유의 가격이 폭등하여 전 세계에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세계 여러 나라는 그 결과 생겨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침체 속에서의 물가상승)을 헤쳐 나가기 위해 금리 인하와 재정 지출을 늘리는 등 저마다 해결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독일은 같은 어려움 속에서 조금은 공격적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금리를 높여 물가상승을 억제하고 사회 기간 사업이나 잠재력 있는 연구, 개발에 투자하여 장기적인 경제 회복과 성장을 목표로 했으며 이를 통해 결국 물가 상승률을 통제할 수 있었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여 실업률을 낮출 수 있었다고 한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던가? 사실상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면 구매리스트의 가장 밑에 있을 수밖에 없는 가방 사업을 이런 위험한 시기에 시작하다니 브리라는 브랜드의 대단한 용기라고 볼 수 있겠다.
독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맥주 혹은 실용적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독일인은 근면하기로 유명하고 필요한 데에만 돈을 쓰는 이미지가 있다. 오래된 것에 가치를 두는 민족성도 있지만, 제품이 오래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내는 장인정신도 크게 작용한다.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유명한 말인 덜한 것이, 더한 것(Less is More)처럼 꾸미는 것보다 실용적이다라는 것, 단순하기에 더 많은 것을 주는, 그렇기에 오래갈 수 있는 철저히 실용성을 추구하는 독일인들의 가치관과 생활 습관은, 여러 차례의 큰 전쟁을 겪어서인지 몰라도 절약하는 삶의 자세가 항상 같은 선상에 있다. 단순히 소비되는 일회성 짙은, 혹은 유행을 급하게 타는 제품이 아니라 오래 쓸 수 있는 견고한 품질을 가진 가방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브리가 가진 목표였다. 그리고 거기에 한 가지 더,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 가방을 만들기 위해 구세대와 신세대의 취향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더해진다. 그것이 바로 브리가 추구한 브랜드로서의 또 하나의 목표, 혁신적인 정신(Innovative Spirit)이다.
새로운 재료 발견을 향한 브리의 혁신적인 도전: 전통적인 가방 제작 방식이나 재료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생산방식과 재질의 혼합에 연구와 시도를 거듭한 브리의 대표작 중에는 유난히 예상치 못한 재료의 조합이 많았다. 그 예로 들 수 있는 것들이 천연가죽과 새틴(Satin: 여성용 드레스나 블라우스, 스카프, 정장 코트의 안감 등에 널리 쓰이는 부드러운 광택의 직물)의 조합이라던가, 천연가죽과 펠트(Felt: 양모나 인조 섬유에 습기와 열을 가해 압축시킨 천으로 다소 거칠지만 따듯한 텍스쳐를 가짐)의 조합, 천연가죽과 합성수지(특히 폴리우레탄)의 조합 등이 있다.
브리의 혁신적인 재료에의 탐구는 세계적인 제약회사로도 유명한 독일의 바이어(Bayer)의 사설 연구소와의 협업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재료공학도라면 누구나 일하고 싶어 하는 BMS는 신소재를 다루는 연구소 중 세계적인 규모와 영향력을 자랑한다. 이 BMS와의 협업을 통해 브리는 수많은 제품에 사용할 새롭고 혁신적인 재료를 만들어냈다. 전통적인 가치와 재료를 계승하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재료 조합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새로운 세대들의 요구에도 응답한 혁신성은 많은 세대를 넘나들며 사랑받아온 브리의 가장 큰 성공 원동력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품질과 혁신은 지속 가능하게 많은 세대를 넘나들며 사랑받을 수 있는 당연한 키워드일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고, 현재의 많은 기업들에도 커다란 교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까지 양산된 브리 가방의 다양한 라인업 중 가장 널리 사랑받은 제품을 꼽으라면 시리즈명 펀치(Punch)를 꼽을 수 있다. 브리하면 이 가방을 떠올릴 만큼 독일인들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은 이 제품은 현재까지 많은 형태로 변형되어 소비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펀치의 특징은 먼저 그 특별한 재질에서 찾을 수 있는데 폴리우레탄을 기본재료로 만들어진 이 제품군은 젊은 층의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여러 사이즈, 형태, 색상조합의 백팩과 메신저백이 펀치제품군으로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독일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펀치 93 시리즈 백팩을 살펴보자.
펀치 93. 가방의 외형만 보면 단순함 그 자체인 펀치 93 시리즈의 모습.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 많은 기능을 내재하고 있다. 먼저 폴리우레탄 재질로 만들어진 이 유명한 백팩은 그 재질의 특성답게 100%에 가까운 방수력을 자랑한다. 가방의 입구는 접힐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어, 비교적 컴팩트한 크기로 사용하다가 더 많은 양의 짐을 운반해야 할 경우에는 늘려서 크기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접히는 입구의 구조는 단순히 크기의 가변성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비가 내릴 경우 비교적 방수가 불리한 지퍼부분을 밑으로 감추어 내용물이 비에 젖을 가능성을 최소화하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완벽에 가까운 방수기능이다.
많은 독일인들이 적당히 내리는 비에는 우산을 펴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종종 많은 수의 사람들이 우산 대신 우의를 착용하고 길거리를 활보한다. 이런 문화는 자연스럽게 가방의 방수 기능을 따지게 할 것이다. 실제 파일럿피쉬(Pilotfish) 오피스에도 펀치 시리즈를 애용하는 디자이너들이 있는데 방수기능에 대한 질문에 돌아온 그들의 대답 역시 이 추측과 멀지 않다. 비교적 불안정한 기후 때문에(특히 알프스와 인접한 뮌헨의 경우)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바뀌는데 이러한 때는 방수되는 가방을 들고 다니는 편이 안전하다는 생각이다. 몸은 젖어도 가방 안의 소중한 물건들은 젖으면 안 되기 때문에 비슷한 사례로 독일에서 만들어지는 유모차들은 방수 코팅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비 오는 날 흔하게 볼 수 있는 우의를 입은 독일인들 중 대부분 비 오는 도로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2011년 한 조사에 따르면 독일의 자전거 보급률은 75.8% 세계에서 3위 수준에 올랐다. 그만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거나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소위 말하는 자전거족이 많은데 이런 자전거 문화가 양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면서 우천시를 대비해 방수 기능이 있는 펀치 93의 구매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전거 택배(Delivery Bike). 가방의 외형만 보면 자전거를 이용하면서 펀치 93과 같은 크고 방수 기능이 있는 백팩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직업군이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택배기사. 독일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해서 배달하는 사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그렇게 크지 않은 유럽의 도시규모를 고려할 때, 배송 시 막히는 대중교통보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다.
도이치 포스트(Deutsche Post) 집배원 같은 사례는 독일의 집배원에게서도 볼 수 있다. 비 오는 날에도 이용되는 독일의 우편배달 자전거는 여러 번의 시도를 통해 새롭게 디자인 되고 있지만,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자전거이다. 비가 올 것을 대비하여 고안된 우편물 적재 가방이 인상적이다.
1972년 격동의 시기에 독일에서 시작된 브리는 1976년 이웃 나라인 스위스를 시작으로 해외 판매를 시작한다. 같은 독일어권으로 비슷한 생활권에 있는 나라였기에 첫 수출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무대였을 것이다. 이후 디자인과 품질에 더욱 투자하여 내실을 갖춘 브리는 1993년에는 독일 내 27개의 매장 외에 홍콩, 일본, 미국, 캐나다, 룩셈부르크에도 지사를 두게 된다. 1996년 설립자인 볼프 페터 브리의 안타까운 사망 이후 그의 두 아들인 악셀과 필립 브리(Axel, Philipp Bree)가 경영권을 이어받음으로써 브리는 또 한 번의 도전과 도약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 7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최대 규모의 독일 가방 브랜드라는 명예를 가지게 되었다.
브리 하노버(Hanover) 숍의 모습과 그 다양한 콜렉션들. 전 세계적인 성공에 힘입어 브리는 그들의 영역을 가방뿐 아닌 패션 액세서리 전반으로 넓혀 나간다. 여성용 가방을 비롯하여 유니섹스 가방, 비즈니스용, 아웃도어, 여행용 가방 등의 다양한 소비자 층을 대상으로 한 가방들을 선보였고 또한 스마트폰, 타블렛 PC, 지갑과 파우치 등 가방을 중심으로 한 여러 액세서리에도 그들의 로고를 붙여 넣게 되었다. 이는 전 세계의 다양한 소비자들에게 브리의 패션 철학을 입히겠다는 진취적인 목표에 의한 시도이다. 패션시장에 대한 그들의 목표의식은 실제로 유명 TV 쇼인 Germany´s Next Top Model의 캐스팅 파트너로 활동한 것, 그리고 베를린 메르세데스 벤츠 패션위크(Mercedes Benz Fashion Week Berlin)의 협력 업체로 활동한대서도 찾아볼 수 있다.
브리의 스마트폰 파우치 컬렉션
브리는 현재의 성공에 멈추지 않았다. 초대 설립자로부터 이어받은 철학, 디자인과 품질에 대한 확고한 의식을 지니고 있던 그들은 다양한 디자이너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며 도전에 도전을 거듭한다. 이러한 끊임없는 시도들을 통해 브리는 전 세계 다양한 도시들의 이름을 딴 컬렉션들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행보에는 세계를 무대로 그들의 제품을 전파하려는 철학이 묻어있다. 최근 시장에 나온 신제품 브리 멜버른(Bree Melbourne) 시리즈를 살펴보자.
브리 멜버른시리즈. 역시나 유명한 브리의 100% 방수 재질을 지닌 브리 멜버른. 브리의 컬렉션들은 모두 시리즈화 되어 다양한 숫자를 가지고 시장에 나오게 된다. 브리 멜버른 역시 다섯 가지 종류의 디자인에 블루, 그레이, 블랙 세 가지 색상으로 출시되었다. 브리의 광고 이미지에 자주 등장하는 자전거를 탄 남성. 브리 멜버른은 도시 자전거족의 생활에 적합한 형태와 크기, 수납구조를 가진 Urban Bag이다. 메신저백, 여행용 빅팩, 백팩 등의 다양한 용도로 출시되어 소비자들의 기호를 모두 충족시킨다.
브리 스톡홀름(Bree Stockholm) 시리즈
브리 오슬로(Bree Oslo) 시리즈
브리 런던(Bree London) 시리즈
브리 시드니(Bree Sydney) 시리즈
브리 토론토(Bree Toronto) 시리즈
브리 컬렉션의 타겟층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다. 그만큼 다양한 소비자를 이해하고 시장을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브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전통은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이고, 타협하는 것이다. 더 많은 소비자들은 브리의 로고가 박힌 가방을 메고 거리를 활보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더 좋은, 오래 쓸 수 있는 가방을 많은 사람에게 선사하겠다는 설립자의 꿈을 계승하는 의지이며 그들에게는 그것이 전통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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