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마르티 귀세(Marti Guixe)는 자신을 위해 2001년도에 'Ex Designer'라는 이름표를 만들었고 이를 지금까지 사용해 오고 있다. 당시의 디자인 비평가들은 귀세가 2002년에 'Ex Designer'를 공식 발표한 순간부터 각종 미디어를 통해 이 황당한 이름표에 대해 끊임없는 비평과 논란을 일으켰다. 그 이유는 이름표를 자신들의 이해 범주에 넣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Plant Me Pet 2003년
나를 심어 주세요. 인형(Plant Me Pet)은 스페인의 완구 회사 차차(Cha Cha)에서 출시된 제품으로 인형의 눈 부분에는 식물의 씨앗이 박혀 있다. 이것은 식용 식물의 씨앗이기 때문에 잘 키우면 훗날 먹을 수 있는 채소로 자라게 된다. 이 인형은 구매자에게 인형의 감성적인 역할과 기능적인 역할 중 한 가지만을 선택하라는 압력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사실 'Ex(전, 前)'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접두사이지만, 이를 평범함을 벗어난 비평성, 차별성, 전략적인 콘텐츠의 독창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문명과 문화, 역사 속에서 입증된 가설에 근거하면 일반적인 트렌드를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접두사는 보통 '미리(Pre), 최초의(Proto), 대단히(Super), 반대로(Anti), 정반대의(Counter), 이후의(Post), 신(Neo, 新)' 등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접두사 'Ex'는 무엇이란 말인가?
일반적으로, 아니 의심할 여지도 없이 'Ex'는 오래되고 더는 활성화 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즉,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닌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울러 'Ex'는 "퇴직, 특정한 장소로 부터의 이탈, 부족한 상황, 과거에 의지한다." 라는 부정적인 의미들을 나타낸다. 과연 우리는 수천 년간 사용되어 온 접두사 'Ex'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해답은 던 앤 라비(Dunne and Raby), 요르겐 베이(Jurgen Bey)와 함께 비평적 디자인을 이끌고 있는 또 한 명의 거장인 마르티 귀세에게 있다.
마르티 귀세는 1964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엘리사바 디자인 스쿨(Elisava Design School)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밀라노 폴리테크닉(Milano Polytechnic)에서 산업 디자인을 공부했다. 푸드 디자인이라는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하며 이름을 알렸으며, 1998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캠퍼(Camper)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로 활동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 크게 공헌했다. 이외에 드로흐 디자인(Droog Design), 나니 마르키나(Nani Marquina), 차차(Cha Cha), 몰스킨(Moleskin), 알레시(Alessi) 등 수 많은 유명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독특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사실 나는 'Ex'라는 접두어를 사용하는데 있어 그다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하는 것은 디자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행위들은 다른 디자인 행위들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내 작업들은 예술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것들은 언제나 상업성이 더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예술과 디자인을 벗어나 나만의 카테고리를 만들고자 했다. 'Ex Designer'는 이렇게 창조됐다. 지금 나는 나만의 공간 속에서 자유롭고 평화롭다."
Blank Wall Clock 2010년
주위에서 자신의 작업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전직(前職)이라고 부르는 이 젊은 예술가는 마치 환영 받지 못한 모임에서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어리광을 피우는 어린아이 같다. 이처럼 마르티 귀세는 종종 "전문성(Professionalism)과 비평(Critical)이 과연 디자이너들에게 존재 하는가?"라고 반문할 만큼 모순적으로 행동한다. 귀세는 디자인 세계에서 번번이 그의 아이디어에 대한 저항에 부딪혔고, 과감히 디자인을 떠나 순수 예술계로 건너가게 된다. 하지만 순수 예술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디자인 세계와 동일한 저항이었다.
전직 디자이너(Ex Designer), 마르티 귀세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가 캠퍼에 제안했던 대표작을 둘러보는 일이다. 그는 스페인의 유명한 신발 브랜드 캠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오랜 기간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주요 경력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캠퍼와의 인연은 1998년부터 시작되었는데, 매장 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브랜드 이미지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마르티 귀세는 캠퍼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중 백미로 꼽히는 것이 바로 바르셀로나와 베를린에서 운영했던 캠퍼의 젊은 식문화 공간 푸드볼(Foodball)이다.
캠퍼와의 많은 일 중에서 내가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매장 인테리어 디자인뿐만 아니라 디자인 컨셉과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캠퍼의 푸드볼은 하나의 대안 음식점이다. 이것은 레스토랑이면서 바(Bar)이고,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면서 테이크 아웃 음식점이기도 하다. 심지어 우리는 이것을 이웃집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는 상황에 따라 정의가 마구 변하는 이런 공간의 경우, 이를 정의하는 것을 잠시 미뤄 두기를 좋아한다. 정의를 유보하는 순간 이것은 훨씬 더 컨템포러리(Contemporary)해지기 때문이다. 푸드볼이라는 공간의 정의는 누군가 그곳을 사용함에 따라 변한다. 이 유용한 공간은 특정하게 묘사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공간은 희미하게 세 부분으로 분할되어 있다. 첫 번째는 카운터를 포함한 입구 부분이다. 두 번째는 주방, 마지막으로는 마치 실외 경기장의 관람석처럼 생긴 음식이 소비되는 곳이다. 이 세 가지 공간은 '완벽한 독특함을 가질 것', '일반적이기를 거부할 것', '컨템포러리한 사람들을 위해 허물없이 편안한 공간일 것'이라는 목표를 재치있게 충족시키고 있다. 푸드볼에서 사용자는 실내에 있음에도 마치 아직 길거리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도록 유도된다. 그리하여 수학적으로 계산되고 새롭게 개척된 경계에 놓인, 음식이 있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푸드볼은 길거리 음식이면서 동시에 신개념의 캐주얼한 식문화를 제안하고 있다. 푸드볼의 벽은 부등각(不等角)의 입체 그림표와 각종 수치, 그리고 새로운 개척지에 대한 상상도와 같은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이는 푸드볼의 맥락을 매체로 정의하고 커뮤니케이션에 이용하는 것으로, 음식의 영양 분석학을 유행하는 패션에 연결하는 식이다. 또한, 이 벽화는 정치적으로 통제되는 안테나처럼 행동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공간은 친근하면서도 관습적이지 않는 느낌을 성공적으로 전달한다.
Camper Food Ball 2004년
2004년에 제안된 캠퍼의 푸드볼은 스페인의 감각적인 식문화를 전달함과 동시에 캠퍼의 이미지를 경험할 수 있게 한 젊은 식문화 공간이다. 푸드볼의 입구에는 생물학적 건축 도면처럼 보이는 큰 지도가 걸려 있는데, 이 지도는 푸드볼에서 판매되는 모든 음식에 대한 메뉴다.
푸드볼 요리는 직접 만들어진 수제 주먹밥처럼 생겼는데, 이 요리는 음식으로서의 기능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 각각의 푸드볼이 각기 다른 재료와 요리법을 요구하지만 미학적으로 모두 같은 모양을 가짐으로써 유연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요리법은 재료와 방법은 한정되고 데코레이션은 자유로운 전통적인 요리 방법에 대해 계속된 마찰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푸드볼 요리는 전통적인 논란을 만들기보다는 그 경계 밖에서 표류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푸드볼의 소비는 특정한 목적이 없어 보이는 모호한, 마치 넓은 계단처럼 보이는 스탠드 부분에서 이루어진다. 이 공간은 보호받고 있는 건물의 외관임과 동시에 보호받지 못하는 건물의 내부처럼, 원하는 대로 해석될 수 있는 사이 공간(In Between)과 같다. 실내의 실외이자 실외의 실내 공간인 푸드볼에서 거리는 마치 테마파크이자 쇼핑몰에 조성된 실내 길거리처럼 느껴진다.
정의하기 모호한 푸드볼은 ‘캠퍼의 음식점’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공간은 구속을 거부하는 캠퍼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정신을 외부로 표출하는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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