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연합국은 프랑스 북부 침공을 오랫동안 논의하여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을 세우고, 작전 개시일을 5월로 잡았다가 다시 연기했다. 이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중 가장 유명한 D-데이 1944년 6월 6일에 15만 6,000명의 병력이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함으로써 마침내 시작되었다.
D-데이 아침 9시까지 연합군은 해안 방어선을 거의 다 돌파했지만, D-데이에 함락할 계획이었던 캉은 7월 9일까지 연합군의 맹공을 견뎌냈다. 캉은 연합군 진격의 중심점이었다. 독일군은 6월 6일에 이미 캉에 1개 기갑사단을 배치했고, 이튿날에는 2번째 기갑사단이 합류했다. 독일군 예비병력 대부분이 캉에서 벌어진 격전에 투입되었고 전선의 서쪽 끝부분에 있는 독일군도 미국군에 완강히 저항했다. 그런데도 연합군은 독일군 예비병력의 이동을 결정적으로 견제해준 공군력 덕분에 빠른 속도로 진격할 수 있었다.
연합군의 항공기는 동쪽으로 연결된 센 강의 다리와 남쪽으로 연결된 루아르 강의 다리를 거의 다 파괴했다. 그래서 독일군 예비 병력이 노르망디 전투 지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게다가 연합군 항공기의 기총 소사가 끊임없이 행군을 방해했기 때문에 그들의 도착은 한없이 늦어졌고, 소수의 병력이 간헐적으로 도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예비 병력을 투입할 수 있었던 곳에서도 독일군 내부의 망설임과 의견 충돌로 이동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히틀러는 연합군의 상륙지점은 정확히 예언했지만, D-데이 이후 연합군은 더 큰 규모의 2번째 침공을 센 강 동쪽에서 시도할 거라고 오판한 나머지 센 강의 서쪽으로 예비 병력을 이동하는 것을 좀처럼 허락하려 들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이미 노르망디에서 싸우고 있는 독일군이 너무 늦기 전에 새로운 방어선으로 질서 있게 후퇴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