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1970년대 전반에 걸친 이른바 '혁명의 시대'에 배출된 무수한 록 밴드 중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밴드는 대체 몇 개 정도나 될까? 영화 <우드 스톡>을 지금 다시 상영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흥분할 수 있을까?
결국 모든 것이 지나가 버렸다. 그 시절에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몸을 꿰뚫는 것만 같던 수많은 것들을 10년도 넘게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되돌아보니, 그것들은 단지 겉치레만 번지르르한 약속 따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요구했고, 그리고 주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그 결과 주어진 대부분의 것들은 유형을 따르게 되었다. 유형으로서의 문화를 공격해야만 할 반문화가 유형화되었다. 반 반 문화가 일어나고, 반반 반문화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혁명'은 끝이 났다.
만약 1969년이나 1970년에 세계 어딘가의 대도시(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 아니면 도쿄든)가 폼페이처럼 화산재에 묻혀 버렸더라면 그 유적지는 상당한 구경거리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광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화산 폭발이 일어나지 않은 채 모든 것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반문화라는 발상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유형화를 거부하려는 인간이란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가 없다. 왜냐하면, 그런 시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들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아빠진 사회에서는 유형 속에 이미 반유형이 포함되어 있고, 반유형 속에 이미 유형이 포함되어있다.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다. 남겨진 유일한 길은 갑작스런 역전을 인정하고 반어적으로 '유형의 왕'이 되는 것뿐이다.
그런 번잡한 사회 속에서 짐 모리슨은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소울 키친(soul kitchen) 속으로 돌아가 버렸다.
짐 모리슨은 1971년 7월 스물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도 이른 그의 죽음을 시대의 죽음과 겹쳐 생각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리슨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는 여러 사람이 죽었다. 지미 헨드릭스가 죽었고, 제니스 조플린이 죽었고, 존 콜트레인이 죽었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은 저마다 각기 다른 크기의 유적을 남겼다.
죽은 자를 칭송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젊어서 죽은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죽은 자는 배반하지 않고 반격도 하지 않는다. 나이도 먹지 않고,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지지도 않으며, 배도 안 나온다. 그들은 그저 조용히 완전하게 죽은 상태로 있을 뿐이다. 설령 당신이 그들이 죽음에 대해 신물을 내며 잊고 말았다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다. 단지 그대로 잊어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끝이다. 잊혔다고 해서 그들이 당신네 집 대문 앞에 와 문을 두드리지는 않는다. 그들은 암흑 속에서 단지 고요히 있을 뿐이다. 그렇다, 죽은 자를 칭송하는 일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온갖 생각을 뛰어넘어, 죽은 자를 칭송하며 그들의 흔적 주위를 맴돌기만 하는 꺼림칙함을 뛰어넘어, 짐 모리슨의 음악은 지금까지도 나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그가 남긴 레코드 중 정말 좋았던 서너 장의 음반은 그 이후에 나온 어떤 록뮤직 레코드보다도 훌륭하고, 독창적이며, 충격적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한테는 최고의 LP인 <더 도어즈>보다 전율적인 음반이 없고<스트레인지 데이즈>보다 아름답고 심플한 음반이 없으며 <L.A우먼>보다 황량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음반은 없다.
내가 처음 들었던 짐 모리슨과 더 도어즈의 레코드는 물론 <라이트 마이 파이어>였다. 1967년의 일이다. 1967년에 나는 열일곱 살이었고, 그때는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도 입시 학원에도 다니지 않고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록큰롤을 듣던 때다.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그 해에도 수많은 히트송이 나왔고, 그리고 사라졌다. 그러나 <라이트 마이 파이어>라는 곡만은 변함없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거칠기 짝이 없고 폭력적인 보컬과 전주의 주술적인 오르간 음색은 언제까지나 내 뇌리 속에 박혀 있었다. <마음에 불을 붙여라>라는 일본어 제목은 너무 부드럽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어디까지 '라이트 마이 파이어'였지 그 이외의 다른 것이 될 수 는 없었다.
Come on baby light my fire
Come on baby light my fire
Try to set the night on fire
자 그대, 나에게 불을 붙여줘
자 그대, 나에게 불을 붙여줘
이 밤을 확 불살라 버리지 않겠어?
나는 이 곡의 가사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우아하게'내 마음에 불을 붙여서'라던가 '온밤 내내 타오른다.'가 아니라 그것은 좀 더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이다. 그는 밤 자체에 혹은 육체 자체에 불을 붙이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묘하고 직설적인 감각이 바로 짐 모리슨 이라고 하는 록싱어의 생리다.
이 곡의 작사와 작곡은 대부분 기타를 맡은 로비 크리거가 했는데도 불구하고 짐 모리슨의 생리는 압도적이고 카리스마적으로 이 노래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 그건 짐 모리슨 이외의 가수가 노래하는 Light my fire 의 버전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호세 펠리아치노 라던가 스티비 원더, 그들의 노래는 해맑고 아름답다. 잘하면 누군가의 마음에 불을 붙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짐 모리슨 말고 대체 누가, 육체 그 자체에 직접 불을 붙일 수 있을 것인가? 믹 재거라 해도 그건 무리다.
나에게 있어서 Light my fire는 나에게 있어서의 1967년과 너무나도 강렬하게 연결되어 있다. 낡은 커튼처럼 잡아 뜯어서 1967년의 밤에 불을 붙일 수 없었다면 나는 꼭 그렇게 했을 것이다. 1967년은 그런 해였다.
짐 모리슨은 본질적으로 선동자였다. 그보다 더 평범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될 만큼 평범하고 우직한 군인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제임스(짐) 더글라스 모리슨은 록 싱어가 됨에 따라 부친을 상징적으로 살해하고, 모친을 상징적으로 범했으며, 자신의 과거를 불태워 버렸다. 데뷔 당시 그는 성장 배경을 묻는 말에 단지 '고아' 라고만 대답했다. 그는 스스로를 선동해서 짐 모리슨 이라는 이름의 신생아에게 신성한 혼을 부여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한 선동 없이는 짐 모리슨은 짐 모리슨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때문에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선동의 대가는 날마다 커져만 갔다. 마침내 더 이상 대가를 치를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 시절에 우리는 모두 짐 모리슨이었다. 짐 모리슨이 LSD와 코카인으로 자신의 머리를 선동하고 버본 위스키와 진으로 내장 기관을 선동하고 바지 지퍼를 열고 페니스를 꺼내 관중을 선동할 때 우리는 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공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짐 모리슨이 죽었을 때 우리 속의 짐 모리슨도 함께 죽었다. 존 레논도 믹 재거도 밥 딜런도 짐 모리슨이 남긴 빈자리를 이어받을 수 없었다. 20년이라는 세월도 그 공백을 메우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1971년에는 1983년 같은 해가 정말로 나에게 찾아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1983년은 실제로 아무런 감동도 없이 내 위로 내려왔고, 나는 지금도 짐 모리슨과 더 도어즈의 레코드를 듣고 있다. 나는 이제 서른 세 살이고, 여전히 밤에 불을 붙일 수 없다.
자 이제 문 닫을 시간이야
가야만 해
밤새도록 여기에 있고 싶어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 힐끔 쳐다보고
가로등은 공허한 불빛을 흔들고 있지
게다가 내 머리 속은
완전히 미쳐 버린 모양이야
이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뻔 하잖아
너의 소울 키친에서 하룻밤 자게 해줘
그 촉촉이 젖은 스토브로 나를 따뜻하게 해줘
짐 모리슨이 자신을 위해 준비한 '소울 키친'으로 사라지고 나서 12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스테레오 세트 주위에 살이 타는 냄새를 감돌게 한다. 그가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와서 문을 두드릴 것만 같다. 어이, 난 전설 따위가 아냐, 라고.
그래, 짐 모리슨은 결코 전설 따위가 아니다. 전설로도 짐 모리슨의 빈자리를 메울 순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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