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맥도날드가 죽었다.
로스 맥도날드의 죽음으로 한 흐름이 끝을 맺었다, 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여겨지며 죽어 갈 수 있음은, 작가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훈장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 반대가 될지도.
솔직하게 말해 만년의 로스 맥도날드의 작품은 일본에서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땅속의 사나이>를 발표하던 때가 절정이고, 그 이후에 나온 몇 권에 대해서는 '어째 모두 비슷비슷하지 않은가'란 의견을 표명하는 이들이 많았다. 소설적 장치는 늘 음습한 것이 꾸밈이 없고, 대개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관이 있는 얘기인데다, 류 아처 탐정은 나이를 더할 때마다 점점 추레한 늙은이처럼 돼가고, 기발한 액션도 없고, 유머의 수준도 챈들러 같은 작가에 비하면 담백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까닭에 모든 사람의 시선은 로스 맥도날드보다 훨씬 젊고 팔팔한 네오 하드보일드 작가한테로 향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선배 작가의 존재가 너무도 압도적이었다는 일면도 있다.
나는 류 아처를 주인공으로 하는 로스 맥도날드의 일련의 작품들을 몽땅, 꼬리 끄뎅이까지 좋아한다. 로스 맥도날드의 소설이 지니는 미덕은 그 부끄러움을 타는 듯한, 소심함과 성실함 속에 있다. 물론 결점도 그 안에 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을 다 뭉뚱그려서, 나는 로스 맥도날드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 영어 페이페 백 중의 한 권이 바로 이 로스 맥도날드의 <My Name is Archer>란 단편집이었다.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나는 아직 열일곱 살 정도에, 그 무렵엔 호레스 실버의 레코드를 몹시 좋아했다. 그래서 호레스 실버의 레코드를 들으며, 열심히 <My Name is Archer>를 읽었다.
잭 스마이트가 감독을 맡았던 저 불후의 명작 <움직이는 표적>이 개봉되었던 것도 그 무렵으로, 당시 나는 이 영화를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보았다. 류 아처역을 폴 뉴먼이 연기했다. 하긴 영화 속에서는 류 하퍼란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왜 아처가 아니고 하퍼인가 하면, <허슬러>, <허드>로 평판이 난 폴 뉴면이 이왕 하는 거라면 'H-'시리즈로 했으면 좋겠다고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이 워너 브러더스사의 영화 제목은 <HARPPER>가 되었다. 꾸며내기도 유분수라고 한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거야 어찌됐든 그 무렵 폴 뉴먼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이 <움직이는 표적>의 원작도 초기의 로스 맥도날드다운 짜릿짜릿한 수작이었지만, 나는 중기의 <줄무늬 영구차>라든가 <캬르톤 사건> 같은 작품을 굉장히 좋아한다. 어느 페이지를 들추어도 억제된 필치로, 사람들의 애달픈 인생살이가 절실하게 그려져 있다. 등장인물은 모두 어두운 색 모자라도 뒤집어 쓴 듯한, 분위기를 지니고, 각자 불행으로 이르는 여정을 하염없이 걷는다.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계속 살아가고 있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로스 맥도날드는 줄곧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캘리포니아에는 사계절의 변화가 없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라고 그가 어떤 소설 속에 썼다. '주의력이 부족한 인간이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라고.
나는 로스 맥도날드의 죽음을 진정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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