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콘도르

chocohuh 2013. 1. 24. 08:00

"7월 26일은 한 발자국도 집에서 나가지 마세요."

점쟁이는 말했다.

 

"그럼 손은 어떻게 합니까?"

나는 무서워서 조심스레 물어봤다.

"손?"

"문틈으로 손을 내밀지 않으면 신문을 꺼낼 수가 없어요."

"손은 상관없어요, 발을 내밀지 않으면."

"발을 내디디면, 음- 어떻게 된다는 말입니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져요."

"상상할 수 없는 일?"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개미핥기에라도 물립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당신이 이미 그것을 상상했으니까요."

"아-, 그래요."

특별히 점을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7월 26일에 나는 문을 꼭 걸어 잠그고는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하나하나 꺼내 먹었다. 도어즈의 LP 레코드판도 있는 대로 전부 틀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액운에 관해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에게 상상할 수 없는 액운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그것은 무의미했다. 어느 정도로 액운의 숫자를 줄였다고 생각되면 그 뒤에는 반드시 '나에게 상상할 수 없는 액운'이 또 남아있었다.

 

7월 26일은 매우 날씨가 좋았다. 태양은 대지를 활짝 내리쬐고 있었고 사람들의 발자국은 그 형이상학적인 부분까지도 적당히 대지위에 찍어내고 있었다. 가까운 풀장에서는 어린이들의 환호성이 들리고 있었다.

쭉 길게 잘 뻗은 이십오 미터의 풀장-.

아니, 거기에는 남미의 커다란 아나콘다 뱀이 몸을 숨기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아나콘다'라고 나는 노트에 썼다.

그리고 아나콘다의 가능성은 사라졌다. 조금 섭섭한 생각이 들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시계는 정오를 지나 태양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지고 이제 해질녘이 되었다. 테이블 위에는 열일곱 개의 빈 캔 맥주 통이 널려 있었고 또 스물한 장의 LP판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 어느 것에도 이미 철두철미하게 진절머리나 있었다.

 

일곱 시에 전화가 걸려왔다.

"술 먹으러 가요."

누군가가 말했다.

"안 돼요."

나는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에요."

"이쪽도 그래요."

'급성 알콜중독' 이라고 나는 노트에 쓰면서 전화를 끊었다.

 

열한시 십오 분에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그녀의 목소리였다.

"지난번 헤어진 뒤로 쭉 당신만을 생각했어요."

"응-."

"그래서 말인데요. 그때 당신이 말한 것, 이제 겨우 알 것 같아요."

"그래-."

"오늘 저녁 만나면 어때요?"

'성병과 임신'이라고 노트에 쓴 다음 전화를 끊었다.

 

열한시 오십오 분에 점쟁이한테 전화가 왔다.

"집에서 안 나갔지요?"

"물론입니다."

나는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묻겠습니다만 도대체 나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운이란 예를 들어 뭘 말합니까?"

"예를 들자면 콘도르 같은 거겠지요."

"콘도르?"

"콘도르에 대해 뭔가 생각해봤어요?"

"아니요."

나는 말했다.

 

"콘도르가 갑자기 나타나 당신의 등을 움켜쥐고는 하늘로 날아가 태평양 한가운데다 당신을 버릴지 몰라요."

"그렇습니까, 콘도르가?"

그리고 시계가 열두시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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