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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기묘한 인생을 강요당하는 유명인

chocohuh 2013. 1. 23. 09:30

때때로 바의 스탠드 같은 데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으면 옆 사람이 누군가에 대해서 하는 얘기를 듣게 되는 일이 있는데, 그런 얘기를 안 듣는 척 하면서 듣는 것도 퍽 재미있다. 소문의 대상은 내가 아는 유명인인 경우도 있고, 상사나 동료, 친구인 경우도 있는데 두 경우 다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가장 재미없는 것은 누군가를 칭찬하는 얘기로, "저기, 아무개 말이야, 그 사람 참 대단해. 재능이 있어" 따위의 이야기가 나오면 이쪽도 따분해져서 '빨리 험담이나 하지' 하고 바라게 된다. "그 자식 바보라니까, 진짜 멍청하다고. 완전히 구제 불능이야" 하고 나오게 되면, 어차피 남의 일이니까 이쪽은 유쾌하기 짝이 없다.

 

몇 년 전에, 요코하마에 있는 '스톡'이란 재즈 클럽의 스탠드에서 한잔 마시고 있자니 옆자리에 앉은 샐러리맨인 듯 한 젊은 두 사내가 줄곧 신교지 기미에(역주: 여배우) 얘기를 하기에, 또 여느 때처럼 귀를 기울이고 있었더니, 느닷없이 "저기 말이야, 무라카미 하루키란 작가 있잖아? 그 사람 말이야" 하는 얘기로 바뀌어 그 다음은 듣지도 않고 허둥지둥 나와 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신교지 기미에 얘기에서 아무런 맥락도 없이 내 얘기로 옮겨 갈 수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그럴 때는 정말 난감하다. "그러면, 신교지 기미에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다른 것에 대해 얘기해 보세", "뭐가 좋을까?", "소설 얘기나 하지", "젊은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뭐 읽은 거 있나?", "그러고 보니까"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 나도 일단 경계 태세를 취할 수 있어 괜찮지만, 목구멍 밑에서 바로 위가 시작되는 식으로 화제를 바꾸니, 그만 온더록 잔 가장자리에다 코를 부딪치는 일이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아주 드물긴 하지만 안면이 없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나는 텔레비전에 출연을 하지 않으니 극히 드문 정도에 그치지만, 늘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참 고역일 것이다. 잡지에 사진 정도 가 실리는 거라면 실물을 만나도 의외로 알아보지 못하지만, 텔레비전이라는 것은 무척 생생하게 비추기 때문에 힘들 것 같다. 그런 이유로 해서 나는 절대 텔레비전에는 출연하지 않는다. 가끔 텔레비전 출연 의뢰가 들어오지만, "인형 옷을 입고 출연해도 괜찮으시다면 나가겠습니다."라고 농담을 하면, "그래도 좋으니까 나와 주세요." 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다. 하기야 당연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나와 친분이 있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도 한번 텔레비전에 나갔다가 그 뒤로 여러모로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이튿날 쉴 새 없이 전화가 걸려 오고,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서 "텔레비전에 나오셨지요." 하는 인사치레를 들었다고 한다. 텔레비전이라는 건 굉장히 무섭다. 뭐니 뭐니 해도 문예지가 제일이다. 문예지에 소설을 쓴다고 해서 전화가 걸려 오는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언젠가 한번은 진구 구장 외야석에 앉아 혼자 맥주를 마시며 야쿠르트 대 주니치전을 보고 있는데, 한 여자가 다가와 "무라카미 씨, 사인 좀 해주세요." 했다. 나는 진구 구장 외야 우익 석에 오는 여자에게는 대체로 호감을 품고 있으므로 "좋아요" 하자, 그 여자는 "저기, 힘내라 야쿠르트 스왈로즈 라고 써주시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을 비교적 좋아한다.

 

소부센 전철 안에서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가 말을 걸어 온 적도 딱 한 번 있다. 그럴 때는 나는 그저 긴장해서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타입이라 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대단히 미안할 따름이다. 게다가 전철 안에서 말을 걸어오면 주위 사람들도 힐끔힐끔 쳐다봄으로 무지하게 부끄럽다. 야쿠르트 대 주니치 전 때처럼 텅텅 비어 있으면 나도 마음이 편하겠지만.

 

아카사카에 있는 베르비라는 패션 빌딩의 대기실 의자에 부루퉁한 얼굴로 앉아 있을 때에(아내의 쇼핑 시간이 너무나 길어져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 온 적도 있다. 이때는 젊은 남자로, "무라카미 씨,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십시오."라고 하기에, 나도 모르게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이쯤 되면 <프로야구 뉴스>의 인터뷰 같다.

 

내친김에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면, 롯폰기에서 젊은 커플이 말을 걸어 온 적도 있다. 오차노미즈의 메이지 대학 앞과 신주쿠에 있는 이세탄 백화점 2층, 후지사와의 세이부 백화점과 오타루의 길모퉁이에서도 한 번씩. 오타루에서 만난 사람의 말에 따르면, 홋카이도에서는 내 책이 비교적 많이 읽히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오타루 역 앞의 상점가에서 나 같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데는 정말 감탄하고 말았다.

 

그런 연유로 해서 하나 둘 꼽아 보면, 소설을 쓰기 시작한지 6년 동안 거리에서 안면 없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 온 것은 전부 여덟 번이다. 대개 1 년에 한 번 남짓한 비율인데, 이 '말을 걸어 온 빈도'가 나 같은 일에 종사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많은 수치인지 적은 수치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옛날에 모 가수가 살고 있는 맨션 옆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이 차에서 현관까지의 10여 미터 거리를 전력 질주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 필시 팬들에게 붙잡히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심야 한시가 지난 주위에 사람 그림자라곤 하나도 없을 때조차도 그렇게 하는 거였다. 유명인이란 상당히 기묘한 인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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