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가노 크레타

chocohuh 2013. 1. 11. 10:03

내 이름은 가노 크레타, 언니 가노 마루타의 일을 거들고 있다. 물론 나의 진짜 이름은 가노 크레타가 아니다. 이 이름은 언니의 일을 거들 때만 쓴다. 즉 업무상의 이름이다.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가노 다키라는 본명을 사용한다. 내가 크레타라고 이름을 대는 까닭은, 언니가 마루타라고 이름을 대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크레타 섬에 가 본 일이 없다. 가끔 지도를 바라본다. 크레타는 아프리카에 가까운 그리스의 섬이다. 개가 입에 물고 있는 뼈다귀처럼 울퉁불퉁 길쭉한 꼴을 하고 있고, 유명한 유적이 있다. 크놋소스 궁전이다. 젊은 영웅이 미로를 무사히 빠져나와 여왕을 구해내는 이야기. 만약 크레타 섬에 갈 길이 생긴다면 꼭 거기에 가보려고 한다.

 

내 일은 물의 소리를 듣는 언니를 거드는 것이다. 나의 언니는 물의 소리를 듣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몸을 채우고 있는 물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이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재능도 필요하고, 훈련도 필요하다. 아마 일본에서는 언니밖에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언니는 그 기술을 아주 오랜 옛날 마루타 섬에서 습득했다. 언니가 수행을 하던 장소에는 알렌 긴즈버그도 왔었고, 키스 리처드도 왔었다. 마루타 섬에는 그런 특별한 장소가 있다. 그 장소에서 물은 아주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언니는 그 곳에서 몇 변이나 수행을 하였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와, 가노 마루타란 이름으로, 사람의 몸속을 흐르는 물의 소리를 듣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산 속에 오래된 집 한 채를 빌려 생활하고 있다. 지하실도 있다. 언니는 지하실에 일본 각지에서 운송되어 온 수 십 종류의 물을 진열해 놓고 있다. 물은 도기 물 항아리에 담겨 있다.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물을 보존하기에는 지하실이 가장 적합하다. 내 일은 그 물을 깨끗하게 보존하는 것이다. 쓰레기가 떠 있으면 떠내고, 겨울에는 얼음이 얼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여름에는 벌레가 끼지 않도록 한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건축 도면을 그으며 지낸다. 언니를 찾는 손님이 오거나 하면 차를 대접하기도 한다. 언니는 지하실에 보존하고 있는 물 항아리 하나하나에 매일 귀를 갖다 대고, 그들이 발하는 미미한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 물들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이다. 언니는 나한테도 물의 소리를 듣도록 하였다. 나는 눈을 감고, 온 몸의 신경을 귀로 집중시킨다. 하지만 내게는 물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필경 내게는 언니만큼의 재능이 없는 것이리라.

 

우선 물 항아리의 물소리를 들어. 그러면 머지않아 사람 몸의 물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되니까, 라고 언니는 말한다. 나도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아주 어렴풋하게 들린 듯 하다고 생각하는 적도 있다. 아주 멀리에서 문득 무언가가 움직인 듯 한 기척을 느낀다. 조그만 벌레가, 두세 번 날갯짓을 한 듯 한 소리가 들린다. 들렸다기보다는 공기가 아주 미미하게 흔들렸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그 미미한 흔들림마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숨바꼭질을 하듯 마루타는 내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한다. <너 같은 인간이야말로, 몸속의 물소리를 반드시 들어야할 필요가 있어>라고 마루타는 말한다. 왜냐하면 나는 문제를 껴안고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네가 그 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말이야>라고 마루타는 말한다. 그리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만약 네가 그 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문제는 해결된 거나 다름이 없어>라고 마루타는 말한다. 언니는 진정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분명 문제를 갖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문제를 도저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남자들은 나를 보면 반드시 범하려고 한다. 그 누구든 나를 보면 바닥에 넘어뜨리고, 혁대를 푸는 것이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옛날부터 죽 그렇다.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내내 그렇다.

 

나는 과연 자신을 미인이라고 생각한다. 몸매도 멋지다. 가슴은 크고, 허리에는 탄력이 있다. 거울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도 섹시하다고 생각한다. 거리를 걷고 있으면 남자들이 모두 입을 헤 벌리고 나를 본다. <그렇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미인들이 하나같이 강간을 당하는 것을 아니잖아>라고 마루타는 말한다. 언니의 말 대로라고 생각한다. 그런 황당한 일을 당하는 것은 나뿐이다. 아마 내게도 책임은 있을 것이다. 남자에게 그러고 싶은 기분이 생기는 것은 내가 주뼛 쭈뼛거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두들 그런 나를 보고 답답해져 저도 모르게 범하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연유로, 아무튼 지금까지 수많은 종류의 남자들이 나를 범했다. 억지로 폭력적으로 범하는 것이다. 학교 선생을 비롯하여, 동급생들, 가정교사, 외숙부, 가스 요금을 받으러 온 남자, 이웃집에 난 불을 끄러 왔던 소방사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그런 일을 피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 나는 칼에 찔리기도 하고, 얼굴을 얻어맞기도 하고, 호스로 목을 졸리기도 하였다. 그런 식으로 몹시 폭력적으로 강간을 당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 전부터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다. 그런 일을 계속 당하고 있다간, 나는 언젠가 살해당하고 말 것이다. 나는 언니 마루타와 도회지를 떠나 산 속에 파묻혀, 지하실에 있는 물 항아리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딱 한 번 나를 범하려 한 상대방을 죽인 일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죽인 것은 언니다. 그 남자 역시 나를 범하려 하였다. 이 지하실에서. 그 남자는 경찰이었다. 그는 무슨 조사를 하러 우리 집에 왔는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일초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자리에서 나를 넘어뜨리고는 내 옷을 북 북 찢더니, 자기의 바지를 무릎까지 내렸다. 피스톨이 달그락 딸그락하는 소리를 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으니까 날 죽이지 말아요, 라고 나는 벌벌 떨면서 말했다. 경찰은 내 얼굴을 때렸다. 그런데 그 대 마침 언니가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수상쩍은 소리를 눈치 채고는, 큼지막한 발을 한 손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그 발로 힘껏 경찰관의 뒷머리 통을 내려쳤다. 무언가가 움푹 패는 듯 한 퍽 하는 소리가 나고, 경찰관을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언니는 부엌에서 부엌칼을 가지고와 그것으로 생선의 배를 가르듯 경찰관의 목을 주저 없이 갈랐다. 쓰윽 소리도 없이 경관의 목이 잘리고 말았다. 언니는 칼을 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언니가 간 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잘린다. 나는 경악하여 그런 언니를 보고 있었다.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왜 목을 자르느냐고?>라고 나는 소리 질렀다. <일단 이렇게 해 두는 편이 좋아. 뒤탈이 없고. 상대방은 경찰이니까 말이지. 귀신이 되어 안 나타나란 법도 없고>라고 마루타는 대답했다. 언니는 아주 현실적으로 매사를 처리한다. 꽤나 피가 많이 나왔다. 언니는 그 피를 한 물 항아리에 담았다. <피를 빼 두는 게 최선이야>라고 마루타는 말한다. <이렇게 해 두면 뒤탈이 없으니까>.

우리는 피가 전부 빠질 때까지 부츠를 신은 경관의 다리를 들어 몸을 거꾸로 세우고 있었다. 덩치가 큰 남자라, 다리를 들고 몸을 받치고 있기에는 상당히 무거웠다. 마루타가 힘이 세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남자처럼 몸집이 크고, 힘이 센 것이다. <남자들이 그렇게 너를 덮치는 것은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마루타는 다리를 잡을 채 말했다. <네 몸 속의 물 탓이야. 네 몸은 그 물에 맞지 않아. 그래서 모두들 그 물에 이끌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야>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 물을 몸 밖으로 내쫓을 수가 있지?>라고 나는 물었다. <나, 언제까지 이렇게 사람 눈을 피해 숨어 살 수는 없어. 이런 식으로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아>.

 

나는 사실을 바깥 세계로 나가 살고 싶었다. 나는 일급 건축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나는 통신 교육을 통해 그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자격증을 딴 후에는, 여러 가지 도면 콩쿠르에 응모하여, 상을 몇 번 받기도 하였다. 나의 전문 분야는 화력 발전소를 설계하는 것이다. <서둘러서는 안 돼. 귀를 기울려. 그러면 언젠가는 답이 들릴 테니까>라고 마루타는 말했다. 그리고는 경찰관의 다리를 털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피를 항아리에다 떨어뜨렸다. <그건 그렇고, 우리는 경찰관을 한 명 죽였어. 어떻게 하면 좋지? 들키면 큰일이잖아?>라고 나는 말했다. 경찰을 살해했다는 것은 중죄다. 사형을 받을 수도 있다. <뒤뜰에 묻어버리자>라고 마루타는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목이 잘린 경찰관을 뒤뜰에 묻었다. 피스톨도 수갑도 부츠도 모두 묻어버렸다. 구멍을 파고, 사체를 운반하는 일도, 구멍을 메우는 일도 전부 마루타가 하였다. 마루타는 믹 재거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고잉 투 어 고 고>>를 부르며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사체를 묻은 후 우리는 흙을 꼭꼭 밟고, 그 위에다 낙엽을 흩뿌려 놓았다. 물론 지방 경찰서는 철저하게 조사를 하였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실종된 경찰관을 수색하였다. 우리 집에도 형사가 찾아왔다.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실마리는 잡히지 않았다. <걱정 마, 들킬 리가 없으니까>라고 마루타는 말했다. <목을 잘라 두었고, 피도 다 뺐고. 괘 깊은 구멍에 파묻었으니>. 그래서 우리는 안심하며 한 숨을 돌렸다. 그러나 그 다음 주부터 우리가 죽인 경찰관의 유령이 집안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경찰관의 유령은 바지를 무릎께까지 내린 채 지하실을 오락가락하였다. 피스톨이 딸그락딸그락하는 소리를 내었다. 어째 볼상 사나운 꼴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어떤 꼴을 하고 있건 유령은 유령이다. <이상하네, 귀신이 되어 나타나지 않도록 분명히 목을 잘랐는데>라고 마루타는 말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 유령이 무서웠다. 그렇지 않은가. 그 경찰을 죽인 것은 우리들이다. 그래서 나는 언니 침대로 파고 들어가 벌벌 떨면서 잠을 잤다. <무서워 할 것 없어, 유령은 아무 짓도 할 수 없으니까. 목을 틀림없이 잘라 두었고, 피도 다 뺐어. 자지도 세울 수 없다고>라고 마루타는 말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나는 유령의 존재에 익숙해졌다. 경찰 유령은 잘린 목을 뻐끔 뻐끔거리며 그저 왔다 갔다 할 뿐, 다른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걸어 다닐 뿐이다. 익숙해지고 나면, 딱히 무서울 것도 없다. 이미 나를 범하려 하지도 않는다. 피도 없고, 나를 범할 수 있을만한 힘도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공기가 구멍으로 쉭쉭 빠져나가 전혀 헛수고다. 과연 언니가 말한 대로였다. 잘라 두면 뒤탈이 없는 것이다. 나는 가끔 일부러 옷을 벗고 몸을 비비꼬며 그 경찰 유령을 자극해 보기도 하였다. 가랑이를 벌려 보이기도 하였다. 이상한 몸짓도 하여 보았다. 자신이 언제 그런 몸짓을 할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징글맞은 포즈를 취해 보기도 하였다. 아주 대담하게. 하지만 유령은 이미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 일로 나는 굉장한 자신감을 얻었다. 나는 벌벌 떨기를 그만두었다.

<나는 이제 벌벌 떨지 않아. 아무도 무섭지 않아. 아무한테도 치욕적인 일을 당하지 않아>라고 나는 마루타에게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라고 마루타는 말했다. <하지만 너는 그래도 자신의 몸의 물소리를 들어야만 해.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어느 날 전화가 걸려 왔다. 새로이 건축할 계획이 서 있는 화력 발전소의 설계를 해 보지 않겠느냐는 권유였다. 그 일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새 화력 발전소의 도면을 몇 가지나 그려본다. 나는 바깥 세계로 나가, 마음껏 화력 발전소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너 밖으로 나가면 또 몹쓸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 라고 마루타는 말한다. <그렇지만, 난 해보고 싶어>라고 나는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어. 이번에는 잘될 것 같은 기분이야. 이제 나는 벌벌 떨지 않잖아.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마루타는 고개를 저으며, 할 수 없군,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심해.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라고 마루타는 말한다.

 

나는 바깥 세계로 나갔다. 그리고 화력 발전소를 몇 개나 설계했다.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세계에서 제 일인자가 되었다. 내게는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만드는 화력 발전소는 독창적이고, 견실하고, 그리고 고장 하나 없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평판이 아주 좋았다. 누군가가 화력 발전소를 만들려고 할 때는 반드시, 내게 설계를 요청하였다. 나는 금방 부자가 되었다. 나는 도시의 가장 좋은 장소에 있는 빌딩을 한 채 고스란히 사 들여, 그 빌딩 이층에서 살았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경보 장치를 부착하고, 각 방에는 전자 열쇠를 달고, 고릴라 같은 게이 보디가드를 고용했다. 그렇게 나는 우아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였다.

 

그 남자가 찾아올 때까지는

 

무지하게 덩치가 큰 남자였다. 불타오르는 듯 한 푸른 눈의 사나이였다. 그는 모든 경보 장치를 떼어내고, 자물쇠를 짓뭉개고, 보디가드를 때려눕히고, 내 방문을 발로 걷어차 부서뜨렸다. 나는 그 앞에 서서 벌벌 떨지는 않았지만 남자는 내가 어떠하든 아무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내 옷을 북 북 찢고, 바지를 무릎까지 내렸다. 그리고는 나를 있는 힘을 다해 범하고서는 내 목을 나이프로 갈랐다. 아주 잘 드는 칼이었다. 그것은 마치 따끈한 버터를 자르듯 내 목을 싹둑 자르고 말았다. 너무도 매끈하게 잘 드는 칼이라, 나는 자신의 목이 잘리고 있다는 것조차 잘 감지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둠이 찾아왔다. 어둠 속에서 경찰관이 걸어 다녔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 하였지만 목이 잘려 있어 공기가 쉬익 하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자신의 몸을 흐르는 물의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 정말 들렸다. 작은 소리지만, 그것은 분명히 들렸다. 나는 나 자신의 몸속으로 내려가, 그 벽에 살며시 귀를 대고, 똑 똑 떨어지는 희미한 물소리를 들었다. 래롯프 래롯프 리롯프. 래롯프 래롯프 리롯프 내 이름은 가노 크레타.

'무라카미하루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필깎이  (0) 2013.01.11
춤추는 난쟁이  (0) 2013.01.11
타임머신  (0) 2013.01.10
텐트  (0) 2013.01.10
가난한 아줌마  (0) 2013.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