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춤추는 난쟁이

chocohuh 2013. 1. 11. 10:04

꿈속에서 난쟁이가 나타나서 나에게 '춤추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피곤했기 때문에 '미안합니다만 피곤해서 춤을 출 수 없습니다.'라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난쟁이는 그런 거절에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난쟁이는 혼자서 춤을 추었다. 난쟁이는 땅 위에 휴대용 플레이어를 놓고, 레코드를 바꾸어 가면서 춤을 추었다. 레코드는 플레이어 둘레에 잔뜩 쌓여 있었다. 난쟁이는 한 번 올려놓았던 레코드를 레코드 재킷에 넣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어떤 레코드가 어떤 레코드 재킷에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결국은 되는대로 처넣어 버리게 되었다. 덕분에 그렌밀러 오케스트라의 레코드 재킷에 롤링 스톤즈의 레코드가 들어가거나, 라벨의[다후니스트와 크로에 조곡]의 재킷에 미치 밀러 합창단의 레코드가 들어갔다.

그러나 난쟁이는 그런 일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난쟁이는 지금 [기타음악 명곡집]이라는 재킷에 들어 있던 찰리 파커의 레코드에 맞추어 춤추고 있었다. 난쟁이는 마치 바람과도 같이 춤을 추었다. 나는 포도를 먹으며 난쟁이의 춤을 바라보았다.

난쟁이는 춤을 추면서 꽤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난쟁이가 머리를 흔들면 땀이 사방으로 튀었고, 손을 흔들면 손끝에서 땀이 넘쳐 나왔다. 그렇지만 난쟁이는 쉬지 않고 계속 춤을 추었다. 레코드가 끝나면 나는 포도가 든 사발을 내려놓고 새로운 레코드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난쟁이는 춤을 추었다.

 

"너는 춤을 정말 잘 추는구나." 나는 말을 걸었다.

"마치 음악 그대로인 것 같아."

"고마워." 난쟁이는 나를 보고 말했다.

"언제나 그렇게 춤을 추니?" 나는 물어보았다.

"그렇지 뭐." 난쟁이는 말했다.

 

그리고 난쟁이는 발끝을 세우고 뱅그르르 한 바퀴 능숙하게 돌았다. 치렁치렁한 탐스럽고 부드러운 머리칼이 바람에 날렸다. 매우 훌륭했기 때문에 나는 박수를 쳤다. 난쟁이는 정중하게 절을 했고 음악도 거기서 끝났다. 난쟁이는 춤추기를 그만두고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레코드의 바늘이 톡톡 같은 곳을 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바늘을 들어 턴테이블을 정지시켰다. '말하자면 길어지는데'라고 난쟁이는 말하고 흘끗 나의 얼굴을 보았다.

 

"너 별로 시간이 없는 모양이구나."

나는 손가락으로 포도를 집어먹으면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망설였다. 시간은 엄마든지 있지만 난쟁이의 긴 개인적인 얘기를 듣는 것도 좀 싫었고, 게다가 이건 꿈이었다. 꿈같은 건 그렇게 오랜 시간 꾸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 깨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난 북쪽에서 왔어."

난쟁이는 나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지껄이기 시작했고 손으로 톡 소리를 내었다.

"북쪽의 사람들은 아무도 춤을 추지 않아. 누구도 춤추는 것을 몰라. 춤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지. 그렇지만 나는 춤추고 싶었어. 발을 디디고, 손을 돌리고, 머리를 흔들며 빙그르르 돌고 싶었어. 이렇게 말이야."

 

난쟁이는 발을 디디고, 손을 돌리고, 머리를 흔들며 빙그르르 돌았다. 주의 깊게 보니 발을 디디는 것과 손을 돌리는 것과 머리를 흔드는 것과 빙그르르 도는 것이 마치 빛이 퍼지는 것처럼 일제히 몸에서 분출되었다. 하나하나의 동작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지만 모두가 하나가 되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우아함 움직임이 되었다.

"이렇게 춤추고 싶었어. 그래서 나는 남쪽으로 왔지. 남쪽으로 와서 무용수가 되었고 술집에서 춤을 추었어. 나의 춤이 소문이 나고 황제의 앞에서도 춤을 춘 적이 있어. 물론 그건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이야기지만, 혁명이 일어나고, 너도 알겠지만 황제가 죽고 나도 거리로 쫓겨났지. 그리고 숲속에서 살 게 되었어."

 

난쟁이는 다시 광장의 가운데로 가서 춤추기 시작했다. 나는 레코드를 올려놓았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오래된 레코드였다. 난쟁이는 시내트라의 목소리에 맞추어 [나이트 앤드 데이]를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나는 황제의 앞에서 춤추는 난쟁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아름다운 여자 하인들, 신기한 과일과 근위대의 창, 살찐 환관, 보석이 잔뜩 박힌 가운을 몸에 걸친 젊은 황제,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춤을 추는 난쟁이……. 그런 광경을 상상하고 있으려니까 어딘가 먼 곳에서부터 아직도 혁명의 포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난쟁이는 춤을 계속 추었고, 나는 포도를 먹었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숲의 그림자가 대지를 덮었다. 새만큼 크고 거대한 검은 나비가 광장을 가로질러 숲의 한쪽 구석으로 사라져갔다. 공기가 차가워졌다. 나도 이제 사라질 때가 되었다.

"슬슬 가야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나는 난쟁이에게 말했다.

난쟁이는 춤추는 것을 그만두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춤을 보여줘서 고마워. 아주 재미있었어." 내가 말했다.

"뭐 별로." 난쟁이가 말했다.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르지만. 잘 지내." 나는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난쟁이는 그렇게 말하고 머리를 저었다.

"어째서?" 나는 물었다.

"너는 다시 이곳에 오게 될 거야. 여기 숲에 살면서 매일 나와 춤을 추는 거야. 그때쯤이면 너도 춤을 아주 잘 추게 될 거야."

"왜 내가 여기에 살아야 하고, 너와 함께 춤을 추어야 하지" 나는 좀 놀라서 물었다.

"정해져 있는 일이야." 난쟁이는 말했다.

"누구도 그걸 바꿀 수는 없어. 그러니까 너와 나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난쟁이는 이렇게 말하고 물끄러미 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어둠이 밤의 물처럼 난쟁이의 몸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자 그럼." 난쟁이는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등을 보이면서 다시 혼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나 혼자뿐이었다.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흠뻑 땀에 젖어 있었다. 창 밖에는 새의 모습이 보였다. 새는 평소에 보던 것과 달라 보였다.

나는 정성을 다해 얼굴을 씻고, 수염을 깎고, 빵을 굽고, 커피를 끊였다.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공장에 갔다.

공장에서는 코끼리를 만들고 있었다. 물론 한꺼번에 코끼리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공장은 여러 공정으로 나뉘어져 공정별로 다르게 색을 칠하고 있었다.

 

이번 달 나는 귀를 만드는 공정을 맡았기 때문에 천장과 기둥이 노란 건물 안에서 일하고 있었다. 헬멧과 바지도 노란색이었다. 나는 거기서 코끼리의 귀를 만들고 있었다. 지난달에는 녹색 건물 안에서, 녹색 헬멧을 쓰고, 녹색 바지를 입고 코끼리의 머리를 만들었다. 코끼리의 머리를 만드는 것은 매우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분명히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라는 기분은 가지게 해 주었다. 거기에 비해 귀를 만드는 것은 정말 편한 일이었다. 손쉽게 얇은 귀를 만들고 주름살을 덧붙이면 하나가 완성되었다. 그래서 귀 공정을 맡을 때에는 '귀 휴가를 간다.' 라고 말했다. 한 달 '귀 휴가'를 보내고 난 뒤 나는 코를 만드는 공정을 하게 된다. 코를 만드는 것은 세밀한 신경을 써야 하는 작업이었다. 코가 보기 좋게 구불구불 움직이고 콧구멍이 잘 뚫려 있지 않으면 완성된 코끼리가 화를 내 난폭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코를 만드는 것은 매우 신경이 쓰이는 작업이었다.

 

덧붙여 말해 두면, 우리가 아무 것도 없이 코끼리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들은 코끼리를 증식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한 마리의 코끼리를 붙잡아서 톱으로 귀와 코와 머리와 몸통 그리고 다리와 꼬리를 절단하여, 그것들을 잘 짜 맞추어 다섯 마리의 코끼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 만들어진 코끼리는 몸의 오분의 일만이 진짜였고, 나머지는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얼핏 보아서는 알 수 없으며 코끼리 자신도 몰랐다.

우리들은 그 정도로 코끼리를 잘 만들었다. 어째서 이렇게 인공적으로 코끼리를 만드는가―아니면 증식시키는가―하는 이유는 우리들이 코끼리보다 성격이 급하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코끼리에게 맡겨두면 코끼리는 사 오년에 한 마리밖에 새끼를 낳지 않았다.

 

우리들은 코끼리를 매우 좋아해서 코끼리의 그런 습관이나 습성을 보고 있노라면 애가 탔다. 그래서 우리들은 손으로 직접 코끼리를 증식시키기로 한 것이었다.

증식한 코끼리는 악용되지 않도록 일단 코끼리 공급공사에 팔아넘기면 반달 간 거기에서 엄중한 기능 검사를 받았다.

검사가 끝나면 발뒤에 공급회사의 낙인을 찍어 정글로 보냈다. 우리들은 통상 1일에 열다섯 마리의 코끼리를 만들었다. 크리스마스를 즈음한 시즌에는 기계를 전부 가동해서 최고 스물다섯 마리까지 만들 수도 있었지만, 나는 열다섯 마리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귀를 만드는 공정은 코끼리 공장 내의 일련의 공정 가운데 가장 편안한 곳이었다. 힘도 들지 않고, 세심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며, 복잡한 기계도 사용하지 않았다. 만들어야 하는 양도 적었다. 하루 종일 천천히 놀면서 일을 해도 되고, 아니면 오전 중에 열심히 일해 작업량을 채우고 오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와 나의 짝은 둘 다 축 늘어져서, 일하는 것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아침에 일을 마치고 오후에는 세상 이야기를 하거나, 책을 보거나, 그때그때 맞추어 시간을 보냈다. 그날 오후도 우리들은 주름까지 끝낸 열 개의 귀를 벽에 죽 걸어놓고 바닥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나는 꿈에서 본 춤추는 난쟁이에 대해 그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꿈에서 본 정경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작은 내용까지 모두 설명했다. 말로 부족한 것은 실제로 머리를 흔들어 보이거나, 손을 흔들거나, 발을 세우거나 해서 보여주었다. 그는 차를 마시면서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듣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다섯 살 연상으로 몸집은 탄탄하였고 수염이 무성한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기는 버릇이 있었다. 얼굴 생김새 덕분에 얼핏 보면 신중하게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제는 그렇게까지 생각을 깊게 하지는 않았다. 대개의 경우는 잠시 그렇게 있다가 둔중하게 몸을 일으키며 '어려운데'라고 불쑥 한 마디 던질 뿐이었다. 이번에도 그는 나의 꿈 이야기를 다 들은 다음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는 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동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전기 풀무의 배전반을 걸레로 닦고 있었다. 잠시 후에 그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몸을 둔중하게 일으키며 '어려운데'라고 말했다.

 

"난쟁이, 춤추는 난쟁이…….어려운데."

나도 확실한 대답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나는 전기 풀무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이미 식어버린 차를 마셨다. 그러나 그로서는 드물게, 그 후에도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왜 그래요?" 나는 물어보았다.

"어디선가 난쟁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듯해서." 그는 말했다.

"그래요?" 나는 조금 놀라서 말했다.

"기억은 있는데 어디에서 들었는지 생각이 안 나."

"생각해 보세요."

"그래." 그는 다시 심각한 생각에 빠졌다.

그가 겨우 난쟁이의 일을 생각해 낸 것은 세 시간이나 지나서였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그래!" 그는 말했다.

"그래 이제야 생각났다."

"제6공정에 식모공 할아버지가 있잖아? 왜 그러니까, 하얗게 센 머리칼이 어깨까지 내려오고, 이빨이 별로 남지 않은 할아버지 말이야. 혁명 전부터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예, 알아요." 나는 대답했다.

그 노인이라면 술집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할아버지가 꽤 오래 전에 그 난쟁이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한 적이 있어. 춤을 아주 잘 추는 난쟁이의 이야기였어. 그때는 늙은이가 엉터리로 지어낸 이야기겠지 라고 생각하고 별로 귀 기울여 듣지 않았지만, 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완전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였어요?" 나는 물어보았다.

그는 팔짱을 끼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이 잘 나지 않는데……. 역시 네가 그 할아버지를 만나서 직접 듣는 것이 좋을 거야."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는 일을 끝내는 종소리가 나자 바로 제6공정소에 가보았지만, 이미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자아이 둘이서 바닥을 쓸고 있을 뿐이었다.

마른 쪽의 여자아이가 '할아버지라면 아마 낡은 술집에 있을 거예요'라고 가르쳐 주었다. 술집에 가보니 노인이 있었다. 그는 카운터에 앉아서, 도시락 주머니를 옆에 두고, 등을 곧게 세우 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곳은 매우 낡은 술집이었다. 아주 낡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혁명 전부터, 술집은 여기에 있었다. 몇 대에 걸쳐서 코끼리 만드는 노동자들이 여기에서 술을 마시고, 카드놀이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벽에는 코끼리 공장의 옛날 사진이 죽 걸려 있었다. 초대 사장이 상아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공장을 방문한 옛날 그 옛날의 여자 영화배우들의 사진이라든지, 여름 밤 무도회의 사진이라든지, 뭐 그런 것들이었다. 그러나 황제나 그외 황제를 찍은 사진 내지는 제정 적이라고 인정되는 사진은 전부 혁명군에 의해 불타버렸다. 그리고 당연히 혁명에 대한 사진이 있었다. 코끼리 공장을 점거한 혁명군의 사진, 공장장을 묶은 혁명군의 사진…….

 

노인은 [상아를 닦고 있는 세 명의 소년직공]이라는 제목이 붙은, 색이 바란 낡은 사진 아래에 앉아 메카토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하고 옆자리에 앉자 노인은 사진을 가리키며 낮게 말했다.

"이게 나야." 나는 골몰히 사진을 쳐다보았다. 세 명이 나란히 상아를 닦고 있는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열 두세 살 정도의 소년이 아마도 노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인 것 같았다. 말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알아 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듣고 보니 우뚝 선 코와 바싹 붙어 있는 입술에 특징이 있었다. 어쩌면 이 노인은 언제나 이 사진아래 앉아 낯선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이게 나야'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상당히 낡은 사진이군요." 나는 상대를 유인했다.

'혁명 전이야'라고 노인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말했다.

"혁명 전에는 나도 이렇게 작은 어린애였어. 누구나 나이를 먹지. 당신도 얼마 되지 않아 나처럼 될 거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절반 정도 이빨이 빠진 입을 크게 벌리고 침을 튀기면서 쓸쓸한 모습으로 웃었다. 그리고 노인은 혁명이 일어났을 때에 대해서 한바탕 이야기했다. 노인은 황제도 혁명군도 싫어했다. 노인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는 짬을 봐서 메카토르 술을 사고는, 혹 춤추는 난쟁이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을 꺼내 보았다.

"춤추는 난장이라고." 노인이 말했다.

"춤추는 난쟁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듣고 싶습니다." 나는 말했다. 노인은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어째 서지?"

"다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생겼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노인은 아직도 내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술 취한 사람 특유의 흐리멍덩한 눈으로 되돌아갔다.

"좋아."그는 말했다.

"술도 사 주었으니, 말해 주도록 하지. 그러나" 노인은 내 얼굴 앞에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돼. 혁명이 일어나고 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춤추는 난쟁이 이야기만은 아직도 금지되어 있어.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돼. 내 이름은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술을 주문하고 좌석을 옮기도록 하지."

 

나는 메카토르 술을 두 병 주문하고, 바텐더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테이블로 옮겼다. 테이블 위에는 코끼리 모양을 한 녹색의 스탠드가 놓여 있었다.

"혁명전의 일이었지, 북쪽에 있는 나라에서 난쟁이가 왔어." 노인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쟁이는 능숙하게 춤을 추었지. 아니 능숙한 게 아니었어. 춤 바로 그 자체였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어. 바람과 빛과 냄새와 그림자와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그것이 난쟁이의 몸 안에서 터져 나오는 거야. 난쟁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어. 그건……. 하여튼 대단했지."

노인의 몇 개 남지 않은 앞니가 컵에 부딪혀 소리를 냈다.

 

"실제로 그 춤을 보았나요?" 나는 물어보았다.

"보았냐고?" 노인은 내 눈을 흘낏 보고, 테이블 위에 두 손의 손가락을 쭉 펴서 펼쳐놓았다.

"물론 보았지. 매일 나는 보았지. 매일 여기서 말이야."

"여기서라구요?"

"그래." 노인은 말했다.

"바로 여기. 여기서 매일 난쟁이가 춤을 추었어. 혁명 전에는."

 

노인의 말에 의하면 돈 한 푼 없이 이 나라에 흘러들어온 난쟁이는 코끼리 공장의 직공들이 모여드는 이 술집에 들어와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춤 솜씨를 인정받아 무용수로 일하게 되었다. 직공들은 젊은 여자들의 춤을 원했기 때문에, 처음 얼마간은 난쟁이의 춤에 대해서 야유를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야유를 하지 않게 되었고, 술잔을 들고 가만히 난쟁이의 춤을 넋을 잃고 보게 되었다.

난쟁이의 춤은 다른 어떤 사람들의 춤보다도 다른 점이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난쟁이의 춤은 보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아서 본인조차도 그런 것이 있는지 알 지 못하는 감정을 밖으로-마치 생선의 내장을 끄집어내듯이-끄집어내는 것이었다.

 

난쟁이는 이 술집에서 반 년 정도 춤을 추었다. 술집은 언제나 손님으로 미어터졌다. 모두 난쟁이의 춤을 보러온 손님이었다. 사람들은 난쟁이의 춤을 보며 끝없는 행복감에 빠졌고, 한없는 비탄에 잠겼다.

난쟁이는 그 무렵부터 춤 하나로 사람들의 감정을 자유로이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마침내 이 춤추는 난쟁이에 대한 소문은 근처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코끼리 공장과도 적지 않은 관계가 있는 귀족-그는 나중에 혁명군에 붙잡혀 산채로 아교풀이 담겨 있는 통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그 귀족을 통해 젊은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음악을 좋아하는 황제는 그 난쟁이의 춤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황제의 문장이 새겨진 배가 파견되었고, 근위병들이 정중하게 난쟁이를 궁전으로 데리고 갔다. 술집 주인에게는 지나칠 정도의 많은 돈이 하사되었다.

술집의 손님들은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했지만 황제를 향해서 불만을 터뜨릴 수는 없었다. 그들은 포기하고 맥주와 메카토르 술을 마시며 예전처럼 젊은 여자가 추는 춤을 보았다.

 

한편 난쟁이는 궁전의 어떤 방으로 안내되어, 거기에서 궁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몸을 씻고, 비단 옷을 입고, 황제 앞에서의 예절을 배웠다. 다음날 밤, 난쟁이는 궁전의 넓은 곳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황제 직속의 오케스트라가 황제가 직접 작곡한 폴카를 연주하고 있었다. 난쟁이는 폴카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처음에는 음악을 익히기 위해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속도를 높여서 마침내는 회오리바람처럼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난쟁이를 바라보았다. 누구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몇 명인가의 귀부인이 기절해 쓰러졌다. 황제도 금분주가 든 크리스털 술잔을 무심결에 바닥에 떨어트렸지만, 잔이 깨지는 소리에도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노인이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그리고 코끼리 모양을 한 스탠드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나는 잠시 노인이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지만 노인은 침묵을 지켰다. 나는 바텐더를 불러 맥주와 메카토르 술을 더 주문했다. 가게는 점차 분비기 시작했고, 무대에서는 젊은 여자 가수가 기타의 현을 조율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는 물었다.

"아아……." 노인은 생각난 듯이 말했다.

"혁명이 일어나고 황제는 살해되었고, 난쟁이는 도망쳤어."

나는 테이블에 무릎을 대고 두 손으로 큰 잔을 안듯이 맥주를 마시며 노인의 얼굴을 보았다.

"난쟁이가 궁전에 들어가고 나서 바로 혁명이 일어났나요?"

"음. 한 일 년 정도 지나서였지." 노인은 말하고 큰 소리로 트림을 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나는 말했다.

"아까 난쟁이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지요. 무엇 때문이지요? 난쟁이와 혁명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거죠?"

"글쎄, 그건 나도 잘 몰라, 단 하나 확실한 것은 혁명군이 핏발을 세우고 난쟁이의 행방을 찾아다녔다는 것이지. 그로부터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나서 혁명 같은 것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녀석들은 아직도 그 춤추는 난쟁이를 찾아다녀. 그러나 난쟁이와 혁명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몰라. 소문밖에 없어."

"어떤 소문이죠?" 노인은 얼굴에 결정하기 어려운 표정이 떠올렸다.

"소문이라는 것은 어차피 소문이야. 진실은 몰라. 그러나 소문에 의하면 난쟁이는 궁전 내에서 좋지 않은 힘을 행사한 모양이야. 그리고 그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 내가 난쟁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것뿐이야. 그 이상은 아무 것도 몰라."

노인은 '휴' 하는 소리를 내면서 한숨을 쉬고는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복숭아색 액체가 입술 언저리를 흘러나와 주르륵 셔츠 속으로 떨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난쟁이의 꿈을 꾸지 않았다. 나는 매일 코끼리공장으로 출근해서 귀를 만들었다. 증기를 이용해서 귀를 부드럽게 하고, 프레스 해머로 쫙 펴서 재단하고, 혼합물을 넣어서 다섯 배로 양을 늘려서 말리고, 주름살을 새겨 넣었다.

점심식사에 나는 내 짝과 도시락을 먹으며 제8공정에 새로 들어온 젊은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코끼리 공장에는 상당히 많은 여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녀들은 주로 신경계의 접속이나, 봉제, 청소 따위의 일을 하고 있다. 우리들은 짬이 나면 여자애들과 이야기를 한다. 여자애들도 짬이 나면 우리들과 이야기한다.

"굉장히 예쁜 애야." 내 짝은 말했다.

"모두 그 애에게 눈을 돌리게 되지. 그렇지만 아무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어."

"그렇게 예뻐요?" 나는 의심스러운 듯이 말했다.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가 보면 실제는 별로인 경우가 지금까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소문은 상대를 해보는 것도 괜찮다.

"거짓말이 아니야. 뭣하면 지금 가 봐도 좋고, 어차피 한가하니까." 내 짝은 말했다.

 

점심시간은 이미 끝났지만 우리들의 공정은 한가했기 때문에 나는 적당한 용건을 만들어서 제8공정소에 가보기로 했다. 제8공정소에 가기 위해서는 긴 지하터널을 빠져나가야 했다. 터널의 입구에는 수위가 있었지만 나와 평소에 안면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통과시켜 주었다. 터널이 지나면 강이 흐르고 있고, 거기서 조금 내려간 곳에 제8공정소의 건물이 있었다. 지붕도 굴뚝도 핑크색이었다.

제8공정소에서는 코끼리의 발을 만들고 있다. 나는4개월 전에 여기서 일했기 때문에 이곳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입구에 서있는 문지기는 전에 없는 새 얼굴이었다.

 

"용건이 뭐요?" 그 새 얼굴의 문지기는 물었다.

"신경 케이블이 모자라서 빌리러 왔소." 나는 말하면서 기침을 했다.

"이상한데." 그는 나의 제복을 멀끔히 보면서 말했다.

"귀 부와 다리 부의 신경 케이블은 호환성이 없을 텐데."

"이야기하자면 길어요." 나는 말했다.

"처음에는 코 부에 케이블을 빌리러갔는데, 코 부에는 여분이 없더라고. 그런데 코 부는 다리 부의 케이블이 모자라서 곤란을 겪고 있더라고. 그래서 하는 말이 다리 부의 케이블을 한 개 구해주면 가느다란 케이블을 빌려주겠다고 말하더라고. 여기에 연락했더니 남는 게 있으니까 가지러 오라고 해서 이렇게 온 거요."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그러면 안 되지. 연락을 확실하게 하도록 안에 있는 녀석들에게 말해두죠."

문지기는 잠시 뭐라고 굼지럭거렸지만 결국은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제8공정은 휑하고 평평한 건물이다. 반지하로 가늘고 길며, 바닥은 보슬보슬한 모래밭이다. 눈높이 정도가 바로 지면이며 좁은 창문이 채광을 위해 달려있다. 천장에는 움직일 수 있는 레일이 둘러쳐 있고, 거기에 수십 개의 코끼리 다리가 매달려 있다. 그것은 마치 코끼리 떼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작업장에는 전부 30명가량의 남녀가 일하고 있었다. 건물 안은 약간 어두웠고, 모두 모자나 마스크를 쓰고 있거나, 먼지 제거용 안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여자애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 중에 하나 예전에 같이 일한 동료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남자에게 '새로 들어 온 여자애가 누구야?"라고 물어보았다.

"열다섯 번째 작업대에서 발톱을 끼우고 있는 아이야." 그는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여자를 꼬실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것이 좋아. 거북이들처럼 딱딱해서 말이야."

"고마워." 나는 말했다.

열다섯 번째 작업대에서 발톱을 끼우고 있는 여자아이는 매우 호리호리해서 중세의 그림에 나오는 소년처럼 보였다.

"잠깐 실례."

내가 말을 걸자, 그녀는 나의 얼굴을 보고, 제복을 보고, 발끝을 보고, 다시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모자를 벗고 먼지 제거용 안경을 벗었다. 그녀는 분명히 뛰어난 미인이었다. 치렁치렁한 머리칼은 길게 늘어졌고, 눈동자는 바다와 같이 깊었다.

"뭐죠?" 여자애는 말했다.

"시간이 나면 토요일인 내일 밤 춤추러 가지 않을 테야?" 나는 유혹해 보았다.

"내일 밤은 한가하고 춤추러 갈 생각이지만, 당신하고는 안 가요." 그녀는 말했다.

"다른 사람하고 약속을 한 거요?" 나는 물었다.

"약속 같은 건 없어요."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다시 모자를 쓰고, 먼지 제거용 안경을 쓰고 책상 위의 코끼리 발톱을 손에 들고 길이를 쟀다. 발톱의 폭이 아주 조금 컸기 때문에 그녀는 끌로 발톱을 깎아냈다.

"약속이 없으면 나하고 같이 갑시다." 나는 말했다.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는 데도 알고 있고."

"필요 없어요. 나는 혼자서 춤추러 가고 싶어요. 만약 당신이 춤을 추고 싶다면 당신은 당신 좋을 대로 하면 될 것이고."

"춤추러 가겠어." 나는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끌로 깎아낸 발톱을 발 앞의 움푹 들어간 곳에 댔다. 이번에는 딱 좋은 크기였다.

"새로 들어온 사람치고는 잘 하는데." 나는 말했다.

그녀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꿈속에 난쟁이가 다시 나타났다. 난쟁이는 숲의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통나무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번에는 턴테이블도 레코드도 없었다.

난쟁이는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보았을 때보다 조금 늙어 보였지만 그래도 혁명 전에 태어난 노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느낌으로는 나보다 두세 살 정도 많아 보였지만, 난쟁이의 나이라는 게 대개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던가.

나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난쟁이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 리고 난쟁이의 옆에 앉았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고, 어두운 색의 구름이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날씨였다. 아마 날씨 때문에 난쟁이는 턴테이블과 레코드를 어딘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숨겨둔 것일 게다.

 

"여-" 나는 난쟁이에게 말을 걸었다.

"응." 난쟁이가 대답했다.

"오늘은 춤을 안 추네요?" 나는 물었다.

"오늘은 안 춰." 난쟁이는 대답했다.

춤을 추지 않을 때의 난쟁이는 매우 약해서 측은해 보였다. 옛날 궁전에서 권세를 떨쳤다고는 조금도 생각할 수 없었다.

"몸이 안 좋아요?" 나는 물어 보았다.

"응." 난쟁이는 말했다.

"기분이 좋지 않아. 숲이 매우 춥기 때문이야. 혼자 살고 있자면 여러 가지 것이 몸에 해로워."

"큰일이네." 나는 말했다.

"활력이 필요해. 몸을 채우고도 넘치는 새로운 활력 말이야. 아무리 춤을 추어도 지치지 않고, 비에 젖어도 감기에 걸리지 않고, 야산을 뛰어다닐 수 있는 새로운 활력을 말이야. 그것이 필요해."

"흠." 나는 말했다.

나와 난쟁이는 잠시 말없이 통나무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머리 위로 나뭇가지 끝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가끔 나뭇가지 사이로 거대한 나비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난쟁이가 말했다.

"너 나에게 뭔가 부탁할 일없니?"

"부탁할 일?" 나는 깜짝 놀라서 다시 물었다."

"부탁할 일이라니 그게 뭐죠?"

난쟁이는 나뭇가지를 주워 그 끝으로 땅바닥에 별그림을 그렸다.

 

"여자애 말이야. 그 아이를 원하지 않아?" 제8공정에 들어온 예쁜 여자애다. 어떻게 난쟁이가 그 여자애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꿈속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는 법이다.

"그야 원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에게 부탁해서 뭐 달라지는 게 없잖아요.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밖에."

"네 힘으로는 아무 것도 안 돼."

"그래요?" 나는 조금 화가 나서 말했다.

"물론이지. 아무 것도 안 돼. 네가 아무리 화를 낸다고 해도, 아무 것도 안 돼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난쟁이는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어디를 보아도 지극히 평범한 남자였고, 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다. 그 정도의 미인을 얻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지만 내가 조금 힘을 빌려주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 난쟁이는 슬쩍 중얼거렸다.

"어떻게?" 나는 호기심이 일어나서 물었다.

"춤이야. 그 아이는 춤을 좋아하지. 그러니까 그애 앞에서 멋지게 춤을 출 수 있다면 그 애는 네 것이야. 너는 나무 아래 서서 열매가 떨어지는 것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거지."

"당신이 춤추는 방법을 가르쳐 줄 거요?"

"가르쳐 줄 수 있지." 난쟁이는 말했다.

"그렇지만 하루 이틀 배워서는 아무 것도 안 되고, 매일 착실하게 최소한 반년은 연습해야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게 돼." 나는 맥이 탁 풀려서 고개를 저었다.

"그럴 시간이 없어요. 반 년 동안 연습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남자가 그 애를 꼬실 거예요."

"언제 춤추기로 했어?"

"내일" 나는 말했다.

"토요일인 내일 밤에 그녀는 무도장에 춤을 추러 가요. 나도 가요. 거기서 그녀에게 춤을 신청할 거예요."

 

난쟁이는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직선을 몇 가닥 그어놓고, 그 사이로 옆선을 그려 넣어 이상한 도형을 그렸다. 나는 말없이 난쟁이의 손놀림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난쟁이는 짧아진 담배를 땅바닥으로 툭 뱉고는 발로 비볐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정말로 그녀를 원한다면 말이야."

"난쟁이가 말했다."

"정말로 원하고 있어요." 나는 말했다.

"어떤 방법인지 듣고 싶어?" 난쟁이는 말했다.

"말해 줘요." 나는 말했다.

"내가 네 몸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리고 네 몸을 빌려서 내가 춤을 추는 거지. 너는 몸이 건강한 것 같고, 힘도 있는 것 같으니까 어떻게 될 거야."

"체력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어요." 나는 말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해요?" 내 몸속에 들어와서 춤춘다는 것 말이에요."

"할 수 있어. 그렇게 하면 그애는 이제 확실히 네 거야. 그걸로 세상은 아름다워지는 거지.

 

"나는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왠지 이야기가 너무 핑크빛이었다. 한 번 난쟁이를 내 몸속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두 번 다시 밖으로 나오지 않고, 결국 내 몸을 난쟁이에게 빼앗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여자애와 자기 위해서라지만 그렇게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난쟁이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말했다.

"네 몸을 빼앗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여러 가지 당신에 대해서 소문들 들어서 말이죠." 나는 말했다.

"나쁜 소문이겠지." 난쟁이는 말했다.

"예, 그래요." 나는 말했다.

난쟁이는 세상일을 다 안다는 듯 한 얼굴을 하고는 빙긋이 웃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 간단하게 타인의 몸을 영원히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계약이라는 것이 필요해. 무슨 말인가 하면 서로 납득할 수 없으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지. 너, 영원히 몸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겠지?"

"물론이죠." 나는 몸서리를 치면서 대답했다.

"그렇지만 나도 무료로 네가 여자 꼬시는 걸 도와주는 것은 아무래도 재미가 없으니까, 그래서 말이지." 난쟁이는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조건이 하나 있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야. 그 조건은."

"어떤 조건?"

"일단 내가 네 몸속에 들어가서 그리고 무도장에 가서 춤으로 여자를 유혹해. 그리고 넌 그 여자를 손에 넣는 거야. 조건은……. 그동안 너는 한 마디도 하면 해서는 안 돼. 소리를 내서는 안 돼. 여자를 완전히 네 것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그렇지만 말을 하지 않고서는 여자를 꼬실 수가 없잖아요." 나는 항의했다.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난쟁이는 머리를 흔들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춤을 춘다면 어떤 여자라도. 말하지 않고 네 것으로 만들 수 있어. 걱정할 필요 없어. 따라서 무도장에 발을 들여놓고 나서부터 여자를 가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소리를 내서는 안 돼. 알겠어?"

 

"만약에 소리는 낸다면?" 나는 물어보았다.

"그때는 네 몸을 가지겠어." 난쟁이는 어린애처럼 말했다.

"만약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잘 해내면?"

"여자는 네 것이야. 나는 네 몸속에서 나와 숲으로 돌아오고."

나는 깊은 한숨을 쉬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난쟁이는 그동안 다시 나뭇가지를 들고 땅바닥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도형을 그리고 있었다.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서 그 도형의 한가운데에 앉았다.

 

"할게요." 나는 말했다.

"해 보기로 하죠."

"좋아." 난쟁이는 말했다.

 

무도장은 코끼리 공장의 정문 옆에 있어서 토요일 저녁이 되면 플로어는 코끼리 공장의 젊은 직공과 여자애들로 흘러 넘쳐 매우 붐볐다. 나는 붐비는 사람들을 헤치면서 그녀를 찾았다.

"오래간 만이군." 난쟁이가 내 몸속에서 감격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춤을 춘다는 것은 이런 거야. 군중. 술. 빛. 땀 냄새. 여자애들의 화장품 냄새, 오래간 만이군."

몇 명인가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는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때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초조해 할 것 없어. 아직 밤은 길고 기니까." 난쟁이가 말했다.

 

플로어는 원형이었고 동력장치가 되어 있어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플로어 주위로 빙 둘러서 좌석이 배열되어 있다. 높은 천장에서 커다란 샹들리에가 내려왔고, 정성스럽게 다듬은 댄스 플로어는 마치 빙판처럼 반짝반짝 그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플로어의 위쪽에는 스포츠 경기장의 관람석처럼 층이져 있었고 거기에 밴드 스탠드가 있었다. 밴드 스탠드는 두 팀의 오케스트라가 정렬해 있었고, 30분 단위로 교대하며 밤새 멈추는 일없이 댄스음악을 계속 흘러 보냈다. 왼쪽 밴드의 특징은 열 개가 나란히 있는 트롬본이고, 이쪽은 녹색의 코끼리 마크를 붙이고 있었다.

나는 좌석에 앉아 맥주를 주문하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는 담배를 피웠다. 돈을 받는 댄스걸이 춤이 한 곡 끝나자 내게로 와서 '이봐요. 멋쟁이 오빠. 나하고 춤춰요' 하며 유혹했지만 나는 상대도 하지 않았다. 나는 팔꿈치를 세워 턱을 괴고 맥주로 목을 축이면서 그녀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왈츠와 포크 트로트와 드럼과 트럼펫이 무도장의 플로어를 장난스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처음부터 여기에 춤추러 올 생각도 없으면서 나를 놀리기 위해서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괜찮아." 난쟁이가 중얼거렸다.

"반드시 올 테니까 편한 마음으로 기다려."

 

그녀가 무도장의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시계바늘이 정확히 9시를 가리켰을 때였다.

그녀는 번쩍번쩍 빛나고 꽉끼는 원피스를 입고 검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무도장 전부가 하얗게 희미해져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듯이 빛을 발했다. 그녀는 섹시했다. 몇 명인가의 젊은 남자가 재빠르게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가갔지만, 팔을 한 번 휘둘러 모두 쫓아버렸다.

나는 천천히 맥주를 마시면서 눈으로는 그녀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그녀는 플로어를 사이에 두고 나와 맞은편의 테이블에 앉아서 빨간 색의 칵테일을 주문하고 가늘고 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칵테일에는 거의 입을 대지 않았다. 그녀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마치 도약대로 향하는 듯 한 모습으로 천천히 댄스 플로어로 나갔다. 그녀는 누구하고도 짝을 짓지 않고 혼자서 춤을 추었다. 오케스트라는 탱고를 연주했다. 그녀는 훌륭한 솜씨로 탱고를 추었다. 보고만 있어도 황홀해지는 춤이었다. 그녀가 몸을 구부리자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칼이 바람처럼 플로어에 날리고, 가느다란 하얀 손이 공기의 현을 매우 부드럽게 연주했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혼자서 자기를 위해 춤을 추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것은 마치 꿈의 연속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내 머리는 조금 혼란했다. 만약 내가 하나의 꿈을 위하여 다른 꿈을 이용하고 있다면 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저 여자애 정말 춤을 잘 추는데." 난쟁이가 말했다.

"저 계집애를 상대로 춤을 춘다면 보람도 있겠는데. 자 슬슬 나가 봐야지?"

 

나는 아무 의식도 없이 테이블에서 일어나 댄스 플로어를 향해서 걷고 있었다. 그리고 몇 명의 남자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 그녀의 옆에 서서 구두 뒤꿈치를 올리면서 모두에게 이제부터 춤을 춘다는 것을 알렸다. 그녀는 춤을 추면서 흘낏 내 얼굴을 보았다. 나는 빙긋이 웃어주었다.

그녀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혼자 춤을 추었다. 나는 처음에는 천천히 춤을 추었다. 그리고 조금씩 속도를 높여 마침내는 회오리바람처럼 춤을 추었다. 내 몸은 이제 내 몸이 아니었다. 나의 손과 발과 머리는 나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분방하게 댄스 플로어 위를 돌아다녔다.

춤에 몸을 맡기고선 나는 별의 운행과 물결의 흐름과 바람의 움직임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춤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야 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발을 디디고 손을 돌리며 머리를 흔들고 빙그르르 돌았다. 빙그르르 돌자 머릿속에서 하얀빛을 내는 구슬이 튀었다.

여자는 흘낏 나를 보았다. 그녀는 나에게 맞추어 빙그르르 돌며 발을 굴렀다. 그녀의 안에서 빛이 튀는 것이 내게 느껴졌다. 나는 매우 행복했다. 그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어때, 코끼리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즐겁지 않아?" 난쟁이는 말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이 꺼끌꺼끌해서 목소리를 내려고 해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들은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춤을 추었다. 내가 춤을 리드하고 그녀가 거기에 응했다. 그것은 영원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는 기력과 힘이 다한 것 같은 모습으로 춤을 멈추었고 내 팔꿈치를 잡았다. 나도-난쟁이라고 해야겠지만-춤을 멈추었다. 그리고 플로어의 한가운데서 우리들은 우두커니 서서 멍하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몸을 굽혀서 검은 하이힐을 벗어 손에 걸고는 다시 한 번 나의 얼굴을 보았다. 우리들은 무도장을 나와서 강을 따라 걸었다. 나는 차가 없기 때문에 어디까지라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길은 완만한 언덕이 되었고, 주위는 밤에 피는 하얀 꽃의 향기로 덮여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공장의 건물이 묵묵히 눈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무도장에서는 노란빛과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이 꽃가루처럼 주위에 넘쳐 뿌려지고 있었다.

바람은 부드러웠고, 달빛이 그녀의 머리칼에 젖은 빛을 던지고 있었다. 그녀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춤이 끝난 뒤에는 뭐라고 지껄일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마치 길 안내를 부탁한 맹인처럼 가만히 내 팔을 붙들고 있었다.

언덕을 다 올라간 곳에 넓은 풀밭이 있었다. 풀밭은 주위가 소나무 숲으로 둘러쳐져 있어서 마치 조용한 호수 같아 보였다. 부드러운 풀이 허리 높이까지 가지런히 무성해서 밤바람이 불어오면 춤을 추듯이 흔들렸다. 군데군데 빛나는 꽃이 머리를 내밀고 벌레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안고 풀밭의 한가운데까지 걸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눕혔다. '정말 말이 없네요.'라고 말하며 그녀는 웃었고, 하이힐을 던져 버리고는 내 목을 두 손으로 휘감았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고 몸을 일으켜 다시 한 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꿈처럼 아름다웠다. 그녀를 이렇게 안을 수 있다니…….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나의 입맞춤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처음에는 콧구멍에서 오돌토돌하고 하얀 뭔가가 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구더기였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업는 커다란 구더기였다. 양쪽 콧구멍에서 구더기가 차례차례 기어 나왔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죽음의 악취가 돌연히 주위를 감쌌다.

구더기는 입술에서 목으로 굴러 떨어졌고, 어떤 놈은 눈을 지나서 머리카락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코의 피부가 미끈하게 벗겨져 안에 녹은 살이 스르르 주위로 펴져나가더니 마침내는 두 개의 어두운 구멍만 남았다. 구더기의 무리들은 아직도 거기에서 기어 나오려고 썩은 살에 뒤섞여 있었다.

두 눈에서 고름이 뿜어져 나왔다. 눈동자가 고름에 눌려서 두세 번 자연스럽지 못하게 흔들리고는 얼굴의 양쪽으로 축 늘어졌다. 그 속의 동굴 안에는 마치 하얀 실구름처럼 구더기가 덩어리져 있었다.

썩은 뇌에 구더기가 꾀어들고 있었다. 입술이 스르르 문드러져서 떨어졌다. 잇몸이 녹고 하얀 이빨이 너덜너덜하게 무너졌다. 드디어 입 전체가 녹아서 떨어졌다.

머리털 구멍에서 피가 솟아나고 머리칼이 낱낱이 뽑혀 떨어졌다. 미끈미끈한 머리가죽의 여기저기를 파먹은 구더기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래도 그녀는 내 등 뒤로 돌린 팔에 힘을 늦추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팔을 뿌리치지 못하고, 얼굴을 돌리지도 못하고, 눈을 감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위에서 메슥메슥한 덩어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것은 뱉어내지도 못했다. 몸의 거죽이 모두 벗겨진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귀에서 난쟁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계속해서 녹아들고 있었다. 근육이 뭔가에 비틀린 듯 턱 언저리가 떨어져 빠끔히 열렸고, 풀 같은 살과 고름과 구더기 덩어리가 열리는 힘에 의해 주위에 튀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기 위해 힘껏 숨을 마셨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이 지옥에서 끄집어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국 나는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거의 직관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이것은 난쟁이가 꾸민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다.

난쟁이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한 번 소리를 지르면 내 몸은 영원히 난쟁이의 것이 되고 마는 것이 다. 그것이야말로 난쟁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힘들지 않게 바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눈을 감자 풀밭을 가로지르는 바람의 소리가 들렸다. 등에 여자의 손이 내 살갗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체념하고 여자의 몸에 손을 돌리고는 내 쪽으로 끌어당겨 그 부패한 살덩이의 입이었다고 생각되는 곳에 입술을 댔다. 미끈한 살 조각, 오돌토돌한 구더기가 내 얼굴에 닿았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죽음의 악취가 나의 콧구멍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순간적인 일이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원래의 아름다운 여자와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달빛이 그녀의 복숭아 빛 뺨 위에 빛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난쟁이를 이겼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당당히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겨냈던 것이다.

 

"네가 이겼어." 난쟁이도 피로한 듯이 말했다.

"여자는 너의 것이야. 나는 나가겠어." 그리고 난쟁이는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야." 난쟁이는 계속해서 말했다.

"너는 몇 번이고 이길 수 있어. 그러나 지는 것은 단 한 번뿐이야. 네가 한 번 지면 모든 것이 끝나 그리고 너는 언젠가 질 거야. 그걸로 끝이야. 잘 들어. 나는 그때를 끝까지 기다릴 거야."

"왜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거지?"

그러나 난쟁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웃었을 뿐이다. 난쟁이의 웃음소리는 주위를 떠돌다가 곧 바람에 실려 사라졌다.

 

결국 난쟁이가 말한 것이 옳았다. 나는 지금 경찰들에게 쫓기고 있다. 무도장에서 나의 춤을 본 누군가가-그 노인일지도 모른다―당국에 출두해서 내 몸속에 춤추는 난쟁이가 들어가서 춤을 추었다는 사실을 고발한 것이다. 경찰들은 나의 생활을 감시하는 한편,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서 세심한 심문을 했다. 내 짝이 내가 언젠가 난쟁이의 이야기를 했다고 증언했다. 나에게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 경찰들이 공장을 포위했다.

 

제8공정에 있는 예쁜 여자애가 나의 일터에 와서 나에게 몰래 알려주었다. 나는 일터를 뛰쳐나가 완성된 코끼리를 두는 창고에 들어가 그 중 한 코끼리를 타고 숲으로 도망쳤다. 그때 경찰을 몇 명인가 밟아 죽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벌써 한 달 가까이 숲에서 숲으로, 산에서 산으로 도망치고 있다. 나무 열매를 먹고, 벌레를 먹고, 강물을 마시며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숫자는 많다. 그들은 언젠가 나를 체포하겠지. 그들은 나를 잡으면 혁명의 이름으로 기계에 끼워 넣고 여덟 갈래로 찢을 모양이다. 뭐, 그런 거다.

 

난쟁이는 매일 밤 꿈에 나타나서 '내 몸속에 들어와'라고 말한다.

"적어도 경찰에서 붙잡혀 여덟 갈래로 찢어지지는 않을 것 아냐." 난쟁이는 말한다.

"그 대신, 영원히 숲속에서 계속 춤을 추어야겠지?" 나는 묻는다.

"물론." 난쟁이는 말한다.

"어떤 것을 하든지 네가 선택하는 거지만."

그렇게 말하고 난쟁이는 쿡쿡 웃는다. 그렇지만 나는 어느 쪽을 골라야 할 지 모른다.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몇 마리의 개가 짖고 있는 소리다. 그들은 바로 저기까지 와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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