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32이고, 그녀는 18이고..
이러면 아무래도 진부한 표현이 될 수밖에 없다. 난 아직 32이고, 그녀는 벌써 18....아,,그래, 좋아,,, 이거다.
우린 그저 그런 단지 친구 사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겐 아내가 있고, 그녀에겐 남자 친구가 여섯 명이나 있다. 그녀는 주말마다 6명의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한달에 한번씩 일요일엔 나와 데이트를 한다.
그 외 일요일엔 텔레비전을 본다. 텔레비전을 볼 때의 그녀는 너무 귀엽다.
그녀는 1963년생인데, 그해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난 처음으로 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유행하던 노래는 클리프 리처드의 '썸머 홀리데이'였던가? 뭐...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무튼 그 해 그녀는 태어났다.
그해에 태어난 여자애와 데이트를 하게 되다니, 그쯤엔 물론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도 웬지 이상한 느낌이 든다. 달의 뒤에 가서 바위에 기대 담배라도 피우고 있는 그런 기분이란 말이다.
'나이 어린 여자애는 따분하기만 하지'란 게 주위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생각하는 것도 맞지 않고, 반응조차 평범하기 그지없지 '뭐야'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치만, 그자들만 해도 잘 어린 여자애와 데이트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다행히도 따분하지 않은 어린 여자애를 찾아냈단 말일까?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말하자면 그녀들의 따분함이 그들을 매료시키는 거다. 그들은 따분함의 물을 바케쓰 하나 가득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쓰면서도, 상대 여자 애에게는 물방울 하나 튀기지 않는다는 꽤나 까다로운 게임을 매우 순수히 즐기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생각된다.
사실상, 어린 여자애들 열 명 중 아홉은 따분한 '물건'들이다. 그렇지만 물론 그녀들 자신은 그런 걸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녀들은 젊고 이쁘고, 그리고 호기심에 가득 차 있다. 따분함이란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녀들은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뭐 어린 여자애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녀들을 좋아한다.
그녀들은 내게, 내가 따분한 청년이었던 시절의 일을 회상하게 해준다. 이건 뭐,, 아주 근사한 일이다. 우리도 옛날엔 어쩔 수 없이, 평범하고 따분했던 것이다.
"어때요,, 다시 한 번 18로 되돌아가고 싶어요?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아니" 하고 난 대답했다.
"그다지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 뭐 돈을 많이 준다 해도 다시 한 번 18살이 되고 싶진 않다구."
그녀는 내 답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구요? 정말로요?"
"물론"
"왜요?"
"지금 이대로가 좋거든" 그녀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며 커피잔 속으로 스푼을 저었다.
"그 말은 웬지 믿을 수 없어요."
"믿는 게 좋아"
"그치만 젊다는 건 멋지잖아요."
"그렇긴 하지."
"근데 왜 지금이 좋죠?"
"한 번만으로 충분하거든"
"난 아직 충분하지 않은 걸요"
"넌 아직 18살이니까"
"흥" 하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넌 벌써 18살인 걸, 하고 난 나 자신을 향해 덧붙여 말한다.
난 종업원에게 두 번째 맥주를 부탁했다. 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창문으로는 요코하마항이 보였다.
"있죠. 18살 무렵엔 뭘 생각했었어요?"
"여자애하고 자는 것"
"그 외에?"
"그뿐이야"
그녀는 키득 웃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 잘 되었나요?'
"뭐... 잘 된 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적도 있어, 물론 잘되지 않은 쪽이 많았지만..."
"몇명 정도하고 잤어요?"
"세보지 않았어."
"정말요?"
"그다지 세어 보고 싶지 않았거든."
"내가 남자였다면 반드시 세 봤을 거예요. 재미있잖아."
다시 한 번 18살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그렇게 생각되는 때도 있다. 하지만 18살로 돌아간다면 뭐부터 먼저 할까? 생각해 보니 딱히 나로선 이제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혹시 내가 다시 한 번 18살로 돌아간다면 어쩜 32살의 여성과 데이트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뭐 그리 나쁠 건 없다.
"다시 한 번 18살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하고 나는 그녀에게 물을 것이다.
"그건..."하고 그녀는 살며시 웃으며 잠시 생각하는 척하곤 "없어요..아마도...."라고 말할 것이다.
"정말요?"
"네"
"이상하군요, 젊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모두 말하잖아요."
"그쵸. 멋진 일이죠."
"그런데 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당신도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에요"
그렇지만 역시 나는 32살이고, 1주일동안만 운동을 하지 않으면 배가 나오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젠 18살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아침에 조깅을 마치고 나면 야채 주스를 마시고, 의자에 누워 비틀즈의 daytripper를 튼다.
"데이 트리퍼"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열차의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전신주와 역, 터널, 다리, 소, 말, 굴뚝 등 온갖 것들이 빠르게 뒤로 지나가 버린다. 어디까지 달려도 경치는 나타나지 않는다. 예전엔 꽤나 멋진 경치처럼 여겨졌었는데도 말이다. 옆자리에 앉는 상대가 가끔씩 바뀐다. 그때 내 옆에 앉은 사람은 18살의 여자애다. 난 창가에, 그녀는 통로 쪽으로 앉아 있다.
"자리, 바꿔 줄까?" 하고 내가 묻는다.
"아, 고마워요, 친절하시네요." 하고 그녀가 말한다.
친절한게 아니야, 하고 난 쓴웃음일 짓는다. 너보단 훨씬 따분함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뿐이라구.
전신주를 세는 것도 지쳤다.
32살의 데이트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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