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첫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검은 돼지 두 마리와 산양 세 마리 가운데 어느 놈이 더 검습니까?"
가장 먼저 램프에 불이 켜진 것은 나였다.
"두 마리의 검은 돼지!"
"예, 정답입니다. 의자를 한 칸 올려드리겠습니다. 계속해서 두 번째 질문입니다. 매우 간단한 질문이기 때문에 재빠르게 스위치를 눌러주세요. 이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음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골라주세요. 첫째는 왕의 장녀, 두 번째는 왕의 차녀, 세 번째는 왕의 삼녀입니다."
고약한 질문이었다. 왕의 세 자매가 이 섬에서 제일 못생겼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출연자들은 모두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허-, 어느 것이 붓꽃이고 어느 것이 제비 붓꽃인가를 가려내는 아주 어려운 질문이군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지명하겠습니다. 5번 분 말해보세요."
나는 틀려도 좋다고 생각되어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첫 번째, 왕의 장녀."
말이 끝나자마자 사회자가 외친다.
"예-, 정답입니다. 잘 맞추는군요. 5번 분, 그러면 세 번째 질문입니다."
뭐가 정답인지 일 수 없었다. 몸무게 120킬로그램의 45세 여자가 이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건 대체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질문 드립니다. 청개구리가 울면 비가 옵니다. 그렇다면 날씨가 좋을 때, 개구리가 울면 날씨는 어떻게 됩니까. 이 문제는 왕께서 직접 출제하신 문제입니다."
날씨 좋은 날에 우는 개구리가 이 섬에 과연 있을까.
2번 출연자가 스위치를 눌렀다.
"날씨가 갭니다."
"유감입니다, 정답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번에도 지명하겠습니다. 현재 가장 잘 맞추고 있는 5번 분 말해보세요."
"눈이 오지 않습니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말했다.
"맞습니다. 정답입니다. 5번 분, 이번 질문은 왕께서 직접 출제한 문제라서 의자를 세 단계 올려드리겠습니다."
"다음은 네 번째 질문입니다. 이 섬의 왕은 어떤 분이십니까? 다음 세 항목 중에 하나를 고르세요. 첫 번째, 훌륭한 분. 두 번째, 멋진분. 세 번째, 위대한 분."
아무리 이 섬에 텔레비전 방송국이 '왕실방송국'밖에 없다고 해도 이 같은 질문뿐인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웬일입니까-. 5번 분이 이미 얼굴에 정답을 써놨군요. 그래요-, 맞습니다. 세 번째의 위대한 분이 정답입니다. 5번 분 또 한 계단 올라갑니다."
이유도 모른 채. 나는 결국 열 문제의 정답자가 되었다.
다른 출연자는 한 계단도 올라가지 못하고 조용히 쓴 웃음만 지었다.
사회자는 마구 떠들었다.
"자, 이제 압도적 스코어로 열 계단 올라간 5번에게, 왕께서 멋진 선물을 주시겠습니다."
지난주 프로에서는 이웃 마을의 한 청년이 검은 돼지를 상품으로 받았었다. 지지난주의 열 문제 정답자는 흰색 카누를 선물로 받았었다. 카누를 어깨에 메고 산 너머까지 돌아갔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주의 '왕이 출제한 문제'는 어딘가 책략적으로 진행된 느낌이었다.
객석의 중앙에서 첩들에게 둘러싸여 시중을 받고 있던 왕의 표정이 어쩐지 밝아보였다. 세 자매도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자, 이번 주의 선물은!" 커다란 북이 둥둥-. 울려댔다.
"문자 그대로, 운이 좋습니다."
경연장 주위의 깃발이 무대를 가리자 장내는 어두워졌다. 스포트라이트가 객석을 한 바퀴 돌더니 한 곳에 멈추었다.
120킬로그램의 왕의 장녀가 눈이 부신 듯 살며시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구었다.
'무라카미하루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행기 (0) | 2012.12.21 |
---|---|
셰이빙 크림병을 들고 거리를 누빌 때 (0) | 2012.12.20 |
내가 가진 열여섯 개의 시계 (0) | 2012.12.20 |
빵가게 재습격 (0) | 2012.12.20 |
녹색짐승 (0) | 2012.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