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빵가게 재습격

chocohuh 2012. 12. 20. 10:10

빵 가게를 습격한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준 것이 옳았는지 어땠는지, 나는 지금도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아마도 그건 옳다든가 옳지 않다든가 하는 기준으로는 잴 수 없는 문제였던 것 같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는 옳은 결과를 가져오는 옳지 못한 선택도 있으며, 옳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옳은 선택도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부조리-이렇게 말해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한다-를 회피하기 위해선, '우리는 실제로 아무것도 선택하고 있지 않다'라는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으면, 대체로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면,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란 말이다.

 

그러한 입장에서 사물을 생각하면, 그는 '무엇보다도 우선' 아내에게 빵 가게 습격을 얘기하고 말았다는 것이 된다. 얘기하고 만 것은 얘기하고 만 일이며, 거기에서 생긴 일은 이미 생겨 버린 일인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사건이 사람들의 눈에 기묘하게 비친다고 하면, 그 원인은 사건을 포함한 총체적인 상황 존재 속에서 구해야만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건, 그래서 무엇이 달라진다는 건 아니다. 그런 건 그저 그런 생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란 말이다.

내가 아내 앞에서 빵 가게를 습격한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은, 그저 그런 하찮은 계기에서였다. 그 얘기를 꺼내려고 미리 작정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며, 그때에 문득 생각이 나서 "그러고 보니-" 하는 식으로 얘기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나는 그 '빵 가게 습격' 이란 말을 아내 앞에서 입에 올리기까지, 나 자신이 이전에 빵 가게를 습격했다는 일 같은 건 싹 잊어버리고 있었단 말이다. 그때 나에게 빵 가게 습격이란 걸 떠올리게 한 것은 견딜 수 없을 지경의 공복감이었다.

 

시간은 한밤중 2시가 못 되어서였다. 나와 아내는 6시에 가벼운 저녁 식사를 하고, 9시 반에 침대에서 눈을 감았던 것인데, 그 시간에 웬일인지 둘 다 동시에 잠이 깨고 말았다.

 

잠이 깨어 얼마 있자니까,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회오리처럼 공복감이 밀려들었다. 그것은 막무가내라 해도 좋을 만큼의 엄청난 공복감이었다. 그러나 냉장고 속에는 '먹을 것'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있었던 것은 프렌치 드레싱과 6개의 캔 맥주와 말라비틀어진 2개의 양파와 버터와 탈취제뿐이었다.

 

우리는 그때 결혼한 지 2주일밖에 안된 참이라서, 식생활에 관한 공동 인식을 아직 명확히 확립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 당시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그 밖에도 산더미만큼 많았던 것이다.

그 무렵 나는 법률사무소에 근무하고 있었으며, 아내는 디자인 스쿨에서 사무 일을 보고 있었다. 나는 스물여덟인가 아홉쯤이었고-웬일인지 결혼한 해는 아무리 해도 생각해 낼 수가 없단 말이다-그녀는 나보다 2년 8개월 아래의 나이였다.

 

우리의 생활은 몹시 바빴고, 입체적인 동굴처럼 뒤죽박죽 뒤섞여 있어서, 도저히 예비 식품까지 신경 쓸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침대에서 나와 부엌으로 옮겨, 하릴없이 테이블을 끼고 마주 앉아 있었다. 다시 한번 잠자리에 들기엔 둘 다 너무나 배가 고팠으며 -몸을 가로누이는 것만 해도 고통스러웠다-그렇다고 해서 일어나 무엇을 하기에도 배가 너무나 고팠다. 이 같은 강렬한 공복감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서 왔을까, 우리로선 짐작도 가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한 조각의 희망을 안고 교대로 냉장고 문짝을 몇 번이나 열어 보았으나, 몇 번을 열어 보아도 그 내용물은 변하지 않았다. 맥주와 양파와 버터와 드레싱과 탈취제, 그것뿐이었다.

 

양파로 버터튀김을 만들 수는 있지만, 2개의 말라비틀어진 양파가 우리의 공복을 유효하게 채워 주리라곤 여겨지지 않았다. 양파라는 건 다른 것과 함께 입에 넣어야 할 것이어서, 그것만 갖고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종류의 식품은 아니라고 여겼다.

 

"프렌치 드레싱의 탈취제 튀김은 어때?" 하고 나는 농담 삼아 제안해 보았으나 예상대로 묵살 당했다.

"차를 타고 나가서, 철야 레스토랑을 찾아보자. 국도로 나서면 반드시 그런 게 있을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그 제안을 거부했다. 그녀는 바깥에 나가 식사하는 건 싫다고 했다.

 

"밤 12시가 넘어서 식사를 하려고 외출하다니, 어딘가 틀렸다구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그런 면에서는 몹시 고풍스러웠다.

"그래, 그렇군."하고 나는 한 호흡 두고서 말했다.

 

결혼한 직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아내의 그러한 의견-내지는 강령-은 어떤 종류의 계시처럼 나의 귀에 울렸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내 자신이 지금 안고 있는 굶주림은 국도변의 철야 레스토랑에서 편의적으로 채울 수 없는 특수한 굶주림인 것처럼 느껴졌다.

 

'특수한 굶주림'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하나의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다.

 

1. 나는 조그마한 보트를 타고 조용한 해양에 떠 있다.

2. 아래를 내려다보니, 물속에 해저 화산의 정상이 보인다.

3. 해변과 그 정상 사이는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닌 것처럼 보이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4. 왜냐하면 물이 너무나 투명해서 거리를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내가 철야 레스토랑 같은 덴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나서, 내가 "그래, 그렇군." 하고 동의할 때까지의 2초 아니면 3초 동안에 내 머리에 떠오른 이미지는 대체로 그러한 것이었다.

 

나는 물론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아니므로, 그 이미지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분석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계시적인 종류의 이미지인 것만은 직관적으로 이해가 갔다. 바로 그렇기에 나는-공복이 이상한 정도로 강렬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식사를 위해 외출을 않겠다는 그녀의 강령-내지는 성명-에 반쯤은 자동적으로 동의했단 말이다.

 

별수 없이 우리는 캔 맥주를 마셨다. 양파를 먹는 것보다는 맥주를 마시는 편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맥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내가 6개중 4개를 마시고, 그녀는 나머지 2개를 마셨다. 내가 맥주를 마시는 동안, 그녀는 11월의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부엌의 선반들을 뒤지다가, 자루 속에 버터 쿠키가 4장 남아 있는 것을 찾아냈다. 그것은 냉동 케이크를 만들었을 때 쓰고 남은 것으로, 습기를 먹어 아주 말랑말랑해져 있었는데, 우리는 그걸 소중스레 2장씩 깨물어 먹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캔 맥주도 버터 쿠키도, 하늘에서 내려다본 시나이 반도처럼 막막하기만 한 우리들의 공복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것들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풍경의 일부처럼 창밖을 잽싸게 지나쳤을 뿐이다.

 

우리는 맥주의 알루미늄 깡통에 인쇄된 글자도 읽어 보고, 시계도 몇 번이고 바라보고, 냉장고 문짝에도 눈을 보내고, 어제의 석간신문도 뒤적거리고, 테이블 위에 흐트러진 쿠키 찌꺼기를 엽서 모서리로 모으기도 했다. 시간은 물고기의 뱃속에 삼켜진 납덩어리처럼 어둡고 둔중했다.

 

"이렇게 배가 고픈 건 처음 있는 일이에요. 이것이 결혼한 것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건가?"하고 아내가 물었다.

"모르겠는 걸" 하고 나는 대답했다. 있는지도 모르겠고,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새로운 식품 조각을 찾아 부엌 안을 뒤지고 다니는 동안, 나는 또 보트로부터 몸을 내밀어 해저 화산의 정상을 내려다보았다. 보트를 둘러싼 해수(海水)의 투명함은, 나를 몹시 불안하게 했다. 명치의 안쪽 언저리에 쾡 하니 구멍이 생겨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출구도 입고도 없는, 순전히 텅 빈 구멍이었다.

 

몸속의 그 기묘한 결락감-부재(不在)가 실재(實在)한다고 하는 감각-은 높은 첨탑의 꼭대기에 올랐을 때 느끼는 공포에 싸인 감각과 어딘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복과 고소(高所)공포와 상통하는 데가 있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예전에 이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꼭 그때였다. 나는 '그때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배를 곯고 있었단 말이다. 그건.......

 

"빵 가게를 습격했을 때다" 하고 나는 무의식중에 말했다.

"빵 가게 습격이라니, 무슨 소리에요?" 하고 아내가 물었다.

그렇게 해서 빵 가게 습격의 회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훨씬 예전에 빵 가게를 습격한 적이 있었단 말야. 별로 큰 빵 가게도 아니고, 이름있는 빵 가게도 아니었어. 특별히 맛있는 곳도 아니었고, 특별히 맛없는 곳도 아니었어.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빵 가게였지. 상가 한복판에 있었는데, 영감쟁이가 혼자서 빵을 구워서 팔고 있었어. 아침에 구운 빵이 다 팔리면 그대로 가게 문을 닫아 버리는 그런 조그마한 빵 가게였지."

"어째서 그런 대단치 않은 빵 가게를 골라서 습격했죠?"

"대단한 가게를 습격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랬지. 우리는 자신의 굶주림을 채워 줄 만한 양의 빵을 구하고 있었던 것이지, 뭐 돈을 빼앗으려 했던 건 아니었거든. 우리는 습격자지, 강도는 아니었어."

"우리?"

"'우리'라니 누구 말예요?"

"나한텐 그 즈음 짝패가 있었단 말이야. ...... 벌써 십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말야, 우리는 둘 다 너무너무 가난해서, 가루 치약조차 살 수 없었지, 물론 먹을 것마저 언제나 부족했었고. 그래서 그 당시 우리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참으로 갖가지 못할 짓들을 했던 거야. 빵 가게 습격도 그중의 하나인데...... ."

"잘 이해가 안돼요." 하고 아내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새벽녘 하늘에서 바랜 별의 모습을 찾아내려는 것 같은 눈매였다.

 

"어째서 그런 짓을 했죠? 일하지 않았죠?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빵쯤은 살 수 있었을텐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빵 가게를 습격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나은 것 같아요."

"일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야. 그건 뭐, 너무나 명백한 일이었단 말야."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일하고 있잖아요?"

 

나는 수긍을 하고 맥주를 한 모금 홀짝거렸다. 그리곤 손목의 안쪽으로 눈꺼풀을 비볐다. 몇 병째의 맥주가 나에게 졸음을 가지고 왔다. 그것은 엷은 진흙처럼 나의 의식 속으로 숨어 들어와, 공복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시대가 달라지면 공기도 달라지고,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거든. 이제 슬슬 자지 않겠어? 둘 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하고 나는 말했다.

"졸리지 않으니까 빵 가게 습격한 얘기나 듣고 싶어요." 하고 아내는 말했다.

"시시한 얘기야. 적어도 당신이 기대하고 있는 그저 재미난 얘기는 아니야. 요란한 액션도 없고 말이지."

"그래서 습격은 성공했나요?"

 

나는 단념을 하고 맥주 하나를 또 땄다. 아내는 무슨 말을 묻기 시작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답을 듣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성미였다.

 

"성공했다고 할 수 있고, 성공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지. 요컨대 우리는 빵을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었지만 그게 강탈은 될 수 없었다, 그 말이야. 말하자면 우리가 빵을 강탈하려고 하기 전에, 빵 가게 주인이 우리한테 그것을 주었다, 그 말이야."

"공짜로?"

"공짜는 아니지. 그 점이 꽤 까다로운데" 하고 나는 고개를 흔든 후 말을 이었다.

"빵 가게 주인은 클래식 음악광이라, 마침 그때 가게에다 바그너의 <서곡집>을 틀어 놓고 있었지.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그 레코드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들어준다면 가게 안의 빵을 원하는 만큼 갖고 가도 된다는 흥정을 제의해 왔단 말이야. 나와 짝패는 둘이서 의논했지. 그리고 이런 결론에 도달했단 말이야. 음악을 들어주는 것쯤 괜찮지 않느냐고 말이지. 그건 순수한 의미에서의 노동도 아니고, 누구를 해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건 순수한 의미에서의 노동도 아니고, 누구를 해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래서 우리는 식칼과 나이프를 보스톤 백에 넣어 가지고 의자에 앉아서 빵 가게 주인과 함께 <탄호이저>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서곡을 들었던 거야."

 

"그리고 빵을 얻었다, 그거군요."

"그렇지. 나와 짝패는 가게에 있던 빵의 대부분을 백에 넣어서 갖고 와, 나흘인가 닷새 동안 그걸 먹어댔지."

나는 다시 맥주를 홀짝 거렸다. 졸음은 해저 지진으로 생겨난 소리없는 파도처럼 나의 보트를 둔중하게 흔들어대고 있었다.

"물론 빵을 훔친다는 소기의 목적은 성취한 셈이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범죄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지. 이를테면 그건 교환이었거든. 우리는 바그너를 들었고, 그 대신 빵을 입수한 셈이니까 말이야. 법률적으로 보면 상거래 같은 거지."

"하지만 바그너를 듣는 건 노동은 아니죠." 하고 아내는 말했다.

"바로 그거야. ...... 가령 빵 가게 주인이 그때 우리에게 접시를 닦는 일이나 유리창 닦는 일을 요구해 왔다면, 우리는 그걸 단호히 거부하고, 숫제 빵을 강탈했을 거란 말이야. 그러나 주인은 그런 건 요구하지 않고, 다만 단순히 바그너의 레코드판을 끝까지 듣는 것만 요구했단 말이야. 그래서 나와 짝패는 몹시 혼란을 일으키고 말았지. 바그너가 나오다니,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거든. 그건 마치 우리들에게 내린 '저주' 같은 거였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우리가 그런 제안에는 귀를 기울이지 말고, 처음 예정했던 대로 그자를 흉기로 위협해 단순히 빵만 강탈했으면 됐던 거야. 그랬더라면 아무문제도 없었을 거라구."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요?"

나는 또 손목 안쪽으로 눈꺼풀을 비볐다.

"그렇지. 하지만 그건 똑똑히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문제랄 건 아니지. 다만 여러 가지 일들이 그 사건을 계기로 서서히 변했을 뿐이야. 그리고 한번 변해 버린 것은, 이미 원상 복구는 될 수 없었지. 결국 나는 대학으로 되돌아와서 무사히 졸업하고,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사법 시험 공부를 했지. 그리고 당신을 알게 되어 결혼한 거야. 두 번 다시 빵 가게를 습격하지 않게 된 거지."

"그걸로 끝인가요?"

"그래, 그저 그런 얘기라구."

 

나는 남아 있는 맥주를 마셨다. 그래서 6병의 맥주를 전부 비워 버렸다. 재떨이 속에는 6개의 풀링이 벗겨져 떨어진 반어인의 비늘처럼 남아 있었다.

물론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똑똑히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일만 해도 몇 가지는 확실히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서는 그녀에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의 짝패는 지금 어떡하고 있죠?" 하고 아내가 물었다.

"몰라, 그 뒤에 사소한 일로 해서, 우리는 헤어졌지. 그 이후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몰라."

 

아내는 얼마 동안 잠자코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내 말투에 무엇인지 석연치 못한 구석을 알아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점에 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들이 헤어진 건 그 빵 가게 습격 사건이 직접적인 원인이었겠죠?"

"아마 그랬겠지. 그 사건에서 우리가 받은 충격이 얼핏 보기보단 훨씬 큰 것이 아니었나 싶어. 우리는 그후 며칠이고 빵과 바그너의 상관관계에 대해 논의했었지. 과연 우리가 취한 선택이 옳았는지 어쩐지에 대해서 말야. 하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어. 그냥 생각하면 선택은 옳았던 거야. 누구 한 사람 다치지 않았으면, 모두가 일단은 만족한 편이었으니까 말이지. 빵 가게 주인은-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지만, 어쨌든-바그너를 선전할 수 있었고, 우리는 배 터지도록 빵을 먹을 수 있었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무엇인가 중대한 착오가 존재하고 있다고 우리는 느꼈단 말이야. 그리고 그 오류는,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들의 생활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어뜨리게 됐단 말이야. 내가 아까 '저주' 란 말을 쓴 건 그 때문이라구. 그건 의심할 여지없이 '저주' 와 같은 거였지."

"그 저주는 이제 사라져 버린 건가요, 당신들 두 사람을 위해서?"

 

나는 재떨이 속에 있는 여섯 개의 풀링을 사용해서 팔찌만한 크기의 알루미늄 고리를 만들었다.

 

"그건 나도 알 수 없어. 세상엔 퍽이나 많은 저주가 넘쳐 있는 것 같으니까.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 그것이 어느 저주 탓인지 알아내기란 어려운 일이거든."

"아니에요, 그렇진 않아요." 아내는 내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구요. 그리고 당신이 자기 손으로 그 저주를 풀지 않는 한, 그건 충치처럼 당신이 죽을 때까지 괴롭힐 거예요. 당신뿐만 아니라, 나도 같이 말예요."

"당신을?"

"그럼요, 이제는 내가 당신의 단짝이니깐요.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배고픔이 그거예요.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이런 지독한 공복감을 맛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걸요. 이런 일이 이상하단 생각이 안 들어요? 분명 당신한테 걸린 저주가 나마저 몰아가고 있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고리로 만든 풀링을 다시 흐트러 뜨려서 재떨이 속으로 도로 넣었다.

그녀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 어떤지 나로선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고 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동안 의식의 바깥으로 멀어져 있던 공복감이 다시 되돌아왔다. 그 허기는 전보다도 더 강렬한 것이어서, 그 탓으로 머리의 한가운데가 몹시 아팠다. 위(胃)바닥이 켕기더니, 그 떨림이 크러치 와이어로 머리 중심에 전도(傳導)되었다. 나의 몸 속에는 갖가지의 복잡한 기능이 조립돼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또다시 해저 화산으로 눈을 보냈다. 바닷물은 아까보다도 훨씬 투명해서 자세히 보지 않고서는 거기에 물이 존재해 있다는 것조차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마치 보트가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두둥실 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밑바닥에 있는 조약돌 하나하나까지도 손에 잡힐 듯 또렷이 보였다.

 

"당신과 함께 지낸 지 아직 반달밖에 안됐는데도 나는 어떤 저주의 존재를 신변에 계속 느껴 왔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는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한 채 테이블 위에서 좌우의 손가락을 깍지 꼈다.

"물론 당신의 말을 들을 때까진 그것이 저주인 줄 알지 못했지만요, 이제 와선 그걸 똑똑히 알 수 있어요. 당신은 저주받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그 저주를 어떤 존재로 느끼고 있단 말이지?"

"몇 해 동안이나 빨지 않은 먼지투성이의 커튼이 천장으로부터 드리워져 있는 그런 느낌이 든다구요."

"그건 저주가 아니라 나 자신일지도 몰라" 하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는걸요."

"만일 당신이 말한 것처럼 그게 저주라고 한다면, 난 도대체 어떡하면 좋지?"

"한 번 더 빵 가게를 습격하는 거예요. 그것도 지금 즉시요."하고 그녀는 딱 잘라 말했다.

"그것밖에 이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구요."

"지금 즉시라고?" 하고 나는 되물었다.

"그래요, 지금 곧. 이 공복감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성취하지 못했던 일을 지금 성취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런 한밤중에 빵 가게가 문을 열고 있을까?"

"찾아봐요. 도쿄는 넓은 도시 아녜요? 반드시 어딘가엔 밤새 내내 영업하고 있는 빵 가게가 하나쯤은 있을 거예요." 하고 아내는 말했다.

 

나와 아내는 중고 도요타 카로러를 타고, 새벽 2시 반에 빵 가게를 찾아 도쿄 거리를 헤매었다. 내가 핸들을 잡고, 아내는 조수석에 앉아, 도로의 양쪽에 육식조 같은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며 달리고 있었다.

뒷좌석에는 레밍턴의 자동 산탄총이 경직된 가느다란 물고기 같은 꼴로 누워 있었고, 아내가 걸친 윈드브레이커의 주머니에서는 예비 산탄이 짤랑짤랑 메마른 음향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트렁크에는 검은 스키 마스크가 2개 들어 있었다.

 

어째서 아내가 산탄총을 소유하고 있었는지, 나로선 짐작도 가지 않았다.

스키 마스크만 해도 그렇다. 나도 그녀도 스키 따위는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단 말이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 그녀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결혼 생활이란 기묘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완벽하달 수도 있는 장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철야 영업을 하는 빵 가게를 한 집도 찾아내지 못했다.

 

나는 밤중의 텅 빈 도로에서, 요요기로부터 신주쿠로, 그리고 우츠야, 아카사카, 아오야카, 히로오, 롯폰기, 다이칸잔, 시부야에로 차를 몰았다.

깊은 밤의 도쿄에서는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과 가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빵 가게만은 없었다. 그들은 한밤중에 빵을 굽거나 하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는 도중에 두 번 경찰의 순찰차와 마주쳤다. 한 대는 도로 옆에 가만히 숨어 있었고, 또 한 대는 비교적 느린 속도로 우리 차를 추월해 나갔다.

그럴 때마다 내 옆구리에서는 땀이 배어 나왔는데, 아내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도 않고, 열심히 빵 가게를 찾고 있었다. 그녀가 몸의 각도를 바꿀 때마다, 주머니 속의 산탄이 베갯속 메밀껍질 같은 소리를 냈다.

 

"이제 그만 단념하자구. 이런 밤중에 빵 가게 같은 건 열지 않는다구. 이런 일은 역시 미리 사전 조사를 하고서 해야 한다구...... ."

"차를 세워요!" 하고 아내가 당돌하게 말했다.

 

나는 당황해서 차의 브레이크를 밟았다.

 

"여기로 해요" 그녀는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핸들에 손을 놓고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빵 가게 비슷한 건 눈에 띄지 않았다.

도로 옆의 상점은 보두 다 거무스레한 셔터를 내리고,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이발소의 간판이 비틀어진 인공 눈처럼, 어둠 속에 차갑게 떠올라 있었다. 2백 미터 가량앞쪽에 맥도널드 햄버거의 밝은 간판이 보일 뿐이었다.

 

"빵 가게 같은 건 없다구."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아무 말도 않고 트렁크를 열어 헝겊 제품의 점착테이프를 꺼내, 그것을 손에 쥐고 차에서 내렸다. 나도 반대쪽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차의 앞쪽에 웅크리더니, 점착테이프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번호판에 붙여 번호를 읽을 수 없게끔 했다. 그 다음에 뒤쪽으로 돌아가, 그쪽 번호판도 마찬가지로 감추었다. 제법 익숙한 솜씨였다. 나는 멍청하게 서서 그녀의 작업을 보고만 있었다.

 

"저 맥도널드를 해치우기로 해요" 하고 아내가 말했다. 마치 저녁 식사의 반찬을 예고할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였다.

"맥도널드는 빵 가게가 아니라구." 하고 나는 지적했다.

"빵 가게나 다름없어요. 타협이라는 것도 경우에 따라선 필요한 거예요. 아무튼 맥도널드 앞에 대라구요."하고 아내는 차 안으로 돌아갔다.

나는 설득을 단념하고 차를 2백 미터 전진시켜, 맥도널드의 주차장에 넣었다. 주차장에는 반짝거리는 빨간색 블루버드가 한 대 멈춰 있을 뿐이었다. 아내는 모포로 둘둘 만 산탄총을 나에게 내밀었다.

 

"이런 건 쏘아 본 적도 없고, 쏘고 싶지도 않아" 하고 나는 항의했다.

"쏠 필요 없어요. 갖고 있기만 하면 되요. 아무도 저항하진 않을 테니까요. 알겠어요?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 거예요. 먼저 둘이서 당당하게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거예요. 그리고 점원이 '어서 오세요, 맥도널드로' 하고 말하면 그걸 신호로 잽싸게 스키 마스크를 뒤집어쓰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어. 하지만...... ."

"그러면 당신은 점원한테 총을 들입다 겨누고는, 전체 종업원들과 손님들을 한군데에다가 모아 놓는 거예요. 잽싸게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나머지는 내가 잘 알아서 할 테니까 맡겨 놓으세요."

"그렇지만...... ."

"햄버거 몇 개쯤 필요하죠? 한 30쯤 있으며 되겠어요?" 하고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아마도 그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한숨을 쉰 후 산탄총을 받아들고, 모포를 조금 젖혀 보았다. 총은 모래 자루처럼 무겁고, 밤의 어둠처럼 거무칙칙했다.

"정말 이럴 필요가 있을까?" 하고 나는 말했다. 그것은 절반은 그녀에게 하는 질문이었고, 절반은 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물론이에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어서 오세요, 맥도널드로."

맥도널드 모자를 쓴 카운터의 여자아이가 맥도널드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한밤중의 맥도널드에선 여자아이가 일하지 않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한순간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이내 생각을 고치고 스키 마스크를 머리 위로부터 푹 뒤집어썼다.

 

카운터의 여자아이는 갑자기 스키 마스크를 뒤집어쓴 우리들의 모습을 아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한 상황에 대한 대응법은 <맥도널드 접객 안내서?>의 어디에도 씌어 있지 않았을 테니까.

그녀는 "어서 오세요, 맥도널드로"의 다음을 계속하려 했으나, 입이 굳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래도, 사교적인 미소만은 새벽녘 초승달처럼 입술 가장자리에 불안정하게 걸려 있었다.

나는 되도록 서둘러 모포를 해치고 총을 꺼내, 그걸 객석으로 돌려 댔는데, 객석에는 학생 비슷한 커플이 한 쌍 있을 뿐이었고, 그것도 플라스틱 테이블에 엎드려서, 쿨쿨 자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들의 머리 2개와 스트로베리 셰이크 컵이 2개, 전위적인 물체처럼 정연히 줄지어 있었다. 두 사람은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으므로, 그들을 방치해 둔다 해도 우리의 작업에 특별히 지장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총구를 카운터 안으로 돌렸다.

 

맥도널드의 종업원은 전부 해서 세 사람이었다. 카운터의 여자아이, 20대 후반으로 보이고 혈색이 나쁜 달걀형의 얼굴을 가진 지점장, 표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희미한 그림자 같은 조리장의 아르바이트 학생이었다.

세 사람은 레지스터 앞에 모여서, 잉카의 우물을 바라보는 관광객 같은 눈초리로 내가 겨눈 총구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덤벼들지도 않았다.

총은 몹시 무거웠으므로, 나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총신을 레지스터 위에 얹었다.

 

"돈은 드리겠습니다. 11시에 회수했기 때문에 그렇게 많진 않지만요, 전부 갖고 가십기오. 보험에 들어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하고 지점장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정면의 셔터를 내리고, 간판의 전기를 끄세요."하고 아내가 말했다.

"기다려 주십시오. 그건 곤란합니다. 임의로 가게를 닫으면 저의 책임 문제가 됩니다요."하고 지점장이 말했다.

 

아내는 똑같은 명령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되풀이했다.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좋아" 하고 나는 충고를 했다. 지점장은 무척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는 레지스터 위의 총구와 아내의 얼굴을 얼마동안 견주어 보다가, 이윽고 체념을 하고 간판의 등불을 끄고, 판넬의 스위치를 눌러 정면 문짝의 셔터를 내렸다.

 

혼란통에 얼렁뚱땅 그가 비상 경보 장치나 무슨 보턴이라도 누르지 않을까 하고 나는 줄곧 경계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 맥도널드 햄버거 체인점에는 비상 경보 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햄버거 가게가 습격당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정면의 셔터가 야구 배트로 양철통을 두드려대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고 닫혀 버린 다음에도, 테이블의 커플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토록 깊이 잠든 걸 본 적이 없었다.

 

"빅 맥은 30개, 테이크아웃으로"하고 아내가 말했다.

"여분으로 돈을 드릴 테니까, 어디 딴 가게에서 주문해 드시지 않겠습니까. 장부 기입이 굉장히 까다로워진답니다. 다시 말해서...... ." 하고 지점장이 말했다.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좋아" 하고 나는 되풀이하여 말했다.

 

세 사람은 함께 조리장에 들어가 30개의 빅 맥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햄버거를 굽고, 지점장이 그것을 빵에 끼워 넣고, 여자아이가 흰 포장지로 감아 쌌다. 그러는 동안 누구도 한마디 입을 놀리지 않았다.

 

나는 대형 냉장고에 기대어, 산탄총의 총구를 철판 위로 향하게 하고 있었다. 철판위에서는 고기가 갈색의 물방울 무늬처럼 나열되어, 지글지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기 굽는 달콤한 냄새가 마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그마한 벌레떼처럼 나의 온몸 털구멍으로 기어들어, 혈액에 섞여 몸의 구석구석을 돌아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몸의 중심에 생긴 굶주림의 빈 굴에 집결해, 그 핑크색 벽면에 단단히 매달렸다.

 

흰 포장지에 싸여 옆으로 쌓아 올려지는 햄버거를 한 개나 두 개 손에 집어서 허겁지겁 먹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에 부응하는 행위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기에, 어떻게든 30개의 햄버거가 한 개도 빠짐없이 구워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조리장 안은 더웠고, 나는 스키 마스크 밑에서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햄버거를 만들면서, 가끔 총구에 흘깃흘깃 눈길을 주었다. 나는 이따금씩 왼손 새끼손가락 끝으로 귀를 긁적거렸다. 나는 긴장하면 반드시 귓구멍이 가려워진다.

 

내가 스키 마스크 위로 귓구멍을 긁적거릴 때마다, 총신이 불안정하게 위아래로 흔들렸고, 그것이 세 사람의 기분을 얼마간 헷갈리게 하는 것 같았다. 총의 안전장치를 걸어 놓은 채였으므로 오발할 걱정은 없었지만, 세 사람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나도 일부러 가르쳐 줄 생각은 없었다.

 

세 사람이 햄버거를 만들고, 내가 철판을 향해 총구를 대고 망을 보고 있는 동안, 아내는 객석도 엿보고, 완성된 햄버거 수도 세어보곤 했다. 그녀는 포장지로 싸놓은 햄버거를 손에 돈 종이 봉지에다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종이 봉지 1개에는 15개의 빅 맥 햄버거가 들어갔다.

 

"어째서 이런 일을 하죠? 돈을 갖고 달아나, 그걸로 좋아하는 걸 사먹으면 될 텐데요. 첫째, 빅 맥을 30개 먹어봤자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어요?" 하고 여자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아무대답도 않고 그저 고개를 모로 저었다.

"나쁘다곤 생각하지만, 빵 가게가 열려 있지 않았단 말이야. 빵 가게가 열려 있었다면, 제대로 빵 가게를 습격했을텐데 말야" 하고 아내가 그 여자아이에게 설명했다.

 

나는 그런 설명이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가 되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들은 더 이상 입을 놀리지 않았으며, 잠자코 고기를 구워 빵에 끼워 넣고 그것을 포장지에 쌌다. 손에 든 2개의 봉지에 30개의 빅 맥을 집어넣자 아내는 여자아이에게 대형 컵 콜라를 2개 주문하고, 그 몫의 돈을 지불했다.

 

"빵 이외는 아무것도 뺏을 생각이 없다구." 하고 아내는 여자아이에게 설명했다.

 

여자아이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한 복잡한 표정을 하고 머리를 움직였다. 그것은 고개를 흔드는 것 같기도 하고, 끄덕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도 양쪽 동작을 동시에 하려고 했던가 보다. 그녀의 심정은 나도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아내는 그 다음에 주머니에서 짐 묶는 가느다란 끈-그녀는 무엇이나 갖고 있다.-을 꺼내 가지고, 세 사람의 몸을 단추라도 꿰매는 식으로 솜씨 좋게 기둥에다 붙잡아 묶었다. 세 사람은 이젠 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는 줄 알았는지, 잠자코 이쪽에서 하는 대로 내맡겼다. 아내가 "아프지 않아?" 또는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아?" 하고 물어도 그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모포에 총을 싸고, 아내는 두 손에 맥도널드의 마크가 붙은 자루를 들고, 셔터틈으로 해서 밖으로 나섰다. 객석의 두 사람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깊은 바닷속에 사는 어류처럼 쿨쿨 잠만 자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 두 사람의 깊은 잠을 깨뜨릴 수 있을까 하고 나는 의아해 했다.

 

30분가량 차를 달리고 나서, 적당한 빌딩 주차장에 멈추고, 우리들은 실컷 햄버거를 먹고, 콜라를 마셨다. 나는 전부해서 6개의 빅 맥을 위장의 빈 굴을 향해 들여보내고, 아내는 4개를 먹었다. 그래도 차의 백 시트에는 아직 20개의 빅 맥이 남아 있었다.

 

날이 새면서 우리의 그 영원히 계속되는 게 아닌가 싶던 깊은 허기도 사라져 갔다. 최초의 태양 빛깔이 빌딩의 지저분한 벽면을 연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소니 베이터 하이파이'의 거대한 광고탑을 눈부시게 반짝이게 했다. 가끔씩 지나가는 장거리 트럭의 타이어 소리에 뒤섞여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왔다. FEN에서는 컨트리 뮤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둘이서 한 개비의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우고 나자, 아내는 내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얹었다.

 

"하지만, 꼭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있었던 걸까?" 하고 나는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리곤 한 번 더 깊은 한숨을 쉬고 나서, 잠을 잤다. 그녀의 몸은 고양이처럼 부드럽고, 그리고 가벼웠다.

 

혼자가 되어 버리자, 나는 보트에서 몸을 내밀어, 바다 속을 들여다보았는데, 거기에는 이미 해저 화산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 수면(水面)은 조용히 하늘의 푸르름을 비추고, 잔물결이 바람에 흔들리는 비단 파자마처럼 보트의 뱃전을 부드럽게 두드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보트 바닥에 몸을 누인 후 눈을 감고는, 밀물이 내가 가야 할 장소로 실어다 줄 것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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