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비행기

chocohuh 2012. 12. 21. 08:26

:혹은 그는 어떻게 시를 읽듯 혼잣말을 하였는가?

 

그 오후, 그녀가 물었다.

“있지, 당신 옛날부터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어?”

 

그녀는 마치 불현듯 생각이 났다는 듯, 테이블에서 조용히 얼굴을 들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질문이 어쩌다 문득 생각난 것이 아님은 명백했다. 그녀는 필시 그 점에 대해 줄곧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런 경우이면 반드시 묻어 있는, 약간은 쉰 듯한 딱딱한 울림이 있었다. 실제로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그 말은 그녀의 혓바닥 위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망설임에 자맥질을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부엌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앉아 있다. 가끔씩 근처에 있는 선로 위를 지나가는 전철 소리를 제외하면, 사방은 대체로 잠잠하게 가라앉다 있다. 때로는 너무 조용하다 싶을 만큼 조용했다. 전철이 지나가지 않을 때의 선로란 불가사의할 정도로 조용한 법이다. 부엌 바닥에는 비닐 타일이 깔려 있어, 맨발인 그의 발바닥에는 싸늘하고 기분좋은 감촉이다. 벗은 그의 양말은 바지 주머니 속에 쑤셔 박혀 있다. 4월 치고는 지나치게 따뜻한 오후였던 것이다. 그녀는 엷은 색상의 체크무늬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부치고 있었다. 그리고 가늘고 하얀 손가락으로 커피 스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는 그런 그녀의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다.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려나, 의식이 기묘하게도 평탄해졌다. 그녀가 세계의 끝자락을 쥐고, 그것을 조금씩 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은 걸리지만, 아무튼 거기에서부터 풀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양, 어쩐지 사무적으로, 그리고 아주 무감각하게.

 

그는 아무 말도 않고 그 동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커피 잔 속에 남아 있는 커피는, 이미 식어 탁했다.

그는 막 스무 살이 되었다. 여자는 그보다 일곱 살이나 많고, 결혼을 했고, 어린애까지 있었다. 요컨대 그녀는, 그에게 달의 이면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그녀의 남편은 해외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에 근무하고 있다. 그 탓에 한 달의 반은 집을 비운다. 런던이니 로마니 싱가폴이니 하는 곳으로 출타 중인 날이 많다. 그녀의 남편은 오페라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집에는 베르디와 푸치니와 도니제티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세 장짜리 네 장짜리 두툼한 레코드가, 작곡가별로 정리되어 즐비하게 레코드장을 장식하고 있다. 그것은 레코드 컬렉션이라기보다, 오히려 일종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듯이 보였다. 그것은 차분하고 아주 확고하게 보인다. 그는 언어가 궁해지거나 어쩐지 따분하다 싶을 때에는, 늘 그 레코드 재킷에 새겨져 있는 글자를 눈으로 더듬는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제목을 일일이 머릿속으로 읽어나간다.

 

<라 보엠>, <토스카>, <투란도트>, <노르마>, <피델리오> …… .

 

그는 이런 종류의 음악을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좋아한다든가 싫어한다든가를 따지기 이전에,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가족이든, 친구든, 그의 주변에는 오페라를 좋아하는 인간 따위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오페라라는 음악이 있고, 그것을 듣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의 한 면모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딱히 오페라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싫어하지는 않아.”라고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너무 길어.”

 

레코드장 옆에는 꽤나 멋들어진 오디오 시스템이 있다. 외제인 커다란 진공관 앰프가 잘 훈련받은 갑각 동물처럼, 묵직하게 몸을 구부리고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교적 검소한 다른 살림살이 속에서,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눈에 띄었다. 존재감 그 자체가 각별했다. 그쪽으로 자연히 눈길이 가고 만다. 하지만 그는 그 오디오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그녀는 전원 스위치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고, 그 역시 구태여 그것에 손을 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야, 라고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몇 번이나 거듭 그렇게 말했다. 남편은 자상하고 부드러운 사람이고, 아이도 무척 사랑하고 있어, 아마 나는 행복할꺼야, 라고 그녀는 온화하고, 담담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뭔가 둘러대고 있는 듯한 느낌은 없었다. 그녀는 교통 규칙이나 날짜 변경선에 관해 이야기하듯 객관적으로 결혼 생활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해, 문제라 할 만한 것은 없어, 라고.

 

그럼 어째서 나랑 자는 것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꽤 열심히 생각해 보았지만, 그로서는 대답을 알 수 없었다. 도무지 결혼 생활의 문제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얼 의미하는지조차 그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직접 물어 봐야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말을 꺼내기가 묘했다. 뭐라고 물으면 좋지? 그렇게 행복하다면 왜 나랑 자느냐, 라고 솔직하게 질문하면 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질문을 했다간, 그녀는 틀림없이 울음을 터뜨릴 거야,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곧잘 운다. 아주 작은 소리로, 긴 시간 운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그녀가 왜 우는지 이유조차 모른다. 여자는 한 번 울었다 하면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놔두기만 하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 울음을 그친다. 인간이란, 어찌도 이렇듯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것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그때껏 몇몇 여자와 사귄 적이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울거나 화를 내거나 하였다. 그녀들의 울음, 그녀들의 웃음, 그녀들의 분노, 그것들은 하나같이 모습을 달리하고 있었다. 닮은 부분도 간혹은 있지만, 다른 부분이 훨씬 많다. 아무래도 연령과는 별 상관이 없는 듯하다. 연상의 여자와 사귀는 것은 처음이지만, 그가 생각한 만큼 나이가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지니고, 품고 있는 경향의 차이가 훨씬 더 의미심장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바로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중요한 열쇠가 아닌가하고 생각하였다.

 

그녀가 울음을 그치면, 그 다음 대개 두 사람은 성교를 하였다. 여자는 운 다음에만 그를 원했다. 그 밖의 경우에는 늘 그 쪽에서, 여자를 원했다. 여자가 거절하는 때도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잠자코 고개를 젓는다. 그럴 때 그녀의 눈은, 하늘 한 끝에 떠 있는, 새벽녘의 하얀 달처럼 보였다. 새 날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에 몸을 떠는 납작하고 암시적인 달. 그런 눈을 보면, 그는 더 이상 채근을 할 수가 없었다. 성교를 거부당해도, 별로 짜증도 나지 않았고, 불쾌한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마음속으로 휴우, 하고 안심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때 두 사람은 부엌 테이블을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조그만 목소리로 쉬엄쉬엄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양쪽 다 이야기를 많이 하는 성격은 아니었고, 공통적인 화제도 그리 많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는 이미 기억해낼 수 없다. 그저 띄엄띄엄 도막난 이야기를 했다는 것밖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창밖으로 전철이 지나갔다.

 

두 사람의 육체적 접촉은 언제나 차분하고 조용했다. 거기에는 정확한 의미의 육체의 환희 같은 것은 없었다. 물론 남자와 여자가 성을 나누는 희열이 없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너무도 많은 다른 상념과 요소와 양식이 뒤섞여 있었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경험한 그 어떤 섹스와도 달랐다. 그것은 그에게 좁다란 방을 연상케 했다. 깨끗하게 정리된 느낌이 좋은 방이다. 분위기도 좋다. 그 방 천장에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끈이 매달려 있다. 각기 모양도 다르고 길이도 다르다. 그 한줄 한줄이 그의 기분을 유혹하고, 전율케 한다. 그는 어느 줄 하나를 당겨보고 싶어 한다. 그들 줄은 그가 잡아당겨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줄을 잡아당기면 좋을지, 그는 알 수가 없다. 어떤 줄을 잡아당기면 멋진 광경이 눈앞에 활짝 펼쳐질 듯 한 기분이 들고, 반대로 순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화할 듯 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몹시 망설인다. 망설이는 사이에 그 하루가 끝나 버린다.

 

그는 그런 상황이 불가사의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껏 자기 나름의 가치관을 갖고 살아왔노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방에서, 연상의 말수가 작은 여인을 안고 있노라면, 때로 자신이 압도적인 혼란 속을 방황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나는 애당초 이 여자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일까, 라고 그는 자신을 향하여 몇 번이나 물어 보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확신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조그만 방의 천장에 매달린 알록달록한 끈뿐이었다. 그것은 거기에 있다.

 

그 기묘한 성교가 끝나면, 그녀는 언제나 힐끗 시계를 보았다. 그의 품 안에서 얼굴을 약간 돌리듯 하여, 베개머리에 있는 시계를 보는 것이다. 그것은 FM라디오에 붙어 있는 검은 자명종 시계였다. 그 당시 시계 라디오의 글자판은 아직 디지털이 아니고, 찰칵찰칵하고 조그만 소리를 내며 글자판이 넘어가는 타입이었다. 그녀가 시계를 보면, 창밖으로 전철이 지나갔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시계에 눈길을 주면 항상 전철 소리가 났다. 마치 숙명적인 조건반사처럼. 그녀가 시계를 본다? 전철이 지나간다.

 

그녀가 시계를 보는 까닭은, 네 살배기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딱 한번 우연찮게 그녀의 딸아이를 본 적이 있다. 어딘지 모르게 얌전하다 싶은 여자 아이란 인상밖에 없었다. 오페라를 좋아하고 여행사에 근무하는 남편과는 한 번도 맞닥뜨린 적이 없다. 요행히도.

 

여자가 혼잣말에 대해 질문을 한 것은, 5월의 느지막한 오후였다. 그녀는 그날도 역시 울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섹스를 하였다. 그녀가 그날 왜 울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아마도 그녀는 그냥 울고 싶어서 울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 울고 싶어, 나랑 사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그렇게 생각한 적까지 있다. 그녀는 어쩌면 혼자서는 울 수가 없어서, 그래서 울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문을 꼭꼭 잠그고, 창문의 커튼을 치고, 전화기를 머리맡에 갖다놓고, 두 사람은 침대 위에서 섹스를 하였다. 늘 그렇듯 아주 조용하게, 도중에 한 번 현관 벨이 울렸는데,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특별히 놀라거나 긴장하지는 않았다.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니까, 라고 말하는 양 그녀는 잠자코 고개를 저었다. 현관 벨은 몇 번을 울리다가, 상대방이 포기하고 어디론가 가버렸는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그녀 말대로, 별 대수롭지 않은 상대였던 것이다. 세일즈맨이든가 뭐 그런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는 알 수 있는 것일까, 하고 나는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가끔씩 전철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는 멜로디다. 옛날, 학교 음악실에서 들은 적이 있는 음악이다. 하지만 그 제목은 끝내 생각나지 않았다. 채소 장사 트럭이 한 대 덜컥덜컥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녀가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쉴 때, 그는 사정을 하였다. 아주 조용히.

 

그는 먼저 목욕탕으로 들어가 샤워를 하였다. 그가 배스타월로 몸을 닦으며 나오니, 그녀는 침대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그녀 옆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늘 그러듯 세워져 있는 오페라 레코드의 글자를 눈으로 더듬으며 여자의 등을 손끝으로 살며시 어루었다.

 

그러고나서 여자는 일어나 옷을 단정히 입고는, 부엌에서 커피를 끓였다. 잠시 후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있지 당신, 옛날부터 죽 혼잣말하는 버릇 있었어? 라고.

 

“혼잣말?”

그는 놀라 되물었다.

“혼잣말이라니? 당신이랑 섹스할 때?”

“아니, 그게 아니고 보통 때. 가령 샤워를 할 때라든가, 내가 부엌에 있고, 당신은 혼자서 신문을 읽고 있거나 할 때 말이야.”

그는 고개를 저었다.

“몰랐는데. 내가 혼잣말을 하다니.”

“하지만 하고 있는걸, 정말로.”라고 그녀는 그의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딱히 당신 말을 안 믿는 것은 아니야.”라고 그는 어정쩡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담배를 물고, 여자의 손에 있던 라이터를 들어 불을 붙였다. 그는 바로 얼마 전부터 담배를 세븐 스타로 바꾸어 피고 있다. 그녀 남편이 세븐 스타를 피우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까지 내내 쇼트 호프를 피웠었다. 그녀가 세븐 스타를 피우라고 한 것은 아니다. 그가 스스로 신경을 써서 바꾼 것이다. 그러는 편이 어쨌거나 편리할 것이라 생각하여. 텔레비전의 멜로드라마에서 그러는 것처럼.

“나도 어렸을 적에는 곧잘 혼잣말을 했었거든.”

“그래?”

 

“하지만 엄마가 그 버릇을 고치라고 해서. 남사스럽다고. 그래서 혼잣말을 할 때마다 심하게 꾸중을 들었어. 벽장에 갇히기도 하고. 벽장은 너무 무서웠어. 어둡고 곰팡이 냄새도 나고. 얻어맞은 적도 있었지. 막대자로 무릎을 때리는 거야. 그리곤 얼마 안 있어 혼잣말을 하지 않게 되었지. 전혀 한 마디도 하지 않게 되었어. 어느 새인가.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게 된 거지.”

그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잠자코 있었다. 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도 불쑥 말이 튀어나올 것 같으면, 반사적으로 삼켜버려. 어렸을 적에 혼이 난 탓에. 하지만 모르겠어. 혼잣말을 하는 게 어디가 그렇게 나쁘다는 건지. 말이 자연히 나오는 것뿐이잖아. 지금 엄마가 살아 있다면 물어보고 싶을 정도야. 어디가 잘못된 거냐구.”

“돌아가셨어?”

“응.”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꼭 물어보고 싶었어. 왜 나한테 그런 짓을 했냐고.”

그녀는 계속 커피 스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문득 벽에 걸린 시계에 눈길을 주었다. 그녀가 시계를 보면 창밖으로 전철이 지나갔다.

그녀는 전철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깊은 우물 같은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 그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 가끔 떠오르는 것들의 모양을 보고 상상할 수밖에 없어.”

두 사람은 한동안 우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어떤 혼잣말을 했지? 예를 들어.”

“음, 글쎄.”라고 말하고 그녀는 천천히 몇 번인가 고개를 저었다. 마치 목의 관절이 잘 움직이고 있는지 살며시 확인이라도 하듯.

“예를 들면, 비행기에 관해서”

“비행기?” 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 라고 그녀는 말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그는 웃는다. 어째서 또 하필이면 비행기란 말인가.

그녀도 웃는다. 그리고 오른손의 집게손가락과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사용하여, 공중에 뜬 가공의 물체의 길이를 재었다. 그것은 그녀의 버릇이다. 때로는 그도 똑같은 몸짓을 할 때가 있다. 그녀의 버릇이 옮은 것이다.

 

“아주 분명하게 말하는데. 정말 기억 못하는 거야?”

“기억 안 나.”

 

그녀는 테이블 위에 있는 볼펜을 집어, 그것을 한참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또 시계를 보았다. 5분 동안 시계 바늘은 정확하게 5분만큼만 움직였다.

 

“당신은 마치 시를 읽듯 혼잣말을 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얼굴을 조금 붉혔다. 내가 혼잣말을 한다는데 어째서 그녀가 얼굴을 붉히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자, 그는 어쩐지 이상했다.

 

나는 마치

시를 읽듯

혼잣말을 한다.

그는 그렇게 말해 보았다.

 

그녀는 다시 볼펜을 손에 잡는다. 무슨 무슨 은행의 어디 어디 지점 10주년 기념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노란색 플라스틱 볼펜.

그는 그 볼펜을 가리켰다.

“내가 또 혼잣말을 하거들랑 그 볼펜으로 메모를 좀 해주겠어?”

여자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듯 지그시 보았다.

“정말 알고 싶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메모 용지에, 볼펜으로 뭐라고 쓰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막히거나 쉬거나 하는 일없이 볼펜을 움직였다. 그동안 그는 턱을 괴고, 그녀의 긴 속눈썹을 보고 있었다. 몇 초에 한 번씩, 그녀는 불규칙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런 속눈썹을? 방금 전까지 눈물에 젖어 있었던 속눈썹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그는 또 알 수 없어졌다. 그녀와 잔다는 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복잡한 시스템의 일부가 찍 잡아당겨져 놀랄 만큼 단순해 진 듯한 기묘한 결락감이 그를 엄습하였다. 이대로 나는 더 이상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견딜 수 없이 무서웠다. 자신이란 존재가 그대로 녹아 없어질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그는 막 생겨난 진흙탕처럼 아직 젊고, 시라도 읽듯, 혼잣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 쓰고 나자, 여자는 테이블 너머로 그 메모 용지를 내밀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부엌에는 무언가의 잔상이 숨을 죽이고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때때로 그는 그런 잔상의 존재를 감지한다.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무언가의 잔상. 그는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의 잔상.

 

“난, 전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어.”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것이 비행기에 관한 혼잣말.”

그는 소리내어 그것을 읽어보았다.

 

비행기

비행기가 날아

나는, 비행기에

비행기는

날아

하지만, 난다 해도

비행기가 하늘인가

 

“이것뿐이야?”

그는 어안이 벙벙하여 물었다.

“응, 그 말뿐이야.”

“믿을 수 없군. 이렇게 길게 혼잣말을 하면서, 자신은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니.”

그녀는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고는, 잠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말했어, 그렇게.”

그는 한숨을 쉬었다.

“이상하군, 느닷없이 비행기라니. 비행기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데. 그런 기억이 전혀 없어. 어떻게 비행기가 불쑥 튀어나온 거지.”

 

“하지만 당신, 아까 목욕탕에서도 분명히 그렇게 중얼거렸는걸. 그러니까 당신이 아무리 비행기를 생각하지 않았다 하더라고, 당신 마음은 어딘가 먼 숲속에서 비행기를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어쩌면 어느 숲속 깊은 데서 비행기를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그녀는 탁, 하는 조그만 소리를 내며 볼펜을 테이블 위에 놓고는, 눈을 들어 그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테이블 위에서 커피는 점점 식어, 탁해졌다. 지축이 회전하고, 달은 은밀히 중력을 바꾸고 조수를 만든다. 침묵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선로 위로는 전철이 통과한다.

 

그도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다. 그의 마음의 숲속 어딘가에서 만들고 있는 비행기를. 그것은 어느 정도 크기에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어떤 색을 하고 있을까, 어디로 가려 하는가, 하는 것들을. 거기엔 과연 누가 탈 것인가. 깊은 숲속에서 끈기있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비행기를.

 

잠시 후에 그녀가 또 울었다. 하루에 그녀가 두 번이나 울다니, 처음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두 번 운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특별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테이블 너머로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왠지 아주 리얼한 감촉이었다. 마치 인생 그 자체인 것처럼, 딱딱하고 매끈하고, 그리고 멀리에 있었다.

 

그는 생각한다. 그래, 그 무렵, 나는 마치 시를 읽듯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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