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 잔디를 깎았던 것은 열여덟 살인가 열아홉 살 때였으니까, 벌써 14~15년 전의 일이다. 상당히 오래됐다.
때때로 14~15년 정도를 옛날이라고 할 수도 없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짐 모리슨이 <라이트 마이 파이어>를 노래하거나, 폴 매커트니가 <롱 앤드 와인딩 로드>를 노래하던 시대-약간 이전이나 이후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런 시대였다.-가 그렇게 먼 옛날이었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실감이 나지를 않는다. 나 자신은 그 시대와 비교해 볼 때 그다지 많이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나도 틀림없이 상당히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 꽤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변했다. 그리고 14~15년 전은 상당히 먼 옛날 이야기다.
집 근처에-나는 얼마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공립 중학교가 있어서, 나는 물건을 사러 가거나 할 때마다 그 앞을 지나간다. 그리고 걸어가면서 중학생들이 체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서로 장난을 치거나 하고 있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특별히 좋아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밖에 바라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른쪽에 있는 벚꽃나무 가로수를 바라봐도 괜찮겠지만, 그것보다는 중학교를 바라보는 편이 그래도 낫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매일 중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그들은 열넷이나 열다섯일 거야’라고.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작은 발견이고, 작은 놀라움이었다. 14~15년 전에 그들은 태어나지 않았든지, 태어났다 하더라도 거의 의식이 없는 붉은 색 핏덩어리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들이 지금은 벌써 립스틱을 칠하거나, 체육관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마스터베이션을 하거나 디스크 자키에게 시시껄렁한 엽서를 보내거나, 누군가의 집 담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낙서를 하거나, <전쟁과 평화>를-아마도-읽는 것이다.
아이고 맙소사, 하고 나는 생각했다.
14~15년 전이라고 하면, 내가 잔디를 깎던 무렵 아닌가.
*
기억이라는 것은 소설과 비슷하다. 혹은 소설이라는 것은 기억과 비슷하다.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그것을 절실하게 실감하게 되었다. 기억이 소설과 비슷하다, 라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깔끔하게 정리를 하려고 노력을 해도, 문맥이 이쪽 저쪽으로 분산되어 결국에는 문맥조차 이어지지 않게 된다. 마치 축 처진 고양이 새끼를 몇 마리 정도 겹쳐 쌓아 놓은 것 같다. 뜨뜻미지근하고 게다가 불안정하기까지 하다. 그런 것이 상품이 될 수 있다니-상품 말이다-굉장히 창피한 일이라고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정말로 얼굴이 붉어질 때도 있다. 내가 얼굴을 붉히면, 전 세계가 얼굴을 붉힌다.
그러나 인간 존재를 비교적 순수한 동기에 의거한 상당히 바보스러운 행위로 파악한다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가 따위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기억이 생겨나고 소설이 태어난다. 이것은 이미 누구라도 멈출 수 없는 운동기계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덜컹덜컹 소리를 내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지표에 끊어지지 않는 한 줄의 선을 그어 나간다.
모든 일이 잘되었으면 좋겠네요, 하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잘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과거에 잘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런 연유로, 나는 다시 새끼 고양이를 모아서 겹쳐 쌓아 간다. 새끼 고양이들은 축 늘어져 있어서 굉장히 부드럽다.
잠이 깨서 자신들이 캠프파이어의 장작처럼 겹쳐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새끼 고양이들은 어떤 식으로 생각할까? 어럽쇼, 어쩐지 이상한데,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그 정도라고 한다면-나는 조금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충 그렇다는 얘기다.
*
내가 잔디를 깎았던 것이 열여덟인가 열아홉 살 때였으니까, 벌써 꽤 옛날 일이다. 그 무렵, 나에게는 같은 나이 또래의 애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사정이 있어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도시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1년에 기껏해야 2주 정도였다. 우리는 만나면 섹스를 하거나, 영화 구경을 하거나, 비교적 사치스러운 식사를 하거나, 두서 없는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요란스럽게 말다툼을 하고, 화해를 하고, 다시 섹스를 했다. 요컨대, 이 세상의 일반 연인들이 하는 것을 축소판 영화와 같은 느낌으로 황급하게 해치웠던 셈이다.
내가 그녀를 정말로 좋아했는지를 지금 와서는 잘 모르겠다. 생각해 낼 수는 있으나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녀하고 식사를 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녀가 하나씩 옷을 벗는 걸 보길 좋아했으며, 그녀의 부드러운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아했다.
섹스가 끝난 뒤, 그녀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지껄여대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도,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 다음 일은 제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와 만나는 몇 주일간을 제외하면, 나의 인생은 지독히 단조로웠다. 적당히 대학에 얼굴을 내밀며 강의를 듣고, 그럭저럭 다른 학생들과 비슷한 학점을 땄다. 그러고는 혼자 영화 구경을 하거나 아무런 목적도 없이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거나 했다. 한 사람, 가깝게 지내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녀에게는 애인이 있었으나, 우리는 둘이서 자주 어딘가에 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혼자 있을 때에는 로큰롤 레코드만 들었다. 행복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불행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그 나이에는 모두 그런 법이다.
7월 초순 어느 여름날 아침, 애인에서 길다란 편지가 날아들었는데, 거기에는 나하고 헤어지고 싶다고 씌어져 있었다, 나를 지금까지 줄곧 사랑해 왔으며,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지만 헤어지고 싶다는 얘기였다.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담배를 여섯 개비나 피우고, 밖으로 나가 캔 맥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담배를 피웠다. 그러고 나서 책상 위에 있는 HB의 길다란 연필심을 세 개나 부러뜨렸다. 특별히 화가 난 것은 아니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랐던 것뿐이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일을 하러 갔다. 그 후에 한참 동안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최근에 굉장히 밝아진 것 같군” 하는 말을 들었다. 인생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나는 그 해, 잔디 깎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회사는 오다큐선의 게이도 역 근처에 있었는데, 꽤 잘되는 회사였다. 대개의 사람들은 집을 새로 지으면 뜰에 잔디를 심거나 개를 기른다. 이것은 조건 반사 같은 것이다. 한꺼번에 양쪽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잔디밭의 푸르름은 아름답고, 개는 귀엽다. 그러나 반년쯤 지나고 나면, 모두들 조금은 싫증을 내기 시작한다. 잔디는 깎아주지 않으면 안 되고, 개는 산책을 시켜 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쨌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잔디를 깎았다. 나는 지난해 여름에, 대학의 학생과를 통해서 그 일자리를 알선 받았다. 나 외에도 몇 명인가 더 있었지만, 모두 얼마 안 가 그만 두어 버리고 나 혼자만 남았다.
일은 힘이 들었지만, 급료는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타인과 그다지 말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거기에 근무한 이래, 어느 정도의 돈을 저축했다. 여름에 애인과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기 위한 자금으로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와 헤어져 버린 지금에 와서는, 여행이고 나발이고 없다.
나는 이별의 편지를 받고 나서 약 1주일 가량, 그 돈을 어디에 쓸까 이리저리 궁리해 보았다. 아니, 사실은 그것밖에는 생각할 일이 없었다. 왠지 영문을 알 수 없는 1주일이었다. 내 몸이 다른 사람의 몸처럼 느껴졌다. 내 손이나 얼굴이나 페니스나, 그러한 모든 것들이 내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녀를 끌어안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누군가가-내가 모르는 누군가가-그녀의 조그만 젖꼭지를 살며시 깨물고 있는 것이다. 왠지 무척이나 이상한 기분이다. 마치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돈을 어디에 쓸까 하는 문제는 끝내 해답을 얻지 못했다. 누군가가 중고차를 사지 않겠느냐는 제의도 해왔다. 거리는 상당히 뛴 것이지만 자동차는 깨끗했고, 가격도 적당했다. 하지만 왜 그런지 마음이 내키지를 않았다. 스테레오 장치의 스피커를 좀 더 큰 것으로 교환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으나, 나의 작은 목조 아파트에서는 무리였다. 아파트를 옮겨도 좋겠지만, 이사 갈 이유가 없다. 아파트를 옮기고 나면, 스피커를 교환할 만한 돈이 남지를 않는다.
돈을 쓸 때가 없었다. 여름에 입을 폴로 셔츠 한 장과 레코드를 몇 장인가 샀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성능이 좋은 소니 트랜지스터 라디오도 샀다. 커다란 스피커가 달려 있어서 FM이 대단히 깨끗하게 들렸다.
그런 1주일이 지난 뒤에, 나는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돈을 쓸 곳이 없다면, 계속 돈을 벌어들이는 것도 무의미한 것이다.
나는 어느 날 아침, 잔디 깎는 회사의 사장에게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얘길 했다. 이제 슬슬 취직 시험 공부도 시작해야 하고, 그전에 잠시 여행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돈은 필요 없다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 그렇겠군. 그것 참 유감이로군” 하고 사장(사장이라기 보다는 정원사 같은 느낌의 아저씨다)은 정말로 유감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웠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우드득우드득 목을 돌렸다.
“자네는 정말로 일을 열심히 해주었는데. 아르바이트생 중에서는 제일 고참이고, 단골 손님들의 평판도 좋았고 말야. 하여간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일을 성실하게 해주었네.”
감사하다고 나는 말했다. 실제로 나는 굉장히 평판이 좋았다. 꼼꼼히 일을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르바이트생들은 대형 전동 잔디깎이로 대충 잔디를 밀고는, 나머지 부분은 적당히 해치웠다. 그렇게 하면 일도 빨리 끝나고, 몸도 고단하지 않다.
나의 방식은 완전히 그 반대였다. 기계는 적당히 쓰고, 수작업을 공들여 했다. 기계로는 잘 깎아 낼 수 없는, 구석구석의 미세한 부분을 꼼꼼히 다듬었다. 당연히 마무리 작업이 깨끗하다. 다만 수입은 적어진다. 급료 계산은 한 건에 얼마라는 식으로 했기 때문이다.
정원의 일반적인 면적을 토대로 가격이 정해진다. 그리고 계속 몸을 구부리고 작업을 하게 되니까, 허리가 매우 아프다. 이것은 실제로 해보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다. 익숙해질 때까지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불편할 정도다.
나는 특별히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 꼼꼼하게 일을 한 것은 아니다. 내 말을 그대로 믿어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단순히 잔디 깎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잔디 깎는 가위를 숫돌에 갈고, 잔디깎이를 실은 라이트 밴을 몰고 단골 손님 집으로 가서 잔디를 깎는다. 여러 가지 모양의 정원이 있고, 여러 가지 타입의 주부들이 있다. 얌전하고 친절한 주부가 있는가 하면, 퉁명스러운 사람도 있다. 브래지어도 하지 않은 채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서, 잔디를 깎는 내 앞에서 몸을 구부려 젖꼭지까지 다 보여 주는 젊은 부인도 있다.
어쨌든 나는 잔디를 계속 깎았다. 대개 뜰의 잔디는 풀숲처럼 자랄 대로 잔뜩 자라 있었다. 잔디가 많이 자라 있으면 있을수록, 일하는 보람이 더 있었다. 작업이 끝난 다음에 뜰의 인상이 확 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척 신난다. 마치 두터운 구름이 활짝 걷히고, 찬란한 햇빛이 가득 차는 듯한 느낌이다.
꼭 한 번-일이 끝난 뒤에- 부인들 중 한 사람과 잔 일이 있다. 서른 두세 살쯤 된 여자였다. 그녀는 몸집이 작고, 조그맣고 딱딱한 유방을 갖고 있었다. 덧문을 모조리 닫고 전등도 끈 채, 캄캄한 방안에서 우리는 섹스를 했다.
그녀는 원피스를 입은 채 속옷을 벗고는 내 위에 올라탔다. 가슴에서 아래쪽은 나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그녀의 몸은 이상하게 섬뜩하고, 질만 따뜻했다. 그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잠자코 있었다. 원피스 자락이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도중에 한 번 전화벨이 울렸지만, 한참동안 울리다가 제풀에 그쳤다.
나중에 나는 문득 내가 애인과 헤어지게 된 게 이 일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특별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왠지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응답을 할 수 없었던 전화 벨 탓이다. 하지만 그건 그래도 할 수 없다. 이미 끝난 일이니까.
“하지만 난처하군 그래. 자네가 지금 빠져버리면 예약을 처리할 수가 없게 되네. 지금이 제일 바쁜 시기니까 말일세”하고 사장이 말했다.
장마가 진 탓에 잔디가 한껏 자라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1주일 간 만 더 일을 해주는 건 어떻겠나? 1주일만 있으면 새 사람도 오고, 그럭저럭 처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1주일만 연장해서 일해 준다면 특별 보너스를 지급해 주겠네.”
좋다고 나는 대답했다. 당장 특별히 이렇다 할 계획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잔디 깎는 일 자체가 싫어서 그만두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참으로 이상한 일이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돈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 찰나에 돈이 들어오니 말이다.
사흘 동안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하루는 비가 내리고, 다시 사흘 동안은 날씨가 화창했다. 그런 식으로 마지막 1주일이 지나갔다.
여름이었다. 그것도 홀딱 반해 버릴 것만 같은 아름다운 여름이었다. 하늘에는 또렷한 흰 구름이 떠 있었다. 태양은 이글거리며 살갗을 태웠다. 나는 세 차례나 허물을 벗었고, 벌써 까맣게 탔다. 귀 뒤쪽까지 새까맣다.
마지막으로 일을 하는 날 아침, 나는 티셔츠와 반바지, 운동화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라이트 밴을 타고, 나에게 있어서 마지막 뜰로 향했다. 자동차의 라디오는 고장이 나서, 집에서 가지고 온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로큰롤을 들으면서 차를 운전했다. 클리덴스라든가, 그랜드 펑크라든가, 그런 느낌이다.
모든 것이 여름의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나는 짤막짤막하게 휘파람을 불었고, 휘파람을 불지 않을 때에는 담배를 피웠다. FEN의 뉴스 아나운서는 기묘한 억양으로 베트남 지명을 연발하고 있었다.
나의 마지막 작업장은 요미우리 랜드 근처에 있었다. 아이구 맙소사! 무엇 때문에 가나가와 현에 사는 사람이, 세타가야의 잔디 깎는 아르바이트생을 부르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인가?
그래도 나에게는 그것에 대해서 불평을 할 권리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 그 일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회사에 나가면, 칠판에 그 날의 작업장이 전부 써 있어서, 각자가 좋아하는 장소를 고르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까운 장소를 선택한다. 왕복 시간이 짧아서 그만큼 여러 곳에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먼 곳의 일을 선택한다. 언제나 그렇다. 그것에 대해서는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아르바이트생들 가운데서는 제일 고참이라, 원하는 일을 맨 먼저 고를 수 있다.
특별히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멀리까지 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먼 곳의 정원에서 먼 곳의 잔디를 깎는 것을 좋아한다. 먼 곳의 길과 먼 곳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해보았자, 아마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자동차 창을 전부 열고 운전했다. 도시에서 멀리 떠날수록 바람이 시원해지고, 초록이 선명해진다. 풀 냄새와 메마른 흙 냄새가 강해지고, 하늘과 구름의 경계가 또렷해진다.
더할 수 없이 맑게 개인 날씨로, 여자와 둘이서 짧은 여름 여행을 떠나기에는 최고의 날씨였다. 나는 시원한 바다와 뜨거운 모래사장을 생각했다. 그러고는 에어컨디셔너가 켜진 작은 방과 말쑥한 푸른색 시트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것뿐이었다. 그것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모래사장과 푸른색 시트가 교대로 머리에 떠올랐다.
주유소에서 오일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동안에도 같은 걸 생각했다. 나는 주유소 옆의 풀밭에 드러누워서, 직원이 오일을 체크하거나 창을 닦거나 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땅바닥에 귀를 갖다 대니까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 왔다. 멀리서 들려 오는 파도 소리 같기도 했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파도 소리는 아니다. 땅바닥으로 빨려 들어간 여러 가지 소리가 뒤섞인 것뿐이다.
눈앞의 풀잎 위를 작은 벌레가 기어가고 있었다. 날개가 달린 조그만 초록색 벌레다. 벌레는 잎사귀 끝까지 기어가더니 한참 동안 망설이고 나서 같은 길을 뒷걸음 쳐 돌아왔다. 특별히 낙담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10분쯤 지나니까 급유가 끝났다. 직원이 자동차의 경적을 울려서 나에게 그것을 알려 주었다.
*
내가 일할 집은 언덕 중턱에 있었다. 완만하고 한적한 언덕이다. 구불구불한 길 양쪽에는 느티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었다. 어떤 집의 뜰에서는 어린 사내아이 두 명이 벌거벗고 호스로 서로에게 물을 뿌려대고 있었다. 하늘로 향한 물보라가 50센티미터 가량의 조그만 무지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누군가가 창문을 열어 놓은 채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었다.
번지에 의해서 더듬어 가니까 집은 간단히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집 앞에 라이트 밴을 세우고 벨을 눌렀다. 대답이 없었다. 주위는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벨을 누르고 꼼짝 않고 대답을 기다렸다.
아담하고 느낌이 좋은 집이었다. 크림 색깔의 사각형 굴뚝이 솟아 있었다. 창틀은 회색이고 흰 커튼이 쳐져 있었다. 둘 다 햇빛에 그을러서 변색되어 있었다. 낡은 집이지만, 그것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피서지에 가면 흔히 이런 느낌의 집을 볼 수 있다. 절반만 사람이 살고 절반은 빈집인데, 바로 이런 분위기였다.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건물에서 인기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프랑스 식으로 쌓은 벽돌담은 허리 높이 정도로, 그 위는 장미 울타리로 되어 있었다. 장미꽃은 모두 떨어지고 녹색 잎사귀가 눈부신 여름 햇살을 하나 가득 받고 있었다. 잔디밭의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았으나, 뜰은 상당히 넓고 커다란 녹나무가 크림색 벽에 서늘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세 번째로 벨을 눌렀을 때, 현관 문이 천천히 열리고, 중년 여자가 나타났다. 엄청나게 몸집이 큰 여자였다. 나도 결코 몸집이 작은 편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나보다 3센티미터나 더 컸다. 어깨도 넓고, 마치 뭔가에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이는 아마 쉰 살 전후일 것이다. 미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얼굴 모습은 단정했다.
하긴 단정하다고 해고 남에게 호감을 주는 타입의 얼굴은 아니었다. 짙은 눈썹과 각진 턱에서는 한번 말을 꺼내면 절대로 뒤로 물러나지 않을 듯한 고집을 엿볼 수 있었다.
그녀는 졸리운 듯한 게슴츠레한 눈으로 귀찮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희머리가 약간 섞인 뻣뻣한 머리카락이 머리 위에서 물결치고, 갈색의 무명 원피스의 짧은 소매 사이로 억센 두 개의 팔이 축 늘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그녀가 물었다.
“잔디를 깎으러 왔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나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잔디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전화를 받고 왔습니다.”
“응, 아아, 그렇지, 잔디. 오늘이 몇 일이지요?”
“14일입니다.” 그녀는 하품을 했다.
“그렇구나. 14일이구나.” 그러고는 다시 한 번 하품을 했다. 마치 한 달쯤 잠을 못 잔 것 같았다.
“그런데 담배, 가진 거 있어요?”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 주고, 성냥으로 불을 붙여 주었다. 그녀는 기분 좋은 듯이 하늘을 향해서 후 하고 연기를 뿜어냈다.
“어느 정도나 걸릴까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시간 말입니까?” 그녀는 턱을 쑥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넓이와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한번 둘러봐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지요. 보지 않고서는 일을 할 수 없을 테니까요.”
나는 그녀 뒤를 따라서 뜰로 나갔다. 뜰은 평평한 장방형으로, 60평 정도의 넓이였다. 자양화 덤불이 있고, 녹나무 한 그루, 나머지는 잔디밭이었다. 창문 밑에는 새장 두 개가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뜰은 잘 손질이 되어 있었으며, 잔디는 애써 깎을 필요도 없을 만큼 짧았다. 나는 약간 실망했다.
“이 정도라면 앞으로 2주일은 견딜 수 있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여자는 짧게 콧소리를 냈다.
“좀더 짧게 깎아 줬으면 좋겠어요. 그 때문에 돈을 내는 거니까요.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그대로 해주면 되는 거예요.”
나는 잠깐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긴 그녀가 말한 대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머리 속으로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네 시간 정도면 되겠어요.”
“너무 느린데요.”
“괜찮으시다면, 천천히 깎고 싶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물론 좋을 대로 하세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라이트 밴에서 전동 잔디깎이와 가위와 갈퀴와 쓰레기 자루와 아이스 커피를 넣은 병과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꺼내서 뜰로 운반했다.
태양이 점점 중천에 가까워지자 기온은 올라갔다. 내가 도구를 운반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현관에 구두를 열 켤레쯤 늘어놓고 걸레로 먼지를 닦고 있었다. 구두는 전부 여자 구두였는데, 작은 사이즈와 특대 사이즈 두 종류였다.
“일을 하는 동안 음악을 틀어도 괜찮겠습니까?” 하고 나는 물어 보았다.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도 음악을 좋아해요.”
나는 맨 먼저 뜰에 떨어져 있는 작은 돌맹이들을 치우고, 그 담음에 전동 잔디깎이를 작동시켰다. 돌맹이가 빨려 들어가면 칼날이 상한다. 잔디깎이의 앞면에는 플라스틱 바구니가 달려 있어서, 깎여진 잔디는 전부 그 곳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바구니가 가득 차면 그것을 떼어 애서 쓰레기 자루에 버렸다.
뜰이 60평이나 되면, 짧은 잔디라도 꽤 많은 양을 깎아 내게 된다. 태양은 쨍쨍 내리쬐었다. 나는 땀으로 젖은 티셔츠를 벗고 반바지 하나만 걸쳤다. 마치 허울 좋은 바비큐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경우, 아무리 물을 마셔도 소변 같은 것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전부 땀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한 시간쯤 잔디 깎는 기계로 작업을 하고 나서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 녹나무 그늘에 앉아서 아이스 커피를 마셨다. 당분이 몸의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머리 위에서는 매미가 계속 울어댔다. 라디오의 스위치를 켜고 다이얼을 돌려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 나오는 프로를 찾았다. 마침 내가 찾던 노래가 나오는 방송이 나오는 곳에 다이얼을 멈추고, 벌렁 드러누워서 선글라스를 통해서 나뭇가지와 그 틈새로 새어 드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다가와서 내 옆에 섰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니까, 그녀가 녹나무처럼 보였다. 그녀는 오른손에 잔을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얼음과 위스키 같은 것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이 여름날의 햇살에 반짝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무척 덥지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렇군요.”
“점심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시계를 보니, 11시 20분이었다.
“열두 시가 되면 먹으러 가겠습니다. 근처에 햄버거 가게가 있는 것 같으니까요.”
“일부러 거기까지 갈 필요 없어요. 샌드위치라도 만들어 줄 테니깐.”
“정말 괜찮습니다. 항상 밖으로 먹으러 나갔거든요.”
그녀는 위스키 잔을 들어올려 한 번에 절반 가량을 마셨다. 그러고는 입을 오므리고 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나도 먹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내친김에 만들어 주겠다는 거예요. 싫다면 억지로 권하지는 않겠어요.”
“그럼, 먹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턱을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어깨를 흔들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열두 시까지는 가위로 잔디를 깎았다. 우선 기계로 깎은 부분 중 고르지 않은 부분을 다듬고, 그것을 갈퀴로 긁어 모으고 나서, 그 다음에는 기계로 깎지 못하는 부분을 깎았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적당히 하려고 생각하면 적당히 할 수가 있고, 꼼꼼히 하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꼼꼼히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꼼꼼히 했다고 해서 그만큼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느냐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꾸물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나는 전에도 말했다시피 상당히 꼼꼼히 한다. 이것은 성격 문제다. 그리고 어쩌면 프라이드 문제다.
열두 시를 알리는 사이렌이 어딘가에서 울리자, 그녀는 나를 부엌으로 오라고 해서 샌드위치를 대접했다.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깨끗하고 청결한 부엌이었다. 쓸데 없는 장식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플하고 기능적인 부엌이었다. 전기 제품은 전부 다 구형 모델이었다. 반갑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마치 어딘가에서 시대가 멈춰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거대한 냉장고가 부웅하는 소리를 내면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빼놓으면, 주위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식기에도 스푼에도 그림자와 같은 고요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녀는 맥주를 권했으나, 나는 작업중이라고 하면서 사양했다. 그녀는 그 대신에 오렌지 주스를 꺼내 주었다. 맥주는 그녀가 대신 마셨다. 식탁 위에는 절반으로 줄어든 화이트 허스 병도 놓여 있었다. 싱크대 밑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빈 병이 굴러 다녔다.
그녀가 만들어 준 햄과 양상추와 오이 샌드위치는 보기보다는 훨씬 맛있었다. 굉장히 맛이 있네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은 옛날부터 내 특기였어요. 죽은 남편은 미국인이어서 매일 샌드위치를 먹었거든요. 샌드위치를 먹여 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했어요“ 하고 말했다.
막상 그녀 자신은 샌드위치를 한 조각도 먹지 않았다. 피클을 두 조각 먹었을 뿐 계속 맥주만 마셨다. 그다지 맛있게 마시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마시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우리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샌드위치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이상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나도 할 얘기가 전혀 없었다.
열두 시 반에 나는 잔디밭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잔디밭이다. 이것만 깎고 나면, 이제 잔디하고는 인연이 없어진다. 나는 FEN의 로큰롤을 들으면서 잔디를 꼼꼼하게 다듬었다. 몇 번씩이나 갈퀴로 깎아내 잔디를 털어 내고, 이발사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여러 각도에서 깎지 않은 곳이 없는가를 점검했다.
한 시 반쯤에 3분의 2가 끝났다. 땀이 여러 찰P 눈 속으로 들어가서, 그때마다 뜰의 수도에서 얼굴을 씻어야 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몇 번인가 페니스가 발기하고, 그리고 가라앉았다. 잔디를 깎으면서 발기를 하다니 정말 바보스럽다.
2시 20분에 일이 끝났다. 나는 라디오를 끄고, 맨발로 잔디밭 위를 걸어다녀 보았다. 만족스러웠다.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울퉁불퉁한 곳도 없었다. 융단처럼 매끈했다.
나는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발바닥으로 그 섬뜩한 녹색 감촉을 한참 동안 즐겼다. 그러는 사이에 몸에서 힘이 쑥 빠져 버렸다.
그녀는 마지막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당신을 지금도 무척 좋아해요. 인정이 많고 매우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너무 심한 말이죠. 아마 아무런 설명도 되지가 않을 거예요. 열아홉 살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싫은 나이랍니다. 앞으로 그때는 좀더 잘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몇 년 후에는 설명한 필요도 없어지겠지요.”
나는 수돗가에서 얼굴을 씻고, 라이트 밴으로 도구를 운반하고, 새 티셔츠를 입었다. 그리고 현관 문을 열고 일이 끝났다는 것을 알렸다.
“맥주라도 마시고 가지 그래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맥주 정도는 마셔도 괜찮을 것이다.
우리는 뜰 앞에 나란히 서서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나는 맥주를 마시고, 그녀는 가늘고 긴 잔에 레몬을 넣지 않은 보드카 토닉을 마셨다. 술집에서 흔히 공짜로 주는 그런 잔이었다.
매미는 아직도 울어대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도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호흡만이 약간 부자연스러웠을 뿐이다. 쉬익 하는, 이빨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것 같은 호흡이었다. 그렇게 하고 있는 순간에도 갑자기 그녀가 의식을 잃고 털썩하고 잔디밭 위에 쓰러져서, 그대로 죽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쓰러지는 모습을 머리 속으로 상상해 보았다. 아마 꽈당 하고 똑바로 넘어질 것이다.
“일을 참 잘하시는군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시큰둥한 느낌의 목소리였으나 비난하는 투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잔디 깎는 사람을 불렀었지만, 이렇게 꼼꼼히 해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감사합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죽은 남편은 잔디에 대해서 무척 까다로웠지요. 그래서 늘 자기가 직접 손으로 꼼꼼하게 깎곤 했어요. 당신이 깎는 식과 비슷했어요.”
나는 담배를 꺼내서 그녀에게 권하고, 둘이서 담배를 피웠다. 그녀의 손은 내 손보다도 훨씬 컸다. 그리고 돌덩이처럼 딱딱할 것 같았다. 오른손에 들려 있는 잔도, 그리고 왼손에 있는 담배도 무척이나 작게 보였다. 손가락은 굵고 반지도 없었다. 손톱에는 뚜렸한 선이 세로로 몇 줄 가 있었다.
“남편은 시간만 있으면 잔디를 깎았지요. 그다지 괴팍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나는 이 여자의 남편에 대해서 상상을 해보았다. 상상아 잘되지 않았다. 녹나무의 부부를 상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다시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
“남편이 죽고 나서부터는 계속 업자들에게 잔디 깎는 일을 맡겼어요. 나는 햇볕에 약하고, 딸아이는 햇볕에 타는 것을 싫어했거든요. 하긴 햇볕에 피부가 그을리는 것은 제쳐 두고라도, 젊은 여자 아이가 잔디 깎는 일 따위를 할 리가 없지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일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어요. 잔디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깎는 거지요.”
나는 다시 한 번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트림을 했다.
“다음달에도 또 오세요.”
“다음달에는 안 됩니다.”
“왜요?”
“오늘로 이 일은 마지막입니다. 이제 그만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점이 위험하거든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고 나서 발 밑을 바라보더니 다시 얼굴을 보았다.
“학생이라구요?”
“네” 하고 나는 대답했다.
“어느 학교죠?”
나는 대학의 이름을 말했다. 대학의 이름은 특별히 그녀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특별히 감동을 줄 만한 대학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집게손가락으로 귀 뒤쪽을 긁었다.
“이제 더 이상 이 일을 하지 않는단 말이군요,”
“네, 금년 여름에는요” 하고 나는 말했다. 금년 여름에는 이제 더 이상 잔디 깎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년 여름에도, 그리고 내후년 여름에도.
그녀는 양치질이라도 하듯이 보드카 토닉을 한참 동안 입 안에 물고 있다가, 맛있다는 듯이 절반씩 두 번에 나누어서 마셨다. 이마에 땀방울이 잔뜩 맺혀 있었다. 조그만 벌레가 피부에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지요, 밖은 너무 더워서”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2시 35분. 늦은 건지 빠른 건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일은 전부 끝났다. 내일부터는 더 이상 1센티미터도 잔디를 깎지 않아도 된다. 굉장히 묘한 기분이다.
“어디 서둘러 갈 곳이라도 있어요?” 하고 여자가 물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서 차가운 거라도 마시고 가지 그래요. 별로 시간은 안 걸릴 거예요. 게다가 당신께 보여 주고 싶은 것도 있거든요.”
보여 주고 싶은 거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주저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앞장서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고 내 쪽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나는 할 수 없이 그녀 뒤를 따라갔다. 더위 때문에 머리가 몽롱했다.
집 안은 여전히 찬물을 끼얹은 듯이 고요했다. 여름날 오후의 빛의 홍수 속에서 갑자기 집 안으로 들어오자, 눈꺼풀 안쪽이 따끔따끔 쑤셨다. 집 안에는 물이라도 섞은 듯한 엷은 어둠이 감돌고 있었다. 그 어둠은 마치 수십 년 전부터 그 곳에 자리를 잡은 듯한 느낌이었다. 특별히 어둡지 않은 엷은 어둠이었다.
공기는 서늘했다. 에어컨디셔너의 서늘함이 아니라, 공기가 움직이고 있는 서늘함이었다. 어딘가에서 바람이 들어와서 어딘 가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쪽이에요.”
그녀는 똑바로 뻗은 복도를 쿵쿵 소리를 내면서 걸어갔다. 복도에는 몇 개의 창문이 달려 있었으나, 옆집의 돌담과 지나치게 자란 녹나무 가지가 빛을 가로막고 있었다. 복도에서는 여러 가지 냄새가 났다. 모두 친숙한 냄새였다. 시간이 만들어 내는 냄새다. 시간이 만들어 내고, 그리고 또 언젠가는 시간이 지우고 가는 냄새. 오래된 양복이나 낡은 가구나 헌 책이나 낡은 생활의 냄새 말이다.
복도의 막다른 곳에 계단이 있었다. 그녀가 하나씩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오래된 목재가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계단을 올라가자 겨우 빛이 비쳐 들었다. 층계참에 달려 있는 창문에는 커튼이 없어서, 여름의 태양이 마루 위에 빛의 풀을 만들고 있었다. 2층에는 방이 두 개밖에 없었다. 하나는 창고고, 다른 하나가 제대로 된 방이었다. 칙칙한 엷은 녹색 문에 조그만 불투명 유리창이 달려 있었다. 녹색 페인트는 조금 갈라졌고 놋쇠 손잡이 부분은 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녀는 입을 오므리고 휴우 하고 숨을 내쉬고는 거의 비어 있는 보드카 토닉 잔을 창틀에 올려 놓고, 원피스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안은 캄캄하고 그 안의 더운 공기로 인해 후텁지근했다. 닫아 놓은 덧문의 틈새로부터 은박지처럼 납작한 빛이 몇 줄기인가 방안으로 비쳐 들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물아물 먼지가 떠 있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커튼을 털고 유리문을 열고 덧문을 덜컹거리며 열었다. 눈부신 햇살과 서늘한 남풍이 한 순간에 방에 넘쳤다.
방은 전형적인 10대 소녀의 방이었다. 창가에 공부하는 책상이 놓여 있고, 그 반대쪽에 작은 목재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에는 구김이 전혀 없는 푸른색 시트가 덮여 있고, 같은 색깔의 베개가 놓여 있었다. 발치에는 담요 한 장이 개켜져 있었다.
침대 옆에는 옷장과 화장대가 있었고, 그 화장대 위에는 몇 개의 화장품과 빗이라든가 조그만 가위, 립스틱이나 콤팩트 등이 놓여 있었다. 특별히 열심히 화장을 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
책상 위에는 노트와 사전이 있었다. 불어 사전과 영어 사전이었다. 상당히 오래 사용한 것처럼 보였다. 마구 사용한 것이 아니라 얌전하게 사용했나 보다. 펜 꽂이에는 기본적인 필기도구가 갖추어져 있었다. 지우개는 한 쪽만 둥글게 마모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명종 시계와 전기 스탠드와 유리로 된 문진, 어느 것 하나 요란한 것이 없었다.
나무를 댄 벽에는 새의 원색화 다섯 장하고, 숫자만 있는 캘린더가 걸려 있었다. 책상 위에 손가락을 대보니까 먼지가 뽀얗게 묻어 났다. 한 달 치 정도의 먼지다. 캘린더도 6월이었다.
방은 대체로, 그 나이 또래의 여자 아이 방치고는 지나치게 단조로웠다. 봉제 인형도 없었고, 로큰롤 가수의 사진도 없었다. 야단스러운 장식품이나 꽃무늬 휴지통도 없었다.
붙박이 서가에는 여러 종류의 책이 꽂혀 있었다. 문학 전집과 시집, 영화 잡지, 회화전의 팜플렛이 꽂혀 있었다. 영어 페이퍼백도 몇 권 꽂혀 있었다.
나는 이 방 주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지만 잘되지를 않았다. 헤어진 애인의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몸집이 큰 중년 부인은 침대에 걸터앉아서 뚫어지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시선을 줄곧 쫓고 있었으나, 뭔가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만 나를 향했을 뿐 사실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책상의 의자에 앉아서 그녀 뒤쪽의 회반죽 벽을 바라보았다. 벽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그냥 흰 벽이었다. 뚫어지듯이 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윗부분이 앞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햇빛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뭣 좀 마시지 않겠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사양했다.
“사양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을 잡아먹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그녀의 보드카 토닉을 가리키면서 그러면 같은 걸 좀 약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5분 후에 보드카 토닉 두 잔과 재떨이를 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내 보드카 토닉을 한 모금 마셨다. 전혀 약하지 않았다. 나는 얼음이 녹기를 기다리면서 담배를 피웠다.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아마도 내 것보다 훨씬 독할 보드카 토닉을 조금씩 마셨다. 이따금 와작와작 소리를 내면서 얼음을 깨물었다.
“몸이 건강해서 취하지 않아요.”
나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버지도 그랬었다. 하지만 알코올과 싸워서 이긴 인간은 없다. 단지 자신의 코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릴 때까지, 여러 가지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내가 열여섯 살 때 돌아가셨다. 무척이나 간단하게 돌아가셨다. 살아 계셨는지조차 생각해 낼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말이다.
그녀는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잔을 흔들 때마다 얼음 소리가 났다. 열려 있는 창문으로부터 가끔씩 서늘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그것은 남쪽에서 다른 언덕을 넘어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이대로 잠이 들어 버리고 싶을 만큼 조용한 여름날 오후였다. 어딘가 멀리서 전화 벨 소리가 들려 왔다.
“옷장을 열어 봐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옷장으로 가서 시키는 대로 양쪽으로 열리는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옷이 빽빽하게 걸려 있었다. 절반이 원피스고, 나머지 절반은 스커트나 블라우스나 재킷이었다. 전부 여름 옷이었다. 낡은 것도 있고, 거의 한 번도 입어 본적이 없는 듯한 옷도 있었다. 스커트 길이는 대부분 미니였다.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다. 특별히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느낌이 좋았다. 이 정도로 옷이 갖춰져 있으면, 데이트할 때마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며 여름 한철을 날 수 있을 것이다. 한참 동안 옷을 바라보고 나서 나는 옷장 문을 닫았다.
“굉장하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서랍도 열어 봐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잠깐 망설였으나 단념하고 옷장에 달린 서랍을 한 개씩 열어 보았다. 주인도 없는 방안을 휘젓고 다닌다는 것이-설사 어머니가 허락했다 하더라도-올바른 행위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으나, 거절하는 것도 또한 귀찮았다. 오전 열한 시부터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맨 위의 커다란 서랍에는 청바지와 폴로 셔츠와 티셔츠 등이 들어 있었다. 모두 세탁이 되어 반듯하게 개켜져 있어 구김 하나 없었다. 두 번째 서랍에는 핸드백과 벨트, 손수건이나 팔찌가 들어 있었다. 천으로 된 모자도 몇 갠가 있었다. 세 번째 서랍에는 속옷과 양말이 들어 있었다. 모든 것이 깨끗하고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슬퍼졌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나서 서랍을 닫았다.
여자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찬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손에 든 보드카 토닉 잔은 거의 바닥이 보였다.
나는 의자로 돌아와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창 밖으로는 완만한 경사가 져 있고, 그 경사가 끝난 곳에서 또 다른 언덕이 시작되고 있는 풍경이 보였다. 어느 집에나 뜰이 있고, 어느 집에나 잔디밭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그녀’에 대해서 말이에요” 하고 여자는 창 밖으로 시선을 보낸 채 말했다.
“만난 적도 없는데 알 수 있나요?” 하고 나는 말했다.
“대개 옷을 보면 그 여자에 대해서는 알 수가 있죠”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애인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옷을 입었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가 그녀에 대해서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은 막연한 이미지뿐이었다. 그녀의 스커트를 생각해 내려고 하면 블라우스가 사라져 없어지고, 모자를 생각해 내려고 하면, 그녀의 얼굴은 누군가 다른 여자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불과 반 년 전의 일인데도 무엇 하나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나는 그녀에 대해서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모르겠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느낌이라도 괜찮아요. 어떤 것이라도 좋다니까요. 아주 조금이라도 들려주면 되는데.”
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보드카 토닉을 한 모금 마셨다. 얼음이 거의 다 녹아 달콤한 물 같았다. 보드카의 강한 냄새가 목구멍을 통과하여 위로 내려가 미지근함을 느끼게 했다.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이 책상 위의 담뱃재를 흐트러트렸다.
“무척 인상이 좋은, 꼼꼼한 성격의 사람 같습니다. 지나치게 적극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나약하지도 않고요. 성적은 상위권 수준이고, 학교는 여자 대학이나 전문대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친구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사이는 좋습니다...... 맞습니까?”
“계속해 봐요.”
나는 손안에서 잔을 몇 번씩이나 돌리고 나서 다시 책상에 올려 놓았다.
“더 이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한 것도 맞는지 전혀 자신이 없어요.”
“대체로 맞았어요. 비슷해요” 하고 여자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녀의 존재가 조금씩 방안으로 숨어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몽롱한 흰 그림자 같았다. 얼굴도 손도 다리도,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빛의 바다가 만들어 낸 아주 조그만 일그러짐 속에 있었다. 나는 보드카 토닉을 다시 한 모금 마셨다.
나는 계속 말했다.
“남자 친구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나 두 사람 정도요. 잘 모르겠지만요. 어느 정도의 관계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별로 문제가 안 됩니다. 문제는...... 그녀가 여러 가지 것에 익숙해질 수 없다는 겁니다. 자신의 몸이나,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자신이 권하고 있는 것이나, 타인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래요. 당신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요” 하고 한참 뒤에 여자가 말했다.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향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고 싶었다. 잠이 들어 버리면, 여러 가지가 명확해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명확해지는 것이 어떠한 도움을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도 잠자코 있었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보드카 토닉을 반 정도 마셨다. 바람이 약간 강해진 것 같다. 녹나무의 둥근 잎사귀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뚫어질 듯이 그것을 응시했다.
상당히 오랫동안 침묵이 유지되었지만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잠들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녹나무를 바라보고, 내 몸 속에 심지처럼 존재하고 있는 피로를 가공의 손가락 끝으로 계속 확인했다. 그것은 나의 내부에 있으면서, 어딘가 훨씬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연히 붙잡아 둬서 죄송해요. 잔디밭이 너무나 아름답게 깎여서 말할 수 없이 기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돈을 드려야지” 하고 여자가 말하더니 원피스 주머니에 희고 커다란 손을 넣었다.
“얼마지요?”
“나중에 제대로 된 청구서를 보내겠습니다. 은행에 입금시켜 주십시오” 하고 나는 말했다.
여자는 알았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같은 계단을 내려와서 같은 복도를 되돌아 현관으로 나왔다. 복도와 현관은 갈 때와 마찬가지로 섬뜩하고,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어릴 때의 어느 여름날, 얕은 개울을 맨발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커다란 철교 밑을 지날 때 꼭 이런 느낌이 들었다. 캄캄하고, 갑자기 물의 온도가 내려간다. 그리고 모래밭이 기묘한 매끄러움을 띤다.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고 문을 열었을 때에는 정말로 살 것 같았다. 햇살이 내 주위에 가득하고, 바람에서 푸른 냄새가 났다. 몇 마리의 벌들이 졸리운 듯한 날개 소리를 내면서 울타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정말로 훌륭하군요!” 하고 여자는 뜰의 잔디밭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그렇게 말했다.
나도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깨끗하게 깎여 있었다. 멋지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여자는 주머니에서 여러 가지 것-참으로 여러 가지 것-을 꺼내더니 그 속에서 꾸깃꾸깃해진 1만 엔 짜리 지폐를 골라냈다. 그다지 낡지 않은 지폐였지만, 어쨌든 꾸깃꾸깃 했다. 14~15년 전의 1만 엔이라면, 꽤 큰 돈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으나 거절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냥 받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여자는 아직도 뭔가 말을 더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상태로 그녀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잔을 바라보았다. 잔은 비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나를 보았다.
“다시 잔디 깎는 일을 시작하거든 집으로 전화를 걸어 줘요. 언제든지 좋으니까 말이에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샌드위치와 술 잘 먹었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목구멍 안 쪽에서 ‘응’ 같기도 하고, ‘흥’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고, 휙 하니 등을 돌리고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자동차 시동을 걸고 라디오 스위치를 켰다. 벌써 세 시가 훨씬 지나 있었다.
도중에 졸음을 쫓기 위해서 드라이브 인으로 들어가 코카콜라와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스파게티는 지독히 맛이 없어서 절반 밖에 먹지 못했다. 어쨌든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던 것이다. 얼굴색이 안 좋은 웨이트리스가 식기를 치우고 나자, 나는 비닐 의자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았다.
식당은 비어 있었고, 적당하게 냉방이 되어 있었다. 잠깐 잤기 때문에 꿈 같은 것은 꾸지 않았다. 잠 자체가 꿈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잠에서 깼을 때에는 햇빛이 약간 약해져 있었다. 나는 다시 콜라를 한 잔 마시고, 조금 전에 받은 1만 엔으로 계산을 했다.
차에 올라타고 키를 계기판 위에 얹은 채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피로가 나를 향해서 한꺼번에 밀려들어 왔다. 나는 굉장히 지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운전하는 것을 단념하고, 시트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다시 담배를 피웠다. 모든 것이 먼 세계에서 일어난 일 같았다. 쌍안경을 반대쪽에서 들여다보았을 때처럼, 이상하게도 사물이 선명하고 부자연스러웠다.
“당신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원하겠지만, 나는 나 자신이 무엇인가를 주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어요” 하고 애인은 편지에 썼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깨끗하게 잔디를 깎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맨 처음에 기계로 잔디를 깎고, 갈퀴로 긁어모으고, 그러고 나서 잔디깎이 가위로 꼼꼼히 다듬는다. 그것뿐이다. 나는 그것을 할 수가 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고 나는 소리를 내서 말해 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10분 후에 드라이브인의 지배인이 자동차 옆으로 걸어와서, 허리를 구부리고 괜찮냐고 물었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서요” 하고 나는 말했다.
“너무 더워서 그래요. 물이라도 갖다 드릴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습니다.”
나는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와 동쪽을 향해서 달렸다. 도로 양옆에는 여러 종류의 집이 있고, 뜰이 있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있었다. 나는 핸들을 움직이면서 그러한 풍경을 계속 바라보았다. 짐칸에서는 잔디깎이가 덜컹덜컹 하는 소리를 내면서 흔들리고 있었다.
*
그 후, 나는 한 번도 잔디를 깎지 않았다. 언젠가 잔디밭이 잇는 집에서 살게 된다면, 그때 다시 잔디를 깎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훨씬, 훨씬 뒷날의 일일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때가 되어도 나는 틀림없이 굉장히 꼼꼼하게 잔디를 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