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택시를 탄 흡혈귀

chocohuh 2012. 12. 14. 08:40

나쁜 일이란 종종 겹치는 법이다.이 말은 물론 일반론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쁜 일이 몇 번 인가 겹치게 되면, 이 말은 더 이상 일반론이 아니게 된다.

 

만나기로 한 여자와는 길이 엇갈리고, 윗도리의 단추가 떨어져 버리고, 전철 안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충치가 아프기 시작하는데다가, 비까지 내리고, 택시를 타니 교통사고로 도로가 막혀 버리는 형편이다. 이럴 때 만약, 나쁜 일이란 겹치는 법이라고 말하는 녀석이 있으면, 나는 틀림없이 그 놈을 때려눕힐 것이다.

 

일반론 따위란 결국 그런 것이다.

 

일반론이나 격언이란 것은 때때로 나를 몹시 초조하게 만든다. 현관 깔개나 그 비슷한 것이 되어 평생을 뒹굴면서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하고, 나는 그 택시 안에서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쩌면 현관 깔개의 세계에서도 현관 깔개 나름의 일반론이 있고 괴로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현관깔개가 되어서까지 그런 것으로 괴로움을 받는다면 비극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리고 나는 현관 깔개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나는 밀리는 도로 위에서 택시 안에 갇혀 있었다. 가을비가 차 지붕 위에서 뚝, 뚝, 뚝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미터기 요금이 올라 갈 때의 찰칵 하는 소리가 나팔 총에서 발사된 산탄처럼 내 머리에 꽂힌다.

맙소사.

게다가 나는 금연한 지 3일째가 된다. 뭔가 즐거운 일을 생각하려고 해도 무엇 하나 생각해 낼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죽 여자 옷을 벗기는 순서를 생각하고 있었다. 먼저 안경, 그리고 손목 시계, 덜거덕 거리는 팔찌, 그런 뒤에....

 

"저어, 손님."하고 돌연 운전사가 말했다. 내가 블라우스의 첫 번째 단추에 겨우 도달했을 때였다.

"흡혈귀란게 정말 있다고 생각하세요?", "흡혈귀?"

 

나는 어리둥절해서 백미러 속에 있는 운전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운전사도 백미러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흡혈귀라니, 그 피를 빠는...?"

"맞아요. 실재한다고 생각하세요?"

"흡혈귀 같은 존재라든가, 메타포(은유)로서의 흡혈귀, 흡혈박쥐, SF뱀파이어, 이런 것이 아니고 진짜 흡혈귀?", "물론."이라고 운전사는 말하고 나서 50센티 정도 차를 전진시켰다.

"글쎄."하고 나는 말했다.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라고 하면 곤란해요. 믿는지 안 믿는지 둘 중에서 골라 주세요.""안 믿어요."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지 않은 채로 입 위에서 굴렸다.

"유령은 어때요? 믿으세요?"

"유령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생각이 드는 데가 아니고, 예스나 노로 대답해 주시지 않겠어요?", "예스."라고 할 수 없이 나는 말했다." 믿어요."

"유령의 존재는 믿으시는 거지요?"

"예스."

"그러나 흡혈귀의 존재는 믿지 않는다구요?"

"안 믿어요."

"그럼 유령과 흡혈귀의 차이는 도대체 뭔가요?"

"유령이란, 즉 육체적 존재에 대한 안티 테제지요." 라고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이런 것은 매우 자신 있는 일이다.

"흐음."

"그러나 흡혈귀는 육체를 축으로 한 가치 전환이지요."

"결국 안티 테제는 인정하지만, 가치 전환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그렇게 까다로운 걸 인정하면 한이 없으니까요."

"손님, 인텔리시군요."

"대학을 7년이나 다녔으니까."라고 말하고 나는 웃었다.

 

운전사는 전방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차의 행렬을 바라보며 가느다란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박하 냄새가 차 안에서 감돌았다.

 

"그렇지만, 정말로 흡혈귀가 있다면 어떻게 하실래요?", "질려 버리겠지요."

"겨우 그 정도에요?"

"안 되나요?"

"안 되지요. 신념이란 훨씬 숭고한 것이에요. 산이 있다고 생각하면 산이 있고, 산이 없다고 생각하면 산이 없지요." 웬지 도노반의 오래된 노래 같다.

"그럴까요?"

"그렇습니다."

 

나는 불을 붙지 않은 담배를 문 채 한숨을 쉬었다.

 

"그럼 당신은 흡혈귀의 존재를 믿고 있나요?"

"믿고 있습니다."

"왜요?"

"왜라니요? 믿고 있기 때문이지요."

"실증할 수 있나요?"

"신념과 실증은 관계가 없어요."

"그렇게 말하면 그렇군요."라고 나는 말했다.

 

운전사는 그리고 나서 한동안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귓볼을 긁었다. 그리고 운전사와의 대화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았다. 흡혈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왜 이런 곳에서 흡혈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될까? 혹은 이 이야기에는 무언가 빠뜨린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운전사는 입을 다문 채였다.

나는 포기하고 여자 블라우스의 단추로 돌아갔다. 한 개, 두 개, 세 개....

 

"그렇지만 실증 할 수 있어요."라고 한참 후에 운전사가 말했다.

"정말이오?"

"정말입니다."

"어떤 식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흡혈귀니까요."

 

우리는 또 다시 한동안 침묵에 빠졌다. 차는 아까부터 5미터밖에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비는 여전히 뚝 뚝 뚝 하고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요금 미터기는 벌써 1500엔을 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라이터 좀 빌려주세요."

"예."

 

나는 운전사가 내민 하얀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여 3일 만에 니코틴을 폐 속으로 들이켰다.

 

"굉장히 막히는데요."라고 운전사가 말했다.

"정말 그러네요."라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그 흡혈귀 말이지요..."

"아, 네"

"정말로 흡혈귀인가요?"

"그래요, 거짓말해도 소용 없잖아요."

"저어, 그러니까, 언제부터 흡혈귀인가요?"

"벌써 이럭저럭 9년쯤 되었나. 그게 바로 뮌헨 올림픽이 열리던 해였으니까..", "시간이여 멈춰라. 그대는 아름다워."

"예. 바로 그겁니다."

"하나만 더 물어봐도 괜찮겠어요?"라고 나는 말했다.

"그러세요."

"왜 택시 운전사가 되었나요?"

"우선 이렇게 밤중에 일 할 수 있다는게 큰 이유지요. 낮은 아무래도 거북 하니까요. 그리고 직업상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택시 운전사가 된 이유의 하나지요.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흡혈귀라는 기성의 개념에 사로 잡히고 싶지 않아서지요. 외투를 입고 마차를 타며 성에 산다는거, 그런 거 좋지 않아요. 게다가 의미가 없어요. 도대체 말이죠, 요즈음 어디에 성 따위가 있습니까? 어디서 마차를 구하나요? 나는 착실하게 세금도 내고, 인감등록마저도 했어요. 디스코장도 가고, 파칭코도 합니다. 이상한가요?" 그는 백미러 속의 내 얼굴을 보았다.

 

"아니, 별로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말이죠. 그 뭐랄까? 바로 머리에 와 닿지 않아요."

"손님, 안 믿고 있지요?"

 

나는 얼굴을 들어 백미러 속의 운전사 얼굴을 보았다.그러나 백미러는 묘하게도 어두워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나는 눈에 힘을 주었지만, 거기에는 얼굴 윤곽 같은 것이 뿌옇게 비칠 뿐이었다. 아까까지 확실하게 보였는데...

 

"내가 흡혈귀라는 거... 믿지 않는 거지요?"

"물론 믿고 있어요."라고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산이 있다고 생각하면 산이 있는거지요."

"그럼 좋지만."

"그런데, 종종 피를 빠나요?"

"그야 뭐, 흡혈귀니까 피는 빨지요."

"그런데 말이오. 피에도 틀림없이 맛있는 피와 맛없는 피가 있겠지요?", "물론 있지요. 그러나 손님 피는 안돼요. 담배를 너무 피워서, 술도 꽤 마시는 것 같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몰라, 확실히 나는 요 몇 년간 담배를 너무 피웠다. 술도 지금까지 상당히 마셨다. 술이건 담배건 몇 번이나 줄이려고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피를 피를 빨려면 누가 뭐래도 여자 피에요. 그 뭐랄까, 와 닿는 느낌이 있어요. 그렇지, 나는 흡혈귀구나 하는 실감이 나요. 충실해져요.", "알 것 같은데요. 그런데, 여배우로 말하자면 어떤 느낌의 배우가 맛있을까요?", "기미소토 가요코, 그녀가 맛있을 것 같은데, 신쿄지 기미애도 좋지요. 기분이 내키지 않는 것이 모모이 가오리. 그런 정도지요. 이건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죠. 일반화될 수는 없겠지요. 모두가 피를 빠는 것도 아니니까.""잘 빨 수 있게 되면 좋을 텐데."

"그럼요."라고 운전사는 말했다.

"언젠가 정말로 빨 수 있게 된다면 좋을테구요."

 

15분 후에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방문을 열고 전등을 켠 다음,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셨다. 그리고 나서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했던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길이 엇갈린 데에는 나름대로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세상 일이란 그런 것이다.

 

"저어, 그런데 네리마 번호판을 단 까만 택시는 당분간 안 타는게 좋겠어.", "왜죠?"하고 그녀는 물었다.

"흡혈귀인 운전사가 있다구."

"그래요?"

"응."

"걱정해 주는 거예요?"

"물론."

"네리마 번호판의 검은색. 거기에 흡혈귀인 운전사가 타고 있다고요?", "응,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하고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말이다. 그 택시에는 운전사 복장을 한 흡혈귀가 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뭐라 해도 그녀는 그걸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거대한 도시에는 어떠한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산이 있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산이 있는 것이다. 잠시동안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고마워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천만에."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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