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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전철과 전철표

chocohuh 2022. 1. 18. 10:20

1

 

나는 툭하면 전철표를 잃어버리는 인간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막 개찰구를 빠져나가려고 하면 표가 보이지 않는다.

코트 주머니, 바지 주머니, 셔츠 주머니 같은 델 전부 뒤집어가며 찾아보지만, 전철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전철에 타고 있는 동안 별다른 짓을 한 것도 아니다. 좌석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문고본을 읽고 있었을 따름이다. 표를 넣어 둔 주머니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전철표가 없어지는 것일까? 수수께끼다.

 

더구나 그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기는 것이다. 이거야 원 전철표를 전문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내 몸 주변 어딘가에 있다고밖에 생각할 길이 없다. 그건 어찌 됐든, 다 큰 사내가 개찰구 옆에서 옷에 달린 주머니란 주머니를 전부 뒤집고 있는 광경이란 그다지 볼 만한 게 못된다. 정직하게 말하면 창피하다. 특히 선반 위에다 주머니 속에 있는 것들을 '이건 지갑이고……, 수첩이고……, 화장지고……'하고 늘어놓으며 점검해야 할 때는 정말 비참하다고밖에 형용할 수가 없다.

 

나는 역의 개찰구를 지나갈 때마다 나랑 마찬가지로 옷 주머니를 전부 뒤집어가며 표를 찾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어디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거의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다. 보통 사람들은 전철표 같은 것을 안 잃어버리는 걸까? 그리고 또 여자랑 데이트를 하고 있을 때 전철표를 잃어버리면 참 난감하다. ', 이봐 잠깐, 잠깐 기다려'라고 기다리게 해 놓고, 개찰구 옆에서 뒤적뒤적하고 있으면, 상대방 여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걸 알 수 있다. 참 서글프다.

 

 

2

 

전철표를 잃어버리는 얘기의 계속

 

옛날에 전철표를 분실하지 않는 비결이란 걸 배운 적이 있다. 비결이라고 해서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다. 요컨대 '늘 일정한 주머니에 표를 넣어 둘 것'이다. 바지 앞주머니든 지갑 속의 작은 주머니든, 전철표 전용의 장소를 만들어 놓는 셈이다. 그리고 개찰을 하고 나면, 짬을 두지 않고 곧바로, 거기에 집어넣는다. 이렇게 하면 절대로 전철표를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얼른 꺼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어떤 식으로 대비를 하여도 전철표를 잃어버리는 숙명을 타고 난 사람은, 확실하게 표를 잃어버리고 만다. 예컨대 사람은 언제나 같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플라노 바지를 입는 일도 있거니와, 청바지를 입는 일도 있고, 조깅 팬티를 입는 일도 있다. 그리고 바지 종류에 따라 주머니의 모양에서부터 숫자, 의미, 목적까지 전부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앞주머니'라고 하면 미묘하게 어긋나기 마련이다. 도대체 조깅 팬티의 어디에 앞주머니가 있단 말인가?

 

, 그럼 지갑 속의 작은 주머니는 어떤가. 일견 합리적일 듯 하지만 이것 역시 계획대로 잘 안 된다. 왜냐하면 지갑을 꺼낸다. 전철표를 집어넣는다. 지갑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이런 세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쁠 때 같으면 이 과정은 몹시 번거롭다. 게다가 사람들 앞에서 지갑을 꺼내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또 전철표를 일일이 지갑에 집어넣는 행위는 다 큰 어른이 할 짓이 아니잖나, 하는 창피스러움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번에는 이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집어넣어 두면 되겠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하게 된다. 그리하여 목적지에 닿으면 전철표는 예외 없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몇 번이고 거듭 말하지만, 이건 거의 숙명이다. 전철표란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은 잃어버리지 않고, 잃어버리는 사람은 영원토록 잃어버린다.

 

 

3

 

전철표를 잃어버리는 얘기를 집요하게 계속하여 세 번째

 

옛날에 나는 어떻게 하면 전철표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해, 제법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어떤 복장을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존재하고 집어넣고 꺼내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고 거기에다 표를 넣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장소를 찾아내면 되는 것이다. 잠시 생각해 보세요.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장소를, 당신은 생각해 낼 수 있을까요?

 

양말이나 구두도 안 되죠. 샌들을 신을 때도 있으니까요. 팬티 속도 물론 불합격, 조건 가 미달. 꽤 어려운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간신히 적합한 장소를 하나 발견해 냈다. 귀다. 귀밖에 없다. 나는 유레카(발견했다)!

 

그 이후 나는 전철표를 착착 접어서는 귓구멍 속에 간직하게 되었다. 처음 한동안은 빳빳한 게 귓속에 들어있어 불안스럽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다. 거꾸로 ', 지금 내 귓속에 전철표가 있지'하는 확고한 존재감이 전해져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느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시험 삼아 한번 해 보세요. 국철표라면(물론 두꺼운 종이는 안 되죠. 그런 걸 귓구멍에 쑤셔 넣었다간 상처가 날 테니) 가로로 두 번, 세로로 한 번 접으면 귀에 들어갑니다. 그때는 잉크가 귀에 묻지 않도록, 뒤집어서 접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시고요. 귀의 솜털이 찌릿찌릿 소리를 내고, 조금은 부끄러운 기분이 들죠? 키득키득 간지럽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발명한 이 '전철표 귀에 넣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몇 만 명이나 되는 여고생들이 매일 아침 귓속에서 셋으로 접은 전철표를 꺼내는 광경을 상상하면 내 마음은 설렌다. 이런 건 역시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쓴 후에 독자로부터 '여고생들은 정기권을 가지고 다닙니다.'라는 투서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정기권은 유감스럽게도 귀에는 안 들어간다.)

 

 

4

 

전철표를 잃어버리는 얘기를 네 번이나 계속하다니, 이게 마지막

 

요 앞에 전철표를 접어 귓속에 넣어 두면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썼는데, 그렇게 표를 귀에 넣고 있으면 이상한 눈길로 나를 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멍청한 얼굴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분 나쁘다는 듯 멀찌감치 비켜나는 사람도 있다.

 

뭐 그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전철표를 주머니에 넣든, 귀에 넣든, 그건 어디까지나 내 마음 아닌가. 그런 정도의 일로, 일일이 사람을 이상한 눈길로 안 봤으면 좋겠다. 내 쪽은 그 나름의 사정이 있어, 궁여지책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거니까.

그다음으로 짜증 나는 일은 끄덕끄덕 졸고 있을 때, 표를 검사하러 온 차장이 갑자기 '손님, 표 좀 보여 주세요'라고 하여 귀에서 슬며시 표를 꺼내면, 차장도 주위 사람들도 굉장히 놀랍다는 표정을 보이는 일이다.

 

놀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차장에 따라서는 구겼다고 화를 내는 이도 있다. 그런 여러 가지 일로 그만 성가셔져, 결국 전철표를 귀에다 간직하는 일도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은 '그렇게 없어지고 싶거들랑 언제라도 네 멋대로 없어져 버려'하는 무아·무심의 경지로 전철을 탄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전철표는 반드시 없어지고 마니까, 애를 쓰는 만큼 헛된 것이다.

 

단 잃어버렸을 때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이 있다. 어떤 방법인가 하면, 어디엘 가더라도 기본요금에 해당하는 표만 사는 것이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개찰구에서 기본요금으로 초과한 금액만큼 추가 요금을 낸다. 이렇게 하면 설사 표를 잃어버렸더라도, 손해는 훨씬 적어진다. , 마음씨 좋은 역원이 있어 '잃어버렸습니까? 할 수 없죠, 그냥 가세요.'라고 말해 주기라도 한다면, 고스란히 득을 보는 셈이다.

 

일본 국철의 경우 차장이 표를 검사하기 위해 차내를 돈다. 이때 걸리면 재수 좋게 무임승차를 하거나, 아니면 기본요금표를 가지고 장거리를 뛰려던 몰염치한 들도 초과 운임을 정산해야 하는 비운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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