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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나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chocohuh 2021. 12. 10. 08:47

나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비교적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내가 교훈적인 성격의 인간이라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교훈이라는 것의 성립 방법을 비교적 좋아한다는 것뿐이다.

 

나의 처형은 학생 시절에 호리 다쓰오의 [바람이 불지 않는다]를 읽고, '건강이라는 건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는 독서 감상문을 써서 선생님을 크게 웃게 만들었다고 하는데-그 말을 듣고, 나 역시 그만 웃고 말았지만-그건 웃는 쪽이 잘못이다. 만일 그녀가 [바람이 불지 않는다]를 읽고 건강의 중요성을 통감했다고 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문학의 힘이라고 볼 만하다. 웃으면 안 된다. 그러한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바람이 불지 않는다]를 읽어보면, 반드시 ", 그렇구나!"하고 감탄할만한 대목이 몇 군데 있을 것이다.

 

교훈이라는 건 어떤 경우에는 유형으로 전락해버리는 일도 있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다른 의미에서의 유형을 타파해버리는 힘을 가지기도 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이따금 독자로부터 소설에 대한 감상을 적은 편지가 오는데, "무라카미 씨의 소설 감성은-이라고 하는 것이 많고-나는 무라카미 씨의 소설을 읽고 이러저러한 교훈을 얻었습니다."와 같은 것은 한 통도 없다.

 

교훈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처럼 결코 경직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에도 반드시 교훈은 있게 마련이며, 그런 건 일률적으로 같은 형태를 띤 것은 아니다. 비가 내리는 데도 교훈은 있으며, 이웃집 주차장에 세워 좋은 스포츠카에도 교훈은 있다. 구태여 애써 찾아 헤맬 필요는 없지만, 있으면 있는 대로 그 나름대로 교훈을 찾는 일은 꽤 즐거운 것이다.

 

옛날, 학생 시절에 학교에서, [쓰레즈레쿠사](일본의 고전-역주)를 배웠을 때, 선생님이 "현대의 눈으로 보면, 작자의 설교벽, 교훈벽이 얼마간 느껴진다."는 식의 말을 해서, 그때는 '과연 그렇구나'하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 교훈적인 부분만 깊이 머릿속에 남아 있으니 기묘한 일이다. [쓰레즈레쿠사]에 한하지 않고, 다른 문학 작품을 살펴보아도, 유려한 문장이나 치밀한 심리 묘사는 그때는 감탄해도, 시간이 흐르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질구레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유효한 것만을 부분적으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옛날에 어떤 잡지 편집자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상당히 교훈적인 이야기인데, 너무나도 교훈적인 게 많아서, 나는 지금까지도 완전히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케이스 스터디로서 여기에서 재현해보기로 하겠다.

 

 

(모 편집자의 이야기-사례 소개)

 

나는 재즈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 전위 재즈 연주자의 연주를 테이프에 녹음한 것을 다른 일을 보러 간 김에 XX(유명한 재즈 평론가)에게 가지고 가서 들려주었습니다. XX씨는 그것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면서, ", 이건 참 좋구먼. 최고일세!" 하고 말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까, 나는 그 테이프를 두 배나 빨리 돌아가는 속도로 틀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건 참 난처하게 됐군.' 하고 말하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틀었습니다. 부정확한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랬더니 XX씨는 화를 벌컥 내더군요. "자네는 나를 바보 천치로 만들 셈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도 큰소리를 치는 걸 보니 도량이 좁더군요.

 

이 이야기에는 처음에도 말한 것처럼, 수많은 교훈이 담겨 있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찾아낸 교훈을 항목별로 적어보겠다. 시험을 앞둔 사람은 옳다고 생각되는 것에 O표를 해주세요.

 

1. 전위 재즈 같은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피드로 들으면 된다.

2. 무엇이든지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3. 정확한 평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4. '이것 참 난처하게 됐군.'하고 생각되어도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5. 정확하지 않으면 좀 어떤가?

6. 실패는 웃고 넘겨버리는 것이 제일이다.

7. 도량이 큰 사람은 그다지 떠들어대지 않는 법이다.

8. 편집자는 직접 상대방에게 험담을 하지 않는 법이다.

9. 덮어놓고 무엇인가를 칭찬하면,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써 내려가 보니까, 이런 짧은 이야기에서도 배울 것이 많이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 밖에도 내가 찾지 못하고 있는 교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찾아내신 분은 가르쳐 주세요. [쓰레즈레쿠사]라면, 이 이야기 뒤에는 어떤 교훈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만 해도, 꽤 시간을 보낼 수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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