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할 것까지도 없는 일이지만,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 고유의 룰이 있다. 예를 들면 은행원은 돈을 셈하는 데 있어 실수를 해서는 안 되고, 변호사는 술집에서 타인의 비밀을 주절거려대서는 안되고, 성 풍속 관계의 사람은 손님의 페니스를 보고 웃음을 터뜨려서는 안 된다는 등이다. 매니큐어를 칠한 생선 초밥집 요리사도 곤란하고, 소설가보다 월등하게 문장력이 있는 편집자도 좀 곤란하다.
그러나 그러한 기본적인 룰과는 달리,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 각자가 개별적으로 지니고 있는 신조라는 것이 있다. 그런 신조를 많이 껴안고 있는 사람도 있고, 거의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사람 관찰하기를 비교적 좋아하여, 이것저것 많이 살펴보는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조에 완고하게 매달려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거친 방식으로 적당하게 모든 사항을 처리하다가-그건 또 그것대로 좋지만-뜻대로 안되면 타인을 원망하는 사람도 있고, 신조가 적은 반면에 자기선전이 과다한 타입의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처음에도 말했듯이 사람 저마다의 재량에 따르는 종류의 일이므로, 단적으로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얘기할 수 없다.
나도 물론 글을 씀에 있어서 몇 가지 개인적 신조를 갖고 있다. 이것은 딱히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처음 단계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몸에 붙어 버린 것이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 연령이 비교적 늦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경험한 각양각색의 직업에서 체득한 노하우를 그냥 그대로 문필업에 응용한 것이다. 처음 한동안은 일시적인 방편으로 사용했는데, 너무나도 내 자신에 딱 들어맞는 듯 느껴져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 나의 개인적 신조를 하나하나 쓰기 시작했다간 꽤 길어질 것이고, 그다지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읽을거리로서도 아마,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겠다. 그것은 '작가는 비평을 비평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적어도 개별적인 비평에 대해서든 비평가에 대해서든 비평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해 봤자 무의미하고, 무익한 트러블에 휩쓸릴 뿐이고, 자신이 치사스러워질 뿐이다. 나는 줄곧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살아왔고, 그 덕분에 스스로를 갉아먹는 기회를 꽤나 무사히 넘기며 지낼 수가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내적 지옥이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하였는데, 작가가 비평이나 비평가를 비평하는 상황도 그 지옥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작가는 소설을 쓴다. -그것이 일이다- 비평가는 그것에 대해 비평을 쓴다. -그것도 일이다- 그리하여 하루가 끝난다. 각기 다른 입장에 있는 인간이 각자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식사를 하고(혹은 혼자서 식사를 하고), 그리고 잔다. 그런 게 세계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성립되어 있는 세계의 형태를 신뢰한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전제 조건으로써 수용하고 있으며, 트집을 잡아 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트집을 부리기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식사를 마치고, 한시라도 빨리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잠들려고 노력한다. 스칼렛 오하라는 아니지만, 밤이 밝으면 내일이 시작되고, 내일은 내일의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신에 관한 비평이란 걸 전혀 읽지 않는 인간이다. 그래도 간혹 기분이 내켜 읽거나 하면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하고 생각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실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명명백백하게 빗나간 추측도 있고, 노골적인 개인 공격도 있고, 책을 마지막까지 읽지도 않고 썼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따라서 무슨 소린지도 모를 비평이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사정을 고려한다 해도, 작가가 비평을 비평하거나, 거기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변명을 하거나 하는 것은 당치않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쁜 비평이라고 하는 것은, 말똥이 듬뿍 들어차 있는 오두막과 흡사하다. 만약 우리가 길을 걷고 있을 때 그런 오두막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서둘러 지나가 버리는 게 최상의 대응책이다. '왜 이렇게 냄새가 나지'라는 등의 의문을 품어서는 안 된다. 말똥이란 원래 냄새가 나는 것이고, 오두막의 문을 열기라도 했다가는 더욱 냄새가 진동할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얼마 전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으려니, 나에 관하여 신문에 난 비평을 오려 놓은 옛날 스크랩이 한 상자 가득 튀어나왔다. 대개가 5~6년 전 내가 데뷔했을 당시에, 마누라가 정성스레 오려서 보관해 준 것이다. 기특하게스리 하고 감탄하면서 훌훌 넘기며 읽어 보았더니 제법 재미가 있어, 결국은 전부 읽고 말았다. 칭찬을 하고 말고와는 무관하게 그중에는 지금도 '음, 과연 그런가'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것도 있었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마는 엉터리도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됐든 5~6년이나 지난 옛날 것이고 보면 생생함도 사라지고 없으니까, 그럭저럭 따뜻한 기분으로 비평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비평과 관계하는 것도 꽤 즐거운 방법이다. 지금 나의 소설에 관하여 어떤 비평이 나와 있는지는 또 5~6년쯤 후에 천천히 숙독, 향유하고 싶다. 그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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