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함부르크에서의 해후

chocohuh 2021. 12. 6. 09:04

여성의 용모에 관해, 이런 얼굴 생김을 좋아한다든가 하는 취향이 나한테는 거의 없다. 어떤 얼굴이든 상관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당연하잖아요), 경향적인 취향은 딱히 없다. 그러나 굳이 말하자면, 단정한 선의 소위 미인 타입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조금은 파격적이고 개성이 있는 얼굴을 좋아한다. 박력 있잖아요. 그리고 순간적으로 얼굴 한 번 보고 격렬하게 마음을 빼앗기는 로맨틱한 경험도 거의 없었다. 오랜 시간 사귀며 이야기도 나누고 하는 사이에 점점 마음이 이끌리는 경우가 많다. 산문적이죠. 고리타분하죠. 그러나 긴긴 인생 속에서, 라이트닝 스트라익스적인 극적인 해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함부르크의 창부였다. 10년이나 지난 과거사인데, 나는 어떤 잡지의 취재를 위하여 독일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획 내용 중의 하나로 함부르크의 매춘 여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실제로 그런 유의 행위를 시도한 것은 아니고(정말입니다. 그럴 틈이 없었어요), 특수한 시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전문적인 부인네들한테 유익한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 얘기가 또 상당히 재미있었는데.

 

어느 밤, 약속 시간까지 좀 여유가 있어서 근처에 있는 전화방에 들어가 맥주를 주문하였다. 테이블 앞에 전화가 놓여 있고, 그 너머에 여자들이 죽 앉아 있었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전화를 걸어 별실로 함께 가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할 일도 많고 해서 그럴 마음은 없었고(아 글쎄, 정말이라니까요), 그저 맥주를 한 잔 주문하고 시간을 죽였을 뿐이다.

 

그때 내 테이블의 전화가 울려서 수화기를 들었다. 웬 여자가 영어로 말을 걸었다.

 

"16번이라고 씌어 있는 테이블인데, 보여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16번을 보았다. 바로 그 여성이다. 나는 그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아주 평범한 생김이었다고 기억한다. 화장기도 없고, 창부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쿵쾅거리고, '그렇다, 나는 이런 여성을 추구하였다'고 분명하게 인식되었다. 예기치 않은 깊은 수렁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없었다. 거의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전화로 그녀와 잠시 세상살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바보 같지만 조깅 이야기를 하였다. 그녀도 조깅을 즐기는 사람이었기에) 전화방을 뒤로하였다.. 그 이후 물론 그녀를 만난 적이 없다.

 

두 번째는 도쿄의 지하철 안에서였다. 이 또한 10년 이상이나 과거의 일이다. 그렇다고 그 여성과 현실 속에서 같은 전철을 탔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저녁, 전철을 타고 손잡이에 매달린 채 천장에 내걸린 광고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광고사진의 모델로 찍혀 있는 젊은 여성이, 내 머리를 망치로 꽝 때렸던 것이다. 나는 그때도 한 조끼쯤 크게 숨을 삼켰다. '그렇다, 나는 오랜 시간 이런 타입의 여성을 추구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그 여자의 얼굴을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꽤 오랫동안 얼빠진 표정으로 빨려 들어갈 듯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체 무슨 광고였는지 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 손을 쭉 뻗어 그 광고를 쫙 뜯어 가지고 와야만 했었다. 내 인생에서 그런 기분을 맛보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하지만 전철은 만원이었고, 나는 그렇게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하였다. 저 별 볼인 없는 저주받은 산양좌 A형 피가, 내 불타오르는 근원적인 충동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할 수 없는 일이죠 뭐.

 

그 두 여성한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첫째로는 내가 그녀들의 얼굴을 깨끗이 잊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둘째로 둘 다 결국은 의사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여성은 독일의 창부였고, 한 여성은 광고사진의 모델이었다. 그녀들은 실재하는 인물이면서 가상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을 뿐이다.

 

때로 자신의 몸속에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가 몰래 숨어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어쩌면 평소에는 끄덕끄덕 기분 좋게 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다른 나', 이 재치 없는 현실 속의 나와는 달리 '좋아하는 여성상'이란 것을 확실하게 갖고 있다. 그래서 그런 여성을 보면 번쩍 눈이 뜨여 참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은 가상적인 존재인 그가 역시 가상적인 존재인 여성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쩐지 앞뒤 말이 맞는 듯하다. 그래, 맞아서 어쩔 거냐는 기분도 들지만.

 

 

소문의 심장

 

시시 스페이섹과 로산나 어켄트가 좋다고 하자,

"벌렁코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라고 아내가 말했다. 으응,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