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기기는 짧은 주기가 특징이지만, 애플은 막대한 투자를 통해 이를 탐나는 디자인 오브제로 변신시키고 있다. 그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는 명품 고객을 위해 펠드 앤 볼크(Feld & Volk)가 나섰다.
5천 달러짜리 휴대폰이 있다면 어떨까? 8천 달러짜리는? 아마도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든 굉장히 독특한 휴대폰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주머니에 든 것과는 다른 휴대폰일 것이다. 하지만 2~3년만 지나면 구형 모델이 될 물건에 그 많은 돈을 들일 사람이 있을까? 내일 당장 변기에 빠뜨려 작동이 안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애플(Apple)은 대량 생산되는 IT 제품의 디자인에서 자타 공인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머지 IT 기업들은 맥북(MacBooks)부터 아이폰(iPhones)과 아이패드(iPad), 애플 워치(Apple Watch)까지 애플이 자랑하는 한결같은 곡선의 알루미늄과 유리 평면의 아성에 힘겹게 도전하는 처지다. 애플의 세계에서는 10대 청소년부터 최고 경영자까지 모두가 같은 가격으로 같은 물질적 완벽성을 만끽할 수 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사랑했던 미국적 특성을 담백하게 찬양하는 것이다.
하지만 펠드 앤 볼크(Feld & Volk) 같은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러시아의 자칭 이 아틀리에(Atelier)는 기계로 마감한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도장을 벗겨내고 금이나 목재, 자개처럼 화려하고 사치스런 새 옷을 입혀 비싼 값에 판다.
이들이 판매 중인 순금 모델의 경우, 아이폰 5를 고객 맞춤형 제품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뒷면의 애플 로고에 불이 켜지고, 지극히 까다로운 소재라 애플도 아이폰 6에서나 도입한 사파이어 글라스(Sapphire Glass)에 잔잔한 금빛 무늬를 기기 뒤판에 입혔다. 금속 테두리와 버튼은 모두 18K 금으로 바꾸었고, 펠드 앤 볼크의 로고 등 세부 장식까지 더했다.
이 모델이 맘에 안 들 경우, 동일 사양에 애플 로고 대신 아랍 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 국기와 문장(紋章)을 응용한 모델이나, 버튼만 금 소재로 뒷면은 붉은 바탕에 금빛 꽃무늬를 입힌 모델도 있다.
또한 목재 모델의 경우에는, 러시아 황실의 달걀 모양 장식품 파르베제 에그(Faberge Egg)의 재료로도 쓰였던 나뭇결이 단단한 카렐리아(Karelia) 자작나무로 뒤판을 만들고, 수작업을 통해 온도와 습도 변화에 대한 내구성을 강화했으며, 단 0.5mm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정밀한 공정을 거쳤다. 총 77개만 제작된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이다. 순금 모델의 가격은 얼마일까? 무려 8,990 달러, 목재 모델은 4,799 달러다.
애플의 디자인을 변형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기업은 펠드 앤 볼크 뿐만이 아니다. 로스앤젤레스의 브릭(Brikk)이 판매 중인 럭스(Lux) 모델은 아이폰 5와 6, 아이패드, HTC 원(HTC one), 갤럭시 기어와 노트 3에 24K 순금과 핑크골드, 백금 등을 입힌다. 제네바의 골든 드림스(Golden Dreams)는 뒷면에 악어가죽을 댄 아이폰을 판매한다. 하지만 최근 파리의 패션 매장 콜레트(Colette)에 진출한 데 이어 곧 모스크바에 자체 매장을 열 예정인 펠드 앤 볼크야말로 이 분야의 일인자라 할 수 있다.
펠드 앤 볼크의 제품은 필연성과 절제미라는 애플의 가치를 명품의 가치와 맞바꾼 것이다.
펠드 앤 볼크의 공동 창립자 알렉산더 볼코프(Alexander Volkov)는 사치성과 실용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맞추고 있다면서, 자신들의 휴대폰 디자인은 통화나 사진 촬영 같은 본연의 기능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명품의 경우에는 분명 소재가 최우선 사항이다.
현재 25명의 상근 직원을 둔 펠드 앤 볼크는 아이폰 6이 출시되자, 어떤 부품을 바꿔서 가격을 높일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아이폰 6를 분해하였고, 그 결과 제품의 실용성은 약간 떨어지게 됐다. 펠드 앤 볼크의 아이폰은 정상 제품보다 12그램 정도 무겁고, 뒷면에 불이 켜지는 모델의 경우에는 배터리 소모 속도도 조금 더 빠르지만,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휴대폰의 골격을 바꿔도 전파 신호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고 한다.
휴대폰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런 문제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 변경은 휴대폰의 용도 자체를 재설정한다. 남들과 똑같은 편리한 일상용품이 개인의 신분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는 것이다. 펠드 앤 볼크에 맞춤 제작을 주문하는 경우라면 특히 그렇다. 알렉산더 볼코프에 따르면 이들의 주 고객은 재계의 유력인사나, 임직원에게 줄 특별한 선물을 찾는 기업이라고 한다. 본래 영화배우든 대통령이든, 부랑자든 모두의 호주머니에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들어 있을 물건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명품에는 시간을 초월한 영원성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휴대폰 같은 하루살이 제품에 이처럼 과시욕을 부리는 건 좀 기이한 일이다. 내년에 새 모델로 바뀔 수도 있고, 최신 운영체제로 업그레이드가 안 될지도 모르며, 바닥에 떨어뜨려 고장이 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명품에는 시간을 초월한 영원성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명품 휴대폰 제조사 버투(Vertu)는 철저한 사후관리 등 컨시어지(Concierge) 서비스를 제공해 이런 맹점을 경감시킨다고 하지만, 펠드 앤 볼크의 휴대폰은 구입한 연도의 품질보증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펠드 앤 볼크의 작업은 러시아 황제의 파르베제 에그(Faberge Egg)와 유사한 동기, 즉 자신의 부를 노골적으로 선포하려는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파르베제 에그는 수세기를 존속하게 될 유산이다. 휴대폰처럼 극히 비영구적인 물건에 큰 투자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부를 더욱 의기양양하게 드러내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된다.
애플 워치 골드 버전의 가격이 4천 달러 이상이 될 거라는 소문으로 보아, 이제 애플도 유사한 길로 접어드는 것 같다. 애플 워치의 내부 장치가 제품의 구형화를 얼마나 피해갈 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데이터 처리의 상당 부분을 아이폰에 의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애플 워치가 롤렉스 오이스터(Rolex Oyster) 모델처럼 장수하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이러한 움직임은 무르익은 IT 기술의 편재성을 나타내는 징표이자, 수명이 짧은 IT 제품에도 엄청난 비용을 들이게 된 세상에서 애플이 그만큼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http://www.dezeen.com/2014/11/27/alex-wiltshire-opinion-obsolescence
http://www.feldvolk.com/#en/collections/pure-gold/iphone-5s-pure-gold
'착한디자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프 프리즌(Jeff Friesen) 포토그래퍼 (0) | 2015.01.09 |
---|---|
얀코 디자인(Yanko Design) 2014년 (0) | 2015.01.09 |
티 마운틴(Tea Mountain) 숍 디자인 (0) | 2015.01.08 |
레이디 실렌토 아동병원(Lady Cilento Children's Hospital) (0) | 2015.01.07 |
브릭크시(Bricksy) 레고 아트 (0) | 2015.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