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왔다. 거센 바람이 불고 녹은 눈에 진창이 된 거리로 나설 때면, 우산을 챙길지 두툼한 외투를 입을지, 혹여 비닐봉지가 필요하진 않을지 마음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뉴욕의 의류회사로 특히 자국산 겉옷에 주력하는 어라이벌스(The Arrivals)의 헤링 판초(Häring Poncho)는 이럴 때 안성맞춤인 가볍고 기능도 다양한 제품이다.
어라이벌스의 크리에이티브 팀은 건축가, 디자이너, 엔지니어로 구성돼 있으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프 존슨(Jeff Johnson)이 든든하게 팀을 이끌고 있다. 제프 존슨은 암스테르담의 날씨는 워낙 예측이 불가능해서, 오후 나절 갑작스런 비에 흠뻑 젖는 일이 허다하다며 가볍고 기능적이며 휴대도 간편한 제품을 디자인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장소와 환경에 대한 집착으로 유명했던 독일 건축가 휴고 헤링(Hugo Häring)의 이름에서 따온 헤링 판초는 방수 폴리 스판텍스(Poly Spandex)와 고무를 입힌 능직물(Twill)로 제작한 웨어러블 방식의 방수포라 할 수 있다.
제프 존슨에 따르면 어라이벌스의 모든 의류는 성능을 우선 기준으로 옷감을 선택한다. 헤링 판초의 경우, 이탈리아산 능직물에 고무를 입히는 공정을 거쳤다. 즉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고무를 입힌 무광택 필름을 옷감의 일정 부분에 덧씌운 것이다. 이런 공정을 통해 옷감에 양면적인 효과를 주었으며, 방수, 방풍 기능까지 갖추게 되었다. 판초의 몸통 부분은 통기성과 방수 기능을 겸비하고 딘 텍스(Din Tex) 인증을 획득한 대한민국산 극세사 망사를 외피에 입혔다.
판초의 형태에 있어서는 집 모양의 도형을 기반으로 실루엣을 잡은 다음, 그의 표현에 의하면 밖에서 안으로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면서 세부적인 부분을 보태 나갔다. 디자인 팀은 판초를 입어본 경험에 기초해, 소매의 외관과 기능을 살리는 동시에 자유자재로 팔을 움직일 수 있도록 단추의 위치를 정했다. 양옆에는 긴 지퍼를 달아 활동성을 배가시켰기에, 주머니를 이용하기 쉽고 공기도 더욱 잘 통한다. 모자 역시 독특하다. 존슨은 모자 디자인은 서너 차례의 가봉 과정을 거쳤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암스테르담에 살 때 야구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곤 했는데, 자전거를 타다가 소나기를 만나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헤링 판초에는 야구모자 스타일의 앞부리가 있어 얼굴에 비를 맞지 않도록 막아주기 때문에, 출 퇴근길에 입기에도 적합하다.
판초의 제작은 2D 평면의 옷본을 공장에서 디지털화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레이저 커팅 기술을 이용해, 고무를 입힌 능직물과 망사를 주머니와 지퍼, 통기구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총 40개의 조각으로 재단했다. 국내외에서 조달한 방수 기능의 리버스 코일 지퍼 즉, 일반 지퍼와 반대 방향의 지퍼는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가열 용접용 테이프를 사용해 판초 몸통에 붙였다.
그런 다음, 모든 부분을 제자리에 위치시켰다. 모자의 오른쪽 부분은 왼쪽 부분과, 오른쪽 어깨 부분은 왼쪽 어깨 부분과 나란히 놓고, 나머지 조각들까지 모두 가장자리를 맞댄 후 용접기를 통과시켰다. 용접기가 섭씨 140도의 열을 6바의 압력으로 15초간 가하자,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옷감 조각이 솔기가 없는 하나의 의복으로 완성됐다. 기존의 재봉 방식을 대체한 이 공정이 헤링 판초의 방수성과 내구성을 보장해준다.
자국산 제품 제작에 애정이 남다른 어라이벌스지만, 헤링 판초를 만들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기술 인력을 미국 내에서 찾는 일은 그야말로 최대 난제였다. 안타깝게도 고도의 기술력을 보유한 의류 제조업체는 대부분 해외에 있다고 아쉬움을 표하며, 많은 조사 끝에 샌프란시스코의 한 공장과 제휴를 맺고, 헤링 판초 디자인의 핵심 요소인 레이저 커팅 기술과 봉합 용접(Seam Welding) 기술을 그곳에서 실행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이렇게 해서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라인과 방수 기능의 주머니, 세련된 맵시를 갖춘 판초가 탄생했다. 하지만 초겨울 날씨에 대비해 얼른 구입할 생각이라면, 느긋하게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 현재 어라이벌스 홈페이지에서 245달러에 판매 중인 헤링 판초는 배송에 5~6주가 걸린다고 하니, 내년 봄 궂은 날씨를 위한 옷장만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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