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 앤 올룹슨(Bang & Olufsen)의 신제품 베오플레이 A9(BeoPlay A9)은 여러모로 특별한 무선 스피커이다. 우선 목재 삼각대 위에 지름 70센티미터의 원반이 꽂혀 있는, 접시 모양의 독특한 외관이 눈에 띤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특이한 점은 덴마크의 디자이너 외이빈 알렉산데르 슬로토(Øivind Alexander Slaatto)가 밝힌 제품 개발에 얽힌 사연이다.
A9은 슬로토가 디자인한 최초의 제품이다. 이전까지 그는 하다못해 이쑤시개 제조에도 참여해 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코펜하겐에서 튜바 연주자, 간병인으로 근근이 살아온 슬로토는 여비와 셔츠 한 장까지 빌려가며 포트폴리오를 손에 든 채 무작정 뱅앤올룹슨 본사의 문을 두드렸다. 놀랍게도 뱅앤올룹슨은 그를 만나 주었으며, 비록 포트폴리오에 담긴 기획 대부분에 퇴짜를 놓았지만 아이디어의 잠재력만큼은 눈여겨보았다.
뱅앤올룹슨은 슬로토가 자사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할 수 있게 조치하였고, 결국 그는 뱅앤올룹슨의 디자인 팀장 플레밍 묄레르 페데르센(Flemming Møller Pedersen)과 함께 A9의 디자인을 완성하였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는 단 2, 3일밖에 안 걸렸지만, 그것을 현실화하는 데는 몇 달이 소요되었다. 최종 제품이 생산되기까지 전 과정에 관여하였고, 고생한 만큼의 보람이 있었다.
슬로토가 수직선이나 수평선을 배제하고 동그란 형태로 A9을 디자인한 것은 음파에서 착안한 것이다. 돌멩이를 물속에 던지면 수면에 원형의 파장이 일어나듯, 소리도 원을 그리며 나아간다. 마찬가지로 이 디자인의 핵심 역시 원이다.
스피커의 둘레에 알루미늄으로 테를 둘러, 사용자가 매직 터치 방식으로 음량을 조절할 수 있게 하였다. 즉 오른쪽으로 손을 살짝 내두르는 동작만으로 스피커의 음량을 키울 수 있으며, 가볍게 한 번 터치하면 오디오가 일시 정지된다. 뿐만 아니라 알루미늄 테의 효과로 A9은 뱅앤올룹슨의 다른 오디오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운 외관을 자랑하는 한편, 최저가 2,699달러라는 높은 가격 또한 뽐내고 있다.
접시 모양의 외양 자체는 흰색 플라스틱으로 주조한 원반 위에 캔버스 천을 씌운 것으로, 목재로 만든 세 개의 다리 위에 스피커 몸체를 고정시켰다. 이러한 재료 선택은 인공미와 자연미의 균형을 꾀한 디자이너의 의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항상 자연스럽고 분명한 것을 추구할 뿐, 유행을 좇거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런 건 정말 따분하기 그지없는 일이라는 게 슬로토의 생각이다.
삼각대는 두 번의 품질 테스트를 거친 목재를 사포로 다듬고 상표를 찍은 후 옻칠을 해 제작한 것이다.
슬로토와 뱅앤올룹슨의 디자인 팀이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 것은 스피커의 다리 부분이다. 야적장에서 갓 베어낸 호두나무, 너도밤나무, 떡갈나무 목재의 품질을 테스트한 다음, 제습 설비에서 며칠 간 습기를 제거하고 말린 후, 공장에서 선반 작업을 통해 치수에 맞게 자르고 깎아낸다. 그리곤 또 한 차례의 엄격한 품질 테스트를 거쳐 최상의 다리만을 남기고 나머지 것들은 모두 폐기 처분한다. 이렇게 최종적으로 골라낸 다리들을 사포로 다듬고 앞뒤 다리 모두에 상표를 찍은 후 옻칠을 해 완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스피커의 다리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참고 봐줄만한 그저 그런 오디오 부속기기가 아니라 정말 자기 집에 들여놓고 싶은 가구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한 다리를 떼어낸 뒤 스피커 부분만 벽걸이 형태로 설치할 수도 있으며, 스피커의 커버 역시 쉽게 벗겨내고 일곱 가지 색상 중 맘에 드는 색으로 교체할 수 있다. 조금만 궁리를 한다면, 둥그런 스피커를 바닥의 카펫이나 벽면의 그림과 어울리게 얼마든지 매치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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