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이후 대중이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을 무렵, 디자인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모양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거나 새로운 기능을 고안하는 것을 주된 논의로 삼았다. 20세기 말 디자인의 힘을 일찍이 깨달았던 기업들이 사업에 성공을 거두면서 디자인은 디자이너에 의해 만들어진 어떤 제품이나 그래픽 하나가 아닌 디자인 산업이 되고, 전략으로 개념이 확장되었다. 이러한 의미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은 경제적인 이윤 추구를 위한 수단이 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까? 여기에 장애인 표지 디자인의 작은 변화로 이윤 추구와는 상관없이 사회의 의식을 깨우고 그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나가는 디자인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뉴욕시 5개 구에서 스스로 휠체어를 움직이는 역동적인 사람의 모습을 나타낸 장애인 표지디자인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허리케인으로 인해 큰 피해를 당한 뉴욕시의 복구 작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새롭게 선보이는 장애인 표지는 뉴욕시를 위해 제작된 것도 아니고 뉴욕시에서 제작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엑세서블 아이콘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일반인이 기획한 게릴라 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생겨났다.
우리는 빌딩 출입구와 주차장, 화장실, 지하철 등에서 파란 네모 바탕에 휠체어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는 장애인 표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것은 영어로 국제 엑세스 심볼(ISA: International Symbol of Access)이라는 공식명칭을 가진 국제 표준화 기구(ISO: International Standardization Organization)에서 제정한 공공 안내용 그래픽 표지(ISO 7001)의 규격을 따른 그래픽으로, 우리는 약간의 변형은 있어도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비슷한 표지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영어로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취약 계층을 포괄하여 어떤 시스템과 사물의 기능 및 혜택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접근성(Accessibility) 또는 접근권의 개념으로 장애(Disability)를 따로 언급하지 않고 접근(Access)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1968년 만들어진 최초의 디자인은 휠체어에 앉아있는 머리가 없는 사람의 모습을 묘사했다. 그리고 그 이후 사람의 머리를 상징하는 동그라미 하나를 추가하여 지금의 장애인 표지가 되었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2009년, 사라 헨드런(Sara Hendren)과 브라이언 글렌니(Brian Glenney)는 엑세서블 아이콘 프로젝트로 기존의 표지에 문제 제기를 시작하였다.
사라 헨드런은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주 케임브리지(Cambridge)에 기반을 둔 예술가이자 연구원이다. 그녀는 인공 신체기관, 장애인 정책, 사람의 몸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다루는 에이블러(Abler)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였다.
사라 헨드런은 오랜 역사 동안 사회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표현해왔고, 이전 장애인 표지는 그러한 선입견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팔과 다리를 기계의 한 부분처럼 부자연스럽고 경직되게 나타내고, 누군가 그를 밀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경직되고 수동적인 모습의 기존 장애인 표지(좌)와 역동성이 느껴지는 새로운 표지
그녀는 곧 매사추세츠 주의 고든 대학(Gordon College) 철학과 교수인 브라이언 글렌니(Brian Glenney)와 협력관계를 맺었다. 평소 브라이언 글렌니는 사람의 지각에 대한 문제, 시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돕는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라 헨드런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이 가능해진 기술이 있어도 사회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어디에서 생겨났는지를 찾는 데에 몰두한 결과, 사람들이 항상 보게 되지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는 장애인 표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오랜 기간 장애인의 친구였던 그 표지가 반대로 장애인을 나약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에 반해, 새로운 디자인의 장애인 표지는 사람의 역동적인 모습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세상을 향해 스스로 움직이는 독립적인 사람의 모습에 가깝다.
1. 머리의 위치는 앞으로 숙어져 있는 머리로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상징한다.
2. 팔의 각도는 뒤를 향해 있는 팔은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3. 휠체어의 바퀴 부분에 들어간 흰색의 사선은 바퀴가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운동성을 느껴지게 한다. 이것은 또 스텐실을 이용한 스프레이 페인팅을 쉽게 한다.
사라 헨드런은 아이콘, 이미지, 표지는 정말로 강력해서,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대화의 장을 마련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이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예전 표지를 새 표지로 완전히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시민들이 기존의 표지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깨닫게 하기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들은 방향을 바꾸어 투명스티커를 덧붙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 후로도 많은 시행착오 끝에 스티커를 제작하였고, 순식간에 그들은 온 보스턴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표지 스티커를 기존의 표지에 덧붙이기 시작하였다. 그것의 초기 형태는 도로 표지라기보다는 공공기물을 손상하는 행위에 가까운 불법이었다. 하지만 브라이언 글렌니는 본인이 디자이너도 아니고 정책 입안자도 아니므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보다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의 게릴라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논의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며 만족하였다.
마침내 프로젝트는 2011년 2월 빌리 베이커(Billy Baker)의 눈에 띄어 보스턴 최대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The Boston Globe)에 소개되고 그 기사는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을 끌어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존 표지의 단점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단지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표지를 필요로 했다. 다행히도 사라 헨드런의 친구인 팀 퍼거슨 사우더(Tim Ferguson Sauder)는 공교롭게도 브라이언 글렌니가 재직 중인 고든 대학(Gordon College)의 예술 감독이었고, 그런 인연으로 프로젝트의 협력 디자이너로 함께 하게 되었다.
그들의 목적은 장애인에 대한 인간적인 묘사였다. 그 말은 장애인을 뻣뻣한 기계 같은 모습에서 조금 더 생동감 있고 활동적인 모습으로, 또 시각적인 초점을 휠체어보다는 사람에 두기를 바랐다. 그리고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지의 기준에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스티커를 덧붙이거나 스텐실(Stencil)로 페인트를 덧칠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표지를 적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스텐실의 경우 판을 제작하는데 어려움이 생겼다. 휠체어 바퀴의 안쪽 원을 고정할 수가 없었다. 디자이너는 여기에 선을 추가해서 틀 제작을 쉽게 만들었는데 그 사선은 바퀴에 운동성을 부가하는 효과를 부가적으로 가져왔다. 기존 아이콘에서 변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시민에게 친숙하게 느껴졌고, 활동성을 부여하려던 원래 목적도 만족하게 하는 결과가 나왔다.
디자인이 완성되어 가던 무렵, 그들은 장애인의 훈련과 취업을 돕는 비영리단체 트라이앵글(Triangle, Inc)을 중요한 협력자로 만나게 되고 그들의 도움으로 클락크스(Clark’s)와 탤벗(Talbot)과 같은 상표로부터 시설의 표지를 새것으로 바꾸겠다는 결심을 듣게 된다. 트라이앵글이 기반으로 있는 매사추세츠 주 몰든(Malden)시의 시장은 시의 장애인 표지를 새것으로 교체함으로써 프로젝트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를 하였다.
보스턴 근교의 유대인 시민회관
새로운 표지는 많은 장애인에게 희망을 주었다. 뇌성마비에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22세 청년 브랜든 힐드레스(Brendon Hildreth)는 프로젝트의 협력 감독으로서 그의 가족과 함께 새로운 표지를 사용한 티셔츠를 디자인하고,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지역의 많은 사업장과 시설 관계자에 프로젝트를 알려서 장애인 표지의 교체를 장려하였다.
또, 장애인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단체에서 자신의 진취성을 보이기 위해 새로운 표지에 관심을 보였다. 두 사람의 기대 이상으로 프로젝트는 지속해서 추진력을 더해가고 있다. 이제 미국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캐나다, 스웨덴, 인도 등 세계 각국에서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새로운 표지디자인은 크고 작은 시설, 학교, 사업장, 도시에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의 안내표지판
그러던 중 뉴욕시의 장애인 사무소에서 연락을 받았고 점차 공식적인 채택을 위한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가을에는 팔을 뻗어 택시를 부르고 있는 변형된 아이콘이 닛산(Nissan)의 승합 택시의 보닛에 부착되어 선보일 예정이다.
프로젝트 관계자는 새로운 표지가 미국 장애인 법(ADA: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에 적합하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표지가 명백하게 휠체어와 장애인의 접근성을 표현하는 한 국제 장애인 표지에 약간의 변화는 허용될 수 있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주마다 표지의 크기, 색채, 위치에 대한 각기 다른 규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 규제를 확인해야 한다고 한다.
매사추세츠 청소년 리더십 포럼(YLF)이 워크숍 후 가진 행사
역동적인 모습의 새로운 장애인 표지 디자인이 예전의 수동적인 모습의 것을 덮어버리듯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이 사라지고 그들이 세상 속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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