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가장 창의력이 샘솟는 시간은 언제일까? 사람에 따라 혹은 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영국에서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아침형 생활 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집중하지 않고서도 저녁 형의 사람들이 집중하였을 때보다 같은 문제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능력과 통찰력이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여러분의 아침은 어떠한가? 근사하게 차려진 아침상을 우아하게 마치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앉아 아침 뉴스를 느긋하게 듣고 있는가, 아니면 식빵을 하나 입에 물고 허겁지겁 집을 나와 회사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오늘도 비좁은 열차 안에서 사람들에 뒤섞여 조그마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다가 이내 코를 파묻고 잠이 들고 마는가? 어떤 광경이어도 좋다. 각기 다른 모습의 아침은 저마다의 의미가 있고 삶의 향기가 묻어나기 마련이고, 구겨진 넥타이도 출근길에 그린 눈썹화장도 그만큼의 치열함이 녹아있다.
모두의 아침이, 창의적이라면 어떨까? 하나의 주제가,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통해 각기 다른 이야기로 표현되면 어떨까? 적어도 한 달에 한번 즈음은, 반복되는 일상을 접어두고 색다르다면 어떨까? 이러한 발상에서 시작된 이벤트가 있다. 바로 크리에이티브 모닝이다. 이미 오랫동안 세계 각지의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이벤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크리에이티브 모닝: 스위스미스(Swissmiss)라는 디자인 블로그 겸 스튜디오를 만들고 뉴욕에서 활동하던 스위스 출신의 디자이너인 티나 로쓰 아이센버그(Tina Roth Eisenberg)는 2009년 9월 처음으로 크리에이티브 모닝을 계획하게 된다. 뉴욕 지역의 창작 커뮤니티와 함께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방식의 이 아침 행사는, 이후 세계 여러 도시로 퍼져 나가 매달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지역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2013년 현재 세계 51개의 도시에서 크리에이티브 모닝행사를 찾아볼 수 있고, 대부분 디자이너뿐 아니라 건축가, 예술가, 마케터, 인문학자, 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 모든 행사에서 지켜지는 규칙은 모든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간단한 무료 아침 식사, 20분 정도의 발표 세션, 이후 질의응답을 통한 자유로운 토론이다. 이 행사를 주관하기 위해 다양한 로컬 스폰서들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도시마다 이벤트를 지원하는 전담팀이 꾸려져 있고, 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가지면서 동시에 각 지역의 크리에이티브 모닝을 주관한다. 크리에이티브 모닝의 웹사이트를 통해 매달의 주제와 발표자들을 확인할 수 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SNS 서비스를 통해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특히 매달 주제별 선정된 발표는 Vimeo의 크리에이티브 모닝 채널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유된다.
이 정도의 설명을 듣고 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벤트가 있을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과 온, 오프라인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이벤트 테드(Ted)가 바로 그것이다. 크리에이티브 모닝이 테드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모든 회원 도시에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가 공유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인 셈이다. 실제로 크리에이티브 모닝을 일컬어 혹자들은 "우리 나머지들을 위한 테드(Ted For the Rest of Us)"라고도 부른다. 테드에서 다뤄질 수 없거나, 테드와는 다른 이야기를 지향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각 도시의 크리에이티브 모닝: 세계 50여 개 도시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크리에이티브 모닝을 살펴보자. 각 이벤트 사진은 위로부터 시카고(Chicago), LA, 오타와(Ottawa), 시드니(Sydney), 밀란(Milan), 스톡홀름(Stockholm), 취리히(Zurich), 오슬로(Oslo), 싱가포르(Singapore), 제주(Jeju)의 순서다. 수많은 크리에이티브 모닝들은 해당 도시마다 다른 느낌이 있지만, 안락하고 편안한 분위기라는 점은 장소에 상관없이 공통적인 듯하다. 세계의 도시 중에 한국의 제주시가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한 서울이 아니라는 점이 더욱 놀랍다. 제주시가 크리에이티브 모닝의 무대가 되고 있다는 것에 자랑스럽기도 하고 제주의 자연환경이 크리에이티브 모닝을 주최하기에 최고의 장소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면 매달 주어지는 주제는 어떠한가? 주어지는 주제는 아주 광범위하다. 그리고 또한 아주 추상적이다. 현재까지 선정되었던 주제 중에서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미래(Future), 돈(Money), 행복(Happiness), 재활용(Reuse), 음식(Food), 공간 혹은 우주(Space) 등이다. 이렇게 조금은 추상적인 주제를 던지는 것은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여러 각도에서의 해석이 가능하게 만들어서 50개의 다른 이야기들을 들으려는 발상이 아닌가 한다.
크리에이티브 모닝의 이벤트 포스터들: 이렇게 매달 주어지는 주제들을 미리 알리고 참석 예약을 받기 위해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도움을 받아 포스터를 제작한다. 이 포스터들은 한 달 동안 크리에이티브 모닝의 오피셜 웹사이트의 메인을 장식하며 여러 다른 채널을 통해 홍보가 된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지금까지의 모든 이벤트 포스터들만을 모아 전시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퀄리티가 우수하다. 포스터는 위로부터 재활용(Reuse 2013년 3월), 음식(Food 2013년 6월), 공간(Space 2013년 7월)
크리에이티브 모닝 뮌헨(Munich)이 열리는 바이에른 국립 박물관(Bayerisches Nationalmuseum): 크리에이티브 모닝 뮌헨의 호스트는 바이에른 국립 박물관,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오전 8시 30분부터 10시까지 일반관람객들의 입장을 통제하고 크리에이티브 모닝의 행사가 열릴 수 있는 최고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행사의 스폰서, 프로그 뮌헨(Frog Munich)에서 크리에이티브 모닝을 주최한다. 이벤트를 위한 전담팀 역시 프로그의 디자이너들이 맡고 있다. 웅장한 박물관 내부에 들어서면 많은 전시품을 지나 계단을 오르게 된다. 2층의 주 전시장으로 이끄는 계단을 의자로 활용한 멋진 이벤트 장소이다.
입장 전 등록: 사전에 온라인으로 예약한 대로 입장 전 등록을 마친다. 이 과정에서 발표에 필요한 준비물과 이름표를 받게 된다. 이름표에는 그달의 주제에 맞는 짧은 질문이 적혀있는데 참가자 전원은 여기에 본인이 생각하는 대답을 적어 넣는다. 이 공통된 질문은 시작 전 아침 식사 자리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를 시작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간단한 아침 식사와 함께 참가자들 간의 교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발표를 앞두고 본격적인 아침 식사의 자리이다. 아침 식사와 함께 수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주제와 상관없이 요즘 사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 대화들 사이로 하루 중 가장 창의적인 농담들이 섞여 웃음을 자아낸다.
발표: 아쉬운 식사시간을 뒤로하고 예정된 식순에 따라 사회자의 진행이 이어진다. 참석자들이 익숙하게 계단에 자리를 잡고 나서 프로그 뮌헨 소속의 디자이너이자 사회자인 칼레 부쉬만(Kalle Buschmann)의 행사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전반적인 크리에이티브 모닝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 후, 이달의 주제와 발표자에 대한 소개 역시 빼놓지 않는다. 박수와 함께 소개를 받고 나온 발표자의 20분가량의 이야기에는 주제에 대한 본인 나름의 해석과 함께 리서치 혹은 결과물, 그리고 함께 생각해 볼만한 점들이 녹아있고 짧은 시간이지만 발표를 통해 그들의 진지함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모닝이라는 타이틀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이 발표자들은 진지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을 한다. 마치 주제에 대한 본인의 창의력을 뽐내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같은 주제이지만 발표자의 해석 능력에 따라 수많은 이야기로 변형된다. 예를 들어 2013년 3월의 주제였던 재활용이라는 주제를 두고 뮌헨의 발표자는 시장에서 어떻게 디자인과 마케팅이 재활용(재응용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되고 있는지에 대한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반면, 제주의 크리에이티브 모닝에서는 재활용이라는 주제를 일차원적으로 해석하여 실제로 버려지는 폐목재를 비롯한 쓰레기들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또 다른 예로 7월의 주제였던 공간(Space)에 관한 발표에서는 프로그 뮌헨에서 디자인 리서쳐로 활동하다가 미국의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로 건너가 디자인 연구를 하게 된 엘리자베스 로체(Elizabeth Roche)가 본인이 학창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경험했던 연극의 무대 구성을 소재로 연극에서의 연기자를 디자인 리서치의 과정에서의 연구자로 바꿔 해석했고, 이에 따라 연극무대에서 연기자와 객석과의 관계를 달리할 때 파생되는 다른 경험을 토대로 디자인 연구 과정에서 리서쳐가 어디까지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지, 또 그에 따른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서술했다. 공간 디자인이나, 우주 관련한 이야기를 들으리라 예상했던 참가자들의 뒤통수를 칠만큼 전혀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었다.
질의응답, 토론: 20분가량의 발표가 끝나고, 이제는 마이크가 객석으로 넘어간다. 사회자 칼레 부쉬만의 진행으로 참석자들은 앞선 발표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들을 이야기하고 궁금한 점들을 질문한다. 아주 진지한 질문도 다소 엉뚱한 질문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무엇이든 창의적이어야 하므로. 모든 질의응답과 토론 시간이 마무리 되고, 다시금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는 발표자와 참여해준 모든 이에게 박수를 돌리고 다음 달의 주제를 발표한다. 7월 행사에 이은 8월의 토론 주제는 도시화(Urbanism)이다. 도시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일지, 도시로의 인구 집중으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점들에 대한 이야기일지,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다뤄질지 궁금해진다.
7월의 발표에 앞선 식사자리에서 크리에이티브 모닝을 주관하고 계획하는 칼레 부쉬만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미 일 년 치 주제와 그에 대한 발표자 섭외가 끝나있다는 이야기에 이 이벤트에 임하는 자세와 진행 능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고 이벤트를 통해 그와 그 팀에 남는 것은 경제적인 무엇이 아니라 박수와 그를 통한 보람뿐이다. 또한 가능한 발표자들을 디자이너가 아닌 분야에서 초빙하고 싶다는 이야기에 디자이너로서 다른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을 공감할 수 있었다.
여러분의 아침은 어떠한가? 모든 아침이 창의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디자이너라는 의무감에 의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최대한 우리 모두의 아침을 창의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바쁜 출근길과 의욕 없는 아침을 바꾸고 싶다면 그 방법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아직 크리에이티브 모닝 서울, 부산, 인천, 광주는 없다. 한국에서 이 행사에 참여하려면 제주행 비행기에 올라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모닝을 소개하면서 스스로 다짐하고 여러분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러하다. 우리의 아침이 충분히 신선하고, 활기차고, 새롭고, 창의적일 수 있다는 것, 크리에이티브 모닝이 우리 나머지를 위한 테드를 표방했듯이 스스로를 위한 크리에이티브 모닝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사내에서 작은 그룹을 만들어 하나의 주제를 던져놓고 내 주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럼으로써 나와 다른 생각을 통해 나 자신을 창의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한 달에 한 번뿐이 아니라 한 달의 매일이 색다르고 창의적이기를, 아침부터 그렇게 변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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