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디자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꼽히는 유르헨 베이의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은 단순하게 세상을 좀 더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유르헨은 대부분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나 생각을 해내는 것은 악몽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이미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은 대부분 창조에 대한 것이 아니다. 발견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발견한 후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르헨은 지속적으로 현상을 분석하고 일상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심지어 버려지는 것들을 분석하기도 하고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들에서 가치를 추출해 내기도 한다. 또한 유르헨은 개체들의 감성적인 가치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이 있어 현대적인 생산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각종 흥미나 토론을 끌어내었다. 그가 만들어 내는 작업들은 지극히 평범한 기능을 가지면서 감성적으로 깊은 본질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이는 현대 디자인이나 디자이너의 진정한 책무가 무엇인지 반문하게 한다.
나무 둥치 벤치(Tree Trunk Bench), 1998년
오라니엔바움(Oranienbaum) 공원의 나무들은 종종 잘라진 체 방치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은 나무 둥치를 벤치로 이용하고는 했다. 유르헨은 새로운 정원 벤치를 만들기 위해 이 나무 둥치들과 몇 개의 의자들을 교배 육종(Cross Breeding, 交配育種)하였다. 이것은 자연과 문화의 디자인적 접점의 아이콘으로, 디자인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순수 미술이나 건축에서는 비판이나 비평적 담론이 오래전부터 큰 맥락으로 자리 잡았지만 디자인에서는 사실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개념으로 받아 들여진다. 디자인계에 비평적 관점이 자리 잡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만약 우리가 디자인 안에서 비평적 문화를 키우고 장려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디자인 프로세스 안에서 디자인 리서치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비평적 디자인 관점은 광범위한 리서치를 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게 될 확률이 높다. 아울러 전문적인 디자인 저술가나 디자인 큐레이터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들은 디자인을 더 명확하게 정의하고 디자인의 장르를 세분화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오랜 시간동안 과연 더치(Dutch, 네델란드인을 지칭하는 말) 디자인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아왔다. 나는 사실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해야 하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이고 내 작업을 분류하고, 관점에 따라 평가하는 사람들은 따로 존재한다. 나는 사실 디자인 비평을 아주 좋아하는데, 내 작업이 스스로가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으로 평가되고 접목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건축 디자인을 연구하는 예술 역사학계는 건축 디자인과 비평적 관점을 아주 오랫동안 접목시켜 왔다. 하지만 디자인 커뮤니티는 비평적 디자인을 건축 디자인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시작하려 하는 것 처럼 보인다. 나는 이것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어떻게 디자인이 비평적 관점을 키워가는지 지켜보고 싶다.
요즘 디자인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디자인과 순수예술 그리고 한정판(Limited Edition) 바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당신은 이것이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방향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한정판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사실 디자이너가 양산되지도 않은 프로토타입을 파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는 사실 디자이너들이 디자인과 양산 사이에 어떠한 공간을 만들어 낸 것과도 같다. 그리고 이는 아울러 디자이너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리서치와 초기 작업들에 대해 보상받는 길이 열린 것을 의미한다.
다만, 나는 왜 언론이 한정판 운동에 대해 역사적 맥락을 찾아 내지 않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접근 하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예를들어 과거에는 왕족이나 귀족들이 아티스트나 공예가에게 의뢰를 하여 자신들만의 제품을 만들었음으로 한정판 생산은 전혀 새로운 맥락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가 어떻게 한정판을 이용해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공예정신을 고민하는 기회로 만드느냐다. 나는 언론과 갤러리 그리고 각종 디자인 기관들이 디자인 한정판 운동의 새로운 관점을 발굴할 책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디자인계가 소모적인 논쟁과 의미없는 비판보다는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기를 원한다.
나무 둥치 벤치(Tree Trunk Bench) 프로토타입, 1998년
언론은 당신의 작업을 대량 소비체제에 대한 거부와 지속가능성 그리고 기존의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 쪽에 무게를 두어 분류하고 있다. 당신 스스로의 의견은 어떠한가?
나무 둥치 벤치(Tree Trunk Bench)를 비롯한 나의 많은 작업들이 이미 존재하는 재료들로 만들어 졌다. 내 작업들은 종종 ‘환경 디자인’의 좋은 예로 쓰인다. 하지만 나의 작업은 많은 관점과 시도가 존재하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솔직하게 말해 나는 작업을 하면서 한번도 환경문제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 작업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관점이 추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나는 만약 인류가 50년이 지난 후 오늘날을 돌아본다면 다시 사용한다(Re-Use)라는 명제가 얼마나 바보같은 접근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 이라고 믿고 있다. 다시 사용함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는 다시 사용하기 위해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진정으로 환경 디자인을 하려면 우리는 더욱 창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모든 디자이너가 환경문제에 대하여 깊이 있는 고찰을 하여야 함에는 동의한다. 이는 단지 디자인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문제이다.
슬로우 카(Slow Car)
슬로우 카는 사회기반 시설을 새롭게 정의하고, 나아가 디자인의 작업으로 이용하는 멋진 예이다. 슬로우 카는 일반적인 공간을 특정한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려는 유르헨의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결국 슬로우 카는 환경, 기반 시설, 안전 등 수많은 부분에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내는데, 가장 고무적인 것은 그 기능보다도 사회적인 의미이다. 당신이 자고, 앉는 공간이 하염없이 흘러간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이동한 후 주차를 하게될 주차장까지도 움직이게 된다면 이동이라는 명제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우리는 이동에 사용하게 될까. 슬로우 카는 개인적인 공간을 이동화 시키면서 공유 공간과 개인 공간을 통합시킨다.
당신은 스스로의 작업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공예 정신(Crafts Manship) 사이의 근본적인 긴장감을 유지하나?
우리는 작업에 컴퓨터를 이용하지만 디지털 방법론에 스스로를 가두지는 않는다. 우리는 물성을 가진 모델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디자이너의 관점과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들은 이미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어떤 것들이 구현가능한지 목격했다. 이것은 마치 새로운 언어와도 같다.
예를들어 내가 비트라(Vitra)를 위해 만들어낸 슬로우 카(Slow Car)는 당신의 책상이 일을 하는 도중에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너무나 작은 자동차인 동시에 거대한 책상이다. 우리는 슬로우 카의 앞 유리를 운전석에서 멀리 떨어지도록 디자인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운전자의 시야는 한정된다. 사용자는 마치 컴퓨터 화면을 보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컴퓨터 게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슬로우 카의 경험은 실제이지만 공상처럼 느껴진다. 나는 실제와 가상이 병치되는 관점의 삽입을 좋아한다.
당신의 스튜디오를 대변할 만한 두 개의 프로젝트를 설명해줄 수 있나?
오래전부터 코쿤(Kokon) 프로젝트는 우리 스튜디오에게 아주 중요한 작업이었다. 이 작업은 사실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2004년 서머 콜렉션(Summer Collection)의 캣 워크(Cat Walk, 패션쇼 무대)를 위해 만들어 졌다. 이 작업은 아주 고가에 팔렸는데 우리는 그 돈을 다른 리서치 프로젝트에 요긴하게 사용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인터 폴리스(Inter Polis) 보험회사 사옥에 설치될 가구를 의뢰받았는데 우리는 이어 체어(Ear Chair)를 디자인했다. 건축 안이 나오기도 전에 이 일을 의뢰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완벽하게 건축물과 하나가 되는 가구를 디자인하고자 했다. 이는 건축이 끝난 후 선택 가능한 가구를 배치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클라이언트가 우리에게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가를 파악하는 전통적인 디자인 과정을 없애고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로 했는데,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우리는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그 시발점이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가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우리는 항상 이 질문에서부터 의뢰받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다.
코쿤 가구(Kokon Furniture), 1999년
이 가구들은 탄력있고 인위적인 섬유에 의하여 래핑(Rapping) 되었는데, 탄력적인 피부는 이미 만들어져 있던 가구에 전혀 다른 외모를 선물하였다. 코쿤 가구는 전혀 다른 소재와 물건들의 재조합으로 새로운 가치와 기능을 창조함을 보여주는 유르헨 베이식 디자인 방법론의 표본이다.
이어 체어(Ear Chair), 2002년
이어 체어는 사용자에게 프라이버시를 제공해 주는 귀를 가지고 있다. 이어 체어는 인터폴리스 보험회사 사옥에 배치되기 위하여 만들어졌는데 귀의 길이에 따라 3가지의 다른 종류로 나뉜다. 몇 개의 이어 체어는 한데 모여 새로운 공간속의 공간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다른 관점이나 문화에 영향을 받은 프로젝트가 있는가?
진공 청소기 의자(Vacuum Cleaner Chair)는 인도의 건축가들의 초청으로 갔었던 스터디 여행중에 작업한 것이다. 인도에서의 경험은 나의 관점을 넓히는데 엄청나게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물건에 대해 내재된 새로운 기회와 컨셉을 발견하는 태도를 배우게 되었다.
여행 중 우리는 사발라스(Savalas)시에 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도시 계획 전문가와 미팅을 가졌는데 그들은 초청받은 더치 건축가들에게서 도시의 미래 계획에 관한 조언을 구하고자 하였다. 나는 왠지 다른 관점과 다른 맥락을 가진 전혀 다른 문화권의 미래 도시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이 무례하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견디기 힘들었던 압도적인 잿빛과 먼지에 뒤덮힌 사발라스의 환경에 살아가는 시민들은 분명히 또 다른 그들만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아무리 척박한 공간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 곳을 선택한 이유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사발라스의 먼지에 가치를 투영하기로 했다. 먼지를 가장 많이 가진자가 가장 부유하게 생각되는 사회는 어떠한가. 이것은 이 세계를 금이나 석유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관점으로 관찰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작업은 'Z33' 갤러리를 통해 대중에게 발표되었다.
진공 청소기 의자, 2004년
먼지. 먼지의 기능은 무엇인가. 과연 먼지는 세상의 잿빛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가? 모든 것은 동일하며 특별함은 존재하지 않는가? 사실은 언제나 희미하다. 당신은 스스로가 하고자 하는 일은 간단하게 정의하고 실행할 수 있다. 타인의 그것은 어떠한가? 만약 당신이 당신을 열어둔다면 타인은 당신을 정의함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인도는 부유한 국가인가 아니면 빈곤한 국가인가? 어떠한 잣대로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가. 작은 것들은 관점에 따라 큰 것이 될 수도 있다.
크라테 컵보드(Crate Cupboard), 2004년
나무 상자는 종종 작품을 운반할 때 쓰인다. 운반을 마친 나무상자는 전시품이 전시되는 동안 다른 곳에 방치된다. 한 동안 하나였던 오브젝트는 분리되어 두 개의 오브젝트가 된다. 만약 이 두개의 오브젝트가 지속적으로 함께 존재한다면 어떠한가. 로코코 스타일의 컵보드는 마치 진화의 완성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심지어 스케치에서 부터 시작해 어떻게 작업이 진행되는지 보여주는 과정의 중간지점처럼 존재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함께 함으로서 가지는 고유한 특성을 지니게 된다.
폼 매터스(Foam Matters)
2007년 로트드담 디자인 프라이즈(Rotterdam Design Price 2007)에서 수상 후보로 선발되었고, 이어서 제네바의 ‘좋지 아니한가(Wouldn’t it be Nice)에 전시되었던 폼 매터스는 사실 실제 유르헨 베이의 니켈 스트랏(Nikkelstraat) 스튜디오의 책상을 그대로 카피한 것이다.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가장 초기단계의 컨셉 개발을 위하여 종종 사용되는 블루 폼(Blue Foam)은 유르헨이 즐겨 이용하는 재료다. 유르헨은 블루폼을 이용해 컨셉을 중시하는 자신만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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