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군은 1940년 6월 14일 파리에 입성했고, 프랑스 서쪽 및 동쪽 변경을 따라 남쪽으로 더욱 깊숙이 진격해 2일 뒤에는 론 강 유역에 이르렀다. 6월 16일 밤 프랑스의 휴전 요청이 히틀러에게 전달되었다. 휴전 조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독일군의 진격은 계속되었다.
1940년 6월 22일 마침내 프랑스와 독일의 휴전협정이 르통데에서 조인되었다. 르통데는 1918년에도 휴전협정이 조인된 곳이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휴전협정은 6월 24일에 조인되었다. 이 두 휴전협정은 6월 25일 아침부터 효력을 발생했다. 6월 22일의 휴전협정에 따라 프랑스는 두 지역으로 나누어지고, 그중 한 지역은 독일군이 점령하는 대신 다른 한 지역에서는 프랑스가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점령 지역은 프랑스 북부지역 전체였다. 비점령지역인 남동부 지역은 프랑스 영토의 2/5에 불과했고, 정부는 비시에 있었다.
이탈리아는 매우 관대한 조건으로 프랑스와 휴전을 맺었다. 이탈리아가 주장한 프랑스 영토는 이탈리아군이 6월 20일부터 점령하고 있었던 국경 주변의 좁은 지역이었다. 1940년 6월 프랑스의 붕괴는 영국 해군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다. 막강한 프랑스 해군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탈리아 해군도 영국과 싸우고 있었으므로 프랑스 군함들이 독일 수중에 들어가면 해군력의 균형이 추축국 쪽에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기울어질 것이기 때문에, 독일이 프랑스 군함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전략적으로 영국에 엄청난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
영국은 프랑스 군함이 '해상 감시와 기뢰 제거 작업'에만 사용될 것이라는 프랑스 정부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1940년 7월 3일 영국군은 영국이 통제하고 있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모든 프랑스 군함을 압류했다. 프랑스 해군은 저항하는 시늉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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