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2차세계대전_歷史

유럽 서부 전선

chocohuh 2013. 2. 12. 11:47

폴란드에서 거둔 성공과 프랑스와 영국의 개입 실패로 대담해진 히틀러는 다른 나라를 정복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노르웨이에 약 30만 명의 주둔군을 배치했고, 이 병력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노르웨이에 남아 있었다. 히틀러는 노르웨이를 점령함으로써 스웨덴에서 독일로 들어오는 철광석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고, 필요할 경우 영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해군 및 공군 기지를 얻었다.

 

독일군은 노르웨이에 진군하는 동시에 49일에는 덴마크를 점령했다. 1940510일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의 대공세가 시작되었다. 독일군은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단숨에 휩쓴 뒤 프랑스로 진격했다. 80만 명에 이르는 프랑스 상비군은 당시에 유럽 최강의 군대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물려받은 수비적 대응자세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네덜란드 육군 역시 현대전 경험이 전혀 없었다. 독일군이 저지대국가들을 맹공하고 있다는 소식은 연합국을 경악시킴과 동시에 연합국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1가지 결과를 낳았다. 즉 영국의 총리 네빌 체임벌린이 510일 저녁에 사임한 것이다. 전쟁 수행에 열의가 없는 그의 태도는 57~8일 영국 하원에서 열린 노르웨이 파병에 관한 토론에서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윈스턴 처칠이 후임 총리가 되었고 그는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히틀러의 신속한 공격으로 영국 원정군의 유럽 철수에 이용할 수 있는 항구는 뎅케르크(프랑스) 하나만 남았고, 영국 내각은 마침내 구출 가능한 병력을 최대한 구출하기로 결정했다. 영국 해군부는 병력 철수에 도움이 될 만한 온갖 종류의 소형 선박을 끌어모았다.

 

영국군과 함께 다른 연합군도 독일군이 뎅케르크마저 점령해버리기 전에 병력을 해안으로 철수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철수는 526일에 시작되었고, 철수 작전이 끝난 64일까지 198,000명의 영국군과 14만 명의 프랑스군 및 벨기에군이 구조되었다. 중장비는 사실상 모조리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구조된 병사들은 영국의 경우 대부분 전투 경험이 많은 병사들로, 연합국 전력에 귀중한 보탬이 되었다.

 

 

'2차세계대전_歷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일의 프랑스 점령  (0) 2013.02.12
이탈리아의 참전  (0) 2013.02.12
러시아-핀란드 전쟁  (0) 2013.02.12
독일의 폴란드 침공  (0) 2013.02.12
유럽 참전국들의 전투력  (0) 2013.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