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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중국인을 만난 게 언제였더라?
말하자면 이 글은 그런 고고학적인 의문에서부터 출발했다. 갖가지 출토품에 설명서가 붙여지고, 종류별로 구분되어 분석이 행해진다.
그래, 최초로 중국인을 만난 게 언제였더라?
1959년이나 1960년이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게 언제건 별 상관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혀 상관이 없다. 나에게 있어서 1959년과 1960년은 꼴사나운 유니폼을 입은, 못생긴 쌍둥이 형제나 다름이 없다. 사실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되돌아가 수 있다 하더라도, 1959년과 1960년을 분간해 내기 위해서는 상당히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래도 역시 나의 노력은 참을성 있게 계속된다. 구멍의 틀이 넓혀지고, 얼마 안되지만 새로운 출토품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기억의 파편들이.
그렇다. 그건 분명 요한슨과 피터슨이 헤비급 타이틀 매치를 벌인 해였다. 나는 그해에 텔레비젼으로 그 시합을 본 기억이 난다. 도서관에 가서 낡은 신문 연감의 스포츠 항을 찾아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확실해 지리라.
이튿날 아침,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까운 구립(區立)도서관에 가보았다. 도서관의 정문 옆에는 어떻게 된 셈인지 닭장이 있었고, 닭장 안에서는 다섯 마리의 닭들이 좀 늦은 아침인지 좀 이른 점심인지를 먹고 있었다.
기분 좋은 날씨 여서 나는 도서관으로 들어서기 전에 닭장 옆에 있는, 도로 포장에 쓰이는 돌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기로 했다. 담배를 피우면서 줄곧 닭들이 모이를 먹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닭들은 아주 분주하게 모이통을 쪼아대고 있었다. 그들이 너무나도 허겁지겁 먹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식사 광경은 마치며 컷되지 않는 옛날 뉴스 영화처럼 단속적으로 보였다.
담배를 다 피웠을 때, 내 안의 무엇 인가가 확실히 변해 있었다. 그러나 왜인지는 알 수 없는 채, 다섯 마리의 닭과 담배 한 개비만큼의 거리를 두게 된 나는, 스스로에게 두 가지의 의문을 던졌다.
먼저 한 가지는, 내가 최초로 중국인을 만난 정확한 날짜 따위에 누가 흥미를 가질까 하는 거였고, 다른 한 가지는 볕이 따스하게 드는 도서실의 책상에 놓인 낡은 신문 연감과 나 사이에, 더 이상 서로 나눠 가질 그 무엇이 존재한단 말인가 하는 거였다. 그것은 타당한 의문인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닭장 앞에서 담배 한 개비를 더 피운 뒤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과 닭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가 이름을 가지지 않듯이, 나의 그 기억도 날짜를 갖지 않는다.
하기야 대부분의 나의 기억은 날짜를 갖지 않는다. 나의 기억력은 몹시 불확실하다. 그것은 너무도 불확실한 것이라서, 가끔 그 불확실성에 의해,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증명하고 있는지 나로서는 통 알 수가 없다. 불확실성이 증명하고 있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어떻든, 그런 식으로 나의 기억은 지독히도 애매하다. 앞뒤가 뒤바뀌기도 하고, 사실과 상상이 헷갈리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내 자신의 눈과 타인의 눈이 뒤섞이기도 한다. 그런 것은 이미 기억이라고 조차 부를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국민학교 시절[전후 민주주의의 저 우스꽝스럽고도 서글픈 6년간의 석양의 나날들]을 통해서 제법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 있는 사건이라고는 단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이 중국인 이야기고, 또 하나는 어느 여름 방학 오후에 있었던 야구 시합 이야기다.
그 야구 시합에서 나는 센터를 지켰는데, 3회에 뇌진탕을 일으켰다. 물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뇌진탕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근처 고등학교 운동장의 한 구석에서 그 시합을 했던 것이 그날 내가 뇌진탕을 일으키게 된 주된 이유였다.
나는 센터를 넘어서 날아가는 야구공을 전속력으로 쫓아가다가, 농구 골대에 얼굴을 정면으로 부딪쳤던 것이다. 눈을 뜬건 포도 덩쿨 아래의 벤치에 서였다. 벌써 날은 저물어 가고, 바싹 마른 운동장에 뿌려진 물 냄새와, 베개 대신 베고 있던 새 글러브의 가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양쪽 머리에 통증이 왔다.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무슨 말인가를 지껄인 것 같다. 내 곁을 지키고 있던 한 친구가, 나중에 주저하면서 그걸 알려주었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괜찮아, 먼지만 털면 아직 먹을 수 있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아마 꿈이라도 꾸었었나 보다. 어쩌면 그 꿈은 급식 빵을 운반하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곤 그런 말에서 연상되는 정경이라고는 달리 생각나는 게 없으니까. 나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때때로 그 말을 머리 속에서 굴려 보곤 한다.
"괜찮아 먼지만 털면 아직 먹을 수 있어"
그 말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나는 나라는 인간의 존재와 나라는 인간이 더듬어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에 대해 생각 해본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가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하나의 지점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몹시 막막한 작업이다. 죽음은 어쩐지 나에게 중국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2
항구 도시의 산기슭에 있는, 중국인 자녀를 위한 국민학교(이름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으니 앞으로는 편하게 '중국인 국민학교' 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좀 어색한 호칭인 것 같지만 양해를 바란다)를 방문하게 된 것은 그곳이 내가 치를 모의시험 고사장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고사장은 여러 군데로 나뉘어 있었는데,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중국인 국민학교로 가도록 지정 받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마 무슨 사무상의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근처의 고사장으로 지정 받았으니까.
중국인 국민학교?
나는 아무나 붙잡고, 중국인 국민학교에 대해 아느냐고 묻고 다녔다. 누구 한 사람, 무엇 하나도 알지 못했다. 단지 아는 것이라고는, 그 중국인 국민학교가 우리 학군으로부터 전철로 30분이나 되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당시에 나는 혼자서 전철을 타고 어딘 가로 갈 수 있는 타입의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상 나에게 그곳은 '세상의 끝'과 같았다.
세상의 끝에 있는 중국인 국민학교.
2주일 후의 일요일 아침, 나는 몹시 우울한 기분으로 한 다스의 새 연필을 깍아 지정된 대로 도시락, 슬리퍼와 함께 비닐 가방에 넣었다. 그날은 유난히 맑고 따뜻한 일요일이었는데, 어머니는 나에게 두툼한 스웨터를 입혀 주었다.
나는 혼자서 전철을 타고, 내가 내릴 곳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 출입문 앞에 붙어 서서 바깥 풍경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중국인 국민학교는 수험표 뒤에 인쇄된 지도를 볼 것도 없이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슬리퍼와 도시락으로 불룩해진 가방을 든 한 무리의 국민학생들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가파른 고갯길을 수십, 수백 명의 국민학생들이 줄을 지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것은 불가사의하다면 불가사의한 광경이었다. 그들은 땅바닥에 공을 쳐 대지도, 하급생의 모자를 잡아당기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나에게 어쩐지 일정하지 않은 끊임없는 움직임 같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고갯길을 오르면서, 나는 너무 두꺼운 스웨터 탓에 계속 땀을 흘렸다.
나의 막연한 상상과는 달리 중국인 국민학교의 정경은 우리 학교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훨씬 세련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어둡고 긴 복도, 끈끈하고 곰팡내 나는 공기...... 2주일 동안 내가 머리 속에서 멋대로 그려 온 그런 이미지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멋진 철문 밑을 들어서자 정원수에 둘러싸인 자갈길이 완만한 활 모양을 그리면서 길게 이어져 있었고, 현관 정면에는 맑은 연못이 오전 9시의 태양을 눈부시게 반사시키고 있었다.
학교 건물 주위에 있는 나무들 하나하나에는 중국어로 쓰인 설명 판이 매달려 있었다.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자도 있고, 읽을 수 없는 글자도 있었다. 현관 저쪽에는 학교 건물에 둘러싸인 네모난 운동장이 있었는데, 구석마다 누군가의 흉상이나 기상 관측용 흰색 상자, 철봉 등이 있었다.
나는 지시대로 현관에서 구두를 벗고 지정 받은 교실로 들어섰다. 밝은 교실에는 정확하게 마흔 개의 산뜻한 용수철식 책상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각 책상에는 수험 번호를 쓴 쪽지가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내 자리는 창문가의 맨 앞, 결국 나는 이 교실에서 제일 앞 번호인 셈이었다.
흑판은 새것인 듯 진초록 색이었고, 교탁 위에는 분필 상자와 하얀 국화 한 송이가 꽂힌 꽃병이 있었다. 벽면의 코르크 보드에는 그림이나 작문이 한 장도 붙어 있지 않았다. 수험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부러 떼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필통과 책받침을 나란히 꺼내 놓고 나서 턱을 고이고는 눈을 감았다. 답안지를 낀 감독관이 교실로 들어온 건 그로부터 15분 가량 지나서였다.
감독관은 마흔 살이 더 되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왼발을 마룻바닥에 끌듯 가볍게 절름대는 걸음걸이에, 왼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것은 등산길 어귀의 토산물 가게에서나 팔고 있을법한 조잡하게 만든 벚나무 지팡이였다. 그리고 그의 절룩대는 걸음걸이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그 지팡이의 조잡함이 더욱 눈에 띄었다.
마흔 명의 국민학생들은 감독관의 모습이 나타나서라기 보다는 그가 끼고 온 답안지를 보자,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교단에 오른 감독관은 먼저 답안지 뭉치를 교탁 위에 내려놓고, 그 옆에다 딸깍 소리를 내며 지팡이를 세웠다. 그리고 모든 좌석이 결원이 없이 차 있음을 확인하고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흘깃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서는 몸을 지탱하려는 듯 교탁 모서리를 두 손으로 짚고 얼굴을 꼿꼿이 들어, 잠시 천장 한구석을 보았다.
침묵.
그 침묵은 15초 가량 계속되었다. 긴장한 국민학생들은 숨을 죽인 채 책상 위의 답안지를 응시했고, 다리가 불편한 감독관은 물끄러미 천장 구석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연한 쥐색 양복에 흰색 와이셔츠를 받쳐 입었고, 시선을 떼자마자 곧 그 색깔이나 문양이 잊혀 질 듯한 특징 없는 넥타이를 메고 있었다. 그는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천천히 렌즈의 양면을 닦은 후 다시 끼었다.
"제가 이 시험의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가' 라고 말했다.
"답안지가 배포되면 책상 위에 엎어놓은 채 움직이지 말아 주십시오. 절대로 겉이 보이게 해서는 안됩니다. 양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도록 하세요. 제가 '시작하세요' 하거든 겉이 보이도록 뒤집어 놓고 문제를 풀도록, 종료 10분 전이 되면 '10분전' 이러고 알려 주겠습니다. 사소한 실수는 없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제가 '됐습니다.' 하거든 시험을 끝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처음처럼 답안지를 엎고 양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도록. 알겠어요?"
침묵.
"맨 먼저 이름과 수험 번호부터 적어 넣는 걸 잊지 말도록."
침묵.
그는 다시 한 번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자, 아직 10분 가량 남았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과 얘기나 좀 할까 합니다. 모두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휴우, 하는 긴 숨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 나왔다.
"저는 이 국민학교에 근무하는 중국인 교사입니다."
그렇다. 나는 이렇게 해서 최초로 중국인을 만났다.
그는 전혀 중국인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얘기였다. 나는 이제껏 중국인을 만나 본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 교실에서 평소 학생 여러분 또래의 중국인 학생들이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중국과 일본은, 말하자면 이웃 나라입니다.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이웃끼리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죠?"
침묵.
"물론 우리 두 나라 사이엔 비슷한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서로 이해할 수있는 점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점도 있을 겁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친구 사이를 생각 해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아무리 사이가 좋은 친구라 하더라도 역시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죠? 우리 두 나라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노력만 한다면, 반드시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첫걸음입니다."
침묵.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봅시다. 가령, 여러분이 다니는 학교의 책상에 중국인 아이들이 앉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가정(假定)
"월요일 아침, 여러분이 학교에 갑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책상은, 온통 낙서랑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고, 의자엔 껌이 붙어 있지 않겠습니까. 또한 책상 속의 실내화는 안짝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자,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침묵.
"어때요, 학생? 기분이 좋겠습니까?" 하고 그는 나를 바라보지 않겠는가. 나의 수험 번호가 제일 앞번인 탓이었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중국인을 존경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하며 그는 앞쪽으로 돌아섰다. 나를 바라보던 눈들도, 그제야 교단 쪽으로 되돌아갔다.
"여러분도 책상에 낙서를 하거나, 껌을 의자에 붙이거나, 책상 속의 물건을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해선 안됩니다. 알겠습니까?"
침묵.
"중국인 학생들은 좀 더 분명히 대답한답니다." 그러자 "예" 하며 40명의 국민학생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아니 39명이. 나는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됐습니다. 얼굴을 들고 가슴을 펴십시오." 우리는 모두 얼굴을 들고 가슴을 폈다.
"그리고 자존심을 가지십시오."
20년이나 지난 지금, 옛날의 시험 결과 같은 것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내가 생각 해 낼 수 있는 건, 고갯길을 걸어가던 국민학생들의 모습과 그 중국인 교사에 대한 것뿐이다. 그리고 얼굴을 들고 가슴을 펴고 자존심을 가지라는 것.
3
나는 항구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기에, 주위에는 제법 많은 중국인들이 있었다. 중국인이 라지만 우리들과 다른 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또 그들만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뚜렷한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천차만별인 것처럼, 그 점에 있어서는 우리와 그들 사이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개인이 가지는 개체성(個體性)의 기묘함이란 온갖 카테고리나 일반론을 초월한다.
우리 반에도 몇 명의 중국인이 있었다. 성적이 좋은 녀석이 있는가 하면 좋지 않은 녀석도 있었고, 명랑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말이 없는 녀석도 있었다. 대궐같이 큰 집에 사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세 평짜리 단칸방에 부엌이 하나 딸린 초라한 아파트에 사는 녀석도 있었다. 갖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 중 누구와도 특별히 친하게 지낸 적은 없었다. 나는 아무하고나 쉽게 친해지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상대방이 일본인이건 중국인이건 다른 누구이건 간에 마찬가지다. 그들 중 한 사람과는 10년쯤 뒤에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데, 거기에 대해선 좀 더 나중에 얘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무대를 도쿄를 옮긴다.
내가 두번째로 만난 중국인은 ---이렇게 말하는 건, 즉 '별로 친하게 말을 주고받은 적은 없지만, 클라스 메이트였던 중국인들을 빼놓고 라는 뜻이다.--- 대학 2학년 봄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데서 알게 된 말이 없던 여자 대학생이다.
그녀는 나와 같은 열 아홉 살이었고, 작달막한 키에, 생각하기에 따라선 미인 이랄 수도 있는 여자였다. 나와 그녀는 3주일간 함께 일했다. 그녀는 아주 열심히 일했다. 나도 그녀를 따라 열심히 일했는데, 나의 열성과 그녀의 열성을 근본적으로 질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하자면, 나의 열성이 '적어도 무엇인가를 한다면, 열심히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 의미에서의 열성이라면, 그녀의 열성은 좀 더 인간 존재의 근원에 가까운 종류의 것으로 보였다.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열성에는 그녀 주위의 온갖 일상성이 그 열성에 의해 가까스로 하나로 묶이고 지탱되는 게 아닌가 생각되는 그런 기묘한 절박감이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와 일의 보조가 맞지 않아, 도중에 화를 냈다. 끝까지 불평하지 않고 그녀와 짝이 되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나와 그녀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몇 번인가 말을 걸어 봤지만, 그녀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한 태도 여서 나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나와 그녀가 최초로 대화라고 할 수 있는 얘기를 나눈 건, 함께 일하기 시작한 지 2주일 가량 지나서였다.
그녀는 그날 오전에 30분 가량, 일종의 패닉(광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녀가 그런 증세를 보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원인은 작업 순서의 대단치 않은 착오 때문인 듯했다. 분명, 그 일은 그녀에게 책임이 있긴 했지만 내가 볼 때 그건 흔히 있을 수 있는 실책이었다. 일시적인 실수였을 뿐으로 누구에게나 흔히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조그마한 '실수'의 파문은 그녀의 머리 속에서 조금씩 커져, 이윽고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혼란의 구렁으로 모습을 바꾸어 갔다.
그녀는 앞쪽으로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는 입을 다문 채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그녀의 모습은 나에게, 밤바다에서 서서히 침몰해 가는 배를 생각게 했다.
나는 작업을 중단하고, 그녀를 의자에 앉힌 다음, 꼬옥 주먹을 쥔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풀어 주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게 했다. 그리곤 아무 걱정 말라고 기분을 돋우어 주었다. 처음부터 일을 다시 한다고 그렇게 작업이 늦어질 것도 아니고, 가령 늦어진댔자 그것으로 모든게 끝나는 것도 아니라고. 그녀는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를 마시고 나자, 좀 나아진 모양이었다.
"미안해요" 그녀는 조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점심 시간에 우리는 가벼운 잡담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했다.
우리는 분쿄구에 있는 조그마한 출판사의 어둡고 비좁은 창고 안에서 일했다. 차고 옆으로는 더러운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단순하고, 지루하고, 게다가 분주한 일이었다. 내가 전표를 접수해서, 지시 받은 수효의 책을 안고 창고 입구까지 나르면, 그녀가 그것에 로프를 감고 기록부에 체크를 했다. 그것이 다였다.
창고에는 난방 장치 같은 건 전혀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얼어 죽지 않으려면 우리는 좋던 싫던 쉬지 않고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마치 앵커리지 공항에서 제설 작업을 하고 있는 거나 별 차이가 없을 듯한 생각이 들만큼 추웠다.
점심 시간이 되면,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따뜻한 점심을 먹고, 휴식이 끝나기까지의 한 시간을, 몸을 녹이면서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몸을 녹이는 게 휴식 시간의 주요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패닉을 일으킨 후부터,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단편적으로 밖에 얘기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녀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요코하마에서 작은 수입품 가게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그가 취급하는 하물의 태반은 홍콩으로부터 들어오는 값싼 의료품이었다. 중국인이 라지만 그녀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중국이나 홍콩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으며, 다닌 학교도 일본인 국민학교였다.
중국어는 거의 못했으나 영어는 자신 있었다. 그녀는 도쿄의 사립 여자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장래 희망은 통역관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마고메의 아파트에서 오빠와 같이 살고 있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린다면, 오빠한테로 굴러들어 갔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마음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에 대해서 알게 된 사실은 대강 그런 정도였다.
그 3월의 2주일 간은, 가끔씩 진눈깨비 섞인 차가운 비가 뿌리곤 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던 날 저녁, 경리과에서 급료를 지불 받은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전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신쥬쿠의 디스코테크로 그 중국인 여학생을 유인해 보았다. 그녀를 어째 보자든가,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건 아니다.
나에겐 고교 시절부터 사귀어 온 여자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 사이는 이전만큼 잘 맞지가 않았다. 그녀는 고베에 살았고 나는 도쿄에 있어서, 만나는 건 고작해야 2개월이나 3개월마다 였다. 우리는 아직 어렸으며, 그만한 거리와 시간의 공백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서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앞으로 그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대체 어떤 식으로 전개해 나가면 좋을런지도 나로선 알 수 없었다.
나는 도쿄에서 완전한 외톨이 였다. 친구라고 할 만한 친구도 없었고, 대학 수업은 따분하기만 했다. 그때의 나는 숨돌릴 곳이 필요했다. 여학생을 꼬셔셔 춤을 추러 가거나 가볍게 술을 마시고, 터놓고 얘기를 하면서 즐기고 싶었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그때 나는 아직 열 아홉살,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인생을 즐기고 싶은 나이였던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5분 가량 생각에 잠겼다가 "하지만 춤을 춰 본적이 없는 걸요" 하고 말했다.
"별건 아니야. 춤이란 건 대단한 게 아니라구. 음악에 맞춰서 몸을 이리저리 흔들기만 하면 되니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어."
우리는 먼저 레스토랑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며 피자를 먹었다. 이제 아르바이트는 다 끝났다. 두 번 다시 그 추운 창고 속에 들어가 책을 나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해방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
는 언제나처럼 많은 농담을 했고, 그녀는 어느 때보다 잘 웃었다.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예정대로 디스코테크로 가서 2시간쯤 춤을 추었다. 홀은 적당한 온도였고, 땀 냄새와 누군가에게서 풍겨 나오는 냄새가 감돌고 있다. 필리핀 밴드가 산타나를 모방한 듯한 디스코테크였다.
땀이 나면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땀이 마르면 또 춤을 추었다. 가끔씩 무대 위의 조명들이 점멸했다. 조명등 불빛 아래서의 그녀는, 창고에 있을 때와 전혀 달라 보였다. 춤추기에 익숙해지자 그녀는 그것을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 우리는 지칠 때까지 춤을 추고 나서 그곳을 나왔다.
3월의 밤바람은 아직 쌀쌀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봄이 느껴졌다. 몸에는 아직 더운 열기가 남아 있어서 우리는 코트를 팔에 걸친 채로 정처없이 거리를 걸었다. 게임 센터를 기웃거리고,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는 또 걸었다.
봄방학은 아직도 절반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때 열 아홉 살이었다. 걸으려고만 한다면 그대로 다마가와 강변까지라도 걸어갔을 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그날 밤 공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시계가 10시 20분을 가리켰을 때, 이제 가야겠다고 그녀가 말했다.
"11시까지는 가야 하거든요" 그녀는 몹시 미안한 듯이 나에게 말했다.
"아주 엄하신 가 봐?"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요, 오빠가 까다로워요. 보호자인 양하면서. 그렇지만 얹혀 사는 형편에 뭐랄 수도 없고." 하지만 그녀가 자기 오빠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말투로 알 수 있었다.
"구두 잊지마" 하고 나는 말했다.
"구두? 아아, 신데렐라 말이군요. 알았어요. 잊지 않을께요."
우리는 신쥬쿠 역 계단을 올라가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괜찮다면 전화 번호 좀 가르쳐 주지 않을래? 다음 번에 또 어디든 함께 놀러 갔으면 좋겠어" 하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입술을 꼭 다물고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일러주었다. 나는 그것을 디스코테크에서 가지고 나온 종이 성냥 뒷면에다 볼펜으로 받아 적었다. 전철이 도착하자 나는 그녀를 먼저 태워 주며 "안녕" 하고 말했다.
"즐거웠어. 정말 고마워. 또 만나."
문이 닫히고 전철이 움직이자 나는 옆쪽 플랫폼으로 옮겨가 이케부쿠로 방면으로 가는 전철을 기다렸다. 나는 기둥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면서 그날 밤의 일을 순서대로 되새겨 보았다.
레스토랑에 들어갔던 일부터 디스코테크, 그리고 산책까지.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여학생과 데이트를 한건 오랜만이었다. 나는 그것이 즐거웠고 그녀 역시 즐거워 했다. 우리는 적어도 친구가 될 수 있을 테지.
그녀는 말수가 좀 적은 편이고, 신경질인 데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본능적으로 호의를 가질 수가 있었다.
나는 구두창으로 담배를 밟아 끄고,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수 많은 거리의 소음들이 하나로 뒤섞여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 희미하게 베어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여 마셨다.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줄곧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삼켜 버리려고 해도 까끌까끌한 것이 목에 걸려 있어 넘길 수가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나는 어쩐지 황당한 실수를 저지른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것이 뭔가를 알아낸 것은 15분 후였다. 그제야 나는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야마테 방면 전철에 태워 보냈던 것이다.
나는 메구로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타고 갔던 전철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지극히 간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그녀를 반대편 전철에다 태웠단 말인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이었을까? 혹은, 나는 나 자신의 생각으로 머리 속이 꽉 차있었는지도 모른다.
역의 시계는 10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마 집의 문을 닫을 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빨리 내 실수를 알아차리고, 전철을 제대로 갈아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했으리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녀는 그런 타입이 아니다. 잘못 태워 준 전철이라도, 줄곧 그대로 있을 타입이다. 그리고 그녀는 아마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게다. 자기가 전철을 잘못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고 맙소사,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가 고마고메 역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11시 10분이 좀 지났을 때였다. 계단 옆에 서있는 나를 보자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잠자코 그녀의 팔을 끌어 벤치에 앉히고 그 옆에 앉았다. 그녀는 백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그 끈을 두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다리를 앞으로 뻗어 하얀 구두의 코끝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사과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고, 깜빡 착각을 했었나 보다고 말했다. 틀림없이 멍청하게 있었기 때문일 거야.
"정말 몰랐어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당연하지 안 그러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 아냐?" 하고 나는 말했다.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어요"
"일부러?"
"화가 난 줄 알았다구요."
"화가 나?"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나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요"
"어째서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지?"
"몰라요. 나하고 함께 있는 게 따분해서 그랬을 테죠 뭐" 하고 그녀는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따분하긴? 함께 있는 게 재미있었는 걸. 거짓말이 아니야."
"거짓말. 나하고 함께 있는 게 뭐가 재미있어요? 그럴리가 없어요. 그건 내가 더 잘 알고 있는걸요. 정말 실수로 착각을 했다 하더라도 그건 사실 마음속으로 그렇게 바라고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신경 쓰지 말아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일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틀림없이 마지막도 아닐 텐데 뭐."
그녀의 눈에서 두줄기 눈물이 흘러내려 무릎 위의 코트에 굴러 떨어졌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우리는 한참 그렇게 잠자코 앉아 있었다. 전철이 몇 대나 달려와서 승객들을 토해 놓고 지나갔다. 그들의 모습이 계단 위로 사라지자 다시 조용해졌다.
"부탁이예요. 나를 그만 내버려두세요. 처음에는 나도 뭔가 착각했겠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대로 전철을 타고 있었죠. 그런데 전차가 도쿄 역을 지날 때쯤부터 맥이 풀려 버리는 것이었어요. 그때부터 모든 게 싫어지고, 다시는 이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는 눈물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무슨 말이든 하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밤바람에 흐트러진 석간 신문이 펄럭이며 플랫폼 끝쪽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다시 눈물에 젖은 앞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기며 힘없이 웃었다.
"됐어요. 처음부터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어요. 여기는 나를 위한 장소가 아니야."
그녀가 말하는 장소란, 이 일본이란 나라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암흑의 우주를 돌고 도는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를 가리키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 나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다 내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고, 손바닥은 촉촉했다. 나는 큰맘 먹고 입을 열었다.
"사실 난, 나라는 인간을 누구한테 그럴듯하게 설명하지 못해. 나 자신도 가끔 나라는 인간을 잘 모를 때가 있으니까. 내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며,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잘 알 수 없을 때가 있어. 그래서 내자신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고, 그 능력을 어떤 식으로 사용해야 할지 그것도 모르겠단 말야. 그런 걸 일일이 세심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때때로 정말 두려워 지곤 해.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밖에 생각지 못하게 되거든.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아주 고집스러워지는 거야. 그러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거든. 그래서 나는 내가 괜찮은 인간이라고 말할 용기가 조금도 없어."
나는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거기서 말을 그치고 말았다. 그녀는 내 말이 계속되기를 기다리듯이 꼼짝 않고 있었다. 여전히 자기의 구두 코끝만을 응시하며.
멀리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 왔다. 역무원이 우리를 무시한 채 빗자루로 플랫폼의 먼지를 쓸어 모으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오가는 전철의 횟수도 아주 뜸해졌다.
"난 함께 있는 게 즐거웠어. 이건 거짓말이 아니야. 그리고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너라는 사람이 나한테는 어쩐지 아주 진지하게 생각된단 말이야.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왜 그럴까? 하지만 언젠부턴가 줄곧, 너와 함께 있고 싶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어. 그래서 나는 늘 그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지. 그 진지하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하고."
그녀는 얼굴을 들고 한참이나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전철을 일부러 잘못 태워 준 건 아니야. 아마 무슨 생각에 골몰해 있었나 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전화할게. 어디 가서 눈물 자국을 지우고 우리 이야기 좀 많이 하자."
그녀는 손가락끝으로 눈물 자국을 지우고 나서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고마워요. 정말 미안해요."
"네가 미안할건 뭐야. 잘못은 내게 있는데."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혼자 벤치에 남아,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이고, 빈 담뱃갑을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시간은 벌써 12시가 다 되었었다.
내가 그날 밤에 저지른 두 번째 실수를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9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그건 너무나도 바보스럽고, 너무나도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빈 담뱃갑과 함께 그녀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 성냥까지 함께 버렸던 것이다. 나는 모든 방법을 다해 알아보고 다녔지만,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명부에도, 전화번호부에도, 그녀의 전화번호는 없었었다. 대학 학생과에도 문의해 보았지만 알 길이 없었다. 그 이후 그녀하고는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그녀가 내가 만난 두번째 중국인이었다.
4
세 번째의 중국인 이야기.
그는 앞에서도 썼듯이 내가 고교 시절에 만난 사람이다. 친구의 친구쯤 되는 사람으로 몇 차렌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결혼을 하고도 벌써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6년 동안에 고양이를 3마리나 매장했다. 몇 개의 희망을 태워버리고, 몇 개의 고통을 두툼한 스웨터에다 싸서 땅에 묻었다. 모두가 이 막막하고 거대한 도시 안에서 행해졌다.
싸늘한 12월의 오후였다. 바람은 없었지만 날씨는 몹시 추웠으며, 가끔씩 구름 사이로 보이는 햇빛도 거리 위로 내린 어둑한 회색 막을 없애 버리지는 못했다.
나는 은행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아오야마 거리에 있는 유리벽 찻집으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면서, 방금 산 소설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소설이 싫증나면 눈을 들어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또 책을 읽었다. 한 사내가 앞에 서 있다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렇지요, 네?"
나는 깜짝 놀라 책으로부터 눈을 들어 그렇다고 말했다. 상대방의 얼굴은 전혀 생소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바느질이 고급스런 네이비 블루의 블레이저 코트와, 색깔이 잘 맞는 레지멘털 타이를 한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조금씩 닳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양복이 구식이라든가 낡았다든가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그저 닳았다는 말이다.
얼굴 생김새도 그와 비슷했다. 단정하고 반듯하긴 하지만, 얼굴에 나타나 있는 표정은, 급한 대로 어디선가 억지로 긁어 모은 단편(斷片)의 집합에 지나지 않은 듯이 보였다. 마치 갑작스런 파티의 테이블에 차려 놓은 고르지 못한 접시 같았다.
"앉아도 될까요?"
"그럼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마주보고 앉자 불을 붙이는 것도 아니면서, 호주머니에서 담뱃갑과 조그만 금제 라이터를 꺼내 테이블 위에다 놓았다.
"어때요. 날 모르겠소?"
"모르겠는데요. 유감스럽지만 난 늘 그런 식이라오. 다른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해요."
나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아예 그렇게 고백했다.
"어쩌면 옛날 일을 잊고 싶어하는 게 아닌지?"
"그럴지도 모르지" 하고 나는 인정했다.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
여자 종업원이 물을 날라 오자, 그는 아메리칸 커피를 주문했다. 그는 아주 약하게 해달라고 했다.
"위가 나쁘거든. 사실은 커피, 담배 모두 금해야 된다네."
그는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위가 나쁜 사람이 위장 이야기를 할 때의 특유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런데 아까 이야기의 계속인데 말야, 나는 자네하고 똑같은 이유로, 옛날 일을 남김없이 몽땅 기억하고 있다네. 정말 묘하지 뭔가. 나 역시도 구차한 모든 일들을 깨끗이 잊고 싶다네. 하지만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여러 가지 일들이 자꾸 떠오른단 말일세. 잠을 자려고 하면 할수록 눈이 말똥말똥해질 때가 있지. 그와 마찬가지야. 왜 그런진 나도 모르겠어. 알고 있을 사람이 없는 일까지도 기억한다니까. 이처럼 세세하게 옛날 일만 기억한다면, 앞으로의 인생 기억을 담을 만한 공간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는 건 아닌가 하고 불안해질 정도로 기억이 선명하다니까. 정말 피곤해."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테이블 위에다 엎어 놓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것도 정말 생생하게 기억하는 거야. 그때의 날씨부터 온도, 냄새까지. 마치 지금 거기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만큼. 그래서 이따금 나 자신도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돼버리거든. 도대체 진짜 나는 어디서 살고 있는가 하고. 지금 현재의 일들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단지 기억에 지나지 않는 듯한 생각이 들 때조차 있어. 그런 기분 알겠나?"
나는 멍청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네에 대해서도 난 아주 잘 기억하고 있지. 거리를 지나가다 유리 창 너머로 한눈에 알아보았으니까. 아는 척해서 방해가 되나?"
"아니야 그런데 난 아무래도 생각나지 않는걸.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미안하다니. 이쪽이 멋대로 쳐들어왔는데 뭐. 마음 쓰지 말게.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거야. 그런 거라니까. 기억이란 사람에 따라 활동방법이 전혀 다르다구. 용량도 다르고 그 방향도 다르지. 두뇌의 활동을 돕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제지해 버리는 기억도 있지.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거야. 그러니 마음 쓰지 말라구. 대단한 건 아니니까."
"이름을 알려 주지 않겠나? 아무래도 생각나지 않으니. 끝내 모르면 기분이 안 좋거든."
"이름 따위 아무러면 어때. 글세, 뭐 그걸 자네가 기억해도 좋고, 기억하지 못해도 좋아.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다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만약 자네가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그처럼 마음이 거북하다면,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행각하면 그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하는데 그다지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니까."
커피가 왔지만 그는 그것을 별로 달갑지 않다는 듯이 홀짝거렸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의 진의가 파악되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물이 다리 밑으로 흘러갔다.’ 왜 그런 문장이 고등학교 때 영어 교과서에 있었지. 기억 나나?" 하고 그는 물었다.
고등학교 때? 그렇다면 이 사람은 고교 시절의 친구란 말인가?
"그럼, 틀림없어. 요전번에 다리 위에 서서 멍하게 아래를 보고 있었거든. 그랬더니 그 영어 예문이 문득 떠오르는 거야. 실감한 셈이지. 옳거니, 시간이란 이렇게 흘러가고 있구나 하는 걸."
그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깊숙이 묻혀서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이 도대체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표정을 만들고 있는 유전자의 군데군데가 닳아서 끊겨 버린 그런 느낌이 들었다.
"결혼했나?" 라고 그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없어."
"나는 하나 있다네. 남자아이야. 벌써 네 살이지. 유치원에 다녀. 튼튼한 게 자랑이야."
아이 이야기가 끝나자, 우리는 잠시 잠자코 있었다. 내가 담배를 입에 물자 그는 얼른 라이터로 붙여 주거나 술을 따라 주거나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경우는 거의 자연스러웠다. 불을 붙여 준 것을 얼마 동안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고 있지?" 하고 그가 물었다.
"하찮은 사업" 하고 나는 대답했다.
"사업?" 그는 잠시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있다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 대단한 건 아니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물거렸다. 그는 몇 번 고개를 끄덕거렸을 뿐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이야기가 길어질 테고, 나는 그것을 일일이 다 설명하기에는 다소 지쳐 있었다. 게다가 나는 상대방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했다.
"놀랐는걸. 자네가 사업을 하고 있다니. 사업에는 전혀 맞지 않게 보였는데 말야."
나는 웃었다.
"옛날에는 책만 파고 있었지."
그는 뜻밖이라는 듯 계속해서 말했다.
"글쎄, 책이야 뭐 지금도 읽고 있지만" 하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백과사전은?"
"백과사전?"
"그래, 백과사전을 가지고 있어?"
"아니" 나는 이유도 모르는 채 고개만 저었다.
"백과사전은 보지 않나?"
"그야 있으면야 읽겠지."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방에는 그런 걸 둘 만한 장소조차 없었다.
"사실은 말야, 나는 지금 백과사전을 팔러 다닌다네."
그때까지 마음속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그에 대한 호기심이 싹 가셔버렸다. 옳거니, 그는 백과사전을 판매하고 있구나. 나는 다 식어 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소리나지 않게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탐나는 건 사실이야. 있으면 좋겠다. 싶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돈이 없네. 정말 빈털터리야. 빚을 잔뜩 안고 있다가 겨우 갚기 시작한 판국이라네."
"이봐, 이봐, 그만둬. 내가 뭐 자네한테 백과사전을 떠맡기려고 하는 걸로 생각하진 마. 나 역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의 가난뱅이 신세지만, 그렇게까지 억지로 팔지는 않아. 게다가 나는 일본인한테는 팔지 않아도 좋다고 왜 있다구. 이건 계약이야." 하고 그는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일본인?"
"그렇지. 나는 중국인 담당이거든. 중국인한테만 그 백과사전을 파는 거지. 전화번호부에서 시내의 중국인 가정을 골라낸 후 목록을 작성해서 깡그리 호별 방문을 하는 거야. 누가 생각해 냈는지 모르지만, 아주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매상도 나쁘진 않아. 초인종을 누르고,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이런 거 한번 구경하시죠.’ 하면서 명함을 슬쩍 내놓거든. 그거면 돼. 그 다음엔 소위 동포애 따위로 이야기를 슬슬 풀어 나가는 거지."
그때 갑자기 머리 속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났어" 하고 나는 소리쳤다.
그는 고교 시절에 알고 지내던 중국인이었다.
"참 이상하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중국인을 상대로 백과사전을 팔러 다니는 신세가 됐는지, 나 자신도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물론 하나하나 자잘한 사정이야 생각이 나지만 말야, 그것이 하나로 뭉뚱그려져서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은 전체적인 것은 내다보지 못했어. 하지만 알고 보니 어느 틈엔가 이렇게 돼 있더군." 그는 남의 얘기라도 하는 듯한 어조였다.
나와 그는 같은 반이 된 적도 없었고, 개인적으로도 그다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정도의 사이였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그는 백과사전을 팔러 다니는 세일즈맨이나 하고 있을 타입의 사람은 아니었다. 가정 환경도 나쁘지 않았고, 성적 역시 분명 나보다는 나았었고, 여자애들한테도 인기 있는 편이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굉장히 지루하고 우울하고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야. 별로 들을 만한 것도 아니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대꾸할 말도 없고 해서 나는 잠자코 있었다.
"나만의 탓도 아니지. 별의별 까다로운 일들이 겹치고 겹쳤거든. 하기야 뭐 결국은 내 잘못이긴 하지만" 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그동안에 고교 시절의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아주 막연하게 밖에는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언젠가 누구네 집 식탁에 둘러앉아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일이 기억났다.
아마도 어느 여름날 오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확실한 건 아니다. 그건 아주 오래 전에 꾸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꿈처럼 여겨졌다.
"어째서 자네를 아는 척했을까?" 하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묻듯이 말했다. 그러고는 잠시 테이블 위의 라이터를 손가락으로 뱅글뱅글 돌리다 말을 이었다.
"어쨌든 분명히 방해가 됐겠지. 미안해. 하지만 자네를 만나 반가웠어. 뭐가 반가운 건지 알 수 없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나 역시도 특별한 이유 없이 조금은 반가웠던 것이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머지 담배를 빨아들였고, 그는 남은 커피를 마셨다.
"나아 슬슬 가볼까. 이렇게 수다만 늘어놓을 처지가 아니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팔아야 할 물건이 있거든."
"혹시 팜플렛 가진 것 없나?" 하고 나는 물었다.
"팜플렛?"
"아아, 지금은 없는데, 보고 싶나?" 그는 멍청하게 말했다.
"보고 싶군. 그냥 호기심으로 말야."
"그럼 집으로 우송해 주지. 자네 주소를 알려 주지 않겠나?"
나는 수첩에서 종이 한 장을 떼 내어 주소를 적은 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그것을 홀깃 보고는 착착 넷으로 접더니 지갑 속에 집어 넣었다.
"꽤 괜찮은 사전이라네. 내가 팔고 있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잘 만든 거야. 컬러 사진도 많아. 틀림없이 도움이 될 거야. 나도 가끔은 손에 들고 대강대강 읽어 보는데, 심심하지 않아."
"몇 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유가 생기면 이미 난 아마 백과사전하고는 인연을 끊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중국인 가정을 대충 한바퀴 돌고 나면 그 다음엔 일거리가 없어질텐데 뭐. 그렇게 되면 무엇을 하지? 다음에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손해보험이나 비석 세일즈는 어떨까? 아무려면 어때, 뭔가 팔 물건이 있을 테지."
그는 선거 포스터에 있는 얼굴처럼 다시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때,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마도 그 친구하고는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그에게 뭔가 중국인에 관한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상투적인 인사말을 입에 담았을 뿐이다.
지금이라고 해도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5
어느새 서른 살을 넘어선 한 사람의 남자로서, 다시 한 번 외야 플라이 볼을 전속력으로 쫓다가 농구 골대에 부딪혀, 다시 한 번 글러브를 베개 삼고 포도덩굴 밑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났다고 하면, 나는 이번에는 도대체 무슨 말을 중얼거릴 것인가?
어쩌면 나는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여기는 나를 위한 장소가 아니야’ 라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야마테 방면의 전철 안에서였다. 나는 문 앞에 붙어 서서 차표를 잃지 않도록 손에 꼭 쥔 채 유리창 너머의 충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들의 거리, 그러나 그 풍경은 왠지 내 마음을 몹시 침울하게 했다. 도시 생활자가 연중 행사처럼 빠져 드는 저 익숙하고, 텁텁한 커피나 젤리와 같은, 정신의 어슴푸레한 어둠이 나를 또 사로잡고 있었다.
후줄근한 빌딩, 이름도 없는 사람들의 군상, 끊임없는 소음, 빽빽하게 늘어선 자동차 행렬, 회색빛 하늘, 공간을 뒤덮는 광고판, 욕망과 체념과 초조함과 흥분, 거기에는 수많은 선택과 무수한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건 무수(無數)이자 동시에 제로(0)였다. 우리는 그러한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또한 우리 손에 있는 것은 제로였다. 그것이 도시였다. 나는 문득 그 중국인 학생의 말이 생각났다.
"처음부터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어."
나는 도쿄의 거리를 바라보면서 중국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렇게 해서 많은 중국인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중국에 관한 수많은 책을 읽었다. [사기(史記)]로부터 [중국의 붉은 별]까지. 나는 중국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중국은 나만의 중국일 따름이다. 그건 나만이 읽을 수 있는 중국이다. 내게만 메시지를 보내는 중국이다. 지구 위에 노랗게 칠해진 중국하고는 다르다. 또 하나의 중국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가설이며, 하나의 잠정적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중국이라는 말에 의해 잘려진 나 자신이다.
나는 중국을 방랑한다. 하지만 나는 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다. 그 방랑은 이 도쿄의 지하철 안이나 택시의 뒷자리에서도 행해진다. 그 모험은 이웃 치과의 대기실이나 은행 창구에서도 행해진다. 나는 어디나 갈 수 있고, 어디도 갈 수 없다.
도쿄-그리고 어는 날, 야마테 방면 전철 안에서 이 도쿄라는 거리는 갑자기 그 리얼리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 풍경은 창 밖에서 무참하게 붕괴되기 시작했다. 나는 차표를 움켜쥐면서 그 광경을 지켜 보고 있었다.
도쿄 거리에 나의 중국이 재처럼 쏟아져서 이 거리를 결정적으로 침식해 간다. 그것은 자꾸자꾸 허물어져 가고 있다.
그렇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말은 사라지고, 우리가 품었던 꿈도 언젠가는 어슴푸레 잊혀져 간다. 저 영원으로 이어질 줄 알았던 지루한 애돌레슨스(adolescence:청년기)가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잦아들어 소멸되듯이.
오류.......오류라는 건 저 중국인 여대생이 말했듯이(어쩌면 정신 분석의가 말했듯이) 결국은 역설적인 욕망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류야말로 나 자신이자 당신 자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디에도 출구 같은 건 없다. 그래도 나는 과거의 충실한 외야수로서의 작은 보람을 트렁크 속에 챙기고, 항구의 돌층계에 걸터앉아, 공허한 수평선 위로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를 중국행 화물선을 기다리자. 그리고 중국 거리의 휘황한 지붕들과 그 푸르른 초원을 생각하자.
상실과 붕괴 뒤에 오는 것이 비록 무엇이건, 이제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마치 명타자가 내야의 수비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신념에 찬 혁명가가 교수대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그것이 가능한 것이라면......
그러나 친구여, 중국은 너무나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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