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친구가 보내 온 한 통의 편지 -청첩장-를 받고, 나는 예전에 살던 거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나는 이틀간의 휴가를 얻고, 호텔 방을 예약한다. 나는 그 거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몸의 절반이 투명해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내가 나 자신의 몸에서 빠져 나가는 것 같다.
맑게 게인 5월의 아침에, 나는 작은 여행 가방에 소지품 등을 챙겨 신칸센 열차에 올라탄다. 창가 쪽에 앉아, 책을 보다가 덮어 두고, 캔 맥주를 다 마시 고, 좀 자다가 체념하고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신칸센 열차의 유리창에 비치는 풍경은 언제나 똑같다. 그것은 맥락이 있고, 부자연스러우며 메마른 풍경이다. 이따금 그것은 풍경이기를 그만두어 버린 것 같다. 그것은 단지 공간 이동에 필요한 일종의 시간적 효과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되는 것이다.
12년 전과 같았다. 거의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강화(强化) 유리창 너머의 5월의 햇살이나, 말라비틀어진 햄 샌드위치 맛이나, 지루한 듯이 경제 신문을 훑어보고 있는 옆자리의 젊은 비즈니스맨의 얼굴도......
신문의 헤드라인은 EC는 아마 수개월 내에 강경하게 일본에 대해 수입을 제한 할 거라고 밝히고 있다.
12년 전에, 나는 예전에 살던 '거리'에 애인이 있었다. 대학에 다닐 때 방학 이 되면, 나는 옷가지가 담긴 여행 가방을 들고, 아침의 첫 신칸센 열차에 올라탔다. 창가의 좌석에 앉아, 책을 읽고, 풍경답지 않은 풍경을 바라보고, 햄 샌드위치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그러한 아침에 맥주를 마시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언제나 오전 중에 '거리'에 도착했다.
태양이 하늘 높이 오르기 전이어서, '거리'의 구석구석에는 아직 아침의 술렁거림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나는 여행 가방을 껴안은 채 커피숍으로 들어가, 모닝 서비스로 나오는 커피를 마시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한 때의 '거리'의 모습을 나는 좋아했다. 아침 햇살, 커피 냄새, 사람들의 졸리운듯한 눈, 아직 손상되지 않은 하루, 내 손가락이 전화 다이얼을 돌리 는 소리.
바다 냄새가 난다. 희미한 바다 냄새다.
물론 정말로 바다 냄새가 날리는 없다. 문득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나는 넥타이를 고쳐 매고, 선반 위의 가방을 끌어내리고, 열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진짜 바다 냄새를 가슴으로 들이마신다. 반사적으로 몇 개의 전화번호가 내 머리에 떠오른다. 1968년의 소녀들...... 그 번호들을 한 번 더 늘어놓아 보면, 그녀들과 한 번 더 만날 수 있을 듯 한 느낌이 든다.
우리는 예전에 곧잘 다녔던 레스토랑의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 한 번 더 이야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옛날의 친분으로. 테이블에는 깅엄(역주: 줄무늬·체크무늬의 평직 면포)이 깔려 있고, 창가에는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으리라. 창문으로는 틀림없이 한가롭고 종교적인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을 것이다. 만일 그 레스토랑이 예전대로 존재하고 있다면.
"그래, 벌써 10년이나 되었군.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지나가 버리는 군"하고 나는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지 않아,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다고.
"마지막으로 너를 만난 이후로, 아직 10년밖에 지나지 않았구나. 왠지 100년이나 지난 듯 한 느낌이 드는데"하고 나는 고쳐 말한다.
아니, 어느 쪽이나 다 틀린 이야기다. 아마도 시간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아주 미묘해서, 때로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모습을 손상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하고 나는 말할지도 모른다. 분명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으므로 나는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 역시 그릇된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다. 여러 가지 일은 결코 여러 가지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나밖에 모른다.
우리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미 5년 전에 결혼하여 어린애도 있고, 남편은 상사(商事)를 다니고 있고, 주택 자금 같은 걸 대출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몇 시인가요?"하고 그녀는 문득 고개를 들고 묻는다.
"3시 20분"하고 나는 대답한다.
3시 20분. 시간은 마치 오래된 뉴스 영화의 릴(역주: 영화 필름을 감는 틀)처럼 덜덜 소리를 내며 계속 흐른다.
나는 눈을 감는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서는 아직 시간이 소리를 내며 계속 흐르고 있다. 그것은 이윽고 신칸센 열차의 나른한 진동소리와 하나로 혼합되어 간다.
이 거리로 돌아와도 내게는 이제 만나 볼 상대도 없다. 전화를 걸어 볼 상대도 없는 것이다. .... 나는 호텔의 훨씬 앞쪽에서 택시를 내려, 아침의 텅 빈 한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내게는 이미 만나 볼 상대도 없고, 전화를 걸어 볼 상대도 없다고. 이곳은 이미 나의 거리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던 일은 오래 전에 끝나 버리고, 지금은 룰을 포함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은 이미 여러 가지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나는 그 차이를 누구에게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한길에는 버터 굽는 냄새와 차의 향기, 보도에 뿌려진 물 냄새 등이 떠돌고, 방금 문을 연 레코드 가게에서는 새로운 히트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한 냄새나 소리가, 의식의 희미한 그림자를 빠져 나가는 것처럼 몸속으로 조금씩 스며든다.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유혹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이봐, 이쪽이야, 이쪽. 나야, 기억 못해? 너에게 어울리는 좋은 장소가 있어. 함께 가게 이리로 오라고. 틀림없이 마음에 들 거야. 하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것은 환청인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나는 그런 장소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에는 몰랐던 일이었는데, 지금 보니 거리에는 왜 그런지 불균일(不均一)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10미터를 걸을 때마다 공기의 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중력이나 햇빛, 온도 등이 달라지고 있다. 매끈매끈한 보도 위의 발걸음 소리도 다르다. 시간마저 불균일하다. 저쪽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르고, 이쪽에서는 천천히 흐르곤 한다.
나는 한 남성복 가게에 들어가 운동화와 스포츠 셔츠를 샀는데, 가게 주인은 그것을 봉지에 담아 주었다. 어쨌든 갈아입고 싶었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 다음부터 모든 일은 시작된다. 결혼식을 위해 입고 온 어두운 색깔의 정장과 넥타이 덕분에, 왠지 숨이 막혀 버릴 것 같다.
호텔 방으로 들어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벌거벗은 채로 침대에 드러누워 잠시 멍하니 있다가, 포장을 뜯고 새 스포츠 셔츠를 꺼내 입는다. 작은 가방에 무리하게 채워 넣어 온 청바지를 꺼내고, 새 운동화의 끈을 맨다. 그러자 약간은 평소의 나 자신으로 되돌아온 듯 한 느낌이 든다.
새 신발에 발이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방의 카펫 위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내 몸도 조금씩 거리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30분 전에 느낀 균형이 안 잡힌 듯 한 기분이나 숨이 막힐 듯 한 답답한 기분도, 지금은 약간 덜하다.
'적어도 나는 여기에 이렇게 있다'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여기에 있고 이곳의 공기를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새 신발을 신은 채로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한 번 더 바다 냄새가 났다. 이전보다 훨씬 분명한 냄새였다. 바다 위를 건너오는 바닷바람, 바위틈에 남겨진 해초, 습기 찬 모래...... 그러한 것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진 해안의 냄새였다.
한 시간 후에 택시를 해안에 세웠을 때 바다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바다는 몇 킬로미터나 더 멀리 멀어져 있었다. 낡은 방파제의 자취만이, 이전의 해안 도로를 따라 무슨 기념품처럼 남아 있었다. 그것은 이제 아무 쓸모도 없는 낡아 빠진 낮은 벽에 지나지 않는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은 파도가 밀려오는 해안이 아니라, 콘크리트가 전면에 깔려 있는 광대한 황야였다. 그리고 그 황야에는 수십 동의 고층 아파트들이 마치 거대한 묘표(墓漂)처럼 죽 늘어서 있었다.
초여름을 연상시키는 햇살이 대지에 쏟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 3년쯤 될 거요. 메우기 시작하고 나서 7년쯤 걸렸지만 말예요. 산을 깎아 내려 그 흙을 컨베이어 벨트로 운반해 바다를 메웠어요. 그리고 산을 택지로 삼아 바다에 아파트를 세운 거예요. 몰랐나요?"하고 중년의 한 택시 운전사가 가르쳐 주었다.
"그럭저럭 10년 만이니까요"하고 나는 대답했다.
운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도 아주 달라졌어요. 조금 더 가면 새로운 해안이 나오는데 가보시겠어요?"
"아뇨, 여기서 내리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는 미터기를 꺾고, 내가 건네주는 돈을 받는다.
해안 도로를 걸어가자, 얼굴에 약간의 땀이 배어 나온다. 5분쯤 도로를 거닌 다음 방파제로 올라가, 너비가 50센티미터쯤 되는 콘크리크 벽 위를 걷기 시작한다. 새 운동화의 고무 밑창이 소리를 낸다. 버려진 방파제 위에서, 몇 명의 아이들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여름이 되면 나는 매일 이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그리고 수영복을 입을 채로, 우리 집 마당에서 해안까지 걸어 다녔다. 햇볕에 달궈진 아스팔트길이 어찌나 뜨거운지, 깡총깡총 뛰면서 걸었다. 소나기도 왔다. 뜨거워진 아스팔트 노면에 스며드는 소나기의 냄새를 나는 무척 좋아했다.
집에 돌아오면, 차가운 우물 속에 담가 둔 수박이 있었다. 물론 냉장고도 있었지만, 우물에서 꺼낸 수박만큼 맛있는 건 없었다. 욕실에 들어가 몸에 묻은 소금기를 씻어 낸 다음, 툇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었다. 한 번은 수박을 매달아 둔 끈이 풀어진 적이 있는데, 건져 올리지 못해 몇 달 동안이나 우물 속에 떠 있었다. 물을 길어 올릴 때마다, 양동이 속에 수박 조각이 들어 있었다. 확실히 기억하는데, 그때가 왕정치가 고시엔에서 우승 투수가 된 여름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우물이 어찌나 깊은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둥근 어둠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더 자란 후에는(이미 그 무렵에는 바다가 완전히 오염되어 버려, 우리는 산 위에 만들어진 풀에서 수영을 했지만), 저녁때가 되면 개를 데리고(개를 기르고 있었다. 희고 커다란 개였다) 해안 도로를 산책하곤 했다. 모래사장에 개를 풀어 놓고 멍하니 있으면, 몇 명의 같은 반 여자 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운이 좋으면,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한 시간 가량 그들과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기다란 스커트를 입고, 머리의 샴푸 냄새를 풍기며, 눈에 띄기 시작한 가슴을 단단하고 작은 브래지어로 감싼 1963년의 여자 아이들. 그들은 내 옆에 앉아, 작은 사건들을 수수께끼로 내며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학급 이야기, 세상 이야기......, 앤소니 퍼킨스, 그레고리 펙, 엘비스 프레슬리 등의 새로운 영화, 그리고 닐 세다카의 <이별은 괴로워> 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1년에 몇 번씩은 파도가 익사체를 해안으로 밀어 올렸다. 대개 자살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어디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름이 씌어져 있지 않은 양복을 입고, 주머니에는 무엇 하나 소지품이 없는(혹은 물결에 휩쓸려 버린)사람들이었으니까. 그들의 이야기는 지방지에 작은 기사로 실릴 뿐이다. 신원 불명, 여성, 스무 살 전후(추정), 폐 속에 바닷물이 가득차고, 물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피부의 젊은 여자...... 따위의 기사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방황하는 유실물(遺失物)처럼 죽음은 천천히 파도에 의해 운반되고, 어느 날 조용한 주택 지대의 해안으로 떠밀려 왔다.
그중의 한 명은 내 친구였다. 아주 오래 전 여섯 살 무렵의 일이다. 그는 집중 호우로 물이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죽었다. 봄날 오후에 그의 사체는 탁류와 함께 단숨에 먼 바다로 운반되고, 그리고 사흘 후에, 떠내려가는 나무와 나란히 해안으로 밀어 올려졌다.
죽음의 냄새.
여섯 살인 소년의 사체가 뜨거운 화덕 속에서 타는 냄새.
4월의 흐린 하늘에 우뚝 솟아 있는 화장터의 굴뚝, 그리고 회색의 연기.
존재의 소멸.
발이 아파 오기 시작한다.
나는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 들고, 맨발로 방파제 위를 계속 걸어간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오후의 햇살 속으로, 근처에 있는 중학교의 차임 벨 소리가 울려온다. 고층 주택들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화장터와도 같다. 사람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생활의 냄새도 없다. 밋밋한 도로 위로 이따금 자동차가 지나갈 뿐이다.
나는 예언한다.
5월의 태양 아래를, 운동화와 양말을 양손에 들고 낡은 방파제 위를 걸어가면서 나는 예언한다. 너희는 무너져 버릴 거라고.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은 무너져 버리고, 모든 것은 소멸하는 것이다.
앞쪽에 강물이 보이고, 늘어선 고층 주택들과 제방도 거기서 끝나고 있었다. 나는 강가로 내려가 맑은 강물에 발을 담근다. 그리운 차가움이다. 바다가 오염되기 시작했던 때에도, 강물은 언제나 맑았었다. 산에서 모래땅인 강바닥을 일직선으로 흘러 온 물이다. 유사(流砂)를 막기 위한 여러 개의 폭포가 있는 이 강에는 물고기도 거의 살고 있지 않다.
나는 얕은 강줄기를 따라 겨우 보이기 시작한 바닷가로 향한다. 파도 소리, 바닷물 냄새, 해조(海鳥), 앞바다에 닻을 내린 화물선의 그림자...... 양 옆이 매립되어, 땅 사이에 삽입된 것처럼 보이는 해안선이 거기서 괴롭게 숨을 쉬고 있었다. 매끄럽고 낡은 제방의 벽에는 돌로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로 쓴 수많은 낙서가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의 누군가의 이름이다. 남자의 이름, 여자의 이름, 남자와 여자의 이름, 그리고 날짜.
"1971년 8월 14일"
(1971년의 8월 14일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1976년 6월 2일"
(1976년은 올림픽이 열리고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다. 몬트리올? 포드?)
"3월 12일"
(연호가 없는 3월 12일. 이봐, 나는 이미 서른한 번이나 3월 12일을 지내 왔단 말이야, 어느 3월 12일인가?)
혹은 메시지.
"ALL YOU NEED IS LOVE!"
(밝은 청색의 스프레이 페인트로 씌어져 있다)
나는 강가의 모래밭에 앉아 제방에 등을 기대고, 죽은 듯이 조용하고 쓸쓸하게 남겨진 50미터 가량의 폭이 좁은 해안선을 몇 시간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온화한 5월의 파도 소리밖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태양이 중천을 지나가고, 제방의 그림자가 강물의 표면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졸음이 밀려왔다. 그리고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문득 생각한다. 졸다가 깨어났을 때, 나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하고.
깨어났을 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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