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실화이며, 동시에 우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1960년대 우리들의 포크로어(민간전승)이기도 하다.
나는 1949년에 태어났다. 1961년에 중학교에 들어갔고, 1967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예의 좌충우돌 소동 속에서 스무 살을 맞이하였다. 우리는 말 그대로 69년대의 아이들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한평생에서 가장 상처 입기 쉽고, 가장 미숙하고, 그런 연유로 가장 중요한 시기에, 1960년대란 터프하고 와일드한 공기를 듬뿍 마시며,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숙명적으로 그에 취해 버렸던 것이다. 도어즈에서 비틀즈, 밥 딜런까지, BGM도 빈틈없이 갖추어져 있었다.
1960년대란 시대에는 과연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지금 떠올려 보아도 그렇고, 그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뭐 그렇다고 회고적인 기분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자신이 자라난 시대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대체 어디에 사는 누구를 위하여, 어떤 한 시대를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냐?). 나는 다만 사실을 사실로써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거기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분명히 있었다. 하기야 -내 생각에- 거기서 있었던 것 자체는 대단히 진귀한 것도 아니었다. 시대의 회전이 뿜어내는 열과, 거기에 내게 약속과, 어떤 종류의 무언가가 어떤 종류의 시기에 자아내는 어떤 종류의 한정된 찬란함, 그리고 망원경을 거꾸로 보고 있는 듯 한 숙명적인 답답함, 영웅과 악한, 도취와 환멸, 순교와 전신, 총론과 각론, 침묵과, 웅변, 그리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기다리기, 그 밖의 등등, 등등.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그런 것들은 빠짐없이 있었고, 지금도 분명 있다.
하지만 우리들 시대(란 과장된 표현을 용서해주길 바란다)에는,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손에 꽉 잡힐 듯 한 모양을 하고 존재했던 것이다. 하나하나가 선반에 올려져 있었다. 더구나, 지금처럼 무언가를 하나 손에 올려놓으면, 허울 좋은 광고라든가 도움이 되는 관련 정보라든가 할인 서비스 권이라든가 그레이드 업을 위한 옵션이라든가, 그런 복잡한 것들이 줄줄이 따라오는 일은 없었다. 두툼한 매뉴얼 북을 몇 권이고 덤으로 받는 일도 없었다(예를 들면 이 책이 초급 취급 설명서이고, 그리고 이쪽이 중급이고, 이것이 상급의 응용편이고, 그리고 이것이 초급 기종과 어떻게 연결하는가 하는 커넥션 설명서이고......). 우리들은 그저 단순히 무언가를 손에 들어, 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밤중에 가게에서 히요쿄(계란과자)를 사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고 쉬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방식이 통용될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이기도 했다.
고도 자본주의 전사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거의 신품에 가까운 남성용 생식기를 지닌 우리들과, 그 무렵 아직 소녀였던 그녀들과의, 우당탕탕 유쾌하고 애처로운 성적 관계에 대하여. 그것은 이야기의 테마 중 하나이다.
우선 처녀성에 대하여(<처녀성>이란 글자의 느낌은 내게 화창한 봄날의 오후의 드넓은 들판을 상상하게 한다. 어째서일까?)
1960년대에는 처녀성이라고 하면, 현재에 비해 여전히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내 감상으로 하자면 -물론 앙케이트 조사를 하여 검사를 해 본 것도 아니니 대충 말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들 세대에 스무 살 전에 처녀성을 버린 여자는 전체의 반 정도가 아니었던가 하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그랬다. 즉 반 정도 되는 여자들이 의식적으로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처녀성이란 것을 아직 존중하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들 세대의 여자들 대부분은(중간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처녀였든 아니었든 결과적으로, 내심 어쩌면 좋을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새삼스레 처녀성이 소중한 것이라고 여겨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처녀성 따위 아무 의미도 없다. 어리석은 것이다. 라고 단언할 수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 다음은 요컨대 -사실 그대로 말하자면- 따라서, 어떤 식으로도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나름으로 상당히 타당한 사고이며, 삶의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비교적 차분한 매저리티인 그녀들을 가운데 두고 리버럴과 컨서버트브가 존재했다. 섹스란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여자들로부터, 결혼을 한다면 상대방은 처녀야만 한다고 말하는 작자도 있었다.
어는 시대도 그렇지만, 다양한 인간이 있고, 다양한 가치관이 있다. 하지만 1960년대에 근접하는 다른 연대와 달랐던 점은, 이대로 시대를 잘만 운영해 가면 그런 서로 다른 가치관의 차이를 어느 정도는 메울 수 있으리라고 우리들이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스
이건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그에 대해 한 마디로 하자면, 그는 무엇이든 잘하는 학생이었다. 성적도 좋고, 운동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었다. 특별히 핸섬한 것은 아니지만, 사뭇 청결한 느낌의 깔끔한 얼굴이었다. 언제나 당연한 일이듯 반장이니 하는 위원을 맡았다. 목소리도 청명하여, 노래도 잘 불렀다. 반에서 학급회의라도 있을 때면, 제일 마지막에 회의를 정리하는 발언을 하였다. 물론 독창적인 의견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학급회의에서 독창적인 의견을 추구한단 말인가. 우리들이 그 회의에서 추구한 것은 뭐가 어찌되었든 빨리 대화를 끝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면, 과연 회의는 적당한 시간에 틀림없이 끝이 났다. 그런 의미에서 보배 같은 남자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독창적이지 않은 의견을 필요로 하는 때가 아주 많은 것이다. 아니, 그런 경우가 훨씬 많은 법이다.
그는 또 규율과 양심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남자이기도 하였다. 자습 시간에 장난을 치며 소란을 피우는 놈이 있으면, 온건하게 주의를 주었다. 불평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때로 머리통을 목에서 떼 내어 흔들어 보고 싶어졌다. 어떤 소리가 날까, 하고. 하지만 여자 애들한테는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교실에서 그가 쓰윽 일어나 무슨 말을 하면, 여자아이들은 모두 "우와, 그래"하는 식의 감탄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알쏭달쏭한 수학 문제가 있으면, 그한테 물으러 간다. 나보다 스물일곱 배는 인기가 있었다. 워 실제로 그런 남자애였다.
공립학교에 다닌 분이라면, 그런 타입의 남자애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반에든 한 명쯤은 이런 학생이 있고, 또 없어서는 반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장기간의 걸친 학교 교육을 통하여, 여러 가지 생활의 매뉴얼을 자연스럽게 터득해 가는데. 싫든 좋든 간에, 공동체 안에서는. 이런 타입의 인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내가 거기에서 습득한 지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나는 이런 타입의 인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성격이 맞지 않는다. 나는 뭐랄까, 몹시 불완전하더라도, 좀 더 존재감이 있는 인간을 좋아한다. 그래서 일 년이나 같은 반에 있으면서도 친밀하게 지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서로 말을 한 적조차 거의 없었다.
내가 그와 대화라 할 만한 얘기를 나눈 것은,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일이다. 우리는 같은 운전 교습소에 다니면서, 거기에서 몇 번인가 얼굴이 마주쳐 얘기를 나누었다. 시간을 기다리는 사이에 둘이 커피를 마셨다. 운전 교습소란 정말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라, 누구라도 좋으니 아는 사람이 있으면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진다. 농담이 아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딱히 나쁜 인상이 남아 있진 않다. 신기하게도, 좋다든지 나쁘다든지 하는 인상이 없다(하기야 나는 면허를 따기도 전에 지도 요원과 싸움을 하여 보기 좋게 도중에 탈락하고 말았으므로, 사귀었다고 해봐야 실로 짧은 시간이었다).
그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그에게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것 정도이다. 그녀는 다른 반 여자 애였는데, 교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미인이었다. 미인이고, 성적도 좋고, 운동도 잘하고, 리더십이 있고, 학급회의에서는 마지막을 장식하는 발언을 하였다. 어떤 반이든 이런 여자애가 한 명쯤은 있는 법이다.
아무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곤 했다. 점심시간에는 곧잘 교정의 구석에 나란히 앉아, 얘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종종 서로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같은 전철타고, 다른 역에서 내렸다. 그는 축구부이고, 그녀는 ESS부였다(지금도 ESS란 말이 존재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요컨대 영어 회화반이다). 과외 활동이 끝나는 시간이 서로 맞지 않는 날에는 먼저 끝난 쪽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기다렸다. 그들은 틈만 나면 같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언제나 얘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가, 하고 감탄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들은(이라 함은 나와 내가 사귀고 있었던 불완전한 친구들을 말한다) 아무도 그들을 놀리거나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두 사람에게는 우리들의 상상력이 파고들 여지가 손톱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은 당연한 무엇으로서 거기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스터 클린과 미스 클린. 치약 광고 같은 것이다. 우리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그런 일에는 털끝만큼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우리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은 훨씬 더 생명감이 있는 세계였다. 정치와 섹스와 록과 마약과, 우리들은 약국에 가서 의기양양하게 콘돔을 사고, 한 손으로 브래지어를 푸는 방법을 배웠다. 우리들은 BSD를 대신하는 효과가 있다는 말을 어디에서 주워듣고, 바나나 가루를 만들어 그것을 파이프로 피웠다. 대마인 듯 한 풀을 찾아내서는, 그것을 말려 종이에 말아 피웠다. 물론 효과는 없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어도 좋았다. 그것은 일종의 축제이다. 우리는 축제 그 자체에 흥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시기에 누가 미스터 클린과 미스 클린이란 클린 한 쌍에게 관심을 가질 것인가?
물론 우리들은 무지하고 오만했다. 우리들은 인생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현실 세계에는 미스터 클린도 미스 클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환상이다. 그런 것은 디즈니랜드나 치약 광고 같은 세계에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품고 있었던 환상도, 그들이 품고 있었던 환상도, 정도에 있어서는 그다지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이다. 별 유쾌한 이야기도 아니고, 교훈 비슷한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이야기이며,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즉 포크로어인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그것도 포도주 잔을 기울이며 잡다한 세상 이야기를 하던 끝에 불쑥 튀어나온 이야기다. 그러니까 엄밀한 의미에서는 실화라고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흘려들어 잊어버린 부분도 있고, 세세한 부분은 적당히 나의 상상을 섞어 쓰고 있다. 그리고 실재 인물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하지만 이야기의 줄거리에는 조금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사실을 변조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도 거의 이대로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야기의 세부는 잊어버렸지만, 그의 얘기하는 톤만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문장화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의 톤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 톤만 확실하게 포착하고 있으면, 그 이야기는 진실한 이야기가 된다. 사실은 얼마간 다를지 모르겠으나, 진정한 이야기가 된다. 사실과 이야기와의 차이가 진실함을 고양시키는 경우마저 있다. 반대로 세상에는, 사실과 전부 맞아떨어져도 진실 되지 않은 이야기기 있다. 그런 이야기는 대체로 시시하고, 어떤 경우에는 위험하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들은 냄새로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은, 그가 이야기의 화자로서는 이류였다는 점이다. 어찌된 셈인지, 다른 부분에서는 넘치리만큼 듬뿍 재능을 부여한 하느님도, 이야기를 하는 능력만큼은 그에게 부여하지 않은 모양이다(하기야 그런 목가적인 재능은 현실 생활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지만).그래서 정직하게 말해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 번이나 하품을 할 뻔했다(물론 하지는 않았다). 불필요한 탈선도 있었다. 이야기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을 기억해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는 이야기의 편린을 손에 들고 찬찬히 바라보고는 틀림이 없다고 스스로 납득한 후에야 하나하나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그러나 앞뒤는 오락가락하였다. 나는 소설가로서 -이야기의 전문가로서- 그들 편린의 전후를 뒤바꾸고, 접착제로 주도면밀하게 이어 붙여 줄기로 만들었다.
나와 그는 우연찮게도 루카라는 중부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 만났다.
중부 이탈리아다.
나는 그 무렵 로마에 아파트를 빌려 살고 있었다. 마침 아내가 일이 있어 일본으로 돌아간 터라, 나는 그 동안 혼자서 느긋하게 철도 여행을 즐겼다. 베네치아에서 베로나 만투바 모데나를 거쳐, 루카에 들렀던 것이다. 루카에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조용하고 좋은 마을이다. 그리고 맛있는 버섯요리를 파는 레스토랑이 마을 어귀에 있다. 그는 사업차 루카에 와 있었다. 우연하게도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이 같았다.
세상은 참 좁다.
그날 밤,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우리는 양쪽 다 혼자서 여행을 하고 있었고, 양쪽 다 따분해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 홀로 여행은 따분한 것이 된다. 젊은 시절은 다르다. 혼자든 둘이든, 어디를 가든 마음껏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그렇지가 않다. 나 홀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하루 이틀이나 한 사흘뿐이다. 점점 풍경이 시큰둥해지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성가셔진다. 눈을 감으면, 옛날에 있었던 기분 나쁜 일이 떠오르고 만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기가 귀찮아진다. 열차를 가다리는 시간이 무한정 길게 느껴진다. 몇 번이나 시계를 힐끗거리게 된다. 외국어로 말해야 하는 것이 싫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상대방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어쩌면 천만다행이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레스토랑의 난로 앞 테이블에 앉아, 붉은색 고급 포도주를 주문하고, 버섯 전채를 먹고, 버섯 파스타를 먹고, 버섯 로스트를 먹었다.
그는 가구를 사들이러 루카까지 온 것이었다. 그는 유럽 가구 전문 수입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는 물론 그 사업에 성공하였다. 딱히 자랑을 하지도 않고, 그럴싸한 냄새를 풍기지도 않았지만(그는 내게 명함 한 장 주고는, 조그만 회사를 하나 경영하고 있어, 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가 현세적 성공을 수중에 넣었다는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이며, 말투며, 표정이며, 몸짓이며, 두르고 다니는 공기로 금방 알 수 있었다. 성공은, 그라는 인간에게, 착 배어 있었다. 아주 상큼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는 내 소설을 전부 읽었다고 했다.
"나와 자네와는 필경 생각하는 방식도 다를 것이고, 지향하는 것도 다를 거야. 하지만 타인에게 뭐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
지당한 의견이었다.
"제대로 잘 할 수 있다면 말이지."라고 나는 말했다.
우리는 처음에는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얘기했다. 열차의 발착 시간이 제멋대로라는 듯, 식사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등. 그런데 어쩌다 얘기가 그쪽으로 흘렀는지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두 병째 캔티 와인이 테이블에 놓여 졌을 때, 그는 이미 그 이야기를 시작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이따금 응, 응, 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이야기를 누구에겐가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장소가 중부 이탈리아의 조그만 마을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포도주가 향긋한 83년도 산 콜티브오노가 아니었더라면, 난로에 불이 타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 이야기를 영영 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옛날부터 나 자신은 따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그는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였거든. 늘 내 주위로 틀 같은 것이 보이고, 거기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 살아왔지. 언제나 눈앞에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 보였어. 친절한 고속도로 같은 것이지. 무슨무슨 방면은 오른쪽 차선으로 붙어라. 이 앞에는 커브길이 있다. 추월은 금지한다, 는 등 말이야. 그 지시대로만 좇아가면 길을 잘못 드는 일없이 갈 수 있지. 어디로든, 그런 식으로 사는 나를 사람들은 칭찬해 주었어. 모두가 감탄을 하면서 말이야. 어렸을 적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이 보일 테지 하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나는 포도주 잔을 들어 불 앞에 비추며, 잠시 그것을 바라보았다.
"내 인생은, 적어도 처음 부분이 그렇다는 뜻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주 순탄한 것이었어. 문제라 할 만한 문제는 아무 것도 없었지. 하지만 그 대신에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의미 같은 것을 제대로 포착할 수가 없었어. 성장함에 따라 그런 어정쩡한 기분은 점점 더 강렬해졌지. 나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그걸 모르겠는 거야. 올 에이 증후군이지. 요컨대 말이야, 수학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체육도 잘하고, 아무거나 다 잘하는, 부모는 칭찬을 하고, 선생님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하였지. 하지만 나는 대체 어떤 것이 내 적성에 맞는가, 나는 뭘 하고 싶어 하는가, 그걸 알 수 없었어. 대학의 과만해도 어떤 과를 선택하면 좋을지 나 자신은 전혀 모르는 거야. 법대에 가야할 것인지, 공대에 가야 마땅한 것인지, 아니면 의대에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그래서 부모님과 선생님이 가라는 대로 도쿄 대학 법학부로 진학을 했어. 그게 가장 타당한 길이라고들 하기에 말이지. 확실한 지침이라는 게 없었어."
나는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자네 내 고등학교 시절 걸 프렌드 기억하나?"
"후지사와란 이름이었던가."라고 나는 이름만 간신히 기억해내 말했다. 별로 자신이 없었는데, 제대로 맞추었나 보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후지사와 요시코, 그녀일 만 해도 그랬어. 난 그녀를 좋아했지. 그녀랑 함께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어. 나는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그녀에게 털어놓은 수 있었고, 그녀도 내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해 주었어. 하염없이 긴 얘기를 하면서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그건 정말 멋진 일이었지. 그렇지 않겠어, 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와 후지사와 요시코는 소위 정신적인 쌍생아였다. 두 사람이 자라난 환경은 기분 나쁠 정도로 비슷했다. 둘 다 얼굴 생김이 반듯하고, 성적이 좋고, 타고난 리더였다. 반의 슈퍼스타였다. 양쪽 다 가정은 유복하지만 부모의 사이는 나빴다. 엄마 쪽이 약간 연상이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를 만들어, 집에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총을 의식한 체면 때문이었다. 집안에서는 엄마가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 일등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친밀한 친구는 없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아마도 보통 불완전한 인간은 자기와 비슷한 정도의 불완전한 인간을 친구로 삼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언제나 고독하고, 언제나 긴장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한 일로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아졌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허락하고, 이윽고 연인 사이가 되었다. 항상 둘이 함께 전심을 먹고, 힘께 집으로 돌았다. 틈만 있으면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 얘기가 산처럼 많았다. 일요일에는 함께 공부를 하였다. 두 사람은 둘이 있을 때만 가장 편안한 기분이 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손바닥에 올려놓듯 알 수 있었다. 서로가 지금까지 품고 있었던 고독감이며 상실감, 불안감 그리고 어떤 류의 꿈같은 것에 대해서, 두 사람은 질리지도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일주에 한 번 꼴로 페팅을 하게 되었다. 대개는 어느 한쪽의 집에서 했다. 어느 쪽이든 집에는 별로 사람이 없었으므로(아버지는 늘 집에 없었고, 엄마는 볼 일이 많아 나다니기가 일쑤였다), 그러기는 간단했다. 그들 사이의 규칙은 옷을 벗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손가락만을 사용했다. 그런 식으로 10분이나 15분가량 서로를 탐닉하듯 격렬하게 껴안고는, 그 다음 한 책상에 나란히 의자를 놓고 공부를 하였다.
"자, 이제 이 정도로 됐지? 슬슬 동부나 하자."라고 그녀는 치맛자락을 피며 말했다. 두 사람의 성적은 거의 엇비슷하여, 그들은 게임을 하듯 공부를 즐길 수 있었다. 수학 문제를 시간을 재가며 앞 다투어 풀기도 하였다. 공부란 그들에게는 전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는 그들에게 제2의 천성 같은 것이었다.
"그런 일들이 모두 아주 즐거웠어. 바보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재미있었어. 그런 즐거움이란, 아마 우리 같은 인간밖에 모를 거야."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가 그런 관계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가 결여되고 있다고 그는 느꼈다. 그렇다. 그는 그녀와 자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진짜 섹스를 요구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일체감〉,그는 그렇게 표현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필요했어. 거기까지 도달함으로 해서, 우리는 좀 더 해방되고, 좀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건 나로서는 아주 자연스런 심정의 추이였어."
그러나 그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매사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앙 다물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너를 무척 좋아해. 하지만 나는 결혼할 때까지 처녀로 있고 싶어."라고 그녀는 침착한 어투로 말했다. 그리고 그가 아무리 있는 말을 다하여 설득을 해도,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너를 좋아해, 아주. 그렇지만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과 이 문제와는 별개야. 이 점은 내겐 명백하게 정해져 있는 일이야, 미안하지만, 참아줘. 부탁이야. 나를 정말 좋아한다면, 참을 수 있겠지?"
그런 식으로 말하면, 그녀의 말을 존중할 수밖에 없잖아, 라고 그는 내게 말했다.
그것은 생활의 방식의 문제이고, 그런데도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고, 내 자신은 상대방이 처녀이든 아니든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만약 내가 결혼한 상대가 처녀가 아니라 하더라도, 특별히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나는 딱히 래디컬한 사고를 갖고 있는 인간도 아니고 몽상적인 인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수적인 것도 아니거든. 나는 다만 현실적일 뿐이야. 처녀이든 아니든, 내게는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 중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었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의견이니까 말이지.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는 거지. 그녀에게는 그녀가 생각하는 인생의 모습이란 게 있을 것이고, 그래서 나는 참았어. 줄곧 옷 밑으로 손을 넣어서 페팅만 했어. 대충 어떤 일인지 자네도 알겠지?
대충 알아, 라고 나는 말했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그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씁쓸히 웃었다.
그거 그것대로 좋았어.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는 한 나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없었지. 내게 그것은 과정에 불과한 것이었거든. 내가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숨기지 않고 그녀와 한 몸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소유하고, 소유되는 것, 그렇다는 증거가 필요했어. 물론 성욕도 있었지. 그러나 그것 뿐만은 아니야. 내가 말하는 것은 육체적인 일체감이야. 아는 태어나서 그때껏 그런 일체감은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었어. 난 언제나 혼자였지. 그리고 언제나 어떤 틀 안에서 긴장하고 있었어. 나는 자신을 해방시키고 싶었던 거야. 자신을 해방시킴으로써, 지금까지 희미하게 밖에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듯 한 기분이 들었거든, 그녀와 하나로 딱 연결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규제해온 틀을 털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던 거야.
"그런데. 그게 안 됐다는 거야?"라고 나는 물었다.
"응, 뜻대로 되지 않았어."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한동안 난로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장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묘하게도 밋밋했다."결국은 마지막까지 불가능했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또 그 생각을 단호하게 그녀에게 말해 보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하면 나는 곧바로 결혼을 할 수 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약혼이라면 더 빨리 할 수도 있다. 그녀는 한참이나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띠었다. 그것은 정말 멋진 미소였다. 그녀가 그의 말을 기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세상에 길든 인간이 손아래 인간의 미숙한 정론을 들을 때 같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미소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느꼈다. 있지, 너 그건 무리야, 나는 너랑 결혼할 수 없어, 나는 나보다 몇 살 위인 사람이랑 결혼할 것이고, 너는 몇 살 아래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야. 그게 세상의 보통 흐름이라고. 여자란 남자보다 성장이 빠른 법이니까, 그래서 더 빨리 노화하고, 너는 아직 세상이란 것을 잘 모르고 있어. 우리가 대학을 나와 곧장 결혼한다 해도, 멋지게 살아갈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어. 우리는 지금처럼 살수는 없을 거야. 물론 나는 너를 좋아해. 태어나서 지금껏 너 이외에 다른 사람을 좋아한 적이 없어. 하지만 그것과 이것과는 별개야(그것과 이것과는 별개, 라는 말을 그녀는 입버릇처럼 하였다). 우린 아직 고등학생이고, 주변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어. 하지만 바깥세상은 그렇지가 않다고. 훨씬 거대하고, 훨씬 더 현실적인 거야, 우리는 그에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돼.
그녀가 하려는 말은 그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 해도 또래의 남자아이들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었다. 그러니까 만약 다른 자리에서 이런 일반론을 들었다면, 어쩌면 그 의견에 찬동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신의 문제였다.
난 납득이 안 가, 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너를 아주 사랑하고 있고, 너랑 하나가 되고 싶어. 이런 나의 바람은 아주 확실한 것이고 내게는 무척 중요한 일이야. 가령 거기에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해도, 솔직히 그건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그만큼 너를 좋아하고 있어. 사랑하고 있다고.
그녀는 또 고개를 저었다. 정말 어쩔 도리가 없구나, 라고 말하려는 듯. 그리고는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사랑에 대해 우리가 뭘 알고 있을까, 라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 사랑은 아직 아무런 시련도 당하지 않았어, 우리는 아무런 책임도 지고 있지 않다고. 우린 아직 어린애야. 너나 나나.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서글펐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벽을 쳐부술 수 없는 것이 서글펐다. 방금 전까지, 그 벽은 그를 지키기 위해 존재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그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꼈다. 나는, 이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느꼈다. 나는 아마도 이대로, 이 막강한 틀에 갇힌 채, 거기에서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나이를 먹어가겠지, 하고
결국 두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런 관계를 계속하였다. 도서관에서 만날 약속을 하여, 함께 공부를 하고, 옷을 입은 채 페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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