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V피플이 내 방에 찾아온 것은 일요일의 저녁이었다. 계절은 봄이다. 아마 봄이라고 생각한다. 어떻든 간에 그 정도로 덥지도 않고 그 정도로 춥지도 않은 계절이었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여기서 계절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일요일의 저녁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일요일의 저녁이라고 하는 때를 좋아하지 않는다. 라고 할까, 거기에 부수하는 여러 가지 것- 요약해서 일요일의 저녁적 상황이라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거다. 일요일의 저녁이 가까워 오면, 내 머리는 반드시 쑤시기 시작한다. 그 쿡쿡거림에 있어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쑤시는 거다. 양쪽 관자놀이의 1센티인지 1센티 반 정도 안쪽에 부드러운 하얀 살의 뭉침이 기묘하게 경련을 일으킨다. 마치 그 살의 중심으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실이 나와 있어, 저쪽에 누군가가 그 끝을 잡고, 조용히 당기고 있는 듯 한 느낌이다. 특별히 아프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파도 될 터인데 불가사의하게 아프지 않은 거다. 깊은 마취를 받은 부분에 긴 바늘을 스윽 찔러 넣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소리가 들린다. 아니, 소리라고 하기보다는 그것은 두터운 침묵이 어둠속에 서서 삐걱거리는 듯 한 것이다. ㅅ클즈시야아아탈-ㅅ클즈시 야아아아아아탈-ㅅㅅㅅㅅ클즈으으으음스, 라고 그것은 들린다. 그것이 여하간 첫 번째 징후다. 곧 쑤심이 찾아온다. 그리고 거기에 어울려서 시계(視界)가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마구 밀려드는 밀물처럼, 예감이 기억을 당기고, 기억이 예감을 당긴다. 하늘에 떨어지는 면도칼처럼 하얀 달이 떠오르고 의문의 뿌리가 어두운 땅속을 가리킨다(這). 사람들은 내게 빈정거리는 듯이 일부러 큰소리를 내며 복도를 걷는다. 갈스팡크 답 칼스팡크다븍 칼스방크답 이라고 그것은 들린다. TV피플은 그렇기 때문에 일요일 저녁을 노려서 내 방에 찾아 온 것이다. 마치 우울한 생각이나, 비밀스럽게 소리도 없이 내리는 비처럼, 그들은 시각의 엷은 어두움 속에 조용히 숨어서 오는 거다.
2.
TV피플의 외견에 대해서 곧 설명을 하겠다. TV피플의 몸의 사이즈는 나나 당신의 그것보다 조금 작다. 눈에 띄게 작다는 것은 아니다. `조금' 작은 거다. 그러니까, 그래, 2할인가 3할 정도. 그것도 몸의 각 부분이 모두 균일하게 작다. 그래서 작다고 하는 것보다는 축소되어있다고 표현하는 쪽이 용어 적으로는 차라리 정확하겠지. 혹시 당신은 TV피플을 어디선가 본다고 해도, 그들이 작다는 것을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해도, 틀림없이 그들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기묘한 인상을 남겨줄 터이다. 신경에 거슬린다고 말하면 좋을까, 뭔가 이상하군, 이라고 당신은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들을 죽 응시하게 될 것이다. 한번 봐서 별로 부자연스러운 곳이 없지만, 그것이 반대로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다시 말해 TV피플의 작음은 아이나 어린이의 작음과는 전혀 틀려있다. 우리들은 아이나 어린이를 보고, 그들을 '작다'라고 느끼지만, 그 감각적 인식은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신체의 밸런스가 나쁜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작기는 하지만 모두 균일하게 작은 것이 아니다. 손은 작지만 머리가 크거나 한다. 그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TV피플의 작음은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TV피플의 경우는 마치 축소복사를 해서 만든 것처럼, 모든 것이 정말 기계적으로 규칙적인 작은 것이다. 키가 0.7의 축척이라면 품도 0.7의 축척이고, 발의 사이즈도 머리의 크기도 귀의 크기도 손가락의 길이도 0.7의 축척이다. 실물보다 작게 만들어진 정밀한 프라모델처럼. 혹시 그들은 원근법의 모델처럼 으로도 보인다고도 한다. 손앞에 있는데도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마치 속임수 그림처럼 평면이 왜곡되고, 물결친다. 닿을 터인 곳에 손이 닿지 않는다. 닿지 않을 터인 것에 손이 닿는다. 그것이 TV피플.
3.
그들은 전부 3명이었다. 그들은 노크도 하지 않았고, 도어 벨도 울리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몰래 거실에 들어온 것뿐이었다.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사람이 문을 열고, 다른 두 사람이 텔레비전을 앉고 있다. 그렇게 크지는 않은 텔레비전이었다. 소니의, 극히 보통의 컬러텔레비전이었다. 문에는 아마 자물쇠가 잠겨있었다고 생각하지만, 확신은 없다. 어쩌면 잠그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자물쇠의 일 같은 건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문의 자물쇠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 아마 걸려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들이 들어왔을 때, 나는 소파에서 졸면서 천정을 보고 있었다. 집에는 나밖에 없었다. 그 오후, 아내는 여자 친구들과 만날 일이 있었다. 고교시대의 사이좋은 동급생의 몇 명인가가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는 어딘가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모두 저녁을 먹는다. "당신은 무언가 적당히 먹어줄래요?" 라고 아내는 나가기 전에 말했다. "냉장고에 야채라든가 냉장식품이라든가 이것저것 있으니까. 그정도 스스로 가능하지요? 그리고 날이 저물기 전에 세탁물만 걷어주고요." "좋아." 라고 나는 말했다. 전혀 상관없어. 그저 끼니다. 그저 세탁물이다. 사소한 일이다. 간단히 해치울 수 있어. 사류으읍프크르으으읏,라고. "뭐라고 했어요?" 라고 아내가 물었다. "아무 말도 안했어" 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오후동안 혼자 소파에서 졸고 있었다. 달리 할 일도 없었다. 책을 조금 읽었다.-가르시아 마르케서의 새로운 소설. 음악도 조금 들었다. 맥주도 조금 마셨다. 하지만 무엇에도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잘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잠자는 데도 신경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파에서 졸며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다. 내 경우, 일요일의 오후에는 이러 저런 것들이 그런 식으로 줄어들어 버린다. 뭘 해도 모두 중간에 그만둬버리게 된다. 무엇이든 잘 몰입해 들어갈 수가 없다. 아침에는 무엇이든 간에 잘 될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이 책을 읽고, 이 레코드를 듣고, 편지의 답장을 쓰겠다고 생각한다. 오늘이야말로 책상서랍을 정리해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오랜만에 세차를 하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계가 2시를 지나 세시를 지나, 점점 저녁에 가까워지면, 무엇이든 간에 엉망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나는 결국 언제나, 소파 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어버린다. 시계의 음이 귀에 닿는 것처럼 된다. 다룹 크 샤우스다룹 크 샤우스,라고 그 소리가 비가 내리듯이 주변의 사물을 조금씩 사라지게 한다. 다룹 크 샤우스다룹 크 샤우스. 일요일의 오후에는 뭐든지 간에 조금씩 줄어들고 축척이 조금씩 작아져 보인다. 마치 TV피플 그것처럼.
4.
TV피플은 나의 존재 따위 무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셋이고, 거기에 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도어를 열고, 텔레비전을 방안에 운반해왔다. 두 사람이 텔레비전을 사이드보드 위에 놓고, 또 한사람이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았다. 사이드보드의 위에는 자명종과 잡지가 잔뜩 얹어져 있었다. 시계는 결혼축하선물로 친구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굉장히 크고 무겁다. 마치 시계 그 자체처럼 거대하고 무거운 거다. 소리도 크다. 다룹 크 샤우스 다룹 크 샤우스.라고 그것은 방안에 울려 퍼진다. TV피플은 그것을 사이드보드의 위에서 치워, 바닥에 내려놓았다. 분명 아내가 화를 내겠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방안의 물건을 마음대로 이동시키는 것이 딱 질색인 것이다. 게다가 시계를 바닥에 내려놓는다던가 하면 나는 밤중에 분명 발을 부딪치게 되겠지. 나는 언제나 정해진 것처럼 두시 경에 눈을 뜨고 화장실에 가는데다, 완전히 잠이 덜 깬 상태이기에 자주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거나 부딪히거나 하고 마는 거다. 그리고 TV피플은 잡지를 들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전부 아내의 잡지였다. (나는 잡지는 전혀 읽지 않는다. 책밖에 읽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세상에 있는 잡지라는 잡지가 전부 깨끗하게 사라져 없어지게 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엘르}라든가 {마리클레르}라든가 {가정화보}라든가 그런 류의 잡지다. 그런 것들이 사이드보드 위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이다. 아내는 자기잡지에 손대는 것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쌓아둔 순번이 변해있다든가 한다면 꽤 시끄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잡지 따위는 건드리지 않는다. 책을 훑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TV피플은 그런 일은 상관 않고 계속 잡지를 치워버린다. 그들에게는 잡지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그들은 그걸 단지 사이드보드 위에서 다른 어딘가에 치워둔다는 것뿐이다. 쌓아둔 잡지의 상하가 바뀐다. {마리 클레르}가 {크로와상}의 위로 간다. {가정화보}가 {앙앙}의 아래가 된다. 그건 틀렸다. 게다가 그들은 아내가 어느 잡지에 끼워둔 서표를 여기저기 바닥에 떨어뜨린다. 서표가 끼워져 있던 곳에는 아내에게 있어서 중요한 정보가 게재 되어있는 페이지인 것이다. 그것이 어떤 정보로 어느 정도 중요한 건가 나는 모른다. 그녀의 일에 관계된 것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개인적인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에게 있어 그것은 중요한 정보인 것이다. 분명 굉장히 잔소리를 하겠지.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 친구와 만나 기분 좋게 놀다 들어와 보면 집안은 꼭 엉망진창이 된다니까 라던가 하는 식으로. 나는 그 세리프를 전부 떠올릴 수 있었다. 이런~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5.
하여간 사이드보드 위에는 아무 것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TV피플은 거기에 텔레비전을 놓았다. 벽의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고 스위치를 넣었다. 치직 치직하는 소리가 나며 화면이 하얗게 되었다. 한동안 기다려봤지만, 화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리모컨으로 채널을 순서대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어떤 채널이든 모두 새하얗다. 안테나에 연결시키지 않은 탓 일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거실의 어딘가에 접속구가 있을 터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맨션에 입주할 때 텔레비전 안테나의 접속 구에 관해 관리인에게서 설명을 들은 듯 한 기분이 든다. 여기에 이렇게 꽂으면 됩니다. 라고.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으니까, 그런 것의 일은 금세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TV피플은 어찌됐든 방송을 수신한다고 하는 데는 전혀 흥미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안테나의 접속구를 찾으려는 듯 한 몸짓조차 보이지 않았다. 화면이 하얀 대로라도, 화상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도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스위치를 눌러 전원이 on이 되면 그걸로 그들의 목적은 달성된 것 같았다. 텔레비전은 새것이었다. 상자에 들어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이 확실히 새것이라는 것은 한 눈에 알았다. 취급설명서와 보증서가 비닐봉지에 들어 셀로판테이프로 기계의 옆에 달라붙어 있었다. 전원코드는 신선한 물고기처럼 빛나고 있다. TV피플은 세 명이 방안 여기저기에서 텔레비전의 하얀 화면을 점검하는 듯이 응시했다. 한 명의 TV피플은 내 옆에 와서 내가 앉은 자리에서 어떤 식으로 텔레비전의 화면이 보이는가를 확인했다. 텔레비전은 내 쪽의 정면을 향해 놓여있었다. 거리도 적당한 거리였다. 그들은 거기에 만족한 듯했다. 이걸로 작업이 하나 끝났다는 분위기였다.
TV피플의 하나가 (내 옆에 와서 화면을 확인한 TV피플이다) 리모컨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TV피플들은 그 동안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확하게 순서대로 행동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 별로 말할 필요가 없는 거다. 세 사람은 각 각 자신에게 정해진 직무를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솜씨가 좋다. 작업에 걸리는 시간도 짧았다. 최후에 한명의 TV피플이 바닥에 놓아두었던 시계를 손에 들고 어딘가 적당한 놓을 장소가 없나하고 잠시 거실을 휘둘러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한 채 포기하고 그것을 다시 바닥에 놓았다. 다룹 크 샤우스 다룹 크 샤우스.라고 그것은 바닥 위에서 9초 동안 시간을 헤아렸다. 내가 살고 있는 맨션은 상당히 작고 거기에 내 책과 아내가 모으고 있는 자료들로 이미 더 이상 발 디딜 곳도 없는 듯 한 상태이다. 분명 언젠가 나는 저 시계에 부딪히겠지 라고 나는 생각하고 한숨을 쉬었다. 틀림없어. 절대로 부딪힐 거야. 내기해도 좋아. TV피플은 모두 진한 푸른색 상의를 입고 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끄러운 느낌의 천이다. 그리고 블루진과 테니스슈즈를 신고 있다. 옷도 신발도 조금씩 축척이 작았다. 오랫동안 그들의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점점 내 축적의 쪽이 잘못되어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서 뒤로 움직이는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듯 한 기분이었다. 풍경이 찌그러져 보인다. 그때까지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몸을 두고 있던 세계의 밸런스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TV피플을 보는 사람은 그런 기분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TV피플은 결국 최후까지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 세 사람은 한 번 더 텔레비전의 화면을 점검하고, 잘못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나서 리모컨으로 화면을 껐다. 화면의 흰색이 스윽 사라지고 치익 치익하는 작은 소리도 사라졌다. 화면은 원래대로 무표정한 검정에 가까운 회색으로 돌아갔다. 벌써 창밖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누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맨션의 복도를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지나갔다. 언제나처럼 일부러 큰소리를 내면서. 갈스팡크 답 칼스팡크다븍 칼스방크답이라고 하는 가죽 구두의 소리가 들려왔다. 일요일의 저녁 무렵이다. TV피플들은 방안을 한번 죽 점검하는 듯이 둘러보고 나서 문을 열고 나갔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나에게 아무 주의도 표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6.
TV피플이 거실에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나는 몸을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계속 소파에 앉은 채로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자연스럽다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른다. 거실 안에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그것도 세 명이나 들어와서, 멋대로 텔레비전을 놓았다고 하는데 아무 말도 않고 조용히 그것을 죽 지켜보고 있다니, 좀 이상한 얘기가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상황의 진행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나의 존재를 밑에서부터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생각한다. 당신이라고 해도 나와 똑같은 상황에 놓이면 아마도 같은 식으로 행동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자기변호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눈앞에 있는 타인으로부터 그런 식으로 완전히 존재를 무시당하면, 스스로도 자신이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지 어떤지 확신이 서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언뜻 자신의 손을 보아도 그것이 투명하게 보이는 듯이 느껴진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무력감이다. 몸을 마비시키는 주술이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존재가 점점 투명해진다. 그리고 나는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아무 것도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나는 세 사람의 TV피플이 내 거실에 텔레비전을 놓고 가는 것을 그저 죽 보고 있을 수밖에 없어. 제대로 말할 수가 없어.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무서워진다. TV피플이 나가버리고,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 나의 존재감이 되돌아온다. 나의 손이 다시 나의 손으로 돌아온다. 정신이 들자 석양은 벌써 어둠 속에 삼켜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거실의 전기 불을 킨다. 그리고 눈을 뜬다. 거기에는 역시 텔레비전이 있다. 시계는 시간을 헤아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다룹 크 샤우스 다룹 크 샤우스.라고.
7.
상당히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아내는 텔레비전이 거실에 출현한 일에 대해 아무런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제로인 것이다. 알아차리기조차 않은 것 같다. 이건 정말 기묘한 일이다. 라는 것은 아까도 말한 것처럼 그녀는 가구나 물건의 배치, 배열에 대해 상당히 신경질적인 여자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없는 동안 거실 안의 무엇인가가 아주 조금이라도 이동하거나 변화하거나 하면, 그녀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차린다. 그녀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눈썹을 찌푸리고 그것을 똑바로 원래대로 수정한다. 나와는 다르다. 나는 [가정화보]가 [앙앙]의 밑에 있던지, 연필통속에 볼펜이 하나 섞여 있던지, 그런 건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알아차리지도 못하겠지. 그녀처럼 살아간다면 굉장히 피곤하겠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문제로, 내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별로 아무 말 안한다.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둔다. 나는 원래 그런 사고방식의 인간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때때로 그녀는 상당히 화를 낸다. 나의 무신경함을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 나라고해서 때때로 중력이나 원주율이나 E = mc2 의 무신경함을 견딜 수 없어질 때가 있는 걸 이라고 나는 말한다. 정말로 그렇단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녀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아마 그것을 개인적인 모독이라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내게는 그녀를 개인적으로 모독하겠다는 따위의 생각은 없다. 나는 단지 스스로 느끼는 그대로를 말한 것뿐이다. 그 밤도 그녀는 집에 돌아오자 먼저 거실 안을 죽 훑어보았다. 나는 아예 설명할 문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TV피플이 와서, 여러 가지 것들을 혼란시키고 말았다라는 것. TV피플에 대해서 그녀에게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믿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는 전부 정확히 설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죽 거실 안을 훑어본 것뿐이었다.
사이드보드의 위에는 텔레비전이 있다. 잡지는 순서가 틀리게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시계는 마루 위에 내려 놓아져있다. 하지만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저녁은 제대로 먹었어요?" 라고 그녀는 원피스를 벗으면서 내게 물었다. 먹지 않았다고 나는 말했다. "왜요?",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거든." 나는 대답했다. 아내는 원피스를 반쯤 벗다만 채로 그것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그녀는 한동안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를 말할까하고 망설이는 것 같았다. 시계가 무거운 소리로 침묵을 분열시키고 있다. 다룹 크 샤우 스 다룹 크 샤우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싫어도 귀에 들어온다. 그녀도 그 소리에 귀를 맡긴 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 간단히 만들어줄까요?" 그녀는 물었다. "그렇게 해줘." 나는 말했다. 별로 무엇이 먹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무언가가 있으면 그걸 먹어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내는 부드러운 몸놀림으로 옷을 갈아입고 부엌에서 된장국과 달걀부침을 만들면서 친구들과 만난 이야기를 했다. 누가 뭘 했고,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누가 머리모양을 바꿔서 예뻐지고, 누가 어울리던 남자와 헤어졌다는 그런 얘기다. 나도 그녀들의 일은 꽤 알고 있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응응 하고 장단을 맞췄다. 하지만 전혀 아무 것도 듣고 있지 않았다. 나는 계속 TV피플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어째서 그녀는 텔레비전이 출현한 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알아차리지 못한 걸까? 설마, 텔레비전이 갑자기 나타났는데, 그녀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잖아. 그럼, 어째서 거기에 대해서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 거야. 굉장히 이상해. 기묘하다. 뭔가가 잘못되어 있어. 하지만 그 잘못됨을 어떤 식으로 고쳐야 좋을지 나는 모른다. 된장국이 되자 나는 부엌의 테이블에 앉아 그걸 먹었다. 달걀부침을 먹고 매실장아찌를 먹었다. 내가 다 먹고 나자 아내는 그릇을 씻었다.
나는 또 맥주를 마셨다. 그녀도 조금 맥주를 마셨다. 나는 흘낏 눈을 돌려 사이드보드 위를 보았다. 텔레비전은 아직 거기에 있다. 전원은 켜있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는 리모컨이 얹어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서 그 리모컨을 집어 스위치를 on시켜 보았다. 텔레비전의 화면이 사악 하얗게 되고 치익 치익하는 소리가 들렸다. 화상은 변함없이 아무 것도 비추지 않았다. 그저 하얀 빛이 브라운관의 위에 흘러나올 뿐이었다. 스위치를 눌러 음량을 늘려봤지만 자아 하는 노이즈가 커질 뿐이었다. 나는 20초인가 30초인가 그 빛을 지켜보다가 스위치를 껐다. 소리와 빛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아내는 그 동안 카펫 위에 앉아서 {엘르}의 페이지를 팔락팔락 넘기고 있다. 텔레비전이 곧 꺼진 일에 대해 그녀는 아무런 관심도 표시하지 않았다.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리모컨을 테이블 위에 놓고 또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가르시아 마 르케스의 긴 소설을 계속 읽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저녁 식사 후에 책을 읽는다. 30분 만에 관둘 때도 있고, 두 시간을 계속 읽을 때도 있다. 하여간 매일 읽는다. 하지만 그 날은 한 페이지의 반절도 읽지 못했다. 아무리 책에 의식을 집중하려고 해도 나의 주의는 금세 텔레비전에 돌아갔다. 곧 눈을 들어 텔레비전을 보게 되는 거다. 텔레비전의 화면은 내게 바로 정면을 향하고 놓여있다.
8.
밤 두 시에 눈이 뜨였을 때, 텔레비전은 아직 거기에 있었다. 나는 텔레비전이 사라져 없어질 것을 기대하고 침대에서 나왔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바로 똑같은 장소에 있었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소변을 보고 나서 소파에 앉아 테이블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는 리모컨을 사용해 또 한 번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넣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하얀 빛, 노이즈. 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스위치를 꺼서 빛과 노이즈를 없앴다. 나는 침대로 돌아가 자려고 했다. 나는 굉장히 졸렸다. 그러나 잠들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TV피플의 모습이 떠올랐다. 텔레비전을 안고 있는 TV피플, 시계를 치우고 있던 TV피플, 화면을 점검하고 있던 TV피플, 도어를 닫고 묵묵히 나가버린 TV피플. 그들은 계속 내 머리 속에 있다. 그들은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고 있다. 나는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에 가서 개수대에 있던 커피 컵에 브랜디를 더블 넣어서 마셨다. 그리고 다시 소파에 걸터앉아서 마르케서의 책을 펼쳤다. 그러나 역시 그 문장은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뭐가 쓰여 있는지 조차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나는 할 수 없이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내려놓고 <엘르>를 읽었다. 가끔 씩은 <엘르>를 읽는데도 상관없겠지. 그렇지만 <엘르>에는 내 흥미를 끌만한 것은 아무 것도 실려 있지 않았다. 새로운 헤어스타일에 대해서라든가, 하얀 고급 실크블라우스에 대해서라든가, 맛있는 비프스튜를 먹을 수 있는 가게라든가, 오페라에는 무엇을 입고 가야 좋은가 그런 것들밖에 쓰여 있지 않았다. 나는 그런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는 <엘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사이드보드 위의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결국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아침까지 깨어있었다. 6시쯤에 물을 끓여, 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기에 아내가 일어나기 전에 햄 샌드위치를 만들어두었다. "꽤 빨리 일어났군요." 라고 아내는 졸린 듯이 말했다.
"응" 나는 대답했다. 우리는 그리 말을 하지 않으며 식사를 끝내고 함께 집을 나서 각각의 회사에 갔다. 아내는 작은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다. 자연식에 관한 전문지를 편집하고 있다. 웅담요리가 통풍의 예방에 좋다던가, 유기농법의 장래에 대해서라든가 그런 종류의 전문적인 것을 싣는 잡지다. 그렇게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만드는데 거의 돈이 들지 않는데다, 종교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열심인 고정 독자가 있기에 여하튼 생활에 어려움은 없다. 나는 전자회사의 광고 선전부에 근무하고 있다. 토스터나 세탁기나 전자레인지 등의 광고를 만들고 있다.
9.
출근 도중, 회사의 계단에서 나는 TV피플의 한 명과 스쳐 지나갔다. 전날 집에 텔레비전을 가지고 온 TV피플의 한 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제일 먼저 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온 녀석이다. 텔레비전을 안고 있지 않았던 녀석. 그들은 얼굴에 특징이라고 할 만한 특징이 없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나로서는 확실하다고 확신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십중팔구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날과 같은 블루의 상의를 걸치고 있었다. 손에는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저 계단을 걸어 내려갈 뿐이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걸어서 계단을 오르내린다. 내 오피스는 빌딩의 9층에 있기에 이건 편한 일은 아니다. 특히 급한 용무가 있거나 하면 땀투성이가 되고 만다. 그래도 내게 있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보다는 땀투성이가 되는 쪽이 훨씬 낫다. 이에 대해 모두들 농담을 한다. 내가 텔레비전도 비디오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엘리베이터도 사용하지 않는 탓으로 그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어떤 의미로는 아직 미성숙한 단계에 있다고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기묘한 사고방식이다. 그들이 어째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그 때, 나는 언제나처럼 걸어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계단을 걷고 있는 것은 나 혼자였다.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란 거의 없는 것이다. 사층과 오층의 사이의 계단에서 나는 TV피플의 한사람과 스쳐지나 갔다. 상당히 돌연한 일이었기에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뭔가 말을 걸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을 데다, TV피플 에게는 말을 걸기 힘든 분위기가 있었다. 그는 굉장히 기능적으로 계단을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일정한 템포로. 규칙적이고 정밀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전날과 마찬가지로 나의 존재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나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른 채로 그와 지나쳤다. 지나치는 순간, 주변의 중력이 삭. 하고 흔들리는 듯이 느껴졌다.
그날 회사에서는 아침부터 회의가 있었다. 신상품의 발매전략에 대한 상당히 중요한 회의였다. 몇 명인가의 사원이 리포트를 발표했다. 칠판에 숫자를 나열하고 컴퓨터의 화면에 그래프를 띄웠다. 뜨거운 토론이 있었다. 나도 거기에 참가했지만, 그 회의에 대한 나의 위치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프로젝트에 직접 관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의시간 동안 나는 줄곧 생각을 했다. 그래도 한 번만은 나는 발언했다. 대단한 발언은 아니다. 옵저버로서의 극히 상식적인 의견이다. 뭐라해도, 전혀 한마디도 말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원래 일에 열심인 사람은 아니지만, 여기서 급료를 받고 있는 이상, 그 나름의 책임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의 의견을 모아서 정리하고, 그 때의 분위기를 풀기 위한 가벼운 농담도 했다. 아마도 계속 TV피플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에 조금 켕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몇 명인가 웃었다. 하지만 한 번 발언을 해버리고 난 뒤로는 자료를 쳐다보는 흉내를 내며 다시 계속 TV피플에 대해 생각했다. 새로운 전자레인지에 어떤 이름이 붙여지든, 그런 것은 내가 알 바 아니었다. 내 머리 속에는 TV피플의 일밖에 없었다. 나는 계속 그들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저 텔레비전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라는 것. 왜 TV피플이 일부러 내 방에 텔레비전을 날라 왔는가. 같은 것. 왜 아내는 텔레비전의 출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하는 일. 왜 TV피플은 내 회사에마저 들어와 있는 것인가 하는 일.
회의는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12시에 점심식사를 위한 작은 휴식이 있었다. 밖에 식사하러 나갈 정도의 여가가 없었기에 샌드위치와 커피가 모두에게 날라졌다. 회의실은 담배연기로 차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내 책상 위에 가지고 와서 먹었다. 그걸 먹고 한참 먹고 있는 중에 과장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정직하게 말해서 이 남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째서 좋아지지 않는 건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 수 없다. 어디를 봐도 반발할 만 한 점은 없는 것이다. 상당히 좋은 집안에서 자란 듯 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머리도 나쁘지 않다. 넥타이의 취미도 좋다. 그렇다고 그걸 자랑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부하에게 거만하게 구는 것도 아니다. 나를 마음에 들어 하기조차 한다. 때때로 식사도 사주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이 남자에게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아마 그것은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상대의 몸을 친밀한 듯이 건드리는 게 지나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이야기 도중에 죽 상대의 몸을 건드린다고 해도, 거기에는 별로 싫은 느낌은 없다. 굉장히 스마트하고 자연스러운 건드림이다. 건드려져도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자연스러운 건드림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것이 무척 신경 쓰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본능적으로 몸을 굳히고 만다. 이것은 사소한 일이라 말하면 사소한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신경 쓰인다. 그는 몸을 구부려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까의 회의에서의 자네의 발언 말인데, 그건 좋았어." 라고 과장은 친밀하게 말했다. "아주 간결하고, 중점을 집고 있네. 나는 감복했어. 좋은 지적이다. 자네의 발언으로 타이밍도 좋았네. 응,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해주게."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금세 어디론가 가버렸다. 아마 자신의 점심을 먹으러 간 거겠지. 나는 그 때는 조용히 감사의 말을 했지만, 정직히 말해서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라는 것은 나는 자신이 회의장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곤란했기에, 적당히 떠오른 것을 입 밖에 낸 것뿐이다. 어째서 그 정도로 과장이 일부러 내 자리까지 와서 칭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훨씬 훌륭한 발언을 한 사람도 달리 잔뜩 있을 터이다. 뭔가 이상해. 나는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점심식사의 나머지를 먹었다. 그리고 문득 아내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라고 나는 생각했다. 점심식사를 하러 밖에 나가있을까? 나는 그녀의 회사에 전화 걸어 볼까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뭐든지 좋으니까 아무렇게나 말을 교환해보고 싶었다. 나는 최초의 세 개의 숫자를 돌렸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중도에 그만뒀다. 일부러 전화를 걸 정도의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세계가 어느 정도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점심시간에 아내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 그에 대해서 도대체 뭐라고 말하면 좋은 건가? 게다가, 그녀는 직장에 전화 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수화기를 되돌려 놓고, 한숨을 쉬고 남은 커피를 다 마셨다. 그리고 플라스틱의 컵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10.
오후의 회의에서 나는 다시 TV피플을 보았다. 이번에는 수가 둘로 늘어 나 있었다. 그들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소니의 텔레비전을 안고 회의장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텔레비전의 사이즈는 전날보다 훨씬 컸다. 곤란하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소니는 우리 회사의 라이벌 회사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해도, 그런 상품을 회사 안에 가지고 오면 시끄럽게 된다. 상품을 비교하기 위해 타사의 제품을 부내에 가지고 오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때라도 회사의 마크는 떼어버린다. 외부의 눈에 띄면 상당히 곤란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SONY라는 마크를 당당하게 이쪽에 향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문을 열고 회의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회의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주변을 살펴서, 텔레비전을 놓을 곳을 검사하고 있는 듯했지만, 결국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텔레비전을 안은 채 뒷문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TV피플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TV피플을 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TV피플은 보인 것이다. 그 증거로 TV피플이 텔레비전을 안고 다가오자 거기 있는 사람들은 물러나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TV피플에 대해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반응은 근처 다방의 웨이터가 주문 받은 커피를 날라 왔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원칙적으로, TV피플이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듯이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다른 모두들은 TV피플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만이 TV피플에 대해서의 정보로부터 혼자 제외되어 있는 것일까? 어쩌면 아내도 TV피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마 그렇겠지.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거실에 텔레비전이 출현해도 놀라지도 않고, 거기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외에 설명이 가능하지 않지 않은가.
내 머리는 혼란했다. TV피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은 어째서 언제나 텔레비전을 나르고 있는 것인가. 동료 한 명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떴을 때, 나도 그 뒤를 쫓는 듯이 자리를 떠서 화장실로 갔다. 나와 이 남자는 입사도 동기고, 꽤나 사이가 좋다. 가끔씩 일이 끝난 뒤 둘이서 술자리에 간 적도 있다. 나는 누구하고든지 그런 일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들은 나란히 소변을 봤다. 맙소사, 이런 식이면 저녁때까지는 걸릴 것 같군 그래. 도대체가 언제까지고 회의회의야. 라고 그는 지겨운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거기에 동의했다. 그리고 둘이서 손을 씻었다. 그도 나의 오전중의 회의에서의 발언을 칭찬해 주었다. 나는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말이야 아까 텔레비전을 가지고 들어온 녀석들의 일인데 말이야-" 라고 나는 무심코 말을 꺼내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도꼭지를 꽉 비틀어 잠그고, 페이퍼 타월 두 장을 홀더에서 당겨내어 그걸로 손을 닦았다. 내 쪽은 힐끗 보지도 않았다. 시간을 걸려서 손을 닦고 나서는 타월을 뭉쳐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쩌면 내가 한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들었지만, 듣지 않은 척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때의 분위기에서 더 이상은 아무 것도 묻지 않는 쪽이 좋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고 페이퍼 타월로 손을 닦았다. 공기가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다. 우리는 묵묵히 복도를 걸어 회의실로 돌아갔다. 그 뒤의 회의 동안 그가 나의 시선을 피하는 듯이 느껴졌다.
11.
내가 회사에서 돌아왔을 때, 거실 안은 깜깜했다.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베란다의 창으로부터 낮게 깔린 검은 구름이 보였다. 거실에서는 비 냄새가 났다. 날도 저물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넥타이를 풀고, 주름을 펴서 넥타이 걸이에 걸었다. 양복의 먼지를 브러시로 털었다. 셔츠는 세탁물통에 던져 넣었다. 머리카락에 담배냄새가 배어있었기에, 샤워를 하며 머리를 감았다. 아내는 그 냄새를 지독히 싫어한다. 그녀가 결혼해서 제일 먼저 한일은 내게 담배를 끊게 하는 일이었다. 4년 전의 일이다. 나는 샤워를 하고 나서, 소파에 앉아 타월로 머리를 말리면서 캔 맥주를 마셨다. TV피플이 날라온 텔레비전은 아직 사이드보드 위에 있었다. 나는 테이블 위의 리모컨을 들어 스위치를 눌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스위치 온의 버튼을 눌러도 전원은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화면은 계속 검은 채로였다. 나는 전원코드를 확인해 보았다. 플러그는 똑바로 콘센트에 꽂혀있었다. 나는 플러그를 빼어 다시 한 번 꽂아보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리모컨의 스위치를 아무리 눌러도 화면은 하얘지지 않았다. 확인을 위해 리모컨의 뒤쪽을 열어 전지를 꺼내어 전류측정기에 확인해 보았다. 전지는 새 것이었다. 나는 포기하고 리모컨을 내려놓고, 맥주를 목안으로 흘려 넣었다. 왜 이런 일이 신경 쓰이는 것일까, 하고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텔레비전의 스위치가 들어갔다고 해서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하얀 빛이 떠오르고 자아하는 노이즈가 들릴 뿐이 아닌가. 그런 거 켜지던 안 켜지던 신경 쓸 것은 없지 않아. 하지만 나는 신경 쓰였다. 어제 밤에는 분명히 켜졌었다. 그 뒤로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리모컨을 집어 시험해 보았다. 충분히 손가락에 힘을 넣어서.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무 반응도 없다. 화면은 완전히 죽어있다. 차갑게 식어있다. 차갑게 식어있다.
나는 두 병 째의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 마개를 땄다.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는 포테이토샐러드를 먹었다. 시간은 6시쯤 되었다. 나는 소파 위에서 석간신문을 훑어보았다. 언제나처럼 지루하고 지긋지긋한 시문이었다. 거기에는 읽은 만한 기사라고는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좋은 뉴스 투성이었다. 하지만 특별히 할 만한 다른 일이 생각나지 않아서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신문을 읽었다. 신문을 다 읽고 나면, 뭔가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하여 나는 질질 시간을 끄는 듯이 신문을 읽어나갔다. 그렇다. 편지의 답장을 쓰는 것은 어떨까? 사촌누이로부터 청첩장이 와있다. 거기에 대해서 거절의 답장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 결혼식 날 아내와 둘이서 여행을 가기로 되어있다. 우리들은 오키나와에 갈 것이다. 이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그걸 위해서 두 사람의 휴가일정을 맞추어 놓았다. 이제 와서 변경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버리면 다음번에 언제 둘이 동시에 장기휴가를 얻어낼지는 하느님밖에 모를 일이다. 게다가 나는 그 사촌 누이와 그리 친한 것도 아니다. 벌써 이럭저럭 10년 정도 만나지 못했다. 언제든 간에 빨리 답장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식장을 예약하는 경우도 있겠지. 하지만 안 되겠다. 지금은 편지 따위가 써지지 않는다. 도대체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나는 신문을 다시 열어서 같은 기사를 두 번 읽었다. 그리고는 문득 저녁식사의 준비를 할까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일 관계로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만들어둔 몫만큼 소용없게 된다. 나 혼자의 식사라면 있는 것을 모아서 어떻게든 된다.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 만일 그녀가 아무 것도 안 먹었다면 밖에 나가 둘이서 무언가를 사 먹으면 된다. 조금 이상하군, 나는 생각했다. 우리들은 귀가시간이 여섯 시보다 늦어질 듯 한 때는 반드시 그전에 연락을 하기로 되어있다. 그것이 규칙이다. 자동응답기에라도 메시지만은 남겨둔다. 그렇게 하면 나머지 사람이 그에 맞춰 행동할 수 있게 된다. 먼저 혼자 식사를 끝내둔다던가, 상대의 것까지 만들어 둔다던가, 어떨 때는 먼저 잠들어버린다던가. 나는 일의 성격상 아무래도 밤늦게 들어올 때가 있고, 그녀 쪽도 회식이나 교정으로 귀가시간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 어느 쪽의 직장도 확실하게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다섯 시에 끝나는 타이프의 일이 아닌 것이다. 서로가 바쁜 때는 삼일정도 대화도 하지 않는 때가 있다. 할 수 없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리는 거다. 그래서 우리들은 언제나 상대에게 현실적인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규칙만은 확실히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늦어질 것 같으면, 전화로 그것을 상대에게 전한다. 나는 때때로 그것을 잊어먹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러나 자동응답기에는 아무 메시지도 들어있지 않았다. 나는 신문을 내려놓고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12.
회의의 꿈을 꾸었다. 나는 일어나서 발언하고 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저 지껄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말을 멈추면 나는 죽어버린다. 그래서 말을 멈출 수가 없다. 영원히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을 계속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미 죽어버렸다. 까끌까끌한 석상이 되어 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창문유리가 전부 깨져있어서 거기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TV피플이 있다. 그들은 세 명으로 늘어나 있다. 최초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역시 소니의 컬러텔레비전을 안고 있다. 텔레비전의 화면에는 TV피플이 비쳐있다. 나는 말을 잃어가고 있다. 그에 맞춰 손가락 끝이 조금씩 굳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점점 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눈이 뜨이자, 방안은 흰빛을 띄고 있었다. 마치 수족관의 복도와 같은 색이다. 텔레비전이 켜져 있는 것이다. 주변은 이미 완전히 컴컴해져서. 그 어둠 속에 텔레비전의 화면이 치직 조그만 소리를 내며 빛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소파위에 몸을 일으켜, 손가락 끝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손가락은 아직 유연한 근육 그대로였다. 입안에는 잠자기 전에 마신 맥주 냄새가 남아있다. 침을 삼켰다. 목 안쪽이 붙어있어서 삼키는데 시간이 걸렸다. 리얼한 꿈을 꾸고 난 뒤는 언제나 그렇지만, 꿈보다 각성의 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이것이 현실이다. 아무도 돌 따위가 되어버리진 않는다.
몇 시 일까 생각하고 나는 바닥에 놓인 채인 시계를 보았다. 다룹 크 샤우스다룹 크 샤우스. 8시 조금 전이었다. 하지만 꿈에서처럼, 텔레비전의 화면에는 한사람의 TV피플이 비춰져있다. 그 TV피플은 회사의 계단에서 나와 스쳐지나갔던 그 TV피플이었다. 틀림없이 그 남자다. 최초에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온 남자. 백퍼센트 틀림없다. 그는 반디불빛 같은 하얀 빛을 배경으로, 가만히 서서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현실에까지 따라온 꿈의 자취 같았다. 눈을 감고 눈을 떠보면 그런 것은 금방 없어져 버릴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았다. 화면의 TV피플의 모습은 오히려 점점 켜져 갔다. 화면에 그의 얼굴이 가득 비치었다.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는 듯 한 느낌으로, TV피플의 얼굴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는 TV피플은 텔레비전의 밖으로 나왔다. 마치 창문으로 나오는 듯이, 턱에 손을 걸치고 다리를 영차 짚어 밟아 나왔다. 그가 나온 뒤의 화면 배경의 흰색 빛만이 남았다. 그는 한동안 텔레비전의 바깥 세계에 몸을 익숙하게 하려는 듯이 오른손 손가락으로 왼손을 주물렀다. 축척이 작은 오른손이 축척이 작은 왼손을 오랫동안 주무르고 있다. 그는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는 듯 한 어딘가 여유 있는 몸짓이었다. 쇼에 익숙해진 사회자 같았다. 그는 그리고는 내 얼굴을 보았다. "우리들은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 라고 TV피플은 말했다. 원근감이 없는 목소리였다. 평탄해서 마치 종이에 쓰여 있는 목소리 같았다. 그의 말에 맞추어 텔레비전의 화면에는 검은 기계가 비춰졌다. 진짜 뉴스쇼 같다. 먼저 넓은 공장 같은 스페이스가 비춰지고, 그리고는 한가운데 있는 작업장이 UP되었다. 두 사람의 TV피플이 그 기계를 만지고 있었다. 스패너를 써서 볼트를 죄이거나, 계기를 조정하곤 했다. 그들은 그 작업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상한 기계였다. 원반형으로 위가 뾰족한, 여기저기에 유선형의 돌출부가 나와 있다. 그것은 비행기라고 하기보다는 거대한 오렌지 짜는 기계처럼 보였다. 날개도 없는 데다, 좌석도 없었다. "비행기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 라고 나는 말했다. 내 목소리는 내 목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상당히 이상한 목소리다. 두툼한 필터로 양분을 완전히 빨려버린 뒤의 목소리이다. 자신이 상당히 나이를 먹어버렸다는 기분이 든다. "그건 아직 색을 입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TV피플은 말했다. "내일이면 완전히 색을 입힌다. 그러면 비행기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 테지.", "색의 문제가 아니야. 형태의 문제라고. 그건 비행기가 아니야.", "비행기가 아니라고 하면, 이게 뭐란 거지?" 라고 TV피플은 내게 물었다. 나로선 알 수가 없었다. 라고 한다면 이건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니까 색깔 탓이야." 라고 TV피플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색을 입히면 확실히 비행기가 된다." 나는 그 이상 논쟁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느 쪽이든 좋잖아.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이 오렌지를 가는 비행기든지, 하늘을 나는 오렌지가는 기계든지 그게 어쨌단 말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아내는 어째서 돌아오지 않는 거지. 나는 손가락 끝으로 다시 한 번 관자놀이를 눌렀다. 시계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룹 크 샤우스다룹 크 샤우스. 테이블 위에는 리모컨이 얹어져 있다. 그 옆에는 여성잡지가 쌓여있다. 전화는 아직 침묵을 지킨다. 거실에는 텔레비전의 좀 어두운 빛을 받고 있다. 텔레비전의 화면에는 두 사람의 TV피플이 열심히 계속 작업하고 있다. 화면은 아까보다 훨씬 분명해져있다. 기계의 계기의 숫자마저 지금은 확실히 읽을 수 있다. 약하긴 하지만 그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기계가 다아 아브쥬라야훗그 다아브쥬라야이훗그 아ㄹ프 아ㄹ프 다아브쥬라야이훗그, 라는 울림을 내고 있다. 때때로 그 속이 금속을 치는 규칙 바른 건조한 소리가 들린다. 아리이이이인부쯔 아리이이인부쯔, 그것은 들린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소리가 섞여 있다. 하지만 내게는 그 이상 확실히 구분해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간에 그 두 사람의 TV피플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것이 그 화면의 테마인 것이다.
나는 한동안 그 두 사람의 작업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화면 밖의 TV피플도 조용히 화면 안의 동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뭔지 알 수 없는 - 그것은 아무래도 내게는 비행기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 새까만 기계가, 하얀 빛 속에 떠오르고 있다. "부인은 돌아오지 않아요." 라고 화면밖에 있는 TV피플이 내게 말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잘 캐치할 수가 없었다. 나는 새하얀 브라운관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의 얼굴을 지긋이 보았다. "부인은 돌아오지 않아요." 라고 TV피플은 똑같은 어조로 말했다."어째서?" 나는 물었다. "어째서라니, 이젠 끝났으니까지." 라고 TV피플은 말했다. 호텔에서 사용하는 카드식의 플라스틱 키 같은 목소리였다. 평면적으로 인상이 없는 목소리가, 가는 슬릿에서 칼날처럼 스윽 들어오고 있다. "이젠 끝났으니까 돌아오지 않는다." .이.젠 .끝.났.으.니.까 .돌.아.오.지 .않.는.다. 라고 나는 머릿속에서 되뇌었다. 아주 평탄해서 리얼리티가 없다. 나는 그 문맥을 잘 파악할 수가 없었다. 원인이 결과의 꼬리를 물어 삼키려 하고 있다.
나는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심호흡을 하고 캔 맥주를 꺼내 소파로 돌아왔다. TV피플은 텔레비전의 앞에 가만히 선 채로 내가 고리를 잡아떼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왼팔을 텔레비전의 위에 얹고 있다. 나는 별로 맥주가 먹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견딜 수 없어서 맥주를 가져온 것뿐이었다. 한 모금 마셔보았지만, 맥주는 그리 맛이 없었다. 나는 캔을 계속 손에 쥐고 있었지만, 무거워져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나는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TV피플의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미 우리들이 끝나버렸다고 한다. 그것이 그녀의 돌아오지 않는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우리의 결혼이 끝나버렸다고는 아무래도 생각되지 않았다. 물론 우리들은 완벽한 부부는 아니었다. 우리들은 4년 동안 몇 번인가 싸움을 했다. 우리들 사이에는 분명히 몇 개인가의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 때때로 이야기했다. 해결한 것도 있는가하면 해결하지 못한 것도 있다. 해결되지 못한 것의 대부분은 그대로 버려져, 해결될 시간의 경과를 기다리고 있다. 오케이, 우리들은 문제가 있는 부부였다. 그건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끝났다고 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렇지 않은가. 어디에 문제없는 부부가 있어? 게다가 지금은 아직 여덟시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인가의 이유로 어떻게 해도 전화를 할 수 없는 것뿐이다. 그런 이유는 얼마든지 생각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하지만 나는 하나도 생각해 내지 못했다. 나는 지독한 혼동 속에 있다. 나는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저 비행기는 - 만일 저게 비행기라고 한다면 - 도대체 어떻게 나는 걸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추진력은 뭐지? 창은 어디에 있는 거야? 도대체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 인거야? 나는 굉장히 지쳐버렸다. 사촌누이에게 거절의 편지를 쓰지 않으면,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일 때문에 아무래도 출석할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라고. 텔레비전의 안의 두 사람의 TV피플은 나와는 관계없이, 계속 비행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들은 잠시도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 기계가 완성되기까지 그들이 골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업은 무한한 것 같다. 한 가지 작업이 끝나면, 쉬지 않고 곧 다음 작업을 시작한다. 잘 정리된 공정표나 도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좋은지, 다음에 무엇을 해야 좋을지 잘 알고 있다. 카메라는 그들의 그 작업을 잘 쫓아가고 있다. 알기 쉬운 정확한 카메라 워크였다. 설득력이 있는 화면이었다. 아마도 다른 (제4 내지 제5의) TV피플이 카메라나 콘트럴 패널의 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거겠지. 이상한 이야기지만, TV피플의 그런 완벽하다고 할 만한 작업을 가만히 보고 있는 동안, 내게도 그것이 조금씩 비행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적어도 비행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든, 그런 건 상관없잖아 라고 나는 생각했다. 저 정도로 볼만하게 정밀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저건 분명 비행기인 거다, 비록 그렇게 보이진 않아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저것은 비행기이다. 분명히 이 남자가 말한 대로이다. 비행기가 아니라고 하면, 이게 뭐지? 텔레비전의 밖의 TV피플은 아까부터 조금도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는 왼팔을 텔레비전의 위에 얹고,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관찰되고 있다. 텔레비전의 안의 TV피플은 계속 일하고 있다. 시계소리가 들린다. 다 룹 크 샤우스다룹 크 샤우스거실은 어둡고 숨이 막혔다. 누군가가 구둣소리를 내면서 복도를 걷고 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나는 돌연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히 아내는 이젠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는 벌써 멀리 가버린 것이다. 이런저런 교통수단을 이용해, 내 손이 닿지 않는 먼 장소로 가버린 것이다. 분명히 우리들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끝나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만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그럴지도 몰라, 라고 나는 입 밖에 내어 보았다. 내 목소리는 내 몸 안에서 아주 공허하게 울렸다. "내일 색을 입히면, 좀 더 알아볼 수 있게 될 거야." 하고 TV피플은 말했다. "색깔만 입히면 확실히 비행기가 된다." 나는 내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내 손바닥은 언제나와 비교해서 조금 줄어들어 보였다. 아주 조금. 기분 탓인지도 모른다. 빛의 영향으로 그렇게 보이는 지도 몰라. 원근감의 밸런스가 조금 엉망이 되어버린 건지도 몰라. 하지만 분명히 손바닥은 줄어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잠깐 기다려. 나는 말하고 싶어. 나는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으면 안 돼. 내게는 해야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줄어들고 말라붙어, 그리고 돌이 되어 버린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곧 여기에 전화가 걸려 올 거요." 하고 TV피플은 말했다. 그리고는 계산하는 듯이 잠시 틈을 두었다. "앞으로 5분쯤 뒤에" 나는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나는 전화기의 코드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 까지던 어디 까지던 이어져 있는 전화기의 코드. 그 엄청난 회선 미로의 어딘가의 끝에 아내가 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주 먼, 내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멀리다. 나는 그녀의 고동을 느낄 수 있었다. 오 분 뒤에, 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지? 나는 일어서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어선 순간 말은 사라져 없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