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런던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머스트 고 플레이스(Must Go Place)가 하나 추가됐다. 주인공은 지난해 말 세계 최대의 디자인 뮤지엄인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V & A)’에 155년 역사상 처음 들어선 상설 가구관 수잔 위버 갤러리(Dr Susan Weber Gallery)이다. 유럽의 대표적인 디자인 뮤지엄에는 가구관이 필수적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오히려 세계 최고의 디자인 뮤지엄을 내세우고 있는 V & A가 이제서야 가구 상설관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하지만 늦은 만큼, 전시 방식은 이전 다른 뮤지엄들이 보여줬던 천편일률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구 전시관의 대안을 제시해 준다.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V & A)의 최초 가구 전시관 수잔 위버 갤러리(Dr Susan Weber Gallery)
수잔 위버 갤러리는 전통적으로 세라믹 콜렉션을 기반으로 세워진 V & A에 들어선 최초의 가구 전용 전시관이다.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각국에서 만든 250여 점이 넘는 가구가 전시됐다. 이 전시관의 두드러진 특징은 가구를 디자이너별, 시대별로 보여주는 여타 전시관과는 달리 머티리얼과 제작 기술 등 가구에 적용된 테크닉을 중심으로 전시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구의 형태나 색감만을 보여주는 기존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가구의 이면, 제작 과정을 동영상, 디지털 가이드, 이미지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알 수 있다.
디지털 제작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터치스크린
영국의 유력 언론 가디언지는 이런 디스플레이 방식의 전환이 가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 분석한다. 지금까지 가구 전시는 그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하나의 도구, 매개였기에 연대기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최근엔 대중들이 장인 정신, 수공 기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디자인 가구를 장인 정신의 결정체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런 제작 방식을 중심으로 한 분류를 선택한 것이라는 얘기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의자를 보여주는 공간. 왼쪽엔 오디오 가이드가, 오른쪽엔 터치스크린이 있고, 유리관은 없앴다.
글래스고의 건축회사 노르드 아키텍쳐(Nord Architecture)가 디자인한 공간에선 지난 30년간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이 공개됐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중간에 아일랜드 방식으로, 1.400년대부터 현재까지 가구의 진화를 보여주는 25점의 가구가 눈에 펼쳐진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들이 아니라 이들을 둘러싸고 전시관 양 벽쪽으로 벤딩, 옷칠, 몰딩, 플라스틱, 디지털 제작 등 16가지의 테마(머티리얼, 제작기술)에 따라 나열된 200여 점의 가구들이다. 그 군데군데 에일린 그레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토머스 치펜데일, 토넷 등 아이코닉한 디자이너의 작품을 별도로 전시했다.
V & A는 관객과 전시 가구 간의 장벽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디지털 라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전시 작품 옆에 터치스크린과 오디오 가이드를 부착했고 유리 케이스는 과감히 없앴다. 터치스크린을 누르면 디자이너와 작품에 대한 설명, 제작 기법은 물론이고 전시되지 못한 관련 사진과 정보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머티리얼을 보여주는 인터렉티브 테이블. 블럭을 갖다대면 화면에 그 머티리얼에 관련된 정보가 뜬다.
전시관의 한 중간에는 두 개의 디지털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테이블은 머티리얼을 보여주는 인터렉티브 테이블인데, 나무 블록처럼 생긴 테이블 위에 놓인 블록에 손을 대면 테이블 위로 그 머티리얼과 관계된 가구와 머티리얼을 채취하는 방법 등 제작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타난다.
토넷 체어
이 전시관은 단순히 가구 디자인을 새롭게 보여준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V & A의 변신을 보여주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V & A는 새 갤러리와 기존 컬렉션의 재배치를 통해 박물관을 변신시키는 퓨처 플랜(Future Plan)이라는 정책을 도입했는데, 이번 가구 전시관은 이 야심찬 프로젝트의 시발점이다.
론 아라드가 디자인한 책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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