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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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로의 세계로 오세요

나는 얼마 전에 담배를 끊었으나, 지금도 이따금 담배를 피우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담배에 불을 붙여 가지고 입에 물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은 하지만, 피워 버린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으냐며 그대로 피우고 만다. 끊고 나서 5개월이 지났는데요. 아직도 이런 꼴인 걸 보면, 담배라는 것은 상당히 끈질긴 물건이다. 외국 잡지에 실리는 담배 광고는 상당히 자극적이다. 일본과는 달리 담배를 나라에서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광고가 각기 독특하다. 그래서인지 보고 있기만 해도 무의식적으로 담배에 손이 가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말보로 담배 광고인데, 광고 모델은 전원이 카우보이고, 카피는 언제나 단 한 줄, "말보로의 세계로 오세요."다. 피터 예이츠의 영화 에는 이 말..

하이네켄 맥주의 빈깡통을 밟는 코끼리에 대한 단문

동물원이 폐쇠되었을때 마을 사람들은 서로 돈을 내 코끼리를 손에 넣었다. 동물원은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너절한 동물원이었고 코끼리는 늙고 진이 빠져 있었다. 너무나도 늙고 진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느 동물원에서도 그 코끼리를 인수하려고 하지 않았다. 코끼리는 그렇게 오래 살면서도 선택될 것 같지는 않아 보였고 그런 관에 한쪽 다리를 처넣은 것 같은 코끼리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인수하려고 할 만큼 유별난 것을 좋아하는 동물원도 없었다. 동물 거래업자도 그 코끼리를 처치 곤란해하며 거저라도 좋으니까 코끼리를 인수해 주지 않겠느냐고 마을에 말을 꺼냈다. "나이를 먹어서 먹이도 그렇게 많이 먹지 않습니다. 난폭하게 굴지도 않습니다. 그저 장소만 있으면 됩니다. 싸게 잘 사시는 겁니다. 여하..

실수에 대하여

직업적으로 글을 쓰게 되면서 가장 절실히 느끼는 것이 "사람은 반드시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글을 쓰기 이전부터 일상적으로 이런저런 실수를 해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이런 것을 절감할 필요도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글을 쓰기 이전의 실수는 대개 "아- 미안 실수"로 해결된다. 상대방도 "이제 와서 할 수 없지"라며 끝낸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있으면 실수라는 것은 확실하게 뒤에 남게 되고 게다가 그 실수가 광범위하게 흩어지게 된다. 그 실수를 알게 되도 "아, 미안 실수"라고 독자 한사람 한사람에게 사과하고 다닐 수도 없다. 이런 일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다. 그 대신 ―라고 말하는 것도 좀 뭐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꽤 관대한 편이 ..

왠지 이상한 하루

며칠전 갑지기 딕킨스의〈데이비드 커퍼필드〉가 읽고 싶어져서 모 대형서점에 가서 찾아 보았는데 이게 도대체 눈에 띄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안내데스크에 있는 젊은 여점원에게 "미안합니다만 딕킨스의〈데이비드 커퍼필드〉를 찾고 있는데요" 라고 했더니 "그게 어떤 분야의 책인데요?" 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엣?" 라고 했더니 상대방도 역시 "엣?" 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딕킨스의〈데이비드 커퍼필드〉인데요"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어떤 종류의 책이냐니까요?" "에, 그러니까 소설인데요" 이런 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 결국 그것에 관해서는 소설 카운터에다 문의해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소위 서점의 안내라면서 딕킨스를 모른다니"라며 아연했지만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딕킨스 같은 건 우선 읽기 ..

굿 하우스킵핑(Good Housekeeping)

결혼해서 2년쯤 지난 후였다고 생각되는데, 나는 반년 정도 주부(主夫=House husband)노릇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지극히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 반년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한 페이지였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당시는 특별히〈주부(主夫)〉노릇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쩌다 보니 공교롭게도 집사람이 직장에 나가고 내가 집에 남게 되는 운명이 되었던 것이었다. 벌써 이럭저럭 12, 3년전의 일로, 죤 레논이〈주부(主夫)〉노릇을 한다해서 화제가 되기 이전의 이야기다. 〈주부(主夫)〉의 일상은〈주부(主婦)〉의 일상과 다를 게 없이 평온하다. 우선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차리고, 집사람을 출근시킨 다음, 설것이를 한다..

단 하루에 싹 바뀌는 일도 있다

무슨 일에 대한 견해가, 어떤 한 사건을 계기로 단 하루 만에 싹 바뀌는 일이 가끔 있다. 그렇게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자주 있었다가는 피곤해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잊을 만하면 불쑥 생긴다.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도 있고, 부정적으로 변화하는 것도 있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그야 물론 긍정적으로 변하는 편이 바람직하기는 한데……. 디나 워싱턴이 그 옛날 '단 하루에 이 얼마나 큰 변화인가(What a Difference a Day Makes)'라는 노래를 부른 일이 있는데, 물론 사랑을 말하는 것이지요. 사랑을 함으로써 주변의 세계가 크게 바뀌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몸소 체험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이성과 마음을 나눔으로써, 반짝거리는 태양과 바람의 감촉이 어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빵가게 습격

아무튼 우리는 배가 고팠다. 아니, 배가 고픈 정도가 아니라 마치 우주의 공허를 그대로 삼켜 버린 것같이 속이 텅 비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도넛 구멍처럼 작은 공백이었던 것이, 날이 감에 따라 우리 몸 안에서 자꾸자꾸 커져서 마침내는 바닥 모를 허무가 되었다. 공복이라는 장중한 BGM이 달린 금자탑인 것이다. 공복감은 왜 생기는가? 물론 그것은 식료품의 부족에서 온다. 왜 식료품은 부족한가? 적당한 등가 교환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등가 교환물을 갖고 있지 못한가? 어쩌면 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한 까닭일 것이다. 그렇다, 공복감은 상상력의 부족에 기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러면 어때. 신도, 마르크스도, 존 레논도 죽었다. 아무튼 우리는 배가 고팠고 그 결과 악으로 달리려 했..

서른 두살의 데이트리퍼

내가 서른둘이고 그녀는 열여덟이고...... 이렇게 하면 아무래도 지루한 표현이 될수 밖에 없다. 나는 아직 서른둘이고, 그녀는 벌써 열여덟......좋아, 이거다. 우리는 그저 그런 친구 사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에겐 아내가 있고 그녀에겐 남자 친구가 여섯이나 있다. 그녀는 주말마다 여섯 명의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한 달에 한번씩 일요일에 나하고 데이트를 한다. 그 이외의 일요일에는 텔레비젼을 본다. 텔레비젼을 볼 때의 그녀는 해마처럼 귀엽다. 그녀는 1963년에 태어났는데, 그해에는 케네디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그 해에, 나는 처음으로 여자아이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유행하던 곡은 클리프 리처드의 '서머 홀리데이'였던가? 뭐, 그런 거는 아무러면 어때. 아무튼..

상실의 시대

NORWEGIAN WOOD – written by John Lennon 노르웨이의 숲 - 존 레논 작사 예전에 나는 한 여자를 소유했었지, 아니 그녀가 나를 소유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녀는 내게 자기 방을 보여 줬어. 멋지지 않아? 노르웨이의 숲에서 그녀는 나에게 머물다 가길 권했고 어디 좀 앉으라고 말했어.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의자 하나 없었지. 양탄자 위에 앉아 시계를 흘끔거리며 와인을 홀짝이며 우리는 밤 두 시까지 이야기했어. 이윽고 그녀가 이러는 거야 "잠잘 시간이잖아." 그녀는 아침이면 흥분한다고 말했어. 그러곤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지. 나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곤 목욕탕으로 들어가 잠들어 버렸어. 눈을 떴을 때, 난 혼자였어, 그 새는 날아가 버린 거야, 난 벽난로 불을 지폈어. 멋..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어려서부터 애지중지 길러진 아름다운 소녀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응석받이가 되었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데 천재적인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젊었기 때문에 - 21살이나 22살 이었다 - 그녀의 악취미를 몹시 불쾌하게 여겼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는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힘으로써 자기 자신도 똑같이 상처를 받았음에 틀림없다. 워낙 오냐오냐 하고 길러졌기 때문에 기분 내키는 대로 표현하는 것 이외에는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보다 훨씬 강한 누군가가 그녀의 몸 어딘가를 요령 있게 갈라서 그 에고를 내좇았다면 그녀도 훨씬 편안했을 것이다. 그녀도 역시 구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주위에는 그녀보다 강한 사람이 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