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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미케네의 소혹성 호텔

chocohuh 2022. 2. 3. 17:10

그리스에 미케네란 이름의 동네가 있다. 슈리만이 아가멤논의 묘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유명하다 해도 미케네는 정말 조그만 마을로, 규모는 다케시타 거리 정도이다.

관광버스가 오면 사람들로 웅성웅성 붐비지만, 버스가 떠나면 소음 하나 없는 조용한 마을로 되돌아간다. 지리적으로는 아테네에서 당일 코스에 들어가니까 구태여 이곳에 머무는 손님도 없다. 나는 이 미케네 마을을 제법 좋아한다.

 

미케네에서 가장 좋은 호텔은 '르 푸치 플라넷' 소혹성이란 이름의 호텔이다. 하기야 우리의 감각으로는 호텔이라기 보단 펜션이나 산장에 가깝다. 설비도 그리스에 있는 호텔의 95퍼센트가 그렇듯 대충대충이고, 방도 딱히 깨끗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호텔은 아담하여 차분하게 기분을 가라앉힐 수 있다.

 

'르 푸치 플라넷'은 전 그리스 공군인 파이로트 씨와 그의 미모의 마누라가 경영하고 있다.

남편 쪽은 음식 솜씨가 일품이라 반듯하게 격식을 갖춘 그리스 가정요리를 제공한다. 그는 폭격기를 탔는데, 키프로스 분쟁 때에 전쟁이 지겹도록 싫어져서 군을 제대하고 호텔 오너가 됐다는 사람이다. 어린 딸이 둘 있는데, 둘 다 아주 귀엽다.

 

밤이 되면 미케네 거리는 암흑으로 변한다. 그런 어둠은 좀체 드물지 않을까 싶게 어둡다. 나는 어둠 속에 떠 있는 베란다에서 쌀밥이 곁들여진 생선 요리를 더듬더듬 먹어가며, 아가멤논 산 위에 있는 화톳불을 바라보기도 하고, 주인과 세상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는 아주 즐겁다는 듯 하루하루의 생활을 얘기한다.

 

"행복하신 것 같군요?"하고 내가 묻는다.

 

"물론."하고 그가 대답한다. "아주 아주 행복합니다."

 

일본인 중 과연 몇 사람이 '행복한가?' 하는 질문에, 이런 식으로 대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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