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왕국 뒤편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나 깨끗해서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수초가 자라고 있어서 물고기들은 그것을 먹으며 살았다. 물고기들은 왕국이 사라지건 말건 상관없었다. 그건 그렇다. 물고기들에겐 왕국이니 공화국이나 하는 건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 투표 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세금 따위도 납부하지 않았다.
"그런 건 우리와 관계없는 일이야."
물고기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냇물에서 발을 씻었다. 냇물은 차가워서 잠깐 발을 담그고 있어도 금세 빨개졌다.
냇가에는 잊혀진 왕국의 성벽과 첨탑이 보였다. 첨탑에는 두 가지 색으로 된 깃발이 게양된 채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냇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그 깃발을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것 봐. 저건 잊혀진 왕국의 깃발이야."
* * *
Q는 내 친구다. 또는 친구였다. 왜냐하면 Q와 나는 10여 년간 서로 친구다운 관계를 단 한 차례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친구였다고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는 친구였다.
Q라는 인물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절망적인 무력감에 휩싸인다. 나는 원래 설명을 잘 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역시 Q라는 인물에 대해서 설명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 일을 시도할 때마다 깊고 깊은, 아주 깊고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
Q는 나와 동갑으로, 나보다 570배 가량은 핸섬하다. 성격도 좋다. 결코 남 앞에서 뽐내는 일이 없다. 자기 자랑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 실수로 자기에게 폐를 끼쳤다 하더라도 별로 화를 내지 않는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쳤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환경도 좋았다. 그의 아버지는 시코쿠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꽤 많은 용돈을 갖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특별히 낭비를 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운동선수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테니스 부원으로 인터하이(고등학교 테니스부 경기)에도 나갔다. 취미는 수영으로 일주일에 두 번은 수영장에 갔다. 정치적으로는 온건한 자유주의자였다.
성적도 - 우수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 좋았다. 시험공부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학습량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수업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이었다. 빌 에반스와 모짜르트의 레코드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소설은 발자크와 모파상 등 프랑스 문학을 좋아했다. 오에 겐자부로의 글도 때때로 읽었다. 그리고 제법 날카로운 비평도 했다.
그는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인기가 없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사귀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지적이고 예쁜 여자 친구가 있었다. 어는 전통 있는 여자 대학 2학년생으로 매주 일요일마다 데이트를 했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대학 시절의 Q다. 뭔가 빠트린 말이 있는 것 같지만 그건 무엇이건 대수롭지 않은 것이리라. 한마디로 말해서 Q는 거의 흠 잡을 데 없는 인물이었다.
그 무렵, Q는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소금을 빌려 주거나 드레싱을 빌리러 오면서 우리는 친해졌다. 서로의 방을 오가며 레코드를 듣기도 하고, 함께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와 내 여자친구, Q와 그의 여자 친구, 이렇게 넷이서 가마쿠라까지 드라이브를 간 적도 있었다. 아주 유쾌한 나날이었다. 대학 4학년 여름에 내가 아파트를 나오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 * *
내가 Q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10년쯤 뒤였다. 나는 아카사카 근처에 있는 호텔 수영장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Q는 내 옆 의자에 않았다. Q옆에는 아슬아슬한 비키니 수영복을 걸친, 다리가 긴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Q의 동행이었다.
나는 Q를 한눈에 알아 봤다. Q는 여전히 핸섬했으며, 서른을 조금 지난 그에게는 예전엔 없었던 위엄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여자들이 지나가면서 흘끔흘끔 그를 훔쳐보곤 했다.
하지만 Q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평범한 얼굴인데다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말을 걸지 않기로 했다. Q는 옆의 여자와 이야기에 빠져 있었으므로 불쑥 아는 체 하면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와 Q 사이에는 공통의 화제가 거의 없었다. 소금을 빌려 주셨지요, 드레싱을 빌리러 왔지요. 이런 정도의 얘기 갖고는 그다지 대화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잠자코 책을 읽었다.
수영장은 아주 조용했기 때문에 Q와 동행한 여자의 이야기는 듣기 싫어도 귀에 들어왔다. 아주 복잡한 이야기였다. 나는 책 읽는 것을 단념하고,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싫어요. 글쎄 싫다니까요. 농담 마세요."
다리가 긴 여자가 말했다.
"아니, 내 말 좀 들어 봐. 당신이 하는 말은 잘 알아. 하지만 내가 하는 말도 이해해 달라구. 나라고 해서 뭐 이런 일이 좋아서 하는 건 아니잖아. 내가 결정한 게 아니야. 위에서 결정한 일을 당신한테 전달하는 것 뿐이라구.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Q는 말했다.
"흥, 어쩐지."
여자가 말했다.
물론 상당 부분은 나의 상상이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대충 이런 것이었다.
Q는 방송국에서 디렉터 일을 맡고 있었고, 여자는 좀 유명한 가수인가 여배우였다. 그런데 여자 쪽에서 무슨 트러블인지 스캔들을 일으켜 - 어쩌면 그저 단순히 인기가 떨어졌을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 고정 프로에서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현장의 직접적인 책임자 Q가 그 사실을 그녀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연예계 쪽에는 그다지 밝지 않아서 자세한 상황은 잘 모르지만, 아마 줄거리의 대강은 그다지 틀리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들은 대로라면 Q는 성실하게 그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우리는 스폰서 없이는 일을 해나갈 수 없어. 당신도 이 세계에서 잔뼈가 굵었으니까 그 정도는 알 거 아니야."
Q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한테는 전혀 책임도 발언권도 없단 말인가요?"
"글쎄,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주 제한되어 있어."
그리고 두 사람은 끝이 나지 않는 대화를 계속했다. 여자는 Q가 자기를 지켜 주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힘닿는 데까지는 노력해 봤어."
Q가 말했다.
하지만 증거는 없었다. 여자는 믿지 않았다. 나도 별로 믿어지지 않았다. Q가 성실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불성실한 공기가 안개처럼 주위에 감돌았다. 하지만 그것은 Q의 책임은 아니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대화에는 출구가 없었다.
여자는 이제까지 Q에 대한 호감을 품어왔던 것처럼 보였다. 이번 일이 있기까지 두 사람은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여자는 더욱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내 여자가 단념을 했다.
"알겠어요. 이제 됐으니까 콜라나 사주세요."
Q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이는 듯이 가볍게 일어나 매점으로 갔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쓰고, 가만히 앞 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같은 페이지의 똑같은 문장을 되풀이해서 읽고 있었다.
잠시 후 Q는 콜라가 들어 있는 종이컵을 두 손에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하나를 여자에게 건네주고, 의자에 걸터 앉았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그러다 보면 또 분명히......."
그때,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콜라 컵을 Q의 얼굴을 향해 내 던졌다. 컵은 Q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L사이즈 컵에 든 코카콜라 3분의 2가 Q를 덥쳤고, 3분의 1은 나에게 뿌려졌다. 그런 다음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수영복의 엉덩이 부분을 조금 끌어 내리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나와 Q는 15초 가량 넋을 놓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도 깜짝 놀란 듯이 우리를 쳐다봤다.
먼저 침착을 되찾은 건 Q였다.
"죄송합니다."
그는 타월을 내밀며 정중히 사과했다.
"아니 괜찮습니다. 샤워를 하면 되지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가볍게 거절했다. Q는 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타월을 거두어 자기 몸을 닦았다.
"새 책을 사드리죠."
책은 푹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싸구려 문고판이었고, 그다지 재미있는 책도 아니었다. 누군가 콜라를 뿌려서 읽지 못하게 도와준 것만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Q는 빙긋이 웃었다. 옛날처럼 기분좋게 웃는 얼굴이었다.
Q는 다시 한 번 나에게 사과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 * *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잊혀진 왕국'으로 한 것은, 그날 석간신문에서 우연히 아프리카의 어는 잊혀진 왕국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왕국이 퇴색해 가는 것은.....'
이렇게 시작된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었다.
'후진 공화국이 붕괴되는 것보다 훨씬 서글프다.'